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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트럼프 위협, 결코 만만치 않다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2024년은 정치가 경제를 쥐고 흔드는 '폴리코노미'(Policonomy)의 해다. 세계 인구의 절반쯤을 차지하는 최소 64개국이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르는데 선거 승리를 위해 후보들마다 선심성 공약을 쏟아낼 경우, 재정 과다 지출로 인플레이션이 악화되고 국가 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수 있다. 정치적 격랑의 중심에는 미국 대선, 즉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이 있다. 미 대선이 11월인 것도 불확실성 증폭의 촉매다. 전 세계의 지정학적 긴장감은 열 달 넘게 출렁일 터이다.

'트럼프의 승리는 혼란과 복수를 촉발할 수 있고, 이는 국제 질서를 영구적으로 뒤집고 권위주의와 독재 쪽으로 균형추를 기울일 수 있다'(가디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은 올해 세계가 직면할 가장 큰 위협'(영국 이코노미스트) 등의 경고는 과장이 아니다. 트럼프가 내건 공약이나 과거 행보를 볼 때 정치·경제 전문가들이 진단한 세계 정세의 연착륙 해법과는 정반대로 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미국 패권 시대는 끝났고 중국, 러시아뿐 아니라 이란과의 관계도 개선하라는 제안에 트럼프는 어림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일성은 확고하다. 러시아 견제를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크라이나 확장을 조장·묵인했던 미국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러·우 전쟁이 일찍 끝나기도 쉽지 않다. 유가와 곡물가는 들썩이고, 공급망 위협에 따른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도 우려스럽다.

'미·중 대리전' 성격의 대만 대선에서 친미 독립파인 집권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돼 미·중 갈등은 예측 불허가 됐다. 라이칭더 당선인은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국익을 강화하는 고도의 외교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트럼프 당선은 이런 해법의 난도를 훨씬 높일 것이다.

트럼프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백지화와 10% 보편적 기본 관세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기차 보조금 지원 내용을 담은 IRA가 폐기되면 세액공제 혜택을 위해 미국 현지 생산 공장을 짓는 등 대규모 투자를 해온 국내와 지역 업계의 타격이 우려된다. 2차전지 대전환 시대에 지역 대표 기업인 포스코그룹은 회장이 바뀌고, 포항을 중심으로 7조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 중인 에코프로는 회장이 수감 중이다.

'장사꾼' 트럼프는 한미 군사적 동맹에 대한 영수증을 들이밀 수 있다. 쉽게 말해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방위비 분담 등을 둘러싼 돈 요구가 한층 거세질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한민국 족속들을 주적으로 단정한다.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없다"며 공개적 위협을 해대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다. 남북의 극한 대치가 이어지고 트럼프가 정권을 쥐면 한반도 긴장은 극에 달할 것이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북한의 도발은 다분히 의도적임을 놓쳐선 안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반란 가담(의회 폭동 선동) 혐의로 기소돼 연방대법원 판단을 기다려야 하지만 현 상황은 대선 출마가 무난할 전망이다. 트럼프가 즉흥적이며 의기투합만 하면 쉽사리 내 편이 될 수 있다는 오판은 금물이다. 트럼프는 정치인이기 전에 기업가, 장사꾼이다. 이익이 되는 사안에는 눈에 불을 켤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차갑게 외면할 것이다. 만만치 않은 상대다. 금리 인하 기조를 필두로 2024년 경기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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