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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칼럼] 민심은 ‘천심’(天心)? 천심다워야 천심이다

정경훈 매일신문 논설위원
정경훈 매일신문 논설위원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는 자유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는 것이다. 히틀러는 이를 적극 지지했다. 1930년 9월 독일 총선에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이 사회민주당에 이어 원내 제2당이 됐을 때 당시 하인리히 브뤼닝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민에게서 모든 권력이 나온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바이마르 민주주의'가 만개한 당시 독일의 현실에서 이 원칙을 따르지 않고서는 권력을 잡을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이런 원칙에 기대 행동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민주주의를 파괴해 버렸다. 히틀러는 물리력으로 정권을 잡지 않았다. 정권 장악 과정에서 폭력이나 강압으로 국민을 위협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선거로 정권을 잡았다.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그를 권좌에 올린 것이다.

일단 정권을 장악하자 히틀러는 독일 민주주의를 압살해 버렸다. 히틀러가 1933년 1월 30일 권좌에 오른 후 3월 23일 입법권과 헌법 수정 권한을 의회에서 정부로 이양하는 '민족과 국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법', 일명 '수권법'(授權法)이 우파와 중도파의 찬성에 힘입어 의회를 통과하고 6월에는 나치당이 유일한 합법 정당이 됐다. 히틀러가 독일 민주주의를 완전히 박살내는 데 5개월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 원동력은 독일 국민들의 침묵이었다. 이를 두고 나치를 피해 스위스로 망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 모든 것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준 이들은 하녀들뿐이었다. 물론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런 사실은 "모든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경구(警句)의 섬뜩한 진실을 다시 일깨운다. 이 말은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한 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18세기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접경에 있던 사보이아 공국의 외교관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것이다. 메스트르는 프랑스혁명에 반대하고 절대왕정을 지지한 반동주의자였다. 그래서 이 말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해도 이 말이 폐기 처분돼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의 수준은 국민 수준이 결정한다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민 94.5%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10명 중 8명이 못 먹어 체중이 감소하는 '비자발적 다이어트'를 강요당한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좋은 예다. 그 비극은 구제 불능의 포퓰리스트 차베스와 마두로를 선택한 국민의 '수준'이 초래한 것이다.

우리도 우리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바로 소주성, 탈원전, 반기업·친노조, 울산시장 선거 공작, 정부 범죄 검찰 수사팀 학살, 폭등한 집값이 폭등하지 않은 것으로, 악화된 분배를 개선된 것으로 분식(粉飾)한 통계조작 등 실정(失政)과 비정(秕政)으로 점철됐던 문재인 정부다.

그렇게 뜨거운 맛을 봤으면 정신 차릴 법도 한데 그렇지 못했다. 심판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침에도 국민은 21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에 개헌 말고 못 할 것이 없는 180석을 몰아줬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 절대다수 의석을 망나니 칼 삼아 '의회 독재'로 폭주하지 않았나? 정권이 바뀐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의회 독재에 맞서 법률안 거부권을 4차례나 행사해야 했다.

그럼에도 패륜적 언행으로 인성(人性)을 의심받고, 7개 사건 10개 혐의로 재판과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의 사당(私黨)이란 소리를 듣는 정당은 그 나름 견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일하는 척하고 그들은 임금을 주는 척한다'는 구소련 농담이 있다. 위선이 판을 치는 '사회주의 천국'의 실상을 비꼰 것이다. 지금의 현실을 이에 빗대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인 척하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척한다.'

이런 착각과 위선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그 기회가 4월 총선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도가 만족 못 할 수준에서 횡보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기대만큼 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야당의 발목 잡기도 한몫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야당의 '정권 심판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민심은 천심(天心)이라고 한다. 그러나 '천심'다워야 '천심'이다. 국민의 어떤 선택이든 무조건 천심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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