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 번호 어떻게 아셨나요”…선거 때마다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

총선 두 달여 앞두고 여론조사·후보 홍보 등 전화 북새통
전화·문자 막을 방법 제도적으로 없어
"선거운동 폭 넓히는 것이 대안 될 수도"

각종 여론조사와 출마 예정자의 문자와 전화 등으로 하루 동안 여러 통의 전화를 받은 독자의 통화기록. 독자제공
각종 여론조사와 출마 예정자의 문자와 전화 등으로 하루 동안 여러 통의 전화를 받은 독자의 통화기록. 독자제공

국회의원 선거를 두 달 가량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와 출마 예정자의 유세 문자, 전화가 쏟아져 유권자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개인정보인 전화번호가 본인 동의없이 널리 퍼진 점도 문제지만,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연락이 일상 생활까지 방해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구에서 영업직 사원으로 근무하는 이모(28) 씨는 빗발치는 선거 관련 전화 탓에 중요한 거래처 전화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업무 특성 상 걸려오는 모든 전화는 받는 편인데, 요새는 여론조사나 후보 알리기 전화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 번호인 '02'로 시작하는 전화는 받으면 대부분 여론조사 전화다. 가끔은 대구와 상관없는 지역구의 여론조사 전화도 걸려온다"며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개인 번호로는 1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17통이나 전화가 오기도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선거 120일 전에 지역구 예비 후보자 등록을 마친 후보는 전화나 문자를 이용한 유세 활동이 가능하다.

특히 특정 정당의 공천이 중요한 대구경북의 경우 공천심사를 앞두고 후보를 알리거나 여론조사 참여를 권유하는 연락이 쇄도한다.

현행법상 후보들이 선거운동과 관련된 녹음 음성을 전화로 들려주는 ARS 방식은 불법이다. 다만 선거운동이 아닌, 명절 인사, 여론조사 참여 독려 등은 가능하다.

전화로 선거운동을 하려면 사람이 직접 전화를 걸어 상대방 동의를 얻은 뒤 후보와 공약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선거운동 전화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허용된다.

문자 역시 편법이 횡행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수신자 20명을 초과하는 단체 메시지는 유권자 한 명에게 선거 기간동안 최대 8번까지 보낼 수 있다.

다만 20명 이하를 대상으로 발송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에는 무제한으로 문자를 보낼 수 있어 이를 이용하는 예비후보자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개인 연락처가 본인 동의없이 선거판을 떠돌아다니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과거 경북의 한 선거캠프에서 근무 경험이 있는 A(34) 씨는 "선거캠프의 연락처 파일에는 캠프 구성원들의 모든 인맥이 동원된다. 중간에 허수가 있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대구경북은 당내 경선을 통과하려고 당원들에게 더욱 공을 들인다. 지역구 내 전화번호를 사고파는 브로커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지난 21대 총선 당시 개인정보침해센터에는 156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관련 상담은 1만507건에 달했다. 당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과태료 1건, 시정조치명령 104건 등 105건의 행정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이 같은 디지털 공해를 해결하려면 관련 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제도 개선은 요원하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최소한의 개인정보 수집 근거를 마련하고 위반 시 5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21대 국회에도 야간부터 새벽 시간대에는 문자 전송을 금지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거운동의 폭을 넓히는 것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선거운동 방식이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보니 아무도 법 개정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며 "정치 신인들은 그만큼 얼굴 알리기가 어렵다.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를 풀어 후보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이 주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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