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부동산 딜레마, 정부가 일관된 정책 신호 보내야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재건축정비사업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대구 한 재건축 조합원들은 19일 서울 건설사 본사를 찾아가 항의할 계획이다. 최고 29층, 1천498가구 규모의 이곳 재건축은 시공사와의 공사비 마찰로 1년가량 착공도 못 했다. 살던 집이 철거되고 모두 이주했는데, 시공사는 공사비 50%가량 인상을 제안한 상황이다. 3천200억원대 공사가 4천800억원대가 될 판이다. 서울에선 시세 4억원대 중후반 아파트의 재건축 분담금이 5억원에 이르고, 조합원당 분담금이 최고 9억원(추정)인 경우도 등장했다.

얼마 전만 해도 좋은 위치에 아파트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짜 새 집을 얻고 웃돈까지 챙기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딴판이 됐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3.3㎡당 평균 480만원대이던 도시정비사업 공사비는 지난해 687만원대로 올랐고, 내년엔 1천만원을 넘긴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원자잿값 급등세는 누그러졌지만 인건비 오름세는 꺾이지 않는다. 2021년 레미콘 토요 휴무제, 2022년 층간소음 사후 확인제 시행도 공사비 상승을 가져왔다.

부동산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 중 하나는 한 번 더 거품을 형성하는 것이지만 이런 도박을 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101.7%)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미국 등이 금리 인하에 나서도 부채 폭증 우려 때문에 오히려 따라 인하하기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가계부채 증가세에 정부는 지난달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연내 도입까지 밝힌 바 있다. 스트레스 DSR은 금리 상승 가능성을 고려해 DSR 산정 시 가산금리를 추가 적용하는 내용이다. 개인의 대출 한도를 낮추기 때문에 가계부채 관리가 수월해지지만 당장 질식사하기 직전인 부동산 시장에는 그만큼 악영향을 끼친다.

이럴수록 정부의 일관된 정책, 즉 시장에 보내는 신호가 중요하다. '경기 침체는 규제 완화'라는 부동산 공식을 깨야 한다. 서서히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집값의 하향 평준화를 이끄는 신호가 필요하다. 당장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대 정권들마다 입에 단 처방으로 일관해 왔다. 결국 거품을 없애기는커녕 작고 큰 거품들이 부동산 시장을 뒤덮었다.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등 큰 물결 속에 원자잿값과 인건비 상승까지 겹친 악재가 시장을 위협한다. 우리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사면초가' 형국이다. 이 때문에 통 큰 결정, 과감한 정책의 틀 속에서 미세한 시장 조정 기능이 절실하다. 당장 위기를 모면하려고 과거 수법들을 반복한다면 결국 대재앙을 방치한 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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