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대통령 탄핵, 빈말이 아니다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1987년 7월 김영삼(YS)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자신했다. 이미 김대중(DJ)은 불출마 선언을 했던 터였다. 그러나 기자들은 DJ가 출마 의사를 밝힐 것으로 봤다. 1971년 대선의 전례도 끌고 왔다. YS는 "절대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지만 단일화에 실패했다. 지역 맹주 네 명이 모두 출마하면 승산이 있다는 '4자 필승론'으로 희망 회로가 작동한 탓도 컸다. YS와 DJ는 각각 28%, 27%의 득표율로 노태우(36.6%)에게 패했다. 단일화가 선거의 전범(典範)이 된 순간이었다.

단일화의 위력은 컸다. 1997년 대선에서 접점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이 신한국당 경선에 불복한 이인제의 출마와 시너지효과를 내며 대세이던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2002년 대선은 후보 등록 전날 정몽준·노무현 단일화 원샷 합의로 마무리되며 노무현이 당선됐다. 낙선한 건 문재인·안철수의 2012년 대선이 유일했다.

막바지로 향하는 총선 구도가 살얼음판이다. 득표율 5%포인트(총투표수를 10만 표로 치면 5천 표) 내의 접전으로 점쳐지는 곳이 50곳 이상이다. 사전투표율 31.3%로 투표 의향이 있는 유권자 절반 가까이가 투표했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 많이 남았다. 대세가 기울면 끝나는 싸움이 선거라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치는 생물이다.

단일화는 사전투표 기간에도 진행됐다. 울산남구갑 무소속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했다. 무소속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한 자릿수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 중 누가 근소하게나마 앞선다 할 수 없을 만큼 초박빙이었다. 국민의힘 공천 신청을 했다 떨어진 무소속 후보가 내린 결단이었다. 야권 지지세가 결집할 수 있지만 산술적으로 범보수 단일화 효과를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일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야당이 목소리를 키우는 대통령 탄핵이 빈말이 아닌 탓이다.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민주당 박지원 후보를 비롯해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한 이들 상당수가 탄핵을 벼르고 있다. 조국혁신당과 소나무당은 아예 당론이라 밝혔다. 탄핵이 진심으로 보인다.

대통령 부재의 혼란을 다시 겪는다는 건 국민적 불행이다.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든 박근혜였든 마찬가지였다. 현재로선 범야권 200석 확보가 희망 사항에 그치지 않는다는 판세 분석이 설득력을 키우고 있다. 실현된다면 개헌과 탄핵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없게 된다. 총선 이후 범야권이 탄핵을 작정한다면 이유야 얼마든지 갖다 붙일 수 있다.

범보수 후보들이 단일화를 냉정하게 볼 이유다. 한 자릿수 지지율의 후보도 마찬가지다. 범야권은 일찌감치 단일화 경선 등으로 전열을 가다듬었다. 경기 지역만 18곳이다. 끝이 아니다. 불리한 판세로 보이는 창원성산에서는 녹색정의당과 민주당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도 남아 있다. 단일화는 승리로 가는 확실한 선거 전략이기 때문이다.

단일화를 굴복이나 투항으로 볼 게 아니다. 전략적 제휴로 봐야 한다. 미미한 득표율로 패퇴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생명 단축을 부채질할 뿐이다. 지난 총선에서 1% 남짓한 득표율을 얻은 진보당을 보라. 더불어민주연합으로 비례 연대에 나선 걸 민주당에 굴복했다 본다면 순진하다는 말을 들어도 싸다.

사과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이면 과수농가는 바빠진다. 꽃을 따내는 적화(摘花)를 거쳐야 과실로 갈 영양분이 많아진다. 꽃은 보기에는 예쁘지만 영글어 갈 사과 과실에 도움을 못 준다. 금사과는 그렇게 우리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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