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동찬 대구시립극단 차석단원의 친구 고(故) 송대순 씨

외롭게 살아온 마음 못 헤아려…"미안하다, 친구야"

고등학교 졸업식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 앞줄 왼쪽이 친구 고(故) 송대순, 오른쪽이 필자 김동찬 씨. 김동찬 제공
고등학교 졸업식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 앞줄 왼쪽이 친구 고(故) 송대순, 오른쪽이 필자 김동찬 씨. 김동찬 제공

나는 친구 송대순과 같은 고등학교, 같은 교회를 다녔다. 그러다가 우리는 같은 대학교까지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교회에서 연극반을 만들었다. 짧은 대본으로 공연을 만들어 지인들과 교인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우리를 기특하게 여기신 목사님은 금일봉을 하사하기도 했다.

연극하는 행위에 고무되었던 우리, 아니 대순이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연극 동아리에 가려고 했었나 보다. 합창단에 들어가려 했던 나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여 결국 함께 연극동아리에 가입했다. 우리는 들떠서 대한민국 연극계라도 평정할 것처럼 연극을 논하며 설치고 다녔다.

기억해보면 대순이는 사랑에 배고픈 친구였다. 어떤 사람의 관심과 호의에 쉽게 감동하고, 사랑하는 감정에 휘말리곤 했다. 엄마 같이 챙겨주던 여자 동기에게 마음을 빼앗겨 사랑을 고백했다가 상처 받은 모습을 보기도 했다.

대순이는 키가 작고 얼굴도 잘나지 못했다. 그런 대순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유머였다. 그는 모임에서 사람들을 곧잘 웃기고는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밝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대순이의 유머는 종종 나를 공격하는 데 쓰였다. 앞에서는 사람들을 웃기는 척하며 나를 조롱하고 야유했고, 뒤에서는 나를 향해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딱 한 번 너무 화가 나서 주먹질로 그의 턱을 날려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도 우리는 함께하는 친구였다.

복학을 하고 나서 나에 대한 대순이의 견제는 더 짙어졌다. 우스운 일이지만, 내가 동아리 회장을 맡으면서 대순이는 일부러 동아리를 탈퇴하기까지 했다. 오랜 친구인 나 말고는 두루두루 잘 지내는 듯한 그를 보며 나도 마음이 차가워졌다.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그냥 어쩌다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것도 여럿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나 말이다. 그가 상경해서 어엿한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무렵, 나는 대학로의 가난한 연극배우였다. 대순이는 어쩌다 나와 만나는 자리가 생기면, 항상 돈 많이 벌어 극장을 만들겠다는 꿈과, 그 극장에서 내가 연극하게 만들어주겠노라 호언장담했다. 나는 그때마다 그저 고맙다며 웃었다.

정말로 큰돈을 벌려고 작정했던 것인지, 그는 잘 나가던 직장 생활을 그만 두고 사업을 벌이겠다며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마치고 학생들을 가르쳤고 대순이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어느 해인가 그가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만나게 되겠지라며 편하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업을 벌이다 신용불량자가 된 대순이가 지인의 집 구석방에서 두문불출하다가 한순간 세상을 버렸다는 것이었다.

조촐한 장례식장에서 대순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친가족 없이 외롭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유머와 콤플렉스에는 그렇게 어둡고 서글픈 과거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왜 친구의 슬픔을 미처 이해하고 보듬지 못했을까. 때늦게 영정 앞에서 친구에 대한 가련함과 그리움의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왜 더 사랑하고 아껴주지 못했을까. 떠나간 후의 그리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대순이만큼 친했던 어린 시절의 친구는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여전히 한 번씩 내 마음속에서 슬픈 그리움으로 꿈틀댄다. 오늘을 빌어 친구에게 인사 한 번 하고 싶다. 미안했던 친구 대순아. 너 잘 지내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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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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