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국민의 배신과 판도라의 상자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에피메테우스가 판도라를 아내로 맞은 것은 초절정 미인인 데다 올림포스 12신이 준 능력까지 갖춘 완벽한 여자였던 까닭이다. 이 때문에 12신이 그를 견제하려고 보낸 판도라에 휘둘렸다. 그러한 판도라가 에피메테우스가 만물에게 주지 않으려는 능력을 넣어둔 '피토스' 일명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 분노와 질투·질병 등 만악(萬惡)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처벌하지 못했는데, 이는 판도라가 그 집안의 주권자가 됐기 때문이다. 실수했다고 사랑하는 아내를 야단치거나 쫓아내는 간 큰 남편은 지금도 없다. 에피메테우스는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아 대표하는 위정자로 밀려나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 22대 총선이다. 잡범과 종북 세력이 다시 국회로 진출하게 됐기 때문이다.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대표가 총선 다음 날 역시 유죄 판결을 받은 이가 많은 조국혁신당 당선자를 이끌고 대검으로 달려가 한바탕 기자회견을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개 사건에서 10개의 위법 혐의로 기소돼 3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2개(법카와 쌍방울) 사건에서는 수사를 받는 중에 있다. 이러한 이 대표가 총선 다음다음 날 3개 중 하나인 선거법 위반 재판에 출석해 묵묵부답을 했다. 이 재판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이 나오면 그는 의원직을 내놓고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방탄이 절박했기에 그는 '비명횡사, 친명횡재'의 공천을 했다. 유권자에겐 정권 심판을 호소하고 사법부에 어필해 보는 3단계 작전을 준비했다. 2단계까지 성공한 그는 자신에 대한 사법 처리를 무력화하기 위해 김건희 특검 등으로 맞불을 놓으며 3단계 승리도 도모하려고 한다.

좌편향이 심하고 정치 바람에 약한 것이 지금의 사법부다. 유창훈 판사는 국회가 체포를 동의해 준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강태규 판사는 이 대표의 재판을 질질 끌다가 사직해 총선 전에 이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 대표 재판을 맡게 된 모든 판사가 이런 부류일 수는 없다.

수도권에서 국민의힘 영입 인재가 전멸하고 부정 대출과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 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후보가 당선된 것을 의대 증원으로 대표된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과 부정선거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단견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찍었던 일부 국민이 돌아섰기에 여당은 패한 것이다. '샤이 보수'의 배신인데, 이들은 이재명과 조국 세력의 불법성을 알고 있음에도 경기를 살려 내지 못하는 윤석열 정권에 실망해 민주당과 조국당 후보를 찍었다.

지금의 우리 정치는 '입법부 독재'에 걸려 있는데, 이를 인지한 국민은 매우 적다. 22대 총선에서도 압승한 범야권은 윤 정권을 향해 "민의(民意)를 들어라"고 호통치는데, 민의는 '범야권의 뜻'이 확실하다. 국민의힘 당선자도 "용산은 겸허히 국민의 뜻을 수용하라"고 외치는데, 국민의 뜻은 '내가 다시 당선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달라도 '입법부란 파이'를 키우자는 데는 여야가 일치한다.

이러하니 국회에서는 성장 동력을 만들기보다는 나눠먹기식 포퓰리즘이 대세가 된다. 국회의원 특권을 줄이자는 주장은 그래서 나왔다. 지난 2년간 여소야대의 국회는 윤석열 정부가 발의한 법안은 한 건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여야 합의가 되지 않은 여당 발의 법안도 마찬가지였다. '야당 뜻대로'는 22대 국회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니 야당 독재의 다른 말인 '의회 독재'에 대한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

'희망 고문'이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희망은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희망은 고통 속에서 '피어야 하는' 꽃인데,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 것이 희망이었다. 희망이 '야당 뜻대로'의 의회 독재를 막아설 것이다. 명분이 분명하면 신출귀몰하는 만악인 질투가 사법부와 언론에 붙어, 범야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수도 있다.

피토스를 열었지만 판도라는 딸 퓌라를 낳고 에피메테우스와 해로했다. 매일같이 다투지만 국민과 정치는 영원히 같이 간다. 판도라의 상자 열기처럼 일부 국민의 배신도 일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권력을 쥔 '야당 국회'가 권세를 낳은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일부 국민은 분명히 배신한다. 총선에서 이겼다고 범야권은 마냥 좋아할 수가 없다. 정치는 언제 어디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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