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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플러스] 당뇨병 환자의 희망, 인슐린의 역사

근대시대 당뇨 진단 곧 시한부 판정…1920년대 '벤팅' 인슐린 최초 발견
불치병 치료 혁명으로 노벨상 수상…가장 오래되고 안정성 입증된 명약

매일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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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은 대표적인 '성인병'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당뇨병 진단을 받아도 혈당 관리만 잘 하면 생활에 큰 지장이 없고 당뇨병 진단과 치료, 예방을 위해 국가적으로도 다양한 지원이 있지만 근대 이전만 하더라도 당뇨병 진단을 받으면 몇 달 안에 사망하는 무서운 불치병이었다.

걸리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던 당뇨병이 '통제 가능한 병'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20년대에 일어났다. 바로 '인슐린'의 발견이었다.

◆ 한 과학자의 집념이 만든 결실

인슐린 발견 이전 근대 시대의 당뇨병의 치료는 '기아요법'이라고 해서 환자를 굶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쟁 때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 때 당뇨병 환자들의 혈당이 떨어지는 걸 보고 고안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마냥 굶길 수는 없었기에 효과적인 치료법은 아니었다.

문준성 영남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19, 20세기 초만 해도 10세에 당뇨병을 진단받으면 1년 조금 넘게 살다가 사망했고 30세 이상 환자가 당뇨병에 걸리면 5년을 못 넘기는 무서운 병이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인슐린은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기적같은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프레데릭 벤팅. 위키피디아 제공.
프레데릭 벤팅. 위키피디아 제공.

인슐린의 발견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연구단원으로 일하던 외과의사 프레데릭 벤팅은 당시 같은 대학 의대생 찰스 베스트와 함께 동물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개의 췌장을 절제하면 당뇨병이 생기는데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한 실험이었다.

두 사람은 개의 췌장관을 묶고 며칠 기다린 뒤 섬 모양의 반점 부분을 떼어내 그 추출물을 혈당이 높은 개에게 주사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처음에 개 10마리로 시작한 실험이 92마리가 됐을 때 추출물을 맞은 개의 혈당이 떨어지는 현상을 발견했고, 이 물질이 1910년 영국의 생리학자 에드워드 샤피-셰이퍼가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이라고 불리는 부분에서 추출한 물질이었던 '인슐린'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벤팅은 1922년 1월 11일 당뇨병 혼수로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던 14세 환자 레널드 톰슨에게 인슐린을 투여했다. 톰슨은 투여 이후 정상 수준으로 혈당 수치를 회복했고 이후 13년을 더 살았다. 세계 최초로 인슐린으로 당뇨병을 고친 역사적 순간이었다. 벤팅은 인슐린의 발견으로 19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 우리나라에 인슐린은 언제 알려졌을까

인슐린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계기는 일제시대였다. 1923년 조선일보가 밴팅의 노벨상 수상 기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인슐린은 그 때까지만 해도 대중적이지 않은 치료법이었다. 오히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영양실조 환자들의 영양 흡수를 촉진시키고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을 치료할 때 의도적으로 혼수상태로 만들어 기절시키는 치료에 쓰이는 약물로 이용됐었다.

우리나라에서 인슐린이 당뇨병에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경제발전이 어느정도 이뤄지면서부터다. 하지만 인슐린을 통한 당뇨병 치료는 처음부터 환영받지는 못했다. 인슐린 자체의 순도 문제가 있었고, 주사를 늘 맞아야 하는 문제 때문에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까다롭고 번거로운 치료라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슐린 주사 맞으면 당뇨병 말기라는 뜻'이라거나 '합병증이 심해진다'는 오해도 있었다.

문 교수는 "당뇨병약의 종류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에는 인슐린을 처음부터 쓰기엔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불편했기에 처방을 뒤로 미루던 경향이 있었기에 생긴 선입견이었다"고 말했다.

◆ 인슐린, 당뇨병을 치료하는 '명품'으로 자리잡아

최근에는 병원에서 당뇨병 치료를 위해 인슐린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편이다. 당뇨병으로 진단받은 환자에게 인슐린을 집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정상 혈당에 가깝게 유지시킬 수 있다면 당뇨병이 진정되거나 다른 치료제의 효율도 더 높인다는게 최근 학계 연구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최근 초기 당뇨병 환자들에게 인슐린을 집중적으로 사용했을 때 당뇨병이 진정돼 약제 사용을 중단했던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며 "초기부터 인슐린을 통해 혈당을 조절하면 당뇨병보다 더 무서운 당뇨합병증 발생 가능성도 낮아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학계에서 인슐린의 발견은 당뇨병의 개념을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그만큼 인슐린을 통해 살아난 사람이 많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사들은 인슐린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버리고 적절히 사용해 당뇨병을 완치하거나 당뇨병을 앓더라도 건강한 사람과 큰 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문 교수는 "역사상 당뇨병약 중에 노벨상을 받은 것은 인슐린밖에 없다"며 "가장 오래되고 안전성이 입증된 인슐린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은 마땅히 바뀌어야 하고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준성 영남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영남대병원 제공
문준성 영남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영남대병원 제공

도움말 문준성 영남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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