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 속 호모에스테티쿠스] <33> 조설근의 ‘홍루몽’, 돌의 미학

이경규 계명대 교수

책 '홍루몽'속 대돈방의 그림.
책 '홍루몽'속 대돈방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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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 계명대 교.
이경규 계명대 교.

어느 문화권이나 사람이 돌로 변하는 신화나 설화는 많다. 그리스 신화에는 사람을 돌로 만드는 메두사가 있고 한국에는 그리움을 못 이겨 돌이 된 망부석이나 상사암(想思巖)이 있다. 그런데 중국의 '홍루몽'은 인간이 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돌이 인간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평범한 돌은 아니다. 여신 여와가 무너진 하늘을 보수하기 위해 만든 3만6천501개 돌 중 하나였는데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돌(바위)이다. 이 외로운 돌을 한 대사가 권문세가인 가씨 집의 아들로 환생시켜준다. 태어날 때 입에 옥을 물고 있어 보옥이란 이름을 얻는다. 이 돌 아이의 19년 인생 스토리가 '홍루몽'의 주요 내용이다. 처음에는 제목도 석두기(石頭記)였다.

흥미롭게도 작가 조설근은 우리가 품고 있는 돌의 이미지를 완전히 해체한다. 돌이나 바위는 한편으로는 무정과 어리석음을, 다른 한편으로는 강인함과 불변을 뜻한다. 남성성에 대한 메타포로 즐겨 쓴다. 그런데 돌의 화신 보옥은 영리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부드러워 여자 같다. 그는 돌잡이에서 책이나 칼을 잡는 대신 구석에 놓아둔 연지나 비녀 같은 여성용품만 집어 든다. 아버지의 실망과 달리 어머니와 할머니는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과연 보옥은 나이가 들수록 여자를 좋아하여 거의 여자들하고만 논다. 8살 때는 아예 '여자는 물로 만든 것이고 남자는 흙으로 만든 것이어서 여자는 상쾌하지만 남자는 냄새가 난다'며 여성 취향을 노골적으로 고백한다. 게다가 그를 둘러싼 친인척과 시종들은 대부분 여자다. 아버지가 있지만 그는 관직 생활로 바빠 아들을 돌볼 겨를이 없다. 이렇게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들과만 노는 보옥을 동성애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하녀와 자기도 하고 마지막엔 결혼하여 아들까지 얻는다. 주변의 여자들도 그를 남자로 좋아하고 서로 질투도 한다. 다만 보옥은 여자를 욕정의 대상으로 탐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보옥의 태도에 대해 '호색불음'(好色不淫)이란 말을 한다. 즉 여자를 좋아하되 욕정에 휘둘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남녀상열지사를 주관하는 경환선녀는 이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의음'(意淫)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정신적 음란을 말하는 것으로 육체적 음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보옥의 여성 취향을 현실 비판의 관점에서 보면 종래의 남성적 가치를 대치한다는 데 포인트가 있다. 보옥은 과거를 위해 경서를 공부하는 대신 서정시를 짓고 연애소설을 즐겨 읽는다. 집안 좋은 사대부 청년들과 사귀며 출셋길을 닦는 대신 여자들과 연극을 보고 꽃구경을 다닌다. 한마디로 보옥의 관심은 심미적 영역에 쏠려있다. 삼국지나 수호지의 영웅호걸들처럼 의리와 전투로 청춘을 불사르는 대신 일상의 사소한 일 하나에 울고 웃는 지정주의(至情主義) 남자다. 보옥은 울음을 억누르지 않고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정(情)으로 충만한 남자다. '홍루몽'의 또 다른 이름이 '정승록'(情僧錄)인데, 정을 통해 道에 이른다는 뜻이다. 소설은 인간이 된 돌이 19년 동안 정을 펼치다가 깨달음을 얻고 속세를 떠나는 데서 끝난다.

'홍루몽'은 긴 서사의 무대를 여자와 화초로 채워진 동산(대관원)으로 제한함으로써 야만적 남성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풍경을 펼친다. 물론 이 안에는 치정과 불륜과 비애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회와 국가를 대상으로 권모술수와 권력투쟁에다 전쟁을 일삼는 남자들의 야만성에 비하면 차라리 인간적이지 않은가. 요컨대 '홍루몽'은 돌 하나를 여자보다 부드러운 남자로 만들어 돌 같은 남성 세계를 야유하는 돌의 미학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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