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이은미 검도교실 선해재관장의 스승 3명

"검법정신 전파 위해 노력한 선생님…7단 고단자로 이끌어주셔서 감사"

1996년에 경기도 시흥에서 열린 중암기검도대회 기념사진. 고 안동석 선생님(뒷줄 중앙 남색양복 입은 분), 고 김재일 선생님(안동석 선생님 오른쪽 콧수염 기르신 분), 이은미 관장(앞줄 우측 무릎 꿇고 앉은 분). 이은미 씨 제공
1996년에 경기도 시흥에서 열린 중암기검도대회 기념사진. 고 안동석 선생님(뒷줄 중앙 남색양복 입은 분), 고 김재일 선생님(안동석 선생님 오른쪽 콧수염 기르신 분), 이은미 관장(앞줄 우측 무릎 꿇고 앉은 분). 이은미 씨 제공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송창식이 부른 이 노래를 참으로 좋아하고, 그 시절에는 열심히 불렀었다. 눈이 부신 신록 짙은 계절이 되면 세 분의 스승님이 생각난다.

나는 여성 검도인이다. "여자가 무슨 검도냐"는 주위의 온갖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검과의 인연이 어느덧 33년이 지나고 있다. 내가 교사 7단이라는 고단자의 위치에 오기까지 세 분 스승의 가르침이 절대적이었다. 이들 스승은 검도와 더불어 우리의 전통검법인 조선세법과 중요성, 그리고 검법에 녹아있는 선조들의 정신과 지혜를 배우고 전파하려고 노력하셨다.

그 중 첫 번째 스승이신 고(故) 안동석 선생님은 일본과의 오랜 교류와 공부로 검도 이론에도 밝고, 3개 국어를 구사하는 국제통이셨다. 춤도 잘 추고 멋을 아는 사교적인 분이셨다.

나는 1991년 10월 18일 검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당시 대학원에 진학을 한 신입생이었다. 전국에 도장이 몇 개 되지 않을 때 대구에서 처음 생긴 대한검도회의 검도교실 일검관의 첫 번째 관원이 되었다.

선생님은 여자가 처음으로 도장에 입관한 것을 별로 탐탁치 않아하셨고, 나는 그러려니 하였다. 어느 날 내게 "너보다 먼저 온 3명이 있지만 그들은 제대로 하지도 열심히도 않으니 네게 1번을 주마"라고 하셨다. 당시 도장에서 수련하는 여성관원은 30여명. 격렬한 대련 후에는 길가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맥주와 라면을 먹으며 검도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1996년에 경기도 시흥에서 열린 중암기검도대회 기념사진. 고 안동석 선생님(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고 김재일 선생님(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 이은미 관장(앞줄 오른쪽 첫번째). 이은미 씨 제공
1996년에 경기도 시흥에서 열린 중암기검도대회 기념사진. 고 안동석 선생님(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고 김재일 선생님(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 이은미 관장(앞줄 오른쪽 첫번째). 이은미 씨 제공

일검관 개관 이후 대구에서 많은 사설도장들이 생기게 되었고, 나는 그 이후부터 검도에 있어서 항상 첫 번째로 이름이 불리는 사람으로 무거운 책임감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30여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18년에는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론 4번째로 7단 승단을 하게 되면서 돌아가신 선생님과 같은 단이 되었다. 늘 부족하고 모자라는 제자가 7단까지 받았으니 무척 기특해하셨을 것이다.

또 한 분은 고(故) 김재일 선생님이다. 경북고 39회로 안동석 선생님께 대구에 첫 도장을 여는 계기를 만드신 분이다. 부천시청실업검도팀을 만들고 경기도검도회장으로 계셨지만 새벽마다 전화해서 제자들이 열심히 수련을 하는지도 점검하고, 매사에 대단히 엄격한, 신화적인 검도의 서사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전설 같은 일화도 있다. 인천전문대 검도부를 지도하실 때는 자전거를 타고 뒤를 따라가면서 진검을 휘두르는 등 지친 제자들을 긴장시켰다고 한다. 때때로 내게도 전화를 하시곤 "지금 한강대교를 건너고 있다. 석양이 지는데 노래를 한 곡 불러주마. 너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하면서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마지막 선생님은 일본 시모노세키 검도연맹의 고문역을 맡고 계신 사카이 도시오(103세) 선생님이다. 100세까지 검도를 하시면서 평생검도가 무엇인지를 손수 보이셨을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몇 안되는 거합도와 검도 양쪽의 8단 범사인 대선생이시다. 2007년 검도수련을 위해 일본에 석 달간 체류해 있었는데 선생님은 부모님처럼 자상하셨다. 검도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여 이해를 하기 쉽도록 지도해주셨다.

안동석 선생님은 2009년에, 김재일 선생님은 작년 6월말에 돌아가셨다. 저는 하늘이 꺼지는 것 같이 슬프고 마음이 외로웠다. 순간인 삶을 영원처럼 살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를 살려고 노력하지만 요즘은 허무함을 많이 느낀다. 선생님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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