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병·의원 신분증 확인 이틀째…조용해 보이지만 혼란 잇따라

대부분 챙겨오지만 안 챙긴 경우 본인확인 과정 복잡해져
노년층 환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다가 귀가하기도

건강보험 본인 확인 의무화 제도가 시행된 20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부터 병·의원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진료를 받을 때 신분증 제시를 통해 환자 본인 여부와 건강보험 자격 여부를 확인받아야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 받을 수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건강보험 본인 확인 의무화 제도가 시행된 20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부터 병·의원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진료를 받을 때 신분증 제시를 통해 환자 본인 여부와 건강보험 자격 여부를 확인받아야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 받을 수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21일 오후 대구 중구의 한 정형외과 병원 접수 창구는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환자들로 북적였다. 접수를 진행하는 환자들은 직원의 안내에 신분증을 보여준 뒤 접수 절차를 밟았다. 이 병원 접수창구 직원은 "대부분 신분증을 챙겨와 주시기는 하는데 안 챙겨 오시는 일부 환자들은 '헛걸음했다'며 돌아가시거나 비급여로라도 접수하고 진료를 받고 가셨다"며 "젊은 환자들은 그래도 본인 인증 방법을 어떻게든 확인하고 해결하는데 어르신 환자들은 답답해하면서 발걸음을 돌리시더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명의도용을 방지하기 위해 건보 급여가 적용되는 진료 시에는 의료기관이 신분증 등으로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한 지 이틀째인 21일 현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혼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많은 환자들이 신분증이나 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을 제시하지 못해 진료를 받지 못한 채 돌아서는 경우가 많았다.

20일부터 시행된 개정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건보 급여가 적용되는 진료 시에는 요양기관이 신분증 등으로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진료 시 신분증으로 환자의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요양기관에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건강보험 자격을 대여해주거나 대여받은 사람은 모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대부분의 병원에는 진료 접수 시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안내문을 부착해 놓았다. 하지만 신분증 확인 절차가 추가됐다는 소식을 모르고 온 환자들 수도 적지 않았다. 이들의 경우 다급하게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다운받거나 네이버, 카카오 등에서 제공하는 간편 인증 서비스를 이용해 신원 인증을 한 뒤 진료 접수를 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노년층 환자들은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구 동구의 한 신경과 의원 원장은 "신분증을 안 챙겨오신 어르신 환자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본인 인증 방법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시다보니 접수 창구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돌아가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앞으로 한동안 이런 식으로 진료를 못 받게 되는 어르신 환자들이 늘어날것으로 보여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좋은 취지의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준비 부족으로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강보험공단이 도입한 모바일 건강보험증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안 된 상태에서 성급하게 진행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대구 시내 한 개원의는 "건강보험 부당청구 사례가 많기도 했고, 일부 환자들은 수면제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다량으로 받기 위해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는 경우도 있어 신분증 확인 제도 자체는 분명 도움이 된다고 본다"며 "하지만 노년층 환자에 대한 홍보 부족과 정확하지만 편리하게 신분확인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은 채 시작해 한동안은 혼란이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현재 신분증 확인 관련 문의전화가 꽤 오고 있으며 공단 차원에서 불편 사항을 정리, 분석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라며 "불편 사항들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는 대로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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