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가시화되는 북한 붕괴와 통일 문제

이춘근(국제정치학자)
이춘근(국제정치학자)

북한 정권은 겉모습만으로 본다면 세계에서 지구력이 가장 좋은 공산주의 정권이다. 1948년 9월 9일 소위 공화국이 창건됐고, 같은 해 10월 10일 조선로동당이 창당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75년 이상 체제가 버티고 있으니 세계 어떤 나라 공산당보다도 생명력이 길다고 말할 수 있겠다.

소련의 공산당은 73년 만에 멸망했고, 현재까지 명목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도 북한 노동당보다 창건일이 약 1년 정도 늦다. 동유럽 공산당들은 40년도 버티지 못한 채 모두들 망했고 베트남, 쿠바의 공산당들은 북한 노동당보다 역사가 훨씬 짧다.

물론 실질적인 내용을 보았을 때 북한의 공산 체제도 망한 지 이미 오래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북한의 배급 경제는 파탄 났다. 고난의 행군 시대라고 말하는 1993년 무렵 북한 인구의 무려 12%에 해당하는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식량조차 배급할 수 없는 체제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북한의 공산 체제는 이미 30년 전에 끝난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 통치배들은 개혁 개방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릴 방안이 있었지만 자신들이 권좌에서 밀려날 것이 두려워 북한을 최악의 신정주의 왕조 체제로 만들어 버렸다. 지도자가 스스로 신이 되어 통치하는 초독재 국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먹을 것조차 배급할 수 없는 북한 정권은 국민들에게 알아서 먹고살라고 했다. 결국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이라는 원시적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목숨을 연명해 나갈 수 있었다. 그것도 '자본주의'라고 북한 정권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한때 북한 주민의 생활 수준은 한국 국민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1960년 초반 북한의 1인당 GDP는 대한민국 국민의 3배에 이르렀으며 북한의 GDP 총량은 1973년까지 대한민국을 앞섰다. 경제력에서 우월했던 북한은 당연히 군사력도 남한을 압도했었다. 그랬던 북한의 2023년도 명목 GDP는 남한의 명목 GDP의 60분의 1에 불과하다.

북한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북한 화폐로 2천원, 암시장에서 유통되는 미국 달러화 67센트에 해당한다. 겨우 달걀 두 개를 살 수 있는 돈이라 한다. 배급도 없고 월급도 미미한 처절한 상황에서 장마당을 통해 모진 운명을 헤쳐 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홍수에 떠내려 오는 인간 시체 대신 돼지를 건진다.

국민을 먹이지도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며 그런 나라의 지도자는 당연히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김정은 정권은 30년 전 고난의 행군 시대에 버금가는 경제 파탄 상황에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을 먹여 살릴 식량을 구입해 올 수 있는 돈을 미사일 발사를 통해 허공에 날리고 있다.

몰락하는 정권들이 언제라도 당면했던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결국 김정은 정권도 당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북한의 젊은 세대들을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인간이라며 대로(大怒)하는 한편, 사회주의 정치사상을 강요하고 있지만 북한의 40세 이하 젊은이들은 국가의 배급을 통해 먹고 자란 세대가 아니다.

억척스러운 어머니들이 벌인 장마당에서의 사투를 통해 길러진 그들에게 사회주의란 허구일 뿐이다. 그들은 김정은에, 그리고 북한이라는 나라에 감사할 일이 없다. 황금만능주의는 북한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미국 역시 김정은을 그냥 놔둘 수 없게 되었다. 미국 본토를 핵 공격하겠다고 날뛰는 북한 정권을 제거하겠다는 국방 보고서(2022.10) 간행에 이어 암살을 특기로 하는 MQ-9 리퍼(Reaper) 무인 전투기를 일본에 배치했다. 지난 4월 미군은 리퍼가 지난 4년간 한국 땅에도 배치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폭격 훈련 모습을 공개했다. 리퍼는 우리말로 의역하면 '저승사자'라는 뜻이다.

미국은 이미 이란군 육군 중장 솔레이마니와 알카에다 두목 이집트인 알 자와히리를 제거했다. 지난 4월 3일 미국 CIA는 김일성이 사실은 '마적 두목'이었다는 기밀 문서를 공개, 김정은의 정통성을 여지없이 뭉개 놓았다. 4월 18일 미국의 대북 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빅터 차 교수는 한반도 통일은 급작스러운 북한의 붕괴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년 3·1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 통일을 지향하겠다고 말했다. 통일은 2천300만 가여운 북한 동포의 생존 문제다. 적극 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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