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터뷰] 대구 무침회와 납작만두 환상조합, 어떻게 탄생했을까?

박세학 의성무침회 대표 "납작만두에 싸 먹는 무침회, 우리 골목 다시 살린 일등 공신"
대구 10味임에도 골목 쇠락의 길…2012년도에 '만두 세트' 메뉴 대박
인기 힘입어 골목도 다시 살아나…택배 시작 동네 넘어 전국 장사로

대구 서구 무침회 골목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박 대표의 간단하지만 야심찬 메뉴 개발 덕분이다. 대구 무침회 옆에 무언가 따라 붙었다. 바로
대구 서구 무침회 골목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박 대표의 간단하지만 야심찬 메뉴 개발 덕분이다. 대구 무침회 옆에 무언가 따라 붙었다. 바로 '납작만두'. "납작만두에 싸 먹는 무침회, 우리 골목을 살린 일등공신이죠"

OO골목, △△촌 등으로 불리는 일명 '먹자골목'에도 명암은 있다. 비슷한 식당끼리 한곳에 모여 한때 엄청난 호황을 누렸던 골목이라도 변해버린 사람들의 입맛에 적응하지 못하면 금세 쇠락한다. 50년이 됐든, 100년이 됐든 이는 크게 중요치 않다. 그나마 오랜 단골손님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마저도 끝이 뻔히 보인다는 게 업주들의 이야기다.

"무침회 골목이라고 왜 안 힘들었겠습니까. 대구 10味임에도 쇠락의 길을 걸어왔죠." 의성 무침회 박세학 대표가 말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 골목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박 대표의 간단하지만 야심찬 메뉴 개발 덕분이다. 대구 무침회 옆에 무언가 따라 붙었다. 바로 '납작만두'. "납작만두에 싸 먹는 무침회, 골목을 살린 일등공신이죠"

-유튜브나 SNS, 지상파에서까지 대구 무침회가 많이 언급되더라. 무침회와 납작만두의 만남, 그 시초가 궁금하다.

▶모친이 가게를 하던 시절. 그러니까 내가 이 가게를 물려받기 전에 여동생이 모친을 도와 가게를 운영 했었다. 그때 여동생이 남은 무침회를 집에 가져가서 먹었는데 식탁에 납작 만두가 보이더란다. 그래서 우연찮게 무침회를 만두에 싸 먹었는데 궁합이 너무 좋았단다. 일반 만두와 다르게 납작 만두는 무언가를 싸 먹기에 제격이지 않는가.

대구 무침회에 짝꿍이 생겼다. 바로 납작만두. 이제는 만두가 없다고 하면 손님 70% 정도는 그냥 나가는 정도가 됐다.
대구 무침회에 짝꿍이 생겼다. 바로 납작만두. 이제는 만두가 없다고 하면 손님 70% 정도는 그냥 나가는 정도가 됐다.

-지금은 무침회 하면 납작만두가 바로 생각이 난다지만 그 당시엔 생소했겠다.

▶그렇다. 처음에 메뉴로 해보자고 했을 때 반대가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무침회 골목은 1차로 오는 곳이기 보다는 2,3차로 찾는 곳이었다. 그 말이 뭐냐면 느끼한 고기를 실컷 먹고 나서 매콤한 게 땡기니 들르는 그런 장소였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어른들은 "무침회 먹으러 와서 누가 느끼한 만두를 시키겠냐"고 의심부터 하셨다.

하지만 몇 번의 설득 끝에 2012년도에 세트 메뉴를 시작했고 그게 대박이 났다. VJ 특공대에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방송에서 다녀갔고, 기다려도 못 먹을 정도로 손님들이 줄을 섰다. 그렇게 5~6개월 쯤 지나니 골목 전체가 이 세트 메뉴를 따라하더라. 이제는 만두가 없다고 하면 손님 70% 정도는 그냥 나가는 정도다.

-끝까지 설득 하시길 잘 했다. 의성 무침회 식당이 아니었으면 납작만두 쌈 맛을 못 볼 뻔 했다. 식당은 2대째 운영되고 있는건가.

▶그렇다. 대를 이어 식당을 하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사실 모친은 20여개 점포들이 성행할 당시 무침회 골목에 가장 늦게 입성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장사가 안 됐었다. 이미 식당마다 형성된 단골 시스템에 손님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모친에게는 한번 자신의 가게로 온 손님을 또 오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모친의 차별화 전략은 서비스였다. 전도 부쳐내고 사과도 깎아 내고 손님들과 대화도 나누고…. 진심으로 손님을 대했다. 그러자 손님들이 모친의 가게를 나갈 때 한마디씩 했다고 한다. "이 집 참 괜찮네!"

-모친의 장사 철학을 많이 배웠겠다.

▶손님을 향한 진심. 그거 하나는 제대로 배웠다. 무침회와 납작만두라는 메뉴의 탄생도 그 철학의 연장선이다. '무침회 참 맛있는데 왜 손님들이 안오는거지' 라고 불평하기 보다는 '손님들이 안 찾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우리 가게는 조금 다르게 해보자. 그들이 왔을 때 어떻게 만족시켜 드리지' 라고 생각을 바꿨다.

물론 모친의 장사와 달라진 점도 있다. '개선해야 할 점은 빠르게 바꾸자'라는 게 나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어릴적 무침회를 싫어했다. 친구들에게 내 부모가 이 장사를 한다는 것도 숨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무침회는 서민 음식 같았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 가게를 맡게 된 후에 시작한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리모델링과 택배. 리모델링으로 조금 더 깔끔한 분위기로 바꾸면서 술 마시러 혹은 2차 3차로 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어른들 모시고 식사하러 점심에 오기도 좋은 곳 이라는 이미지를 주려 노력했다. 택배도 시작했는데 동네 장사가 아닌 전국 장사로 뻗어 나가기 위함이었다. 대신 메뉴가 회다 보니 신선도에 가장 신경을 썼다. 그래서 택배는 반드시 당일 만든 무침회를 이용한다. 이 골목 모든 가게들은 택배가 다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맛은 똑같을텐데 무침회 골목이 살아난 게 신기했다. 물론 납작만두라는 히든 카드가 있긴 했지만 이 외에도 여러 변화들이 작용을 한 것 같다. 본인만 해도 무침회를 메인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안주에 그쳤다면 말이다.

▶신기하기도 하다. 여기서 잔치 뒷풀이도 하고 팔순잔치도 하고, 모임도 많이 한다. 특히 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특히 고맙다. 그래서 무조건 좋은 재료를 쓰려고 한다. 무침회에 들어가는 미나리를 예로 들자면, 산지 직송 밭 미나리를 고집한다. 가격은 배로 비싸더라도 말이다.

-한 가게가 아닌, 골목이 살아난 데에는 상인들의 합심도 큰 부분을 한 것 같다. 음식 박람회에 같이 어우러져 나가거나 청결 거리를 만들기 위해 함께 청소 봉사도 하던데.

▶골목이라고 하면, 똑같은 메뉴로 경쟁을 하는 식당들이 몰려있지 않는가. 그러니 뺏고 뺏기는 입장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모두가 잘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내 식당이 아닌, 대구 무침회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대구에 유명인사가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수소문 해서 연락을 한다. "대구 10미 중에서 아주 맛난 음식인데 다른 데서는 맛 볼 수 없는 음식이다"라고 말이다.

방송국이든 어떤 곳이든, 행사를 위해 무침회가 필요하다고 하면 무조건 보내준다. 내 돈 들여서 대구 무침회를 홍보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손해보는 장사라고 하더라. 하지만 이렇게라도 대구 무침회가 유명해지면 이 골목에 한 번이라도 더 와볼 것이고, 내 식당에 올 수도 있고 내 옆 식당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골목이 활성화 될 것이라 믿는다.

대구 서구 반고개 무침회 골목에 자리한 의성무침회 주차장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예술이 어울어진 사랑의 짜장면 나눔 행사가 열렸다.
대구 서구 반고개 무침회 골목에 자리한 의성무침회 주차장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예술이 어울어진 사랑의 짜장면 나눔 행사가 열렸다.

-대구 무침회 홍보대사가 따로 없다. 서구에 오래 계시며 봉사도 꽤 많이 하셨던데

▶별 것 없다. 서구 골목에서 장사를 오래하다 보니 동네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를 느낀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베풀까'라는 생각을 항상 해온 것 같다. 그래서 지난 3월 주변 어르신들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하는 효잔치를 열었다.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셨을 것 같다. 무침회를 대접한 것인가.

▶아니다. 무침회를 대접하면 무침회 영업 같지 않는가. (웃음).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만한 음식을 고민하다가 문득 추억의 음식 '짜장면'이 생각 나더라. 예전에 우리에게는 짜장면이 참 고급스러운 음식이었지 않는가. 졸업식이든 생일이든 우리는 짜장면을 먹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짜장면은 큰 의미일 것 같았다.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기뻤다. 그래서 이번 5월 어버이날 무렵에는 이불, 김치, 생필품 나눔 행사도 했다.

박세학 대표는 무침회 골목이 있는 서구를 위해 나눔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박세학 대표는 무침회 골목이 있는 서구를 위해 나눔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애쓰시는 것 같던데.

▶어르신들 보다 어린이들에게는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식당에 밥 먹으러 오라고 하려 해도 '내가 왜 도움을 받아야 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 어린이들을 위한 도움은 조금 다르게 한다. 현금 지원으로 이랜드를 보내준다든지, 피자를 보내준다든지. 센터에 의자를 바꿔 준다든지 말이다.

-이만하면 무침회 홍보대사 말고도 별명을 하나 더 붙여야겠다. 서구 지킴이는 어떤가.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과찬이다. 다만 아내는 칭찬을 조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식당이 나눔에 많이 참여하는 데에는 아내의 역할이 크다. 나는 오히려 거기에 훼방을 놓기도 한다. "좋은 일 하면 손님들도 많이 오는가?" 라며 아내에게 물어보면 화를 내더라. (웃음).

주민센터나 지역아동센터등 정기 후원 외에도 일년에 몇천만원 턱턱 내놓는 아내를 보면 멋있다. 무침회 골목의 명맥이 우리 상인들의 이런 노력들로 쭉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 또 찾아주시는 손님들을 위해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골목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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