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약속의 탑' 앞에서 학교생활 목표 서약…디지털 시대의 특별한 인성교육

대구 달서고, 고1 대상 다양한 인성교육 프로그램 진행
부모가 의미 있는 책 선정…편지와 함께 자녀에게 전달
학생·학부모 유적지 탐방…교장선생님 재미있는 해설도

달서고는 지난해부터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달서고는 지난해부터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생 선배가 추천한 내 마음의 책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달서고 제공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인성'이 강조되고 있다.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삶에서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 바로 인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공감 능력, 협동심, 윤리 의식, 창의성 등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경쟁력 있고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교육현장에서도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을 위해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다. 지난 2015년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을 토대로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에서 다양한 인성교육을 실천해오고 있다. 고1 학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특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대구 달서고의 사례를 살펴보자.

◆인생 선배가 전해준 특별한 책

"엄마가 선물해 준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삶의 방향을 고민하던 저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소중한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제 선택과 미래에 대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대구 달서고는 지난해부터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생 선배가 추천한 내 마음의 책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는 학기 초 학부모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책 한 권을 선정해 자녀에게 직접 쓴 편지와 함께 선물하는 달서고의 인성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학교 측은 세대 갈등이 깊어지고 가족 간의 소통 단절이 심화되는 요즘 시대에 부모와 자녀가 책을 매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행사를 마련했다.

인생 선배인 학부모는 책을 추천하며 책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학생들은 부모가 전해준 책과 편지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학생들은 각 학급마다 비치된 책장에 부모에게 선물 받은 책을 꽂아두고 읽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 있다. 단순 독서 활동을 넘어 수행평가 등 교과 시간에 해당 책을 연계해 활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김병규 달서고 교사는 "부모가 선물해 준 책이다 보니 학생들이 다른 책들보다 더 특별하게 생각해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가 잘 된다"며 "편지를 받고 감동해 실제로 우는 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달서고는 학생들의 목표를 카드에 적어 탑 속에 보관하는
달서고는 학생들의 목표를 카드에 적어 탑 속에 보관하는 '나의 약속카드 보존식' 행사를 18년째 해오고 있다. 달서고 제공

◆3년 후에 돌아보는 나의 목표

달서고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학생들의 목표를 보관하는 '약속의 탑'을 세운 학교이기도 하다.

'나의 약속카드 보존식'은 2006년 처음 시작해 18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달서고의 특색 있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으로, 일본의 한 학교에서 행하는 특별한 의식을 벤치마킹했다.

매년 4월 신입생들은 앞으로의 학교생활 동안 지키고 싶은 약속을 카드에 적어 약속의 탑에 보관한다. 그리고 3년 후 졸업식 때 카드를 다시 개봉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 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

학교는 학생들이 재학기간 동안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올바른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

약속의 탑은 건립 당시 교내 미술 교사가 영원·진리를 상징하는 원구형과 이를 받들고 있는 갑골문(甲骨文)의 마음(心) 자를 형상화해 설계했다.

학생들은 약속의 탑 앞에서 서약을 한 후 약속 카드를 탑 내 공간에 보관한다. 목표 대학 합격, 원하는 성적 달성 등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목표들을 중심으로 약속을 지킨 학생들에게 상을 주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약속한 1학년 김이안 학생은 "경건한 의식 속에서 나의 목표를 다짐하는 행사에 참여하고 나니 학교생활을 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 같다"며 "3년 뒤 탑에서 약속 카드를 꺼냈을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학교생활을 하겠다"고 말했다.

달서고 학생과 학부모가
달서고 학생과 학부모가 '인문학 오딧세이' 프로그램에 참가해 교장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달서고 제공

◆교장선생님이 알려주는 인문학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인 '인문학 오딧세이'도 눈길을 끈다.

인문학 오딧세이는 지역의 문화유적지를 방문해 역사적 인물들이 살아간 흔적을 고찰, 삶의 지혜를 얻는 프로그램으로 2022년부터 운영돼 왔다.

평범한 현장 체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달서고 인문학 오딧세이가 특별한 이유는 유적지 해설사가 바로 교장선생님이라는 점이다. 이대희 교장은 역사 전공자로 장소 선정부터 탐방 경로, 해설 내용까지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내용을 스스로 기획한다.

올해는 지난 4월 대구 달성군 육신사~하목정~경북 성주 한개마을~세종대왕 왕자 태실을 돌아보는 코스로 진행됐다. 임진왜란부터 조선 후기의 역사가 담긴 문화유적지를 직접 경험해 보며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는 참가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이 행사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교장선생님이 쉽게 설명해 준 덕분에 역사적 사실들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며 "서로 각자의 생활에 바빠 아이와 대화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대희 달서고 교장은 "학생들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만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실질적인 인성 변화가 이뤄지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며 "인공지능이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소통·공감·협력의 자질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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