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1915년, 총독부가 허문 돈의문(서대문)이 '오묘(OMYO)'의 옷에 새겨졌다. 문의 색깔도 한국의 오방색 중 하나인 '흰색'이다. 새겨진 것은 단순한 문양이지만 그곳에는 한국의 아픔이 가장 한국적으로 표현됐다. 패션 브랜드 오묘는 일상복으로서의 한복에 진정한 한국을 담는다.
세계는 대한민국과 사랑에 빠졌다. 김과 김치, 떡볶이 등 한국 음식이 해외 각국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오묘도 K-컬처 열풍에 한가운데 있다. 지난달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한복상점' 행사에 참여했는데, 4만여 명의 방문객들이 오묘 매장을 찾았다. 매출은 2천만원을 돌파했다.
-지난 6월 브랜드 온라인몰을 론칭했다. 간단하게 브랜드를 소개한다면.
▶한복을 기반으로 탄생한 브랜드다. 한복 브랜드가 아니라, 한복을 기반으로 탄생한 브랜드라고 말하는 이유는 한복의 현대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패션으로서의 한복'이다. 한복이 전통 의상에 멈추지 않고 패션의 영역으로 넘어가려면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으면서도 은근하게 한국의 전통성을 나타낼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브랜드의 이름도 '오묘'다.
▶일상복에 오묘하게 한국의 멋이 들어간 패션 스타일을 추구한다. 일상복을 살 때 상의와 하의가 한 세트로 된 걸 사진 않는다. 입을 때도 마찬가지다. 청재킷을 입는다고 똑같은 색깔의 청바지로 무조건 맞춰 입지 않는다. 하지만 한복은 이상하게 저고리와 치마 등을 다 세트로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복에 대한 인식이 고정적이어서 그렇다. 옷을 구매하러 오시는 분들께도 믹스매칭을 권한다. 청바지 위에 한복 느낌이 나는 치마를 겹쳐 입고 운동화를 신는다거나, 평범한 슬랙스에 셔츠 형태로 된 저고리를 입는 식이다.
-한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수학여행으로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평상복으로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한복을 입고 다니지 않지 않나. 입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나 보다' 한다. 돌이켜보니 그 모습을 보고 강렬한 질투심을 느꼈던 것 같다.
역사적 문제들 때문에 일본에 호감이 있지는 않았던지라 '쟤네는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전통 의상을 입고 다니는 거지?'하는 감정이 든 거다. 동시에 부러웠다. 우리의 전통 의상도 일상복처럼 입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그때 움텄던 것 같다.
-계기가 재밌다. 어린 시절 '김희원'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다.
▶원래 전공은 경제학이었고, 예전부터 배우가 꿈이어서 20대 초반에는 연극영화과로 재입학하려고 애썼다. 어릴 때 발레, 무용, 음악 등 다양한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표현의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옷 입는 것도 좋아했다. 그것도 일종의 자기표현의 욕구다. '다음 날 뭘 입어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하루 마지막 일과일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다음 날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밤을 지새운 적도 있을 정도다. 밤을 새우다가 '이런 맹렬한 고민이 생산적인 일로도 이어지면 좋겠다'고 불현듯 느꼈고 날이 밝자마자 바로 의류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그게 2014년의 일이었으니 사업을 한 지 10년이 된 거다.
-20대 초반부터 사업가가 된 건데, 슬럼프는 없었나.
▶브랜드의 초기 방향은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한복'이었다. 한복을 입고 싶은데 일상에서 입을 만한 소재나 디자인이 없어서 못 입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한복을 만들고 싶었다. 한복이면서도 너무 눈에 띄지 않고, 또 적당히 예쁜 그런 한복 말이다. 시기를 잘 탔는지 한창 사업을 시작할 때 한복 입고 여행 가서 스냅사진을 찍는 행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유행했다. 덕분에 초기 매출이 연 3억 정도였다.
이후 디자이너이면서 회사를 이끄는 대표, 두 역할 사이 혼란을 겪었다. 디자이너로서 원하는 방향이랑 매출을 더 올릴 수 있는 방향, 그 두 개가 꼭 같은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더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디자이너로서의 안목과 당장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대중적인 스타일이 충돌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더불어 의류업은 지식재산권(IP)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도 힘든 부분이었다. 어떤 한복이 잘 팔리면 그것과 비슷한 옷들이 다른 데서 우후죽순 생기는데 사전에 방지할 방법도 없고 후속 조치를 하기도 힘들었다. 그런 이유로 이 일에 점점 재미를 잃어갔다.
-다시 일어서게 된 계기는?
▶내가 좋아하는 걸 인정하고, 내가 좋아하는 방향성으로 가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디자이너 브랜드로서 오래 가려면 나만의 취향을 지켜가는 것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성립하고 이어 나가는데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슬럼프 때문에 사업을 접은 것이 약 3년이었다. 그러다 계명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창업 교육을 신청했다. 오래 쉬고 있는데 새로운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혼자 사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런 것에 밝은 교수님이나 투자자 등을 만나면서 멘토링을 받았다. 자금적으로도, 인프라 확장에도 큰 도움이 됐다. 교육 프로그램 마지막에 사업 아이템을 평가받는 것도 있었는데 대상을 받기도 했다.
-슬럼프를 겪고 창업 교육 프로그램으로 재기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복이라는 것으로 출발하니 옷에 차별점이 없었다. 그래서 IP의 문제가 슬럼프를 겪는 이유가 되기도 했던 거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고, 전통 문양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양을 개발하면 그 문양에 대한 독자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그 문양을 옷에 접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해 그래픽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등 서울의 사대문에서 착안한 문양, 단청, 전통 베갯잎 자수(베갯모)에서 착안한 문양에 한국의 오방색을 활용해 만드는 등 다양한 문양을 만들고 있다. 디자인에는 모두 스토리텔링이 있다. 이런 키 디자인 등을 총괄하고 팀원들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팀워크를 했다.
-요즘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뭔가.
▶지금은 활용할 수 있는 문양 그래픽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이제는 패션 디자인 쪽으로 보조할 수 있는 전문인들을 찾는 중이다.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패션 위크를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지난 6월 오묘 온라인 론칭을 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벤쿠버 패션 위크에 초대를 받았다.
K 문화가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는 덕인 것 같다. 10월에 예정된 행사에 어떤 옷과 문양으로 스토리텔링을 해서 한국과 브랜드를 알릴 지 고민 중이다. 그 주제에 맞게 배경과 음악 등도 기획해야 한다. 이걸 시작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세계 4대 패션 위크에 참여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의 '오묘'가 궁금하다.
▶다음 달 더현대서울 아이코닉존에서 열리는 '찾아가는 한복상점' 팝업 행사에도 참여하게 됐다. 100개 이상 업체 중 6개 업체가 선정되는 것인데 거기에 '오묘'도 들어간 거다.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세 가지를 3년 이내에 이루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하나는 해외 패션위크 진출이었고, 두 번째는 더현대서울 팝업스토어 열기였고, 마지막은 케이팝 스타에 오묘의 옷 입히기였다.
감사하게도 세 가지 중 두 개를 벌써 이루게 됐다. 케이팝이나 글로벌로 송출되는 케이 콘텐츠에도 오묘가 멋진 역할을 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오묘 자체가 케이 콘텐츠가 되는 거다. 오묘를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어 있는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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