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배운 게 한이 돼서, 여기까지 왔지."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1시 30분. 한글을 읽지 못하는 설움을 떨치려, 11명의 노인이 남구 대명4동 행정복지센터에 모였다. 남구 평생학습관에서 주관한 '찾아가는 문해학당'에서 글을 깨치기 위해서다.
만학도들이 모인 교실은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하기 전부터 복습의 열기만으로도 뜨거웠다. 이들은 지난 수업에 배웠던 문장을 공책에 받아적고 있었다.
최고령 학생 최모(78) 할머니는 지난 수업에 배운 단어를 소리내 읽고 있었다. 그의 오랜 소원은 손자에게 '카톡'을 보내는 것. 최씨는 "손주들은 통화를 하지 않고, 카톡으로 안부를 확인한다. 손주 카톡에 답을 하고 싶어도 한글을 알지 못하니 답답했다"고 했다. 그가 손주들에게 가장 먼저 보내고 싶은 말은 '공부해라, 사랑해'다. 배우지 못한 설움을 손주에게까지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에서다.
임모(75) 할머니는 한글 공부를 시작으로 더 큰 배움을 이어가고자 한다. 임씨는 "어려운 시절을 보낸 탓에 한글을 배우지 못했는데, 그 사실이 부끄러워 몰래 삭혔다"며 "아직 읽고 쓰지도 못하지만, 언젠가는 한글을 떼고 중학교 졸업장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최근 허리 수술을 마쳐 거동이 쉽지 않지만,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 않고 학당을 찾아왔다.
강사가 수업의 시작을 알리자, 드문드문 이어지던 잡담은 모두 끊겼다. 이날 학생들이 배운 내용은 문장부호였다. 모두 입을 모아 문장부호에 대한 설명을 읽고, 손에 힘을 주고 부호를 공책에 옮겨 적었다.
한글을 배우겠다는 일념 하에 모였지만, 이들의 수준은 제각각이다. 유독 뜨거웠던 여름을 견디지 못하고 결석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강사인 고정조(62) 씨는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 뒤, 그룹 사이를 바쁘게 넘나들며 수업을 진행했다. 그는 "가장 잘하는 그룹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을 자랑하지만, 짧은 단어를 읽는 연습을 하는 그룹도 있다. 뒤처지는 사람이 없도록 그룹마다 눈높이 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구에서 이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 노인은 30명 남짓이다. 다만 남구 평생학습관은 학당에 나오지 않는 '숨겨진 비문해 인구'가 상당할 것이라 추측했다.
남구 평생학습관 관계자는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부끄러워 수업에 나오지 않거나, 건강이 급작스럽게 나빠져 배움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2020년 대구시는 지역 내 비문해 인구가 약 25만명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대구시는 앞으로도 숨겨진 비문해 인구를 발굴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정숙 대학정책과장은 "한글을 깨친 노인들의 시를 모아 시화전을 개최하거나, 한글을 교육할 강사를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있다"며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능력뿐만 아니라 디지털 상의 정보도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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