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고 안정적인 캔버스 위, 무심히 던져진 선 하나가 깊은 울림을 준다. 작품은 작가를 보여준다고 했던가. 최근 갤러리동원 앞산에서 만난 성연화 작가에게선 작품처럼 맑은 기운 속의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회화 작업을 하는 그의 전공은 서예다. 서예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겹도록 해온 중봉 연습이 그에게는 아직도 마음 수양, 힐링의 시간일 정도로 '뼛속까지' 서예인이다.
문자를 쓰던 어느 날, 그는 하나의 획에 꽂혔다.
"저 획 하나만 고치면 완벽할 것 같은데, 그 획을 고치면 다른 게 무너져요. 결국은 획 하나가 모든 장면을 결정하기도, 모든 걸 무너뜨리기도 하는거죠. 획 하나만 파고들자고 생각했어요."
획으로만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그는 오랜 시간 한지의 물성 등을 연구하며 본격적으로 회화를 시작했고, 최근 몇 년 간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으며 서예와 한국화, 서양화를 묘하게 아우르는 '미술계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평온(Serenity), 흐름(Flow), 정체성(Identity) 등 세 가지 연작 24점을 선보인다.
평온 시리즈는 세 작업 중 가장 먼저 시작한 것으로, 작가가 유년 시절의 평온했던 기억과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등을 함께 녹여낸 작품이다.
"한옥에서 자랐어요. 대청마루에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엄마가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낮잠에 빠져들던 기억이 몸에 감각적으로 남아있죠. 또 책 사이에 낙엽을 빳빳하게 말려 코팅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마음 속 깊이 새겨져있어요."
그래서 평온 작품의 면(面)들을 채우는 색감은 한옥에서 바라봤던 하늘과 나무의 그것이다. 어릴 적 뇌리에 박힌 자연의 색은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 일부가 됐다.
과거의 자신을 얘기하는 평온 작품 속, 면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선(線)은 유일하게 작가가 자신의 현재 감정을 표현하는 요소다.
그리고 작가는 그 선 만을 가져와 '정체성' 시리즈로 확장했다. 단색의 배경 위에 다양한 굵기와 방향의 선들이 그어져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세월이 지나서 작품을 다시 봤을 때, 그 때 내 감정이 그랬구나 하는 일종의 기록인 셈"이라며 "선 이외의 여백도 중요하다. 남겨둔 부분은 관람객 각자의 감정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자, 나와 관람객이 소통하는 창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색의 그러데이션이 돋보이는 '흐름' 연작은 얇은 화선지의 테두리를 향으로 태워 줄줄이 붙였다. 순간 방심하면 전체에 불이 붙기에, 작업 과정은 잡념에 빠질 틈 없는 수련 그 자체다.
"예술가로 살면서 취직이나 결혼, 출산 등 세상이 정해놓은 순서를 따라가기가 참 힘들었고, 항상 불안했어요. '흐름' 작업을 하면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었죠. 이 작품은 모든 자연의 생명체가 자기의 순리와 시간을 갖고 있듯, 누구든 각자만의 시간과 흐름대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얘기를 담았어요."
작가는 관람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평온함을 느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은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데 큰 힘을 준다"며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저마다 잊고 살았던 어느 날의 따뜻한 기억을 다시 품었으면 한다"고 했다.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이어진다.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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