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산업 경쟁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과의 이면에는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구조적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2023년 산업재해 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598명으로 전년(644명)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하루 평균 1.6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이러한 산업재해는 단순한 사업장의 과실이나 일탈이 아니라, 자본 중심의 국가 시스템이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구조적 결과다.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제34조는 재해로부터의 보호와 예방을 국가의 책무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매년 반복되는 죽음은 이러한 헌법적 가치가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건설업에서 303명(50.7%), 제조업에서 170명(28.4%)이 사망했으며, 특히 5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서만 354명(59.2%)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위험한 업종일수록, 규모가 작을수록 노동자의 생명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안전관리를 제도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시행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2023년 12월까지 중대산업재해는 총 510건 발생했지만,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사례는 단 13건에 불과하며, 2024년 2월 기준으로도 판례는 14건에 그친다. 실형을 선고받은 경영책임자는 극소수에 그치고 있어, 법의 실효성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수사 단계에서부터 '이례적 사고' 또는 '의무 이행 여부' 등을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회피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결국 최고경영자가 실질적 책임을 피해 갈 수 있는 구조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경영진, 집행되지 않는 법,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법의 존재 이유는 퇴색되고 있다.
문제는 법 제도만이 아닙니다. 현재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자체가 심각하게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 부처가 서로 다른 규정과 보고서를 요구하면서,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위험 예방보다는 서류 작성과 제출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소모되고 있다. 예컨대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의 경우, 환경부는 위해관리계획서를, 고용노동부는 공정안전보고서를, 산업통상자원부는 안전성향상계획서를 각각 요구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가 서로 다른 기준과 제출 양식을 요구하고, 감리자와 안전관리자의 보고체계마저 이원화되어 있다.
이처럼 안전관리 역량이 분산되고 비효율적으로 작동하면서,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안전 확보보다는 '서류로만 존재하는 안전', '보여주기식 대응'이 고착화되고 있다. 진짜 안전은 외면되고, 행정적 형식만 남은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안전관리 기능을 통합하여 중복된 보고체계와 불필요한 서류 요구를 정비하고, 현장이 실질적인 안전관리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체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책임이 불분명해지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며, 안전관리자에게 실질적 권한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판례 분석에 따르면, 가장 빈번하게 지적된 위반사항은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의 미비, 그리고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대한 평가 기준 부재였다. 이는 단순한 절차나 규정 마련을 넘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함을 시사한다. 경영책임자의 법적 책임 범위 또한 명확히 해야 하며, 사후 처벌 중심의 제도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2024년부터 법 적용 대상이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는 만큼, 정부는 중소기업들이 안전관리 체계를 실질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전문 컨설팅과 제도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일터에서 사람이 죽는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생명은 비용이 아니라 존엄한 가치이며, 안전은 선택이 아닌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권리다. 산업재해를 줄이는 것은 단지 제도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가의 기본 책무를 다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며,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지금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단순한 제도나 규정이 아니다. 생명을 중심에 둔 국가 철학과 사회 구조 전체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현실 인식과 구체적인 제도 설계, 그리고 생명을 최우선에 두는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영책임자에게 무거운 법적 책임을 부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노동자의 생명과 권리가 기업의 이윤보다 우선한다는 인식이 국가 운영의 원칙이자 기업 경영의 이념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신효철 더불어민주당 대구동구군위군갑 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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