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당열전-조두진] 전시작전권 환수 주장은 무지 탓일까, 다른 의도가 있을까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해 있다. 연합뉴스
'RC-135'는 미국의 대표적 전자정찰기로 북한의 핵·미사일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한반도를 정찰한다. 출처 미 공군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행적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기분 좋자고 벼랑 끝에 서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전시작전권을 외국 군대에 맡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반미 성향 시민단체들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중에도 전작권 환수를 논의하자는 입장인 의원들(김우영 대미특사·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작권 환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가 전작권 전환을 국방개혁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으나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은 '5년 시한은 없다. 장기 현안이다'며 한발 물러 선 상황이다.

▶ 전작권 환수가 군사주권 회복?

전작권 환수는 국방 자주권 회복이라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민중주의 진영은 전작권 환수를 통해 자주국방을 이룩하고, 미국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외교 전략에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작권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군대를 지휘하고 통제하는 권한을 지칭한다. 우리나라는 평시에는 우리 군 지휘부가 국군을 지휘하지만 전시에는 작전권을 한미연합사령부에서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은 미군, 부사령관은 한국군이다. 전시 지휘권을 미군이 갖고 있는 한 누구도 함부로 우리를 침공하지 못하고,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한 한국군을 미군이 지휘할 일은 없다. 그것을 국방 주권을 빼앗긴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 평화와 경제발전 바탕에 미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약한 나라, 언제라도 코앞의 공산주의 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6·25이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덕분에 전쟁 걱정 없이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한미동맹이 없었고, 주한미군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몇 배 더 많은 국방비를 써야 했을 것이다.

국민 에너지를 국방에 대거 투입해야 했을테니 경제발전은 더뎠을 것이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니 외국 자본의 투자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국가 발전 정도가 지금에 훨씬 못 미칠 것은 자명하다. 공산화됐을 수도 있다.

▶ 국력 과시·방심에 망한 오나라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나라(吳)의 마지막 왕이자 춘추오패(春秋五霸) 중 한 사람이었던 부차(夫差·~기원전 473년)는 패자(霸者)의 위상을 과시하고, 중원(북방) 진출을 위한 전략적 수로(水路)로 활용하기 위해 장강(長江)과 회수(淮水)를 연결하는 대규모 운하를 건설했다.

오나라의 충신이자 전략가였던 오자서(伍子胥·~기원전 485년)는 이에 강력히 반대했다. 대규모 토목 공사로 군사적·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오나라의 국력을 소모하려는 월나라(越·오나라의 적국)의 반간계이므로 속아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오자서는 중원 진출보다는 내부 안정을 우선하고, 오나라의 최대 위협인 월나라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차는 오자서의 충언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월나라의 반간계에 속아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령했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오나라 국력은 약해졌고, 막대한 세금과 부역으로 민심 이반도 컸다. 여기에 북방 진출의 꿈에 젖은 부차는 월나라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음을 가볍게 여겼다. "우리가 강한데 월나라가 뭘 어쩌겠어…." 10여 년 후인 기원전 473년, 오나라는 월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월왕 구천은 오랜 세월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국력을 기르는 한편 오나라 왕 부차가 방심하도록 미인 서시를 바치는 등 갖은 계책을 펼친 끝에 오나라를 무너뜨렸다.

▶ 한미동맹 균열이 초래할 위험

반미 성향 시민사회 단체들은 전작권을 환수하더라도 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균열은 없다고 주장한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경우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만큼 그들이 철수할 리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1992년 11월 미군은 필리핀 수빅만 해군기지를 필리핀에 반환하며 완전히 철수했다. 필리핀 의회가 미군 주둔 연장을 거부하고, 필리핀 내에서 주권 회복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남중국해 분쟁에서 필리핀은 중국에 일방적으로 밀린다. 만약 미군 제7함대가 수빅만에 계속 주둔했더라도 중국이 지금처럼 필리핀 인근 해역을 휘젓고 다녔을까. 미군이 떠난다면 우리나라 서해와 이어도는 어떻게 될까? 안보는 자존심 아닌 생존 문제이다. 허구한 날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 면서 국가 안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대체 무슨 속셈일까.

조두진 논설위원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해 있다. 연합뉴스

▶ 안보·외교·산업 막대한 영향

한미동맹은 한국과 미국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양국군이 연합해 싸우는 구조다. 전작권을 회수했을 경우 세계 최강 군사력, 첨단 무기, 첨단 정보 체계를 갖춘 미군이 그 무기와 체제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한국군 지휘관의 판단과 전략에 적극적으로 따를까?

전작권 환수는 한미연합사 해체 또는 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미 동맹에 균열이 발생할 경우 북한의 오판 가능성, 국방비 부담 증가, 외교·산업 지형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또 미군의 정찰 위성 정보 지원이 줄어들 경우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 능력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지휘권만 행사한다고 '국방 자주권'을 가지는 것인가?

전작권을 환수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다. 미국과 군사동맹 역시 싫으면 언제든 파기할 수 있다. 전작권 환수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환수 후에 닥칠 상황이 위험한 것이다.

▶ 전작권 환수를 위한 전제

전작권 환수의 전제는 우리 국방력 강화와 고도화이다. 막대한 국방 예산이 요구된다. 북한이 핵을 가진 만큼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핵무장은 어렵다. 그렇다고 NPT에서 탈퇴해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를 감당할 수도 없다.

조두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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