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나, 나와 할아버지. 살아온 시대도, 말의 온도도 달라 함께 있으면서도 어딘가 평행선 같은 사이였다. 함께 차를 타고 길을 나설 때면 내비게이션 하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와 기계보다 한 수 위라 생각하는 '할아버지'가 부딪치는 것처럼 말이다. 끝내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손자는 아무 말 없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비로소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떠난 후엔 그리움은 더 깊어진다.
극단 간다의 대표 연극 '나와 할아버지'가 지난 19~20일 대구 어울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마쳤다. 작품은 작·연출을 맡은 민준호 연출이 실제 할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많은 관객들에게 울림을 전했다. 할아버지 역의 양경원 배우에게 직접 극과 연기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2013년부터 함께 해온 연극 '나와 할아버지'는 어떤 의미의 공연인가
▶처음 시작한 연극이자 연기가 이렇게 재밌고 감명 깊은 작업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할아버지 역할의 특성상 나이가 들어가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배역이기에 할 수 있다면 평생 하고 싶은 가장 애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 초기에는 화자 역할인 작가에서, 2021년부터는 할아버지 역을 맡았다. 한 작품 안에서 두 배역을 모두 연기해보며 느낀 변화는
▶작가 역할을 할 때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했을텐데, 할아버지 역을 맡아 작가 역을 바라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화자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주관적인 부분들 말이다.
마찬가지로 작가로서 오래 바라본 할아버지 역을 하게 됐을 땐 그동안의 관찰이 도움이 많이 됐다. 또 극중 할아버지는 실제 민 연출의 외할아버지를 모티브로 하지 않았나. 실제로 뵀던 그분의 모습을 조금은 반영하고 싶었다. 할아버지 역은 실제 나이나 어떤 위치가 가까워질수록 해마다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 대학교에선 건축학을 전공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건축회사에서 양주임, 양대리까지 달았다가 스물아홉에 사직서를 냈다. 춤과 노래를 원래부터 좋아했고 무대가 너무 궁금해서 대극장 뮤지컬 앙상블로 시작하게 됐다. 재밌게 활동하다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서고 싶어져서 오디션을 봤고, 극단 간다에 들어오게 됐다. 초반 몇 년간 이곳에서 트레이닝 받으면서 잘 고민하고 연습하는 법을 배웠다.
- 드라마와 연극 무대 두 장르에서 활약하는 배우로서 차이점이 있다면
▶촬영은 다시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면서도, 시나리오 시간 순으로 촬영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매 장면마다 다른 시점의 인물 상태를 내 스스로 면밀히 살피고 들어가야 한다. 공연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야 된다'는 특성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의 흐름을 놓지 않다보면 그 상태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된다. 두 작업 모두 수십, 수백명의 관객과 스태프 앞서 인물로 보인다는 점은 비슷하다.
- 자전적 이야기의 극처럼, 실제 조부모님과의 인상깊은 기억이 있나
▶외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손주들 중에 유독 사랑을 많이 주셨다. 병상에 계실 때도 용돈을 꼭 쥐어주신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관객들에게 한마디
▶지금까지의 공연 후기를 보면,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극이라 관객마다 공감하는 포인트도 다양했다. 엄마, 아빠, 친구, 형제, 지인…혹은 무형의 어떤 것들까지. 그런 생각들이 각자의 삶에서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길 바란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회자되는 배역으로 온전히 보일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열심히 연기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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