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르지 않겠다. 데니스 존슨의 마지막 소설집 '바다 여인의 선물'을 읽는 내내 그의 대표작 '기차의 꿈'을 떠올렸다. 전혀 다른 이야기, 다른 시대 배경인데도 그랬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나는 두 책을 번갈아 보며 일부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전작이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면 '바다 여인의 선물'은 그 아래 똬리 튼 실체를 쫓는 리얼리티 판타지 같았다.
첫 번째 이야기 '바다 여인의 선물'의 화자는 뉴욕에서 경력을 시작해 덴버와 피닉스를 거쳐 마침내 샌디에이고에 정착한 남자, 결혼 25주년이 되었고 두 딸을 낳아 기르고 아내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곧 예순세 살이 되는 광고인의 이야기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지점. 이 작가에게 이런 유머가 있었나, 싶었다. 그러니까 죽음을 앞둔 첫 번째 아내 지니에게서 걸려온 마지막이 될 통화를 하던 화자는 이런 생각에 빠진다. "이 여자가 내 첫 번째 아내 지니가 아니면 어쩌지? 제니라고 불릴 때가 많은 두 번째 아내 제니퍼라면?"(23쪽) 책 시작에 등장하는 그의 아내 이름은 일레인이었다. 책 어디에도 세 번째 아내라고 표기하지 않았으니 일레인이 일곱 번째나 열두 번째라도 무방할 터였다. 심지어 (첫 번째 아내라고 여긴 지니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부정을 저지르고 돈에 대해 거짓말한 것을 용서받고 싶다고 말한 남자였으니 말이다. 뉴욕에서 꽤 잘나가는 광고인으로 젊은 날을 보낸 남자라면…. 갑자기 나는 '기차의 꿈'에서 아내 글래디스 단 한 명만을 사랑했고 재산이라고는 땅 1에이커와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가 전부였던 남자 로버트 그레이니어가 몹시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데니스, 고약한 양반 같으니. 로버트에겐 참혹하고 건조한 삶을 남기더니 뉴욕 광고장이에게 이런 호사를 안겨주나.
마지막 편인 '도플갱어, 폴터가이스트'는 엘비스의 쌍둥이 동생의 흔적을 뒤쫓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2016년 1월 엘비스 프레슬리의 여든한 번째 생일을 앞두고 위대한 시인 마커스 에이헌이 멤피스 경찰에 체포된다. 작중 화자는 시 워크숍 강의장에서 이십대의 마커스를 처음 만났고 즉시 그의 재능을 간파하고는 "네 글은 훌륭해"라고 말하지만 마커스는 "그건 제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에요."라며 일축한다. 그가 말한 가장 중요한 일이란 엘비스의 진실을 밝히는 것. 마커스는 훌륭한 시인이 되지만, 외려 광기는 더해진다. 15년째 시를 쓰지 않는데도 대학 측이 그에게 종신 교수직을 주려고 하는데 화자인 나는 종신교수가 불가능한 사람이었지만, 마크는 그런 자리는 관심도 없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나와 달리 마커스에게 재능은 중요하지 않다. 재능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로 엘비스의 진실을 밝히는 것만 관심 있을 뿐이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건, 삶은 예측할 수 없다는 건 이런 거다. 누구는 평생을 애써도 못 이룰 일을 단숨에 뚝딱 해치우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그 일은 본업도 아니다. 이해하기 힘들고 아이러니한 세상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마커스의 광기도 충분히 납득 가능할 터. 마커스가 집착하는 쌍둥이 혹은 도플갱어 아니면 폴터가이스트가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버리는 장면과 만날 때, 이야기는 너무 영화적이어서 비현실적이지만 결국 현실이라는 방증 앞에 무력해진다.
데니스 존슨의 '바다 여인의 선물'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판타지가 되는 이야기 모음집이다. 그러므로 이쯤에서 떠올리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명언 "영화가 현실에 가까울수록 더 환상적이다." 나머지 세 편? 더 판타스틱하다고만 말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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