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백운암이 빚어낸 거대한 자연, 돌로미티 트레킹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점점 흐려지던 트레치메 앞에서 폴란드 부녀와 함께. 하태길 교수
점점 흐려지던 트레치메 앞에서 폴란드 부녀와 함께. 하태길 교수
수직으로 솟아있는 거대한 트레치메. 하태길 교수
수직으로 솟아있는 거대한 트레치메. 하태길 교수

나는 왜 돌로미티(Dolomiti)에 가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돌로미티를 처음 만난 곳은 이탈리아(Italia)가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이었다. 요즘 트렌드가 그렇듯 나 역시 여행지를 고를 때 먼저 다녀온 여행자의 사진과 영상에 마음이 움직일 때가 많다.

어느 날부터인가 유튜브(YouTube)와 인스타그램(Instagram)을 넘길 때마다 낯선 풍경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초록빛 초원 뒤로 칼날처럼 솟아오른 회백색 봉우리, 에메랄드빛 호수, 그리고 거대한 암봉(岩峰) 사이를 걷는 트레커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세체다(Seceda)를 찾다 보면 트레치메(Tre Cime)가 나타났고, 브라이에스 호수(Lago di Braies)를 검색하면 코르티나담페초(Cortina d'Ampezzo)가 따라왔다.

한 장의 사진과 15초짜리 영상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에 여행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영상 대부분이 이탈리아 관광청이나 여행사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여행자들이 여행 중 직접 찍어 올린 것이었다.

마케팅에서는 이를 UGC(User Generated Content), 즉 '사용자가 만들어낸 콘텐츠'라고 부른다.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의 경험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다. 누군가의 여행 기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가장 설득력 있는 광고가 된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몇 번이고 바라보았던 돌로미티를 실제로 마주한 순간,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더 이상 멋진 여행 콘텐츠만이 아니었다.

트레치메에서 로카텔리 산장으로 가는길. 하태길 교수
트레치메에서 로카텔리 산장으로 가는길. 하태길 교수

돌로미티는 이탈리아 북동부와 오스트리아(Austria) 국경을 따라 펼쳐진 알프스 동부의 거대한 산악지대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기암괴석과 거대한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돌로미티(Dolomiti)'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주요 암석인 백운암(白雲岩), 돌로마이트(Dolomite)에서 비롯됐다. 이 암석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아침에는 분홍빛, 한낮에는 은백색으로 빛나며, 해 질 무렵에는 붉은빛으로 노을 진다. 산이 스스로 색을 바꾸는 듯한 이 현상은 돌로미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Austro-Hungarian Empire)과 이탈리아 왕국(Kingdom of Italy)이 맞붙었던 전장이었다. 지금도 산 곳곳에는 참호와 포대, 터널과 진지가 남아 있다. 돌로미티를 걷는다는 것은 때때로 바위 틈에서 전쟁의 흔적을 마주하며 그곳에서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걷는 일이기도 하다.

다섯 개의 탑, 친퀘 토리. 하태길 교수
다섯 개의 탑, 친퀘 토리. 하태길 교수

◆트레치메 트레킹

돌로미티를 대표하는 풍경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다. '트레 치메'는 '세 개의 봉우리'라는 뜻이다. 치마 피콜라(Cima Piccola), 치마 그란데(Cima Grande),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가 거대한 성벽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돌로미티를 상징하는 가장 강렬한 풍경이면서 수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레킹은 아우론조(Auronzo) 산장에서 시작한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트레치메를 바라보고, 로카텔리(Locatelli) 산장 뒤편의 동굴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왕복 약 3시간의 코스다.

출발할 때만 해도 하늘은 맑았다. 완만한 길을 따라 보랏빛 야생화가 초원을 수놓고 있었다. 왼편 사면에서는 하얀 자갈이 햇빛을 받아 눈처럼 반짝였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세 개의 봉우리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는 이제 진짜 돌로미티 속으로 들어선다는 설렘이 일었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자 트레치메의 뒷모습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직으로 솟은 절벽은 점점 더 거대해졌다.

언제나 그렇듯 사진으로 보았던 산과 눈앞의 산은 전혀 달랐다. 그 규모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꺼냈다. 그런데 트레치메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하늘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검은 구름 하나가 봉우리 위에 걸리더니 이내 다른 봉우리까지 삼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선명했던 암벽은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작은 바위 위에 올라 셀카(selfie)를 찍고 있던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두 사람은 무척 반가워했다. 자연스럽게 함께 사진도 찍었다. 폴란드에서 온 부녀였다. 흐려지는 트레치메 앞에서 두 사람은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친퀘 토리 위로 올라가는 암벽등반가들. 하태길 교수
친퀘 토리 위로 올라가는 암벽등반가들. 하태길 교수

로카텔리 산장에 도착할 무렵 첫 빗방울이 떨어졌다. 산장 뒤편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동굴과 참호가 남아 있다. 특히 동굴 입구 너머로 보이는 트레치메를 액자처럼 담을 수 있는 포토 스팟(Photo Spot)이 유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날의 트레치메는 끝내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먹구름은 산 전체를 집어삼켰고, 조금 전까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던 트레치메는 구름에 잠겼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서둘러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천둥이 산을 여러 번 뒤흔들었다. 번개가 능선을 가르고 굵은 빗줄기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박까지 퍼붓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야생화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길이었다. 비바람과 추위에 떨며 돌아가던 길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계절처럼 느껴졌다. 돌로미티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온몸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스코이아톨리 산장 뒤로 솟아있는 몬테 아베라우. 하태길 교수
스코이아톨리 산장 뒤로 솟아있는 몬테 아베라우. 하태길 교수

◆친퀘 토리 트레킹

친퀘 토리(Cinque Torri)는 이탈리아어로 '다섯 개의 탑'이라는 뜻이다. 다섯 개의 거대한 백운암 바위기둥과 주변의 암석이 어우러져 돌로미티에서도 특히 독특한 풍경을 빚어낸다. 케이블카를 타고 스코이아톨리(Scoiattoli) 산장에 오르자 친퀘 토리를 한 바퀴 도는 짧고 편안한 트레킹 코스가 한 눈에 잡혔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산바람은 차가웠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아기자기한 바위섬처럼 보였던 친퀘 토리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바위기둥이 하늘을 떠받치듯 솟아 있었다. 급경사의 바위 계단을 내려서고 완만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암석 바로 아래까지 다가간다. 고개를 한껏 젖혀야 끝이 보이는 바위기둥 위에는 소나무가 뜬금없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트레일 옆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참호와 진지가 남아 있었다. 한 세기 전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걸었던 길을 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걷고 있었다. 암벽 곳곳에 암벽등반가들이 매달려 있었다. 손끝으로 작은 돌출부를 더듬고 발끝을 간신히 디디며 수직 암벽을 오르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멀리 이탈리아 국기가 펄럭이는 스코이아톨리 산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는 몬테 아베라우(Monte Averau)가 거대한 병풍처럼 든든하게 둘러서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추모하는 예수상 앞에 선 트레커들. 하태길 교수
제1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추모하는 예수상 앞에 선 트레커들. 하태길 교수

◆라가주오이 산장 전망대 트레킹

파소 팔자레고(Passo di Falzarego)에서 케이블카를 탔다. 가파른 암벽을 따라 케이블카가 빠르게 올라갔다.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해발 2,700m가 넘는 라가주오이(Lagazuoi)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갯길과 끝없이 펼쳐진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라가주오이는 그야말로 돌로미티의 거대한 전망대였다. 라가주오이 산장 야외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음식과 카푸치노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높은 산 위에서 마시는 따뜻한 음료는 낯선 풍경이라는 특별한 디저트와 함께하니, 그 맛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전쟁은 라가주오이도 피해가지 못했다. 곳곳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했던 참호와 터널, 진지가 남아 있었다. 해발 2,700m가 넘는 험준한 산 위에서 병사들은 바위 속을 파고 들어가 터널을 만들고 진지를 구축했다. 특히 벼랑 끝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인상적이었다. 비교적 편안하게 조성되어 있어 휠체어도 이동할 수 있는 구간이었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몰자를 추모하는 예수상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도 그 줄에 섰다. 바로 앞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가족 트레커들이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어느새 함께 모여 기념사진까지 찍게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사진 한 장으로 삶의 풍경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예수상 아래에는 전쟁 당시 사용했던 포탄과 금속을 모아 만든 조형물과 방문객들이 글을 남길 수 있는 노트도 놓여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바위 다리 아래로 보이는 파소 포르도이. 하태길 교수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바위 다리 아래로 보이는 파소 포르도이. 하태길 교수

◆사쓰 포르도이 트레킹

파소 포르도이(Passo Pordoi)로 오르는 길은 좀처럼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180도에 가까운 회전과 연이어 나타나는 헤어핀 커브(Hairpin curve)가 산허리를 감아 돌며 이어졌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까마득한 풍경에 눈을 빼앗기면서도 굽이굽이 이어지는 긴장감이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파소 포르도이에서 케이블카에 올랐다. 단 4분 만에 약 700m를 올라 돌로미티의 테라스에 닿았다.

그리고 해발 2,950m의 사쓰 포르도이(Sass Pordoi)에 나를 내려놓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돌로미티 특유의 밝은 암벽이었다. 햇빛을 받은 바위는 하얀 눈이 내려앉은 듯 눈부시게 빛났다. 이 높은 곳에는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사람의 흔적조차 희미했다. 거대한 암벽과 황량한 땅 사이를 걸으며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내려 탐사를 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철골로 세워진 십자가를 향해 걸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더 오래 붙잡은 것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바위 다리였다. 다리 아래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가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그 구멍 아래로 조금 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던 포르도이 고개가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바위 다리 위에 올라섰다. 단단하고 웅장해서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거대한 암교(岩橋) 역시 언젠가는 바람과 비에 깎여 사라질지도 모른다.

청록색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사쓰 포르도이. 하태길 교수
청록색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사쓰 포르도이. 하태길 교수

이 험준한 사쓰 포르도이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사진을 찍고 풍경을 바라보지만, 한때는 이 높은 산과 절벽 사이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나는 절벽 끝의 바위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까마득한 아래로 짙은 청록색 호수가 작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암벽과 푸른 하늘, 짙은 초록빛 산과 호수가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오래 바라보아도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정면으로는 사쓰롱고(Sassolung) 산군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그 너머로 돌로미티의 최고봉 마르몰라다산(Marmolada)과 빙하가 웅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셀라 산군(Sella group)의 최고봉 피즈 보에(Piz Boè)가 우뚝 솟아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암벽의 줄무늬였다. 살구빛과 회백색, 진회색과 갈색이 겹겹이 섞인 암벽에는 선명한 가로줄이 새겨져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퇴적과 침식이 반복되며 만들어진 지층이었다. 층층이 쌓인 암석의 단면은 마치 거대한 책을 세워 놓은 것 같았다. 켜켜이 포개진 한 겹 한 겹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긴 시간이 새겨져 있다. 한 겹이 쌓이고 또 한 겹이 쌓이는 동안 바다는 사라지고 산이 솟아났으리라. 그 순간 문득 내 삶도 이 암벽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지금의 내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과 잊고 싶은 순간,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이 한 겹 한 겹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산의 지층이 오랜 시간의 기록이라면 사람의 삶에도 보이지 않는 지층이 있는 것이 아닐까?

켜켜이 포개진 사쓰 포르도이 암벽 위에서. 하태길 교수
켜켜이 포개진 사쓰 포르도이 암벽 위에서. 하태길 교수

돌로미티에서는 가는 곳마다 1차 세계대전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수억 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산 앞에서, 불과 100여 년 전 이곳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산 아래로 내려가기 전, 나는 발밑의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 위의 돌은 작고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들어 있었다. 수억 년의 시간을 품은 산 앞에서 인간의 역사는 너무나 짧았다. 그런데도 뉴스 화면 속에서는 여전히 포성이 울리고 있다. 나는 돌로미티의 산을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본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 말이 없는 돌로미티. 어쩌면 그 침묵 속에 우리가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서 김민석 후보가 호남 경선에서 과반 승리를 거두며 당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김 후보는 호남 지역에서...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서해의 갯벌에서 야간 해루질을 하던 53세 A씨가 실종된 지 약 10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발견자는 바지락을 캐던 어민으로 확인됐...
15일 한국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으나 직접 참배하지 않았고, 일본 방위상 고이..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