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가난과 배고픔에 고통받던 프랑스 백성의 '빵을 달라'는 간절한 호소에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말이다. 이젠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빵 대신 케이크'라는 이 유명한 말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 아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향해 입버릇처럼 말하는 '가짜 뉴스'의 대표적 사례다. 이 표현이 앙투아네트에게 주홍 글씨처럼 따라붙는 건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혁명 전야의 프랑스는 불평등과 빈곤이 극심했고, 민중의 분노를 상징할 적절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는 귀족적 허영의 대명사로 지목됐고, '빵 대신 케이크'라는 허구의 인용은 대중 선동에 최적화된 도구가 됐다. 결국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앙투아네트의 대표 어록으로 굳어졌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로 종종 언급되는, 영국의 극작가이자 사회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오역'의 예로 종종 등장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라고 한다.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죽음)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지" 정도의 번역이 과하지 않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실 버나드 쇼는 묘지를 남기지 않았다. 사후 화장된 그의 유해는 오랫동안 은둔하며 작품을 썼던 런던 교외의 '쇼스 코너' 정원 곳곳에 뿌려졌고, 묘비는 아예 세워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오래전 여러 글에 인용돼 등장하긴 했지만, 2000년대 중반 한 이동통신사가 만들어 낸 묘비 사진과 과장된 말은 이제 정설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흥미로운 건 이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우물쭈물'의 매력을 포기하기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버나드 쇼 같은 지식인도 인생 어영부영 살다 보니 어느새 이 꼴이 났으니 사는 동안 좀 분발해 보라고 충고하는 메시지를 이 문장에서 읽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정보가 넘친다고 해서 진실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빠르게 퍼지고, '믿고 싶은 이야기'가 곧 '믿어야 할 진실'이 되어 버리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가짜 뉴스가 활개를 친다. 가짜 뉴스 하면 빠지지 않고 떠오르는 집단이 있다. 극단(極端) 성향의 정치 유튜버들이다. 이들은 사실 확인도 안 된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 내며 자신들의 생각을 확산시킨다. 여기에서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가 옳다'는 자기 확신을 심어 주는 일이다. 이런 채널은 더 이상 단순한 의견의 차이를 넘어선다.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확신을 팔고 믿음을 강화하는 공간'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성향에 맞춘 영상만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어느 순간부터 사용자는 '다른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더욱 무서운 건, 일부 정치인은 이들과 거리를 두기는커녕 거짓 선동에 편승하며 '공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것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종종 사람들은 가짜 뉴스 문제를 기술적 문제로 본다. '플랫폼이 나쁘다'거나 '알고리즘이 편향됐다'는 식이다. 물론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가짜 뉴스를 키우는 진짜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2025-09-18 17:50:02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위원장 김미원)는 18일 대구지사 별관에서 '제45회 대구적십자 바자'를 열었다고 밝혔다. 대구적십자 바자는 적십자 인도주의 활동 기금 조성을 위해 1981년 처음 시작됐다. 수익금은 위기가정과 취약계층을 돕는데 사용된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는 적십자 인도주의 활동 후원을 위해 대구지역 여성 리더들이 모여 결성한 지역 대표 여성 후원단체다. 김미원 위원장 등 28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날 행사엔 대한적십자사 본사 정채영 부회장을 비롯해 김남연 본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장, 김태훈 대구시 부교육감, 배인호 대구적십자사 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해 바자 개최를 축하했다. 올해는 바자 이래 처음으로 대한적십자사봉사회 대구시협의회(회장 권영희)와 공동으로 현장 바자를 진행했다. 대구시협의회는 9개구·군협의회 소속 봉사원들이 직접 만든 반찬류를 판매하며 바자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주최 측은 이날 여수 갓김치와 게장, 청송 사과, 김천 샤인머스캣, 군위 자두빵, 포항 잡곡세트, 영광 보리굴비, 용대리 황태, 장류 및 젓갈류, 지역 화장품 등을 판매했다. 오는 21일까지 진행되는 온라인 바자에서는 더욱 풍성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대구적십자사 바자 전용 웹페이지(https://blog.naver.com/daegu9582)를 참고하거나 전화(053-550-7115, 7112)로 문의하면 된다.
2025-09-18 16:03:01
1.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본떠 제작한 'K-굿즈'(기획상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출시한 '금관 브로치'는 출시 직후 품절됐고, 한국민속촌이 온라인으로 판매한 '갓' 관련 제품도 품절 사태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화제를 모은 '이 애니메이션' 열풍에 힘입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재해석이 새로운 소비 흐름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K-POP 걸그룹이 악마를 사냥하는 퇴마사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이 애니메이션'은?(9월 12일 14면) 2.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이후 후속 협의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출 경쟁국인 일본이 협상을 먼저 마무리 지으면서 한국 기업의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최근 한국 정부는 미국에 무제한 '이것' 체결을 제안했다. '이것'은 자국의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의 통화를 빌려오는 조치를 말한다. 이를테면 특정 시점에 1천300원을 내고 1달러를 빌리면 만기일의 환율이 1천500원이든 1천원이든 상관없이 1달러를 갚고 다시 1천300원을 돌려받는 식이다. 외환위기 등 비상시 외화 조달을 위한 마이너스 통장 개념으로 활용되는 '이것'은?(9월 16일 1면) 3. '이 항로'는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새롭게 열리는 바닷길로, 북극해를 따라 러시아 북부를 지나 유럽으로 향하는 새로운 해상 운송로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인도양~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항로에 비해 거리가 3분의 2로 줄어든다. '이 항로' 개척이 이뤄지면 물류비 절감은 물론, 유라시아의 전략적 통로가 될 수 있기에 세계 각국도 연구·투자 등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이미 '이 항로' 개발을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다. 경북도는 영일만항을 '이 항로'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최근 전담조직을 신설했다. '이 항로'는?(9월 16일 2면) ◆9월 5일 자 시사상식 정답 1. 제일모직 2. 스테이블 코인 3. 대구로페이
2025-09-18 12:03:54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간송 선생의 문화보국 정신, 손끝으로 되살린다
대구간송미술관이 이달 개관 1주년을 맞았다.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문화유산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의 정신이 깃든 곳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간송의 문화보국(文化保國)' 정신에 따라 '간송 컬렉션'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마련한 지역 거점 미술관이다. 이곳엔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일을 하는 전문가 그룹이 있다. 수리복원팀 학예연구사가 그들이다. 이들은 유물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수리를 통해 유물의 생명력을 늘리고 활용도를 높이는 작업을 한다. 그동안 개관전과 상설전에서 선보였던 많은 소장품들은 이들의 손길을 거쳐 관람객과 만났다. 이하나 대구간송미술관 책임학예연구사는 수리복원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 15일 미술관 내 '보이는 수리복원실'에서 그를 만나 간송미술관과 수리복원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의 경우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수리복원 전문 학예연구사를 두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다. 가까운 대구미술관에도 수리복원 부서가 없다. 국공립미술관으로는 대표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민속박물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사립의 경우엔 더욱 흔치 않은데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 서울 간송미술관 정도다. 특히나 대구간송미술관처럼 지류·회화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곳은 더욱 드물다. 지류·회화 분야는 사용하는 재료나 도구가 특수하고 다양한 작품의 수리 공정에 맞춰 공간이 꾸려져야 하다 보니, 사람 한 명을 뽑는다고 지류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수리하기는 어렵다. 상당한 초기 투자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 곳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대구간송미술관은 수리복원팀에 4명의 학예연구사를 두고 있다. 게다가 모두 지류·회화 수리복원 전문가다. ▶대구경북은 유교문화와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곳이자 근대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그렇다보니 이와 관련한 귀중한 유물과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종이나 직물로 제작된 것들이다. 반면 대구경북엔 이를 전문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기관이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대구간송미술관 설립을 준비하면서 영남권 수리복원의 허브 역할을 하면 어떨까 하는 구상을 하게 됐다. 2022년 개관 준비단이 처음 꾸려질 당시엔 혼자 업무를 하다 이듬해 학예연구사 1명이 충원됐고, 지난해와 올해 각각 1명이 늘어 모두 4명이 수리복원팀에서 일하게 됐다. 그간 간송미술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서지류 유물 보존에 기여한다는 게 대구간송미술관의 목표다. -이하나 학예연구사는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전시기획 분야에서 일했다. 어떤 계기로 수리복원 일을 시작하게 됐나. ▶사실 학부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술사를 공부하다보니 유물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전시에 나오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러면서 미술품 보존 분야 쪽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이후 영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다녀오고 전시기획 일을 하다 국내에서 수리복원 분야를 공부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선택한 학교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이었다. 이곳에서 보존·복원(지류·회화 분야)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입사한 특별한 동기가 있나. ▶국가유산청 산하 국립대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산학연계가 잘 돼있다. 석사과정 두 번째 학기 때부터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간송미술문화재단 등 다양한 기관이 소장한 문화유산의 과학적 조사·분석과 수리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인턴으로 보스턴미술관 아시아보존실에서 아시아 문화유산 보존 처리 작업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바탕이 돼 2019년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입사할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소장품 수리복원 업무를 이어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수리복원 사례가 있나. ▶다 의미가 있지만 겸재 정선의 대표작 중 하나인 8폭으로 된 '화훼영모화첩'을 수리복원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2019년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의 기금보조사업인 '예술 작품 보존 프로젝트(Art Conservation Project)'에 선정돼 복원이 이뤄졌다는 점에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루브르 박물관, 보스턴 미술관 등 세계 유수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 수리복원을 후원해왔다. 국내 작품이 선정된 건 화훼영모화첩이 최초다. 개인적으로는 입사하자마자 진행한 사업으로 해당 프로젝트에 지원하고, 선정되기 위해 각국의 담당자들과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며 많은 서류를 만들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복원 과정에서 그동안 낱장으로 보관돼 있던 그림의 벌레 먹은 흔적을 분석해 작품의 원래 형태와 순서를 밝혀낸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이 작품은 올해 열린 '화조미감'전을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전시뿐만 아니라 시민을 위한 미술관의 프로그램도 돋보인다. 특히 '보이는 수리복원실'은 관람객이 복원작업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유일하게 관람객이 학예연구사와 복원과 관련해 질의응답을 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이 학예연구사의 아이디어라고 들었다. ▶보이는 수리복원실은 설계 때부터 이미 기획이 돼있었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박물관 등에서 '보이는 수장고'가 유행하던 때였다. 대구간송미술관이 시립미술관이다 보니 다른 미술관과의 차별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수리복원 분야를 특화시킬 계획이었던 만큼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운영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됐다. 사실 국내엔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운영하는 기관이 몇 군데 있다. 하지만 관람객과 학예연구사가 마주하진 않는다. 보통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보게끔 돼있다. 하지만 대구간송미술관의 '보이는 수리복원실'은 관람객에게 등을 보이거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관람객을 마주하며 제대로 보여주자고 생각했고, 나아가 관람객과 소통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관람객들이 유리창 너머로 작업 모습을 지켜보면서 궁금증이 생기더라도 해결할 방법이 없지 않나. 저희 같은 경우는 마이크를 설치해 관람객이 질문을 하며 바로 대답을 할 수 있게끔 운영하고 있다. 보스턴 미술관 인턴 근무 당시 수리복원 과정을 공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게 아이디어의 기초가 됐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2시간씩(오후 2~4시)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운영하다보니 업계 관계자들이 방문하면 늘 '힘들지 않냐'는 말을 한다. 사실 가끔 부담스럽고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관람객과 소통하며 느끼는 보람도 크다. 이와 함께 올해는 '시민참여 수리복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역사적 가치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자료나 기관 소장품이 아닌 시민 개개인의 이야기를 품을 자료를 발굴해 수리복원을 지원하는 첫 시도다. 단순히 물리적 복원을 넘어 그 안에 담긴 대구시민의 이야기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체 유물뿐만 아니라 타 기관 소장품 복원작업도 하고 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수리복원의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당초 계획을 실행해가는 과정이다. 지역공헌 사업으로 지난해 대구시의 '대구문화예술 아카이브' 자료 중 윤복진 기증 유물 14건을 수리한 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대구미술관이 상설전으로 선보일 작품 가운데 상태가 좋지 않은 작품 11점에 대한 수리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태가 안 좋은 유물은 수리작업을 거치지 않는다면 전시에 나올 수도 없고 활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당시 그곳엔,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조선시대 화가 그림이 있었다. 동료 선생님께 이 작품이 전시에 왜 안나오냐고 물었더니 작품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못 나온다고 했다. 그럼 수리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미술관 방침 상 소장품 외부 반출이 안 되고, 한국 미술을 수리하는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이 작품은 아마 100년 내엔 못 나올 것이라고 하더라. 영남권이나 대한민국을 넘어, 해외 미술관 수장고에서 잠자는 우리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할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다. 개인적 바람이다.
2025-09-17 15:06:39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회장 배인호)는 충북지사와 함께 지난 13일과 14일 이틀간 충북 청주 도로줌마을에서 양 기관 대학RCY 회원 31명이 참가한 가운데 연합 농촌봉사활동을 펼쳤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1일차 프로그램으로 모종판에 새싹을 심고, 2일차엔 플로깅 활동을 통해 폐기물을 수거하며 깨끗한 마을 환경을 조성을 위해 힘썼다. 이와 함께 교촌에프앤비(주)의 대표적인 사회공헌사업인 '촌스러버(Chon's Lover) 프로젝트'와 연계해, 우리 삶의 터전과 식량을 책임지는 농업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마을 주민들에게 교촌치킨을 전달했다. 행사에 참가한 정귀현 대학RCY 대구협의회장은 "농촌의 소중함과 환경 보전의 필요성을 직접 체감할 수 있어 뜻 깊은 행사였다. 앞으로도 두 지사가 활동 정보를 공유하며 우정을 이어가는 등 교류가 꾸준히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5-09-16 15:32:13
1. '이것'은 828m 높이 163층의 세계 최고층 빌딩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국내 최고 건축물인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555m)보다 273m나 높다. '이것' 건설에 36만㎥의 콘크리트가 사용됐고 지구 반 바퀴 길이인 2만5천㎞의 철근이 들어갔다. 공사에 투입된 인원은 850만명이었다고 한다. 현재 상업, 주거 및 오락 시설이 포함된 대규모 복합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삼성물산이 시공한 '이것'은?(9월 5일 18면) 2. '이것'은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놓이면서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천문현상을 말한다. 지구의 대기를 통과한 태양 빛은 한 번 꺾여 달에 도달하는데, 그 과정에서 푸른빛은 흩어지고, 붉은빛이 달에 도착해 달이 붉게 보이게 된다. 이 때문에 '블러드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 8일 오전 2시 30분부터 3시 53분까지 약 83분간 '이것'이 국내에서 관측됐다. 2022년 이후 3년 만에 관측된 '이것'은?(9월 9일 2면) 3. '이 도시'는 과거 신성로마제국의 주요 도시였고, 오스트리아 공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이 도시' 중심가의 성 슈테판 대성당은 로마네스크·고딕·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오스트리아 최고(最古) 성당이다. '이 도시'에 있는 호프부르크 왕궁은 13세기 말에 건축된 합스부르크 통치자들의 겨울궁전이었고, 지금은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집무실과 국제 컨벤션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쌓은 오케스트라로도 유명한 '이 도시'는?(9월 11일 18면) ◆8월 29일 자 시사상식 정답 1. 의성마늘소 2. 로코노미 3. 스타십
2025-09-12 06:30:00
평화발레오(대표이사 남정민)는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회장 배인호)와 함께 지난 10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결식 장년 및 노년층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행복한 밥상(무료급식)' 활동을 가졌다고 밝혔다. 봉사활동에는 평화발레오 남정민 대표이사와 임원 봉사단 15명,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수성구협의회(회장 박란순) 소속 봉사원 30여 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급식 후원금 전달, 급식 조리 및 배식,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및 장애인 식사 보조, 설거지 등의 봉사활동을 펼쳤다. 남정민 평화발레오 대표이사는 "기업은 기업 본연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듬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배인호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회장은 "후원에 감사드리며, 대구적십자사도 지역사회의 든든한 울타리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어가겠다"고 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는 매주 수요일 두류공원에서 이동급식차량을 통해 무료급식 활동을 이어오는 한편, 취약계층 생계 지원과 복지 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다.
2025-09-11 15:08:45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옥수수 박사' 김순권…"한평생 '공생' 위한 삶 살았죠"
지난 5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국제옥수수재단 시험포장(試驗圃場). 등이 굽은 한 노인이 창이 있는 모자에 손수건을 뒤집어쓰고 뙤약볕 아래 한 길 넘게 자란 옥수수 줄기 사이를 헤집고 있다. 올해 여든 살. 한평생 옥수수 연구에 매달려온 '옥수수 박사' 김순권이다. 김순권 박사는 옥수수 한 알이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일굴 수 있다고 믿는 세계적인 육종학자다. 1970년대 후반 개발도상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슈퍼 옥수수'를 개발해 한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 퍼뜨렸다. 1979년부터는 17년간 나이지리아에 있는 UN 산하 국제열대농업연구소(IITA)에 근무하며 아프리카 기후에 맞는 슈퍼 옥수수를 탄생시켰다. 1998년부터는 북한을 59차례 드나들며 굶주린 주민을 먹여 살릴 옥수수 생산 증대에 힘썼다. 그 결과 지구촌 기아 해결에 헌신한 공로로 노벨상 후보에 5회나 추천됐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한국을 빛낸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최근 그는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등에 맞는 종자 개발에 나서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얼마 전엔 16년의 연구 끝에 사료 효율성과 바이오에너지 생산성을 갖춘 하이브리드 옥수수를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만난 김 박사는 "식량 안보와 친환경 에너지 생산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획기적 성과"라며 "앞으로도 계속 옥수수 밭에서 땀 흘려 일할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농고를 졸업하고 경북대 농대를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농업 분야에 뜻이 있었나. ▶그건 아니다. 은행원을 최고의 직업이라고 여긴 아버지 영향으로 부산상고에 도전했지만, 입학시험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1년 동안 아버지 밑에서 농사를 배웠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선행학습이었다. 이듬해 울산농고에 들어갔는데 실습은 늘 일등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태풍이 고향 집을 덮쳤다. 아버지가 피해 복구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병원비를 대려고 논을 팔았고 가세가 기울었다. 대학 진학은 무리였다.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다. 농협 입사 시험을 쳤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인생의 두 번째 낙방이었다. 실의에 빠져 있는데, 경북대에 가면 장학금을 준다는 말을 듣게 됐다. 경북대 농대에 합격한 뒤로는 공부벌레처럼 살았다. -옥수수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처음엔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처럼 육종학자가 되려고 했다. 어느 날 경제학과 교수님이 부르셨다. 경북대에도 농업경제학과가 생길 예정이니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농업경제학을 공부하고 오면 교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후자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학원 시험을 준비했으나 낙방했다. 결국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에 들어갔다. 다들 선호하던 벼를 연구하는 부서에 자리가 없어 옥수수 연구 부서에 들어간 게 출발이었다. -하와이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농촌진흥청에 입사해 '제2의 우장춘'이 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배움의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유학이 가고 싶었지만, 가난한 공무원에겐 자비 유학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노력 끝에 서울대 문턱보다 높다는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WC)의 미국 유학 장학생 17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됐다. 1971년의 미국 유학은 본격적인 옥수수 육종학의 출발점이 됐다. 미국산 옥수수는 탐날 정도로 크고 질이 좋았다. 지속적인 품종 개량의 결과였다. 옥수수 연구가 한국보다 50년은 족히 앞서 있었다. 감탄과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옥수수를 잘만 개량하면 수확량을 올려 우리나라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남들보다 더 공부했다. 결국 6년쯤 걸리는 석·박사 학위를 3년 3개월 만에 손에 쥐었다. 박사 과정 동안 20차례 옥수수를 재배하며 쓴 논문들이 세계농업학회지 등에 7차례 실렸다. 단숨에 세계 옥수수 학계의 스타가 됐다. 미국 최대 종자기업인 '파이오니아'란 회사에서는 농촌진흥청 월급의 20배였던 월 3천달러를 제의해 왔다. 하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옥수수를 우리 땅에 하루라도 빨리 심고 싶었다. -그렇게 귀국해 개발한 종자가 '수원 19호' 등인가. ▶그렇다. 귀국한 뒤에도 하와이를 오가며 1977년 수원 19호를 개발했다. 강원 홍천·평창·영월의 시험 재배장에 종자가 뿌려졌고, 얼마 후 미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씨알 굵은 옥수수가 주렁주렁 달렸다.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암초가 등장했다. "미국과 국제기구가 자네가 개발한 '수원' 시리즈는 한국 땅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네. 수고했지만 종자는 창고에 쌓아 두고 연구나 좀 더 해 보게." 농진청 선배의 말이었다. 옥수수 종자를 팔기 위한 미국의 로비가 뻔했다. 저는 "이 종자가 실패하면 10년 동안 감옥에 가 있겠다"는 말로 설득했다. 그해 강원도엔 바람이 심해 곳곳에서 흉작이 났는데 이게 좋은 기회가 됐다. 수원 19호는 전혀 넘어지지 않았고 전체 포기의 95%에 굵은 옥수수가 달렸다. 수원 품종을 심은 농민들은 수입이 전년보다 3배 이상 올랐다. "미국이 55년에 걸쳐 만든 옥수수 교잡종을 5년 만에 이뤄냈다"며 찬사가 이어졌다. 제 이름 앞에 '옥수수 박사'란 수식어가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1979년부터 17년 동안 국제열대농업연구소에 근무했다. ▶한국형 교잡형 옥수수를 개발한 저에게 5억명 아프리카 인구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게 그들의 요청이었다. 2년 만에 옥수수 암이라고 부르는 위축 바이러스에 강한 신품종을 개발하자 나이지리아 정부가 후원자로 나섰다. 5년간 250만 달러를 연구비로 줄 테니 나이지리아에 맞는 옥수수를 개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 결과 연간 100t의 옥수수를 생산했던 나이지리아는 제가 떠날 때 생산량이 700만t으로 늘며 자급을 이뤘다. 이 일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명예추장에 두 번이나 추대됐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제가 육종한 '오바슈퍼 1호' 이삭을 50코보짜리 동전에 새겨 넣었다. -북한을 지원한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나이지리아 근무 때인 1994년 북한에 엄청난 수해가 닥쳤다. 어릴 적 배고픔을 겪어봤기에 마음의 동요가 심했다. 북에 언니·오빠를 둔 아내는 더욱 가슴 아파했다. 1995년 귀국 후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며 북한 식량 문제를 도울 방법을 고민했다. 경북대 농대 소유의 옥수수 농장에서 북한 토양에 적합한 슈퍼 옥수수 종자를 시험 재배하며 때를 기다렸다. 북한 당국은 공식 초청장을 5차례나 보내 나에게 방북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1998년 1월 방북 승인이 떨어졌다. 수많은 교배종을 만들어 북한 내 25개 연구농장에서 5년 동안 시험했다. 그 가운데 12종을 최종 선발해 협동농장에서 재배하도록 했다. 그 결과 평균 30% 이상 식량 증산이 이뤄졌다. 북한을 59차례 오가고 370일 동안 머물며 얻은 결실이었다. -연구 활동 전반에 인류애가 깊이 녹아있는 것 같다. ▶제 삶의 철학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공생(共生)'으로 표현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에서의 일화다. '악마의 풀'이라고 불리는 '스트라이가(Striga)'라는 기생 잡초가 있는데 옥수수 밭을 폐허로 만들 만큼 위력이 강했다. 당시 선진국 학자들은 하나같이 100% 제거를 목표로 했던 반면, 저는 이 잡초에 강한 품종을 육종해 옥수수와 기생식물의 공생을 모색했다. 완전히 멸종시키려 하면 멸종 위기에 몰린 병원균이나 기생식물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더 강하게 공격해 오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하고 깨우친 방법이었다. 그렇게 개발한 종자가 오바슈퍼다. 각기 다른 종자로 생산량 증대 등 목적에 부합하는 교잡종을 만드는 제 연구 활동도, 북한에 옥수수 연구성과를 전수하고 종자 개량 사업을 펼친 것도 모두 공생을 위한 것이다. -여든이 된 지금까지도 연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옥수수가 종자 1개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저의 연구 활동이 세상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특히 북한의 기아 해결과 남북 화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처음 옥수수 종자를 들고 북한을 방문했을 때 10년 내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옥수수가 다시 남북 화해의 밑거름이 돼 남북통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2025-09-10 14:48:30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회장 배인호)는 지난 6일과 7일 이틀 간 용인 에버랜드와 캐리비안 베이에서 '청소년적십자(RCY) 안전수영 추계캠프'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번 활동은 RCY 단원에게 교외 체험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물놀이 사고에 대비한 안전교육 및 안전의식 제고를 위해 마련됐다. 적십자 수상안전강사를 비롯해 대구지역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단원과 지도교사 등 2백여 명이 참가했다. RCY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전 세계 191개국이 참여하는 국제 청소년 단체로, 대구 지역에서는 1만명 정도가 활동한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는 ▷우정의 선물상자 제작 ▷호국 보훈 봉사활동 ▷여름철 폭우대비 플로깅 ▷농촌 일손 돕기 등 청소년 인성 함양을 위한 다양한 RC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25-09-09 14:19:40
1.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의 고향은 대구다. 창업주인 이병철은 1938년 대구 인교동에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창립했다. 1954년 삼성상회로 기반을 잡은 이병철은 침산동 일대에 '이 회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는 광복 이후 설립된 단일 공장으로는 한국 최대 공장이었다. 삼성그룹의 뼈대이자 많은 관계사의 모태가 된 '이 회사' 터에는 현재 대구삼성창조캠퍼스가 조성돼 있다. '이 회사'는?(매일신문 9월 1일 24면) 2. '이것'은 법정화폐와 가치가 1대1로 고정된 디지털 자산이다. 가격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달리 결제나 송금에 적합하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가상자산을 '미국의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선언하면서 '이것'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 증권사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이것' 발행 규모는 2천700억 달러에 달하며 이 가운데 98%가 달러 기반이다. 전문가들은 "달러 '이것'이 국내 시장에서 확장되는 동안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으면 통화주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원화 '이것' 법제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경고한다. '이것'은?(9월 2일 1면) 3. '이것'은 대구시가 발행하는 지역사랑 상품권이다. 지난 1일 대구시가 2차로 '이것'을 발행한 결과 발행 첫날 하루에만 20만명이 참여해 900억원이 충전됐다. 이는 2차 발행 총액 3천180억원의 약 28%가 하루 만에 소진된 규모다. 이번 2차 발행분은 할인율이 기존 7%에서 13%로 상향 조정된 점이 특징이다. 개인별 월 구매 한도는 1차와 같은 50만원이고, iM뱅크 영업점 또는 모바일 앱 'iM샵'에서 신청할 수 있다. 이번 2차분 발행 규모는 3천180억원이다. 대구시는 정해진 기간 없이 해당 금액이 소진될 때까지 할인 판매를 이어갈 예정인 이것은?(9월 3일 14면) ◆8월 22일 자 시사상식 정답 1. 오타니 쇼헤이 2. 캐즘 3. 미인도
2025-09-05 06:30:00
국제로타리3700지구 대구금호로타리클럽(회장 박사홍)은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회장 배인호)와 함께 지난 3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결식 장년 및 노년층 1천200여명을 대상으로 '행복한 밥상(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펼쳤다고 밝혔다. 이날 봉사활동엔 국제로타리3700지구 대구금호로타리클럽 박사홍 회장과 국제로타리3700지구 박명수 전 총재, 정준수 봉사프로젝트위원장 등 회원 30명과 대한적십자사봉사회 북구협의회(회장 유기량) 봉사원 5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급식 후원금 전달식을 가진 뒤 급식 조리와 배식, 식사 보조, 설거지 등의 봉사활동을 펼쳤다. 박사홍 회장은 "무더위가 지나가는 가을의 초입, 어르신들께 따뜻한 식사를 지원하게 돼 뜻 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다양한 나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2025-09-04 14:08:58
[김도훈 기자의 아웃도어 라이프] 길 위에서 '나'를 돌아보다…'1박2일' 칠곡 한티가는길
누구 앞에나 길은 놓여있다. 미래를 향한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어느 길을 걸어갈 건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이런 대답 없는 물음으로 마음이 공허할 때, 문득 떠오르는 길 하나가 있었다. 경북 칠곡군의 '한티 가는 길'이다. 조선후기 전국에서 모여든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수없이 걸었던 길이다. 왜관읍 가실성당에서 동명면 한티순교성지까지 45.6㎞에 걸쳐 이어진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렇듯, 이 길도 믿는 자에게만 열려 있는 건 아니다. 한적한 숲길은 조용히 걷고 싶은 트레커들에게도 곁을 내준다. 신앙인에게는 경건과 엄숙으로, 트레커들에겐 사색과 음유(吟遊)로 다가선다. 다섯 구간으로 나눠진 길을 전부 걷는다면 이틀은 족히 걸린다. 그럼에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수차례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 길의 매력을 느껴보기 위해 지난달 30일과 31일 1박 2일 동안 '한티 가는 길'을 걸었다. ◆발끝마다 묻어나는 순교자의 삶 팔공산 북서쪽 해발 600m 고지엔 '한티 가는 길' 종착지인 한티가 있다. 조선에선 1791년부터 100여 년간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이어졌다. 이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이들은 전국의 여러 산중 깊은 곳에 터를 잡았는데 한티는 그 중 한 곳이다. 이곳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을해박해(1815년) 이후 이곳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톨릭 대구대교구에 따르면 1837년 서울에서 내려와 신나무골(1구간 종착지)에서 살던 김현상이라는 천주교 신자 가족이 기해박해(1839년)로 한티로 와서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여 형성된 교우촌은 1850년대 말에는 더욱 번성했다. 조선 4대 교구장 베르뇌 주교가 1862년 파리 외방전교회 알브랑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교우들은 대구와 멀지 않고 한티재 바로 밑이라 달아나기 좋은 한티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엔 점토와 나무, 계곡의 물이 전부입니다. 이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옹기와 사기, 숯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다함께 가마를 만들고 옹기와 사기, 숯을 구워냈고 밤이면 몰래 산을 내려와 주변 장터에 이들을 내다 팔며 살았다. 병인박해(1866년)가 한창 이어지던 1868년 봄, 이곳에도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교인들을 처형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살아남은 교인들은 온 산에 흩어져 순교한 교인들의 시신을 찾아 수습했다. 이때 순교한 신자는 40여명이었다고 한다. 길의 종착지인 한티순교성지 인근, 십자가 묘비마다 이름대신 1번부터 37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무덤이 그것이다. 꼭 100년 뒤인 1968년 순교자 성월(9월)에 맞춰 대구대교구 주관으로 신나무골부터 한티를 잇는 33㎞ 구간에서 도보 순례가 시작됐다. 1988년엔 교우촌을 발견했고 1991년엔 한티순교성지에 피정의집이 개관하면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 발걸음이 밑거름이 돼 2016년 칠곡군은 개청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한티 가는 길'을 개통하게 된다. ◆고관절 통증에 땀은 비오듯 김영종(대구문화예술진흥원 예술진흥팀 과장) 씨에게 '한티 가는 길' 안내를 부탁했다. 그는 직장 내 백패킹 동아리 회장으로, 이 길을 다섯 차례 이상 걸었고 지난 3월엔 전 구간을 1박2일로 종주한 경험자다. 30일 오전 5시 40분쯤 5구간 종착지인 한티순교성지에 차를 세워두고 김영종 씨와 만나기로 한 1구간 출발지인 왜관 가실성당으로 향했다. 가실성당은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1895년 기와집으로 지어졌다가 신자가 늘면서 명동성당을 설계한 박도행 신부의 설계로 1923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속았수다' 속 웨딩 장면 촬영지로 주목받은 곳이다. 성당을 잠시 둘러본 뒤 7시 30분쯤 길을 나섰다. 성당 오른편으로 '한티 가는 길' 입구가 있다. 1구간은 가실성당에서 전망테크, 금무봉 나무고사리 산지, 도암지, 신나무골 성지까지 10.5㎞ 거리다. 30분쯤 마을길을 걷고 나면 산길로 접어든다. 가실성당에서 3.9㎞ 떨어진 전망데크도 못 왔는데 벌써부터 다리가 무겁다. 오전 9시쯤 나무고사리 산지를 지난 뒤 길을 놓쳤다. 왔던 길을 오가며 원래 길을 찾아 헤메다 포기하고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활용해 도암지로 향한다. 그 사이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고 다리에 피로는 더욱 쌓여갔다. 오전 10시 30분쯤 도암지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1시간 쯤 지체됐다. 이곳 도암마을은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와서 도자기를 굽고 살았다고 해서 도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도암지 입구 휴게쉼터엔 무인으로 운영되는 냉장고가 있다. 이곳에서 물이나 빙과류, 맥주 등을 구입할 수 있다. 30분 정도 땀을 식힌 뒤 길을 나서 오전 11시 30분쯤 신나무골 성지에 도착했다. 신나무골은 을해박해 무렵부터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옥으로 지어진 성당이 있고 순례자를 위한 카페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시원한 음료와 함께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1시쯤 다시 길을 나섰다. 2구간은 신나무골 성지에서 사기점 공소까지 9.5㎞ 구간이다. 신나무골을 벗어나면 임도길이 길게 이어진다. 완만한 경사인데도 35도까지 치솟은 기온 때문인지 힘겹다. 평소 좋지 않은 고관절 통증에 오른쪽 새끼발까락에 물집까지 잡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길까지 잃었다. 출발지에서 3.5㎞ 떨어진 전망쉼터에서 댓골지 방향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은 탓이다. 이 사실을 안 건 이미 2㎞ 이상 지난 뒤였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돌아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산을 내려간 뒤 다음 포인트인 양떼목장 시작지점을 찾아가기로 했다. 결국 4시간 거리를 6시간 30분 만인 7시 30분쯤에 2구간 종료지점인 사기점 공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1, 2구간 합산 20㎞거리를 7㎞나 돌아서 도착한 것이다. 원래 1박을 하려던 장소는 이곳에서 3㎞정도 떨어진 3구간 금낙정이었다. 하지만 고관절 통증이 심해진 탓에 사기점 공소에 마련된 여행자 쉼터에서 저녁을 먹고 마당에 텐트를 친 뒤 일과를 마무리했다. ◆인생살이와 닮은 길 밤새 통증으로 뒤척였다. 발포 매트리스 위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눕지도 못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목표했던 완주는 아니더라도 3구간까지는 마칠 수 있길 다짐했다. 1박2일 동안 전 구간 완주를 계획했던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코스의 절반은 넘기고 싶었다. 게다가 각 구간에 대한 우열을 가릴 수도 없고 크게 의미 있는 일도 아니지만, 굳이 최고를 꼽자면 상당수 사람들이 3구간을 언급하는 이유도 궁금했다. 날이 밝았다. 오전 6시 30분쯤 일어나 아침식사를 한 뒤 8시쯤 길을 나섰다. 동명성당까지 9㎞ 서너 시간 거리를 천천히 다섯 시간 정도에 마치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인간의 욕심을 곱씹어보게 하는 쌀바위와 금낙정, 여부재를 지나 오후 1시쯤 동명면에 도착했다. 면사무소 인근 식당에서 물회로 점심식사를 하고 동명성당 내 순례자의집에서 이틀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가실성당을 출발한지 서른 시간 만이었다. 한티순교성지에 세워둔 차를 찾아 돌아오는 길. '한티 가는 길'을 생각했다. 이 길에서 뜻하지 않게 두 차례나 길을 놓쳤다. 지난해 겨울, 하루 운행거리가 비슷한 한라산 성판악코스(왕복 19㎞)를 다녀올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몸의 피로는 심각할 정도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고관절 통증도 경험했다. 이로 인해 계획했던 첫날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고, 완주라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달리하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 여정처럼 뜻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길은 묻는다. '그대 어디고 가는가.' 한티 가는 길의 부제다.
2025-09-03 16:24:08
최애화 오벨리스크 바이스타 대표이사 '아너 소사이어티' 대구 257호 회원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신홍식)는 2일, ㈜오벨리스크바이스타 최애화 대표이사가 1억원을 기부 약정하며 대구 257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이날 수성구에 위치한 ㈜오벨리스크바이스타에서 열린 가입식에는 최애화 대표, 신홍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성점화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대표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최 대표가 이끄는 ㈜오벨리스크바이스타는 브랜드 컨설팅, IMC마케팅, 영상콘텐츠 및 홈페이지 제작 등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 창의적인 기획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캠페인과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성장해왔다. 최 대표는 또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활동에도 힘쓰고 있으며, 무진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최근에는 김홍신 문학관에 대형 징을 기증하는 등 교육 및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다양한 나눔을 이어왔다. 최애화 대표는 "참된 나눔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내일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믿는다"며 "함께하는 발걸음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홍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교육과 나눔에도 앞장서 주신 최애화 대표께 감사드린다. 이번 기부가 지역사회에 따뜻한 울림을 주고, 나눔의 물결을 넓혀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인사를 전했다. 한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제창한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으로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5년간 매년 2천만원씩 기탁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2025-09-03 15:12:44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카메라 내려놓고 전시 기획자로 20년…석재현 사진가
아프리카 케냐의 이름 모를 황무지. 중년의 한 원주민 남성이 아내로 보이는 여성의 무릎을 베고 슬픈 표정을 한 채 힘없이 누워 있다. 바로 뒤엔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정면을 응시하고 서있다. 첫인상은 몽환적이고 아름답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뭔가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기후 변화로 보금자리를 잃은 난민과 서식지를 잃은 동물의 모습을 함께 담은 사진가 닉 브랜트의 작품이다. 대구 남구 이천동 사진전문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선 지난 2일부터 닉 브랜트의 사진전 '생존의 나날(The Day May Break)'을 열고 있다. 세계 각지를 배경으로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로 인해 삶의 기반을 위협받는 인간과 동물의 초상을 담은 작가의 최근작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다음 달 25일까지 이어진다.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선 4일부터 11월 2일까지 초현실적 사진으로 전 세계 시각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 로저 발렌의 사진전이 열린다. 앞서 군위 사유원 내 갤러리 곡신에선 지난달 19일부터 12월 21일까지 일정으로 고(故) 김중만 사진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선 '더 글로리어스 월드(The GLORIOUS World)'란 기후환경 사진전이 열렸다. 해외 유명 사진가 4인이 참여한 이 전시는 다음 달부터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에서 이어진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이 네 개의 전시는 모두 한 사람이 기획했다. 주인공은 석재현(56)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다. 석 대표는 오래전부터 인간과 사회를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던 다큐멘터리 사진가였다. 2003년엔 탈북자 취재를 하다 수감 생활까지 했다. 대학 교수직마저 내려놓고 떠난 중국 취재 길에서 탈북자들을 돕다가 공안에 체포돼 1년여의 옥살이를 한 것이다. 전시 기획자로서 출발은 대구사진비엔날레였다. 2006년 제1회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 기획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국내외에서 수십여 건의 전시를 기획했다. 지난달 29일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만난 석재현 대표는 "기획자로서의 일이 점점 늘어나다보니 최근엔 사진가로서의 작업에 거의 손을 대지 못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전시기획에 매진하다보니 개인작업과의 비중이 9대 1도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사진가에서 사진 전시 기획자로 삶이 바뀌었다. 계기가 있었나. ▶2004년 봄 강제추방 형식으로 석방돼 귀국한 뒤 그간의 작업을 돌아보며 마음을 좀 추스르고 있을 때였다. 그해 가을쯤 우연한 기회에 김범일 대구시 부시장(훗날 대구시장)과 식사를 함께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김 부시장은 문화 분야에서 대구시가 무엇을 내세워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놨고, 국제사진축제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김 부시장의 요청으로 6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기획안을 만들게 됐고, 결국 2006년 대구국제사진비엔날레가 열리게 됐다. 당시 행사에서 국내외 3인으로 꾸려진 공동기획자를 맡게 되면서 전시 기획 업무를 처음 접하게 됐다. -이후 국내외에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해 선보였다. 직접 운영하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시를 제외하더라도 직접 기획한 전시가 수십여 건에 이른다. 대표적인 전시로는 어떤 게 있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누군가가 시켜서 한 일은 아니다. 단지 누군가는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동안 국내에선 기존엔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시각의 해외 사진가 작품을 선보이고, 해외에선 한국의 사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표적인 해외 전시로는 2014년 튀르키예에서 선보인 'ON KOREA', 2016~2018년 유럽 순회전시로 선보인 'IMAGING KOREA' 등이 있다. 그밖에도 중국 운남성 '대리사진축제'(2011~2017), 튀르키예 'Foto Istanbul'(2015~2017), '싱가포르사진축제'(2016), 아르헨티나 '빛의 축제'(2016) 등에서 한국사진 전시를 기획했다. 개인적으로는 휴스턴 사진비엔날레를 비롯해 해외 다수의 국제사진행사에 강연과 포트폴리오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나.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전쟁 속의 여성(Women in War)' 전이 의미가 깊다. 전쟁을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진전이다. 이를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평화의 의미를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전쟁터를 누비던 여성 종군기자의 고발, 현재진행형인 종군위안부 문제 등을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키워드 선택과 작가 섭외 등 여러 분야에서 어려움이 많았기에 기억에 남는다. 사진전이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일으켜야 하는데, 이번 기획전의 주제는 상당히 무겁고, 참여 작가들의 네임 밸류도 높아서 유치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다만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추진했다. -최근 전시에선 기후환경 등 메시지가 강한 기획이 자주 보인다. ▶학부 시절부터 제 카메라는 늘 사람을 향해 있었고, 기획자인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사진가일 때는 단편적으로 제가 마주하는 이들의 삶에 대해 집중했다면, 지금은 작가 개개인의 관심과 애정을 담은 부분들을 모으는 작업을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모으는 축이 사람인 것이고, 사람을 둘러싼 기후환경과 같은 사회적 환경인 것이다. 결국 기획에서도 그런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다. -사진 전시 기획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사진이 갖는 매체적 힘은 엄청나다. 저의 삶 또한 사진을 통해 많이 변해왔다. 그렇다보니 근본적으로는 사진 매체가 더욱더 건강하게 성장하고 그 역할들을 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진이 우리 인간에게 끼치는 선한 영향력을 알리고, 나아가 사진이 존중받고 그 행위를 하는 창작자인 사진가들이 존중받도록 중간 역할을 하는 게 기획자인 것 같다. 대구사진비엔날레를 제안한 것도, 2018년 사진전문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를 연 것도, 국내외를 오가며 전시를 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국내에도 사진 전문기관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한다. 대구에 만들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단지 사진전문 전시장을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지역 작가와 기관이 오랜 세월 축적한 사진 분야 성과와 비엔날레의 경험이 일회성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사진을 연구·교육하고 작가를 지원할 수 있는 지속적인 플랫폼을 구축하자는 의미다. -2017년 갤러리토마 전시가 마지막 개인전이었다. 작업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기획자로서 삶을 살다보니 해외 출장도 잦고 전시기획과 리뷰, 강연 등으로 늘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왔다. 시간이 흐르고 일의 규모가 불어나 책임감이 커지면서, 최근 수 년 동안은 사진가로서의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는 늘 마음 한 구석 허전함으로 남았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해외 출장을 가면 늘 카메라를 챙겼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휴대폰으로 자료사진 정도만 찍어오면 되지 하는 마음에 카메라를 놓고 가게 되더라. 올해는 유난히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7월 3주간의 유럽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휴대하기 편한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사진가와 기획자 간 내적 갈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25-09-03 13:31:23
㈜으뜸F&B(대표이사 이영섭)는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의 나눔 확산 프로그램인 '씀씀이가 바른 기업' 캠페인에 동참한다고 1일 밝혔다. 으뜸F&B는 대구 달서구에 있는 외식 전문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이영섭 대표이사는 "기업은 이익만 도모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부를 통해 매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씀씀이가 바른 기업' 캠페인은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와 함께 대구지역 위기가정을 돕는 기업 참여형 정기후원 프로그램이다. 후원금은 위기가정을 위한 생계, 주거, 의료, 교육 지원 활동에 사용된다. 참여를 원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053-550-7141)로 문의하면 된다.
2025-09-01 14:38:07
1. 경상북도는 전국 17곳 시도 가운데 한우를 가장 많이 사육하는 '한우성지'로 불린다. 전국 한우의 22%를 차지할 정도로 한우두수와 사육농가수가 많다. 안동과 상주, 경주, 영천이 주산지라면 의성도 이들 지역에 필적할만한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약 5만마리 정도가 의성에서 자라고 있다. 지역별 한우 브랜드도 다양하다. 경주의 '천년한우' 상주의 '상감한우', 문경의 '약돌한우', 영천의 '별빛한우' 등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의성의 한우 브랜드로, 마늘 주산지인 의성에서 재배한 마늘을 먹인 한우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섯 글자인 '이것'은?(8월 22일 20면) 2. '이것'은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상품에 대한 소비활동을 말한다. 한국맥도날드의 '익산 고구마 모차렐라 버거·머핀'이 대표적 사례다. 익산시와 협업한 이 제품은 출시 1달 만에 판매량 240만개를 기록했다고 한다. 스타벅스코리아도 지난 2022년부터 문경 오미자와 제주 한라봉을 활용한 '한라문경 스위티' 등 '상생음료'를 출시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음료를 개발한 뒤 소규모 카페에 레시피와 재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우리 농산물을 음료 개발에 반영해 지역과 상생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지역을 뜻하는 로컬(local)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인 '이것'은?(8월 25일 17면) 3. '이 우주선'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화성 탐사를 목표로 개발 중인 대형 우주선이다. 스페이스X는 최근 '이 우주선'의 10차 무인 지구궤도 시험 비행을 무사히 마쳤다. '이 우주선'은 미 중부 시간으로 26일 오후 6시 30분에 텍사스주 보카치카 해변의 스타베이스 기지에서 지구 저궤도를 향해 발사됐다. 이후 '팰컨헤비'로 불리는 1단 로켓 부스터는 약 3분 만에 2단 우주선에서 분리된 뒤 예정대로 멕시코만에 부드럽게 착수(着水)했다. '이 우주선'은?(8월 28일 7면) ◆8월 15일 자 시사상식 정답 1. 오승환 2. 국립신암선열공원 3. 대구간송미술관
2025-08-28 12:01:05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회장 배인호)는 지난 26일 서부봉사관에서 '사랑의 반찬 나눔' 활동을 가졌다고 밝혔다. 반찬 나눔은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의 기초생활 지원을 위한 사업이다. 이날 행사엔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수성구지구협의회(회장 박란순) 소속 봉사원 9명이 참여해 돼지불고기와 나박물김치 등 반찬 2종을 조리했다. 이날 만들어진 반찬은 적십자 수성구 황금2동봉사회에가 후원한 옥수수 모닝빵과 함께 수성구지역 취약계층 60가구에 전달됐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는 매월 반찬, 국수, 빵 나눔 활동을 통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2025-08-27 15:49:48
장영화 명성솔라에너지 대표 '아너 소사이어티' 이름 올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신홍식)는 26일 장영화 ㈜명성솔라에너지 대표가 1억원을 기부 약정하며 대구 266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이다. 모금회는 이날 장영화 ㈜명성솔라에너지 대표의 차남 장성빈 씨와 신홍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성점화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입식을 열고 장영화 대표의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을 축하했다. ㈜명성솔라에너지는 태양광 발전 설비 개발과 시공,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친환경 에너지 기업이다. 깨끗한 에너지 확산과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장영화 대표는 평소에도 고향 지역 어르신 경로잔치, 대구 서구 홀몸노인 농산물 지원, 무료급식 지원, 빵 만들기 봉사 등 꾸준히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왔다. 특히 지난 6월엔 고향 안동지역에 산불 피해 성금 1천만원을 기탁하며 피해 주민을 위로하고 복구 지원에 힘을 보탰다. 장 대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다 큰 힘이 되고, 더욱 많은 이들이 나눔에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홍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은 지역사회의 희망을 밝히는 소중한 발걸음"이라며 "따뜻한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노력하는 장영화 대표님의 뜻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제창한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이다.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5년간 매년 2천만원씩 기탁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2025-08-27 15:49:23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10년째 대구 북성로 기술자와 공간 기록, 문찬미 사진가
대구 북성로. 대구역네거리 대우빌딩에서 달성공원까지 1.5㎞정도 이어진 길이다. 100여 년 전 일제가 대구읍성 북쪽 성벽을 허물고 이 길을 냈다. 이후 백화점을 비롯한 각종 상점과 일본식 가옥이 들어서면서 대구 최대의 번화가로 자리 잡았다. 광복 후에도 명성은 그대로 이어졌다. 일본인이 빠진 곳엔 기계와 금속, 철물을 취급하는 상점이 들어섰다. 1950~60년대 미군부대에서 공구와 군수물자 등이 몰리면서 1980년대엔 길 양쪽으로 1천 곳이 넘는 점포가 들어설 정도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공구거리로 변신했다. 이곳에선 수많은 장인들이 다양한 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해 점포가 외곽으로 속속 빠져나가 상권이 위축됐다. 수년 전부터는 인근에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옛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문찬미(38) 사진가는 이처럼 변화하는 북성로 공구골목의 모습을 10년째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다. 학부 때는 교환학생으로 러시아를 다녀올 정도로 문학에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2016년부터 북성로를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엔 그 작업의 결과물로 '기술되지 않은 시간'이라는 첫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도 그의 북성로 작업은 이어지고 있다. 26일 대구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에서 만난 문찬미 사진가는 "사진가라는 표현은 아직 낯설다"며 "사진가로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북성로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듬해인 2016년 북성로에 있는 사단법인 시간과공간연구소란 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 연구소의 업무 영역은 다양하지만, 대중적으로는 '대구 근대골목 투어'를 기획하고 북성로 도시재생사업을 이끌었던 단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밖에도 연구소에선 대구의 골목, 한옥 등이 어떻게 분포돼 있고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등을 전수조사하면서 인류학 관점으로 연구 활동을 했다. 당시 저는 북성로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올해 초까지 훌라(HOOLA)라는 단체에 소속돼 있었다. 어떤 곳인가. ▶사회적인 업사이클을 추구하는 인문예술팀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과공간연구소에 팀장으로 근무했던 안진나 훌라 대표가 연구소 활동을 이어가며 만난 또래 청년들과 함께 시작했다. 처음엔 폐자원을 활용해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업사이클 밴드로 출발했다. 훌라라는 이름도 구성원들이 즐기던 카드게임에서 따왔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공연을 하고 있다. 이후 활동을 이어가면서 업사이클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됐다. 도시의 흥망성쇠에도 사이클이 있다고 보자면 기존 도시가 쇠락하더라도 무작정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재해석해 오히려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는 사회적 업사이클 개념으로 단체의 정체성이 확장됐고, 2017년 말쯤 시간과공간연구소로부터 독립했다. 지금은 북성로를 중심으로 한 지역 연구와 인문·예술 활동을 기반으로, 전국 여러 도시의 아카이빙 사업 등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다. 중구청이 북성로 일원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 일환으로 만든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도 운영하고 있다. -그간 해왔던 일이 사진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인다. 사진 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처음 북성로에 발을 들인 2016년만 해도 주변에 아파트가 없을 때였다. 적산가옥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고, 여기에다 한옥과 양옥, 옛 골목이 공존했다. 대구 도심 바로 인근에서 만난 이런 두터운 시간의 층위(層位)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다녔다. 그리고 계속 변화하는 이곳을 찍어서 자료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연구소 측에 제안을 했고, 이후 기존 업무와 함께 사진 기록 업무도 맡게 됐다. 훌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북성로 철공소' 등 각종 프로젝트 결과물로 발간한 여러 책자에 직접 찍은 사진이 실릴 수 있었다. -이전에 사진과의 접점이 있었나.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대학 때는 학교를 그만두고 사진학과를 갈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결국엔 문학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그렇게 하진 못했다. 하지만 대학 때 경북대 인근 한 마을기업을 통해 사진 기획 일을 하기도 했고,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갤러리 카페에서 소소한 전시회를 갖는 등 사진과 관련한 경험을 꾸준히 이어가고자 했다. 대학원 졸업 직후에도 잠시였지만 현업 사진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조수처럼 따라다니며 실무를 경험했다. 2015년 대구문화재단(지금의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의 신진기획자 양성과정에 교육생으로 참여한 것도 사진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사진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해낼 수 있는지를 경험하면서 고민을 조금씩 풀어나갔던 것 같다. -지난해엔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선별해 북성로 기술자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동안 작업을 하면서 북성로란 공간을 지저분하거나 위험하기에 도시 한복판에 있어선 안 될 것처럼 보는 시선들이 제 머릿속에 누적돼왔다. 게다가 대중들은 북성로 기술자들에 대해 막연하게 거친 분일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수년간 만나본 많은 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옆집 아저씨나 아버지, 삼촌 같은 다정한 분이었다. 기술자의 고유한 공간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사소하고 사적인 장면을 통해 이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오랜 시간 북성로를 이뤄나간 이들이 누구이고 어떤 곳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전하고 싶었다. -훌라를 나와 독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동안 훌라가 진행한 거의 모든 활동의 사진을 담당해왔다. 그랬기에 제가 좋아하는 사진 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반면, 훌라 일을 하다보면 개인적으로 하고자 하는 작업을 미뤄두거나 놓치게 될 때도 있었다. 그랬기에 사진가로서 더 사진에 집중하고 싶었다. 지난해 개인전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앞서 선배들이 "개인전을 한 번 해보면 보이는 게 달라질 거다"란 얘기를 자주 했었는데,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됐다. 부족한 게 뭔지 더 뼈저리게 깨달았고, 무엇을 더 좋아하고 무엇을 더 잘하고 싶은지가 명확해졌다. -지금은 연구단체 코뮤니타스의 상주 퇴강리 마을을 기록하는 작업에 객원 사진담당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음 달엔 경일대 대학원 사진학과 입학을 앞두고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 건가. ▶명확하게 어떤 작업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돌이켜보면 스쳐 지나가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들을 저만의 시선으로 재조명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북성로 기술자들에 대한 작업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제가 지켜본 그들은 다들 대단하고 굉장한 분이었으나, 3D업종으로 치부되며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로 보일 때가 많았다. 저는 지금껏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공부를 해왔던 사람이다. 결국 앞으로도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나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5-08-27 14:46:47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는 대구 달서구에 있는 주식회사 조이널(대표 신시아)이 지역사회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ESG 실천기업 캠페인에 참여한다고 25일 밝혔다. ESG 실천기업은 대한적십자사가 환경,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지역 기업에 부여하는 사회공헌 인증 프로그램이다. ESG 실천기업을 통한 후원금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정과 취약계층을 돕는데 사용된다. 인증패 전달식에서 신시아 ㈜조이널 대표는 "캠페인 참여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ESG 경영을 내재화하는데 앞장서겠다"며 "조이널의 사업모델인 구독경제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2025-08-25 14: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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