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적십자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 유선주 신임 위원장 선임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회장 배인호)는 대구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 2월 월례회에서 2026년 제49대 위원회를 이끌어갈 위원장으로 유선주 신임 위원장을 선출했다고 19일 밝혔다. 이와 함께 2026년 임원단도 새롭게 구성됐다. 유선주 신임 위원장을 비롯해 강명수 부위원장, 박신연 회계, 도일경 서기, 장영애 감사, 김미원 감사가 선출됐다. 이들은 앞으로 1년간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를 이끌 예정이다. 유 신임 위원장은 "병오년, 말의 힘찬 기운처럼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도 한층 더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며 "현장에서 활동하는 적십자 봉사원들이 안정적으로 봉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대구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는 적십자 봉사원들의 활동을 확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1961년 대구시 지도층 여성이 결성한 조직이다. 매월 적십자 인도주의 사업에 대한 자문과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그밖에도 ▷무료급식 ▷봉사원 교육 및 지역사회 봉사활동 지원 ▷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 개최 등 다양한 인도주의 활동으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2026-02-19 13:17:09
[김도훈 기자의 아웃도어 라이프] 겨울 산악레포츠의 꽃 '빙벽등반'
국립속초등산학교를 출발한지 50여 분. 강원도 양구 용소빙벽장에 도착했다. 눈앞엔 푸른빛을 띤 거대한 얼음벽이 버티고 서있다. 잠시 얼음벽을 멍하니 바라봤다. 푸른 얼음벽 위에서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빙벽화에 크램폰(등반용 아이젠)을 장착하고 안전벨트를 착용하면서 호흡은 거칠어졌고 마음은 조금 떨려오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아니라, 꼭 20년 만에 다시 빙벽등반을 하게 된데 대한 설렘이었다. ◆잠들었던 빙벽등반 욕구 꿈틀 2006년 봄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 이후, 좋아하던 등반을 포기하며 살았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였다. 등반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2년 전쯤 산을 다시 다녀보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씩 산행의 난이도를 높여갔다. 15㎏쯤 되는 배낭을 메고 이틀간 40㎞ 정도를 걸어보기도 했다. 하산 때면 가끔씩 수술했던 부위가 불안정해 통증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다닐 만했다. 동네 헬스장에서 중량운동도 시작했다. 새벽 수영도 다녔다. 조금 더 안정적인 산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자신감이 붙었다. 지난해 가을엔 등반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함께 로프를 묶고 등반할 사람(자일 파트너)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 함께 등반을 하던 친한 선후배 대다수는 산을 떠났다. 이따금씩 등반을 이어왔던 유일한 선배마저도 사는 곳이 서울과 대구로 달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가을 설악산 장군봉 등반을 하겠다던 목표는 그렇게 사라졌다. 겨울로 접어들자 SNS엔 빙벽등반 콘텐츠가 속속 올라왔다. 잠들어있던 빙벽등반 욕구가 꿈틀댔다. 수차례 히말라야 원정등반을 다녀오고 외설악산악구조대 대장을 지낸 속초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 또한 개인적인 이유로 이젠 등반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1월 중순을 지나고 있었다. 곧 봄이 찾아올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별로 가깝지 않은 이들과 로프를 묶고 등반하고 싶진 않았다. 그때 마침 SNS를 보다가 접하게 된 국립속초등산학교 빙벽반 교육생 모집 공고. '이거다!'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된 순간이었다. ◆20년 전 등반 감각 되살아나 뭉클 교육 첫날인 목요일 오전까지 마감해야 할 칼럼을 쓰고 등반 장비를 챙기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렇게 오전 7시 30분쯤 대구를 출발했고, 다행히 집결시간인 오후 1시에 맞춰 국립속초등산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무 명의 교육생이 모였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곧바로 이론교육과 실내 실습교육이 이어졌다. "빙벽등반용 손도구인 '아이스 엑스(ice axe)'를 치켜든 두 팔의 위치는 양어깨 너비 안에, 두 발은 양어깨보다 넓게 서야 자세가 안정됩니다." 문성욱 강사가 '엑스(X)바디'로 불리는, 빙벽등반의 가장 기초적인 4지점 자세를 설명한다. 그는 대중에겐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산악계의 대표적인 등반가로 꼽힌다. 최근엔 알프스를 대표하는 6대 북벽을 164시간 만에 모두 올랐다. 이어 그는 '지그재그바디'로 불리는 3지점 자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모든 등반이 그렇듯이 빙벽 역시 발과 다리로 오르는 겁니다. 팔로 잡아당기듯 하면 제아무리 장사라 해도 오를수록 지치게 마련입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여성 고산거벽등반가인 이명희 강사가 국내에서 개발됐다는 2지점 자세인 '엔(N)바디'를 설명했다. 오른쪽 아이스 엑스를 타격했다면 그 수직 아래에 왼발로 자세를 잡는 식이다. 그러면 자연히 오른발이 바깥쪽으로 나가며 엔(N)자 모양이 나온다. 4지점 자세에 비해 힘을 아끼며 등반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이명희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후 교육생들은 빙벽등반 장비를 착용하고 실내에 마련된 연습용 벽에 매달리며 3가지 등반 자세를 익혔다. 이튿날엔 용소빙벽장에서 본격적인 등반 교육이 이뤄졌다. 가장 기초적인 4지점 등반 기술을 교육했다. 서너 명씩 조를 이뤄 각각 강사가 배치된 다섯 개 코스를 순환하며 등반하는 식이다. 대다수 교육생들이 최소한 암벽등반 경험자이어선지 높이에 대한 공포감은 크게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다만 일부 교육생은 공포감 때문인지 자세가 엉성했다. 높이가 주는 무서움이라기보다는 빙벽에 살짝 걸린 아이스 엑스와 크램폰이 혹여 빠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더 강한 공포감을 만들어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래전 등반했던 감각을 몸이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 가을 다시 등반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로 늘 이점이 궁금했다.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다. '출발!'을 외친 뒤 등반을 시작했다. 몸은 가벼웠고 특별히 자세를 신경 쓰지 않더라도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빙벽등반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쓰는 '막바디'란 용어가 있다. 공포감 때문에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거나 빙벽의 형태 탓에 균형이 깨지며 나오는 기묘한 자세를 우스갯말로 표현한 말이다. '막바디가 돼 웃음거리가 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각기 다른 사연…'산'이라는 같은 목표 사흘째 날엔 3지점 등반기술 교육이 이어졌다. 몇 차례 빙벽을 오르내린 뒤 오전 교육이 끝날 즈음 몸에 문제가 생겼다. 보행 중 왼쪽 종아리에 매우 강한 근육 뭉침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수영을 하며 이 같은 조짐을 느꼈었기에 전해질 보충을 위해 이날도 아침부터 이온음료를 계속 마시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3시가 될 때까지도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후 교육인 2지점 등반기술을 연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바심마저 들었다. 사실 20년 전 수도권에선 이미 상당수가 2지점 자세를 활용했지만, 당시 대구에선 2지점 등반기술을 쓰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미디어 환경이 지금처럼 좋지 않아 새로운 기술의 전파속도가 더뎠던 탓이다. 그랬기에 이번 빙벽등반 교육의 개인적 목표는 2지점 자세를 국내 수준급 등반가들의 지도로 익히는 것이었다. 이런 고민을 이명희 강사와 상의했다. 이 강사는 이런 상태로 등반을 하기 보다는 차라리 병원을 다녀오라고 권유했다. 결국 그의 말대로 병원에서 근육이완제 주사를 맞고 진통제 처방을 받으며 회복에 집중했다.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전날 병원에 다녀와서인지 통증은 절반 이상 준 듯 했다. 등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용소빙벽장으로 가는 내내 설렜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바로 내려오라는 강사의 당부와 함께 등반을 시작했다. 이번 시즌엔 꼭 빙벽등반을 하겠다는 생각에서 꾸준히 등반 영상을 본 게 이미지 트레이닝이 된 건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2지점 등반기술이 막힘없이 나왔다. 그렇게 몇몇 코스를 오르내리며 등반을 이어가고 있을 때 안전벨트에 걸어둔 무전기에서 한 강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세 좋습니다. 종아리 아픈 거 맞습니까? 이제 하산해도 되겠네요." 교육을 마치고 대구로 온 다음 날, 종아리 전체가 퉁퉁 부어올라 다시 병원에 갔다. 초음파 진단 장비로 살펴본 결과는 가자미근 파열. 이런 상황에서도 즐겁게 등반을 한 모습이 떠올라 '픽'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왜 이리 등반에 목말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참가자중 제일 고령자는 여성으로 교육 이틀째 날 칠순을 맞았다. '이때가 아니면 평생 못해볼 것 같다'며 교육에 참여한 탓에 자녀들이 속초로 와서 칠순 잔치를 했다. 무릎 부상 탓에 끝까지 교육을 마치진 못 했지만 내년에 꼭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에서 근무하는 김한빛(43) 씨는 서울시립대 산악부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가정을 꾸리고 해외근무를 오래 한 탓에 등반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 지난해 다시 암벽등반과 빙벽등반을 시작하며 산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정영만(40) 씨는 올해 1월 아웃도어 업체가 운영하는 등산학교에서 처음 빙벽등반을 접한 뒤 1개월도 채 안 돼 다시 등산학교 교육에 참여했다. 점점 등반에 대한 꿈이 싹트고 있다며 오는 봄엔 암벽등반 교육도 참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처럼 참가자들의 사연은 제각각 달랐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을 찾자면, 그건 '산에 대한 열정'이었다.
2026-02-18 14:27:22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김영복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밥 한끼 온정' 위해 20년 달렸다
우리 사회 곳곳엔 따뜻한 한 끼가 필요한 이웃이 있다. '사랑의 밥차'는 30년 가까이 그런 이웃을 직접 찾아가 음식을 건네며 식사 이상의 따듯한 사랑을 전해 온 비영리 봉사단체다. 1998년 요리사 채성태 씨가 시작했다. 한 끼를 대접하더라도 정성이 담긴 따듯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을 구체화한 게 이동식 주방, 사랑의 밥차다. 영남권엔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가 있다. 김영복(73)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은 지난 20년 동안 이 단체를 꾸려온 인물이다. 그는 재난 현장이나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과 따뜻한 한 끼를 나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특기이자 취미인 사진 촬영을 통해서도 오랜 기간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오른쪽 손이 의수(義手)인 그는 수차례 사진전에 입상한 경력의 한국사진작가협회 소속 사진작가다. 그런 그는 1992년부터 최근까지 무보수로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사진을 촬영했다. 하계·동계 패럴림픽 등 최근 20여 년간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참가한 주요 장애인 체육대회 사진의 대부분은 김 지부장이 촬영했을 정도다. 2018년 평창 패럴림픽 때는 성화 봉송 주자로도 뛰었다. 김 지부장은 이 같은 열정적인 봉사활동으로 2018년과 2024년 두 차례나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지난해부터는 포항 월남참전전우회 회원들의 영정사진 촬영 봉사를 하고 있다. 최근 경북 포항 송도동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복 지부장은 "봉사는 큰 뜻을 품고 해야 하거나 결기가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누구나 할 수 있고 하면서 느끼는 것도 배우는 것도 많은 게 바로 봉사"라고 말했다.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배우 정준호 씨와의 친분이 계기가 됐다. 2006년 무렵 정 씨가 장애인들과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사진 촬영을 해왔던 저와 인연이 됐다. 당시 정 씨는 사랑의 밥차 대표이자 봉사활동의 주축이었다. 그때부터 정 씨의 요청으로 사랑의 밥차 주요 행사가 있을 때면 사진 촬영을 하고 봉사활동을 함께 했다. 하지만 포항과 서울을 오가고, 전국을 돌며 봉사하는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그 무렵은 저도 다니던 철강회사를 막 퇴사하고 단체급식회사를 차려 기업체에 납품을 시작하던 터였다. 고민 끝에 정 씨에게 제안을 했다. 매번 전국을 돌며 봉사하려니 힘이 달려서 밥차 하나를 마련해주면 경상지부를 만들어 이쪽에서 봉사를 이어가겠다고.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주로 어떤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나. ▶초기엔 어렵고 힘든 이들이 있는 곳만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음식을 즉석에서 해드렸다. 예를 들어 원하는 식당을 편하게 방문하기 힘든 장애인들을 찾아갈 경우, 그들이 함박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 즉시 소고기를 사와서 만들어드리는 식이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다보니 또 다른 곳에서 음식을 해달라는 요청이 오고, 그런 식으로 계속 봉사를 했다. 재난·재해가 일어난 곳엔 무조건 간다.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2017년 포항 지진, 지난해 경북 북부지역 산불 피해지역이 대표적이다. 포항 지진 때는 육체적으로 가장 피곤한 시기였다.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이재민을 위해 29일간 세끼 밥을 제공했다. 하루에만 4천명분 밥을 지었다. 지난해 산불 때는 안동·영양·청송을 방문해 4일 동안 이재민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했다. 경상지부라고 해서 대상 지역을 경상권에만 한정하지는 않는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2014년 세월호 사고 등 재난·재해 지역이면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평상시엔 끼니를 거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포항 송도솔밭에서 매월 2차례씩 국수 봉사를 하고 있다. -사랑의 밥차는 어떻게 운영되나. ▶초기엔 제가 운영하던 회사 수익금 중에서 매월 150만~200만원을 적립해 사랑의 밥차를 운영했다. 이후 사랑의 밥차가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면서 봉사 취지에 공감하는 회원들이 하나 둘 생겨났고, 지금은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 만큼 돈과 관련한 부정이 개입할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2018년 4월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부장인 저나 사무국장은 당연히 무보수 봉사직이다. 고마운 건 회원들이 회비를 내면서 직접 봉사활동에 나선다는 점이다. 자녀들까지 함께 와서 힘을 보태기도 한다. 송도솔밭에 운동하러 오는 분들 중에서 가끔씩 국수를 드시고는 1만원이나 5만원을 두고 가기도 한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련한 국수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드셨으니,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거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손은 어쩌다 다치게 된 건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이 고향으로, 화성에서 오래 살았다. 22살이던 1975년 화성에 있는 한 철강회사에 입사했는데 입사 4년차 때인 1978년 회사에서 안전사고로 오른쪽 손을 절단하게 됐다. 이후 회사의 배려로 줄곧 관리업무를 맡아서 하다가 1990년대 말 회사가 포스코와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낯선 포항 땅을 밟게 됐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수원지부 회원이다. 사진은 언제 시작했나. 셔터를 오른손 검지로 눌러야 하는 카메라의 특성상 촬영할 때 불편함은 없나. ▶초등학교 때 살던 집 바로 옆이 사진관이었다.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셨는데, 호기심에 자주 놀러가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중고 카메라 1대를 사주셨는데, 이 카메라를 다루게 되면서 사진 촬영에 익숙하게 됐다. 사실 손을 다치기 전엔 카메라를 즐겨 잡지 않았다. 모든 건 손을 다친 뒤에야 이뤄졌다. 수술 후 직장 내에 사진 동아리를 만들었다. 회원들 교육을 하게 되고 공모전에서 연이어 입상하면서 큰 재미를 느꼈다. 회사에서도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특히 회장님께선 저를 '사진작가'라고 부르며 좋아하셨다. 그 덕분에 사진전도 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세계적인 장애인 스포츠대회 홍보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도 회사 측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1개월 가까이 나가 있어야 하는 패럴림픽 때는 단순히 '다녀와라' 정도가 아니라 휴가비까지 줄 정도로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그 덕분에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패럴림픽 때부터 200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때까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지금은 눈여겨 봐둔 후배 사진가에게 장애인체육회 사진 일을 물려주고 '탈출'했다. 사진 촬영에 있어선 일반인에 비해 조금의 불편함이 있지만 그립을 활용한다던지 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정도다. -지난해부터는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지난해 포항 월남참전전우회 측의 요청으로 지난해 200여분의 사진을 촬영해드렸는데 다들 좋아하셨다. 올해도 조만간 촬영 일정이 잡힐 것 같다. 다들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부지런히 촬영해드려야 할 것 같다. -7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다. 사랑의 밥차 봉사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제가 시작을 했으니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나.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생각이다. 다만 지부장을 맡아 '사랑의 밥차'를 이끌 적당한 분이 있다면, 이제 저는 후임 지부장을 서포트하는 정도로, 뒤에서 조용히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그래서 적당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 이게 무보수 봉사활동 아닌가.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돈을 쓰는 사업이어서인지 선뜻 뛰어드는 사람이 없다. 70대에 접어들면서 2년 전쯤 본업에서 은퇴했다. 봉사가 없는 날엔 사진촬영도 하며 지금껏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도 다니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랑의 밥차를 전담해야 하기에 여전히 족쇄를 찬 것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다. 지금도 계속 찾고 있다. 괜찮은 분 있으면 소개 좀 시켜 달라.(웃음)
2026-02-18 12:18:40
건축사사무소 도시21, 대구적십자사 '씀씀이가 바른 기업' 캠페인 동참
㈜건축사사무소 도시21(대표 윤종식, 수성구 만촌동 소재)은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가 추진하는 기업 참여형 정기후원 캠페인 '씀씀이가 바른 기업'에 동참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 실천에 나선다고 12일 밝혔다. ㈜건축사사무소 도시21은 건축설계, 도시설계, 사업기획, 건축감리에 이르기까지 종합 건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지역 내 다양한 주거단지를 비롯해 대구 월배복합센터, 경산 임당유적전시관 등 공공·일반 건축물 설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윤 대표는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을 넘어,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재난과 위기의 순간마다 가장 먼저 현장에서 이웃을 돕는 적십자의 활동을 보며, 기업의 역할 역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데 있기에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다"고 전했다. ㈜건축사사무소 도시21은 이번 '씀씀이가 바른기업' 가입과 더불어 최근 희망나눔 특별성금 300만원을 전달하며 적십자 인도주의 활동에 힘을 보탰다. 아울러 윤 대표는 영남대학교 발전기금으로 지금까지 1억원을 기부하는 등 지역 인재 양성과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적 책임 또한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 배인호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회장은 "도시의 미래를 설계해 온 도시21이 지역사회의 따뜻한 버팀목으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적십자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는 '씀씀이가 바른 기업'을 통해 조성된 후원금을 재난구호, 위기가정 및 취약계층 지원 등 인도주의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참여를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053-550-7141)로 문의하면 된다.
2026-02-12 11:22:13
가수 황영웅 팬카페 파라다이스, 설맞이 떡국떡 나눔 활동
트로트 가수 황영웅 팬카페 파라다이스 대구경북지부는 10일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서부봉사관에서 설을 맞아 '떡국떡 나눔 활동'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봉사활동은 명절을 앞두고 더욱 소외감을 느끼기 쉬운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누고, 함께하는 설날의 의미를 전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회원들은 이날 총 600㎏(500만원 상당)의 떡국떡을 직접 준비하고, 총 500박스로 포장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떡국떡 400박스는 적십자 봉사원을 통해 대구지역 9개 구·군의 소외이웃 가구에 전달됐고 나머지 100박스는 파라다이스 회원들이 직접 경북지역 내 시각장애인복지시설 등에 전달했다. 파라다이스 대구경북지부 관계자는 "명절이 다가올수록 외로움을 느끼는 이웃들이 많을 것 같아 회원들과 함께 떡국떡을 준비했다"며 "저희들의 작은 정성이 이웃에게 따뜻한 설 인사로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황영웅 팬카페 파라다이스 대구경북지부는 ▷추석 송편 전달 ▷이불 후원 ▷사랑의 빵·국수 만들기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며 지역사회에 온기를 전하고 있다.
2026-02-11 15:56:21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포항에서 '요트 꿈' 키우는 청년 선장 박하늘 씨
6년 전쯤의 일이다. 돈키호테 같은 한 한국 청년의 유튜브 영상을 봤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구입한 요트를 타고 속초로 내려오는 3박4일간의 여정을 담은 20분짜리 영상이었다. 이 청년의 삶이 궁금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을 살펴봤다. 러시아 뉴스에 등장한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스물 세 살이던 그는 에스토니아에 교환학생으로 가기 위해 2개월여 간의 일정으로 자전거를 타고 러시아를 횡단하고 있었다. 특이한 그의 여정에 러시아 언론도 주목했던 것이다. 그는 속초에 내려온 지 1개월 뒤쯤 북태평양 일주를 하겠다며 영상을 올렸다. 그 영상을 본 걸 끝으로 그는 기억에서 잊혔다. 최근 그 청년이 경북 포항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름은 박하늘(34). '칠성항해'란 이름으로 요트 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최근 포항요트계류장에서 만난 박하늘 대표는 "누구나 쉽게 요트를 배우고 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그 꿈을 포항에서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까지 자전거를 타고 러시아를 횡단하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충북대 도시공학과를 다닐 때다. 3학년 때 에스토니아 탈린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선발됐다. 당시는 여름방학 기간으로 가을학기 시작까지 2개월여가 남은 터라 좀 특별하게 가고 싶었다. 러시아어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막연히 꿈꾸던 러시아 쪽 도시개발에 대한 구상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2개월여 동안 자전거로 러시아를 횡단해 에스토니아까지 가게 됐다. 무사히 도착해 한 학기 수업을 잘 마쳤다. 돌아올 땐 자전거를 두고 비행기를 타고 왔다. 2015년 때의 일이다. 이 일이 계기가 돼 이듬해엔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까지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현지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많지 않기에 이번엔 히치하이킹으로 현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아니면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에서 4학년 여름방학을 활용해 실행에 옮겼다. 백두산을 출발해 이탈리아 돌로미티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원래 모험심이 강한 성향인가. ▶가끔씩 저도 생각해보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어릴 때 못해본 것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것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 충북 옥천의 시골 산골에 살았던 탓에 멀리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얼마나 시골인지를 설명하자면 동네에 집이 10가구가 채 안 되고, 버스도 하루 2번 들어오는 마을이었다. 초등학교도 10㎞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매일 차를 태워주셨다. 공부를 하려면 도시로 나가야 한다는 아버지 뜻에 따라 중고생 때는 어머니와 따로 집을 구해 대전에서 살았다. 그 시절엔 친구들이 즐겨하던 게임도 안하고 공부만 했다. 대학을 가보니 도서관과 학원만 오가던 중고생 때와 달리 자유가 있었다. 친구들과 배낭여행도 갔고 마라톤이나 철인3종경기 등에도 도전하며 그간의 답답했던 마음을 표출했던 것 같다. 순항훈련 때는 세계일주도 할 수 있다는 말에, 군대도 해군을 지원했다. 운 좋게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승조원으로 근무하게 됐지만 아쉽게도 꿈꾸던 세계일주는 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대학 4학년 때부터 전공에 맞게 토목·건설 회사 여러 곳에 입사 지원을 했었는데 잘 안 됐다. 좋아하는 여행 쪽도 괜찮겠다는 생각에서 여행사에 문을 두드렸고, 졸업하던 해인 2017년 5월 서울에 본사를 둔 러시아 전문 여행사에 입사하게 됐다. 대학 때 복수전공으로 러시아어를 공부했었는데 때마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근무하는 조건이었다. -요트는 어떻게 접하게 됐나. ▶2018년 여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요트를 처음 타봤다. 그때부터 요트의 매력에 푹 빠져서 시간 날 때마다 요트 타며 항해 기술을 익혔다. 그해 겨울 요트를 사아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반년쯤 요트를 보러 돌아다녔고, 2019년 5월에 요트 1대를 구입했다. 당시 기준으로 35년 된 30피트(ft)짜리 세일링 요트였다. 한국돈으로 1천800만원 정도 들었다. 이 요트를 기반으로 한국으로 돌아가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블라디보스토크 쪽에는 요트관광이 상당히 활성화돼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요트 체험 방식도 국내와는 달랐다. 인근 섬 주변에 정박해 바다에 들어가 채집도 하고, 섬에 들어가 바비큐도 해먹으며 며칠씩 자연을 즐기는 식이다. 한국에 들어가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해본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더욱 열심히 항해 기술을 익혔다. 첫 요트체험을 했던 배의 선장에게 교육을 받았다. 저보다 7살이 많았는데, 나중엔 친해져서 시간 될 때마다 함께하며 무료로 배울 수 있었다. -한국엔 언제 들어왔나. 포항엔 어떻게 정착하게 된 건가. ▶2019년 10월 20일 퇴사를 한 뒤 곧바로 요트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3박4일 걸렸다. 북한 해역을 빙 둘러 내려오긴 했지만 나포될 위험이 있었기에, 제게 요트를 가르쳐줬던 러시아 선장이 혼자선 위험하다며 동행해줬다. 혹시 몰라 요트에 러시아 국기까지 달고 내려왔다. 처음부터 포항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속초에 1개월여 동안 머물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그렇게 생각한 게 북태평양 일주였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남해와 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까지 다녀올 생각이었다. 고향친구 1명을 구해 12월 말 속초를 출발했다. 포항에서 출국심사를 받고 일본으로 떠났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난관에 봉착했다. 대마도에서 서류가 미미하다는 이유로 입국이 거부된 것이다. 그 바람에 부산으로 가게 됐고 함께 했던 친구가 힘이 들었는지 이정도로 만족한다며 돌아가게 되면서 항해를 포기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부산에 배를 세울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통영으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도 제 자리는 없었다. 수소문 끝에 포항에 자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면서 이곳으로 오게 됐다. 2020년 3월 1일의 일이다. -처음 포항에 와서는 어떻게 지냈나. ▶처음 왔을 땐 배만 1척 있었지 돈도 없고 아무 것도 없었다. 수개월 간 배에서 생활하며 노트북으로 사업자등록 신청을 하고 포털사이트에 상품을 만들어 올렸다. 그해 3월 첫 손님을 맞았고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차츰 찾는 이들이 발길도 늘어나게 됐다. -사실 당시 러시아에서 구입한 배가 럭셔리한 것도 아닌데다 다소 작은 규모의 세일링 요트였다. 관광객을 받기에 적당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이유로 차별화를 둔 게 '세일링'이란 콘셉트였다. 돛을 펴고 항해를 한다는 의미다. 국내 거의 모든 요트 투어 업체는 엔진을 켜고 한정된 시간에 맞춰 코스를 한 바퀴 도는 방식의 체험상품을 운영한다. 반면 저는 돛을 펴고 바람의 힘으로 항해하는 체험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방파제 밖을 빠져나갈 때까지만 엔진의 힘을 빌리는 정도다. 바람이 없는 날에는 그냥 바다에 둥둥 떠 있더라도 돛을 편다. 바람의 힘으로 가는 요트의 본질을 체험객 한명 한명이 고스란히 느끼고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업체 이름도 '○○요트투어'가 아니라 '칠성항해'다. 영어로 하면 'sail'(항해)란 단어가 들어간다. -올해로 7년차다. 그동안 배도 4대로 늘었다. ▶뭐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돈이 없어서다. 돈이 많았다면 좋은 거 하나 사면 되는데 싼 걸 계속 사게 되면서 나머지 배를 팔지 못해 4대가 된 거다. -무엇을 꿈꾸고 있나. ▶제 요트가 정박해 있는 동빈내항 포항요트계류장엔 관리가 안 돼 방치된 개인 요트가 많다. 이런 배를 빌려 정비를 한 뒤 항해를 원하는 이들에게 빌려주거나 숙박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 세계 어디에서든 요트를 빌려 탈 수 있게 하는 플랫폼도 모색하고 있다. 이를테면 저희 회원이 해외에 갈 경우 제휴업체에서 쉽게 요트를 빌려 탈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그 첫걸음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 업체와 시범 운영을 해봤다. 칠성요트클럽을 통해 항해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요트를 배우고 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제 목표다.
2026-02-11 13:58:49
故 신을용 씨, 대구 277번째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신원덕 씨가 아버지인 고(故) 신을용 씨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아버지 이름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기부로 고인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대구 277호 회원으로 추대됐다. 대구 달성군 현풍읍에서 나고 자란 신원덕 씨는 포목업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 속에서도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전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장남인 신 씨에게 삶의 기준이자 책임으로 남았다. 그 헌신 덕분에 오늘날 자손들까지 안정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원덕 씨는 "아버지 생전 다하지 못한 효도를 이제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주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고인의 삶과 아들의 효심이 지역을 위한 큰 나눔으로 이어진 뜻 깊은 사례"라며 "보내주신 소중한 뜻이 지역사회 곳곳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제창한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이다.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5년간 매년 2천만원씩 기탁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2026-02-10 13:06:30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회장 배인호, 이하 대구적십자사)는 설 연휴를 앞두고 대구 동구에 사는 고령 이산가족 가정을 방문해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고 10일 밝혔다. 이날 방문엔 배인호 대구적십자사 회장이 적십자 봉사원과 함께하며, 명절 선물과 위로금을 전달하고 안부를 살폈다. 방문 가정 노인은 95세로 평안남도 출신이다. 6·25전쟁 당시 1·4후퇴 과정에서 남편과 첫째 아이와 함께 남쪽으로 피란했다. 적십자 봉사원들은 전쟁 이후 고향을 다시 찾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보내온 어르신의 사연에 공감하며 안타까움과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배인호 대구적십자사 회장은 "전쟁은 멈췄지만 이산가족의 아픔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며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적 문제로 남북 간의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최우선으로 해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 화상 상봉장 운영 ▷명절 위로 방문 ▷이산가족 생애보 제작 등 이산가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6-02-10 13:06:20
1. 지구촌이 '이것'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이 동맹 간 핵심 광물 거래 '무역 블록'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동맹 참여국들끼리는 핵심 광물을 무관세로 교역·교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무역 무기로 쓰고 있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첨단 기술 분야와 방위산업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이것'은 말 그대로 '희귀한 흙'을 가리킨다. 엄밀하게는 자연계에서 드물게 존재하는 금속 원소를 담고 있는 흙을 지칭한다. 학술적으로는 원자 번호 57에서 71까지 15개 원소에 스칸듐과 이트륨을 더한 17개의 원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액정표시장치(LCD), 발광다이오드(LED),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전자제품과 미사일 제어장치, 전투기 등 군용 물자에 두루 쓰이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생산량의 약 70%, 정제·가공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이것'은?(매일신문 2월 5일 8면) 2. '이것'은 줄기가 하얀 소나무로 중국이 원산지다. 껍질이 흑갈색인 소나무나 곰솔과는 확연하게 달라서 한번 보면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 특별하게 기억된다. 조선시대 사신을 따라 연경(베이징)을 다녀온 행적을 기록한 '계산기정'(薊山紀程) 등 연행록(燕行錄)에는 중국 향림사(香林寺)에 있는 '이것'에 대한 감상이 자주 보인다. '가지가 은비녀 같다'거나 '빛깔이 창연하다' 혹은 '푸른 잎에 옥(玉) 같은 줄기라 또한 기이한 나무' 등의 인상평을 수록했다. 늘 보아왔던 독야청청하지만 거무튀튀하고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진 소나무의 거친 수피와는 다르게 흰색을 상서롭게 여겨온 조선 사신 일행들의 눈앞에 서있는 매끈한 자태의 '이것'이 신비롭고 귀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흔하진 않지만 대구경북에도 '이것'이 있다. 대구에선 달성공원 정문의 남쪽과 대구향교 정문 옆, 대구수목원, 대구 어린이세상 뜰에서 만나볼 수 있다. 경상에서는 경산 영남대 캠퍼스와 울진 불영사 경내, 포항 청하면 농업인상담소 등에 심어져 있다. '이것'은?(매일신문 2월 9일 24면) 3. 경북 영주시 문수면에 있는 '이 마을'이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한 '제2기 로컬100'에 최종 선정됐다. '로컬100'은 지역문화에 기반한 대표 문화자원 100곳을 선정해 대국민 홍보를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 마을'은 내성천이 마을의 세 면을 감싸는 물돌이 지형으로 형성된 전통마을로, 고택과 종가문화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국가민속문화유산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외나무다리도 유명하다. 길이 150m, 폭 30㎝인 이 외나무다리는 현재 마을로 통하는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유일한 통로 역할을 했다.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역사적 공간으로,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이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을 더한다. 이곳에선 매년 가을이면 이 외나무다리를 테마로 한 축제가 열려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육지 속 섬'으로도 불리는 '이 마을'은?(매일신문 2월 5일 12면) ◆1월 28일 자 시사상식 정답 1. 그린란드 2. 구겐하임미술관 3. 약전골목
2026-02-10 11:27:54
[성금내역]암 투병 아내, 두 딸 돌보는 박성호 씨에 5,064만원 전달
◆암 투병 아내, 두 딸 돌보는 박성호 씨에 5,064만원 전달 암 투병 아내와 장애 있는 두 딸 돌보며 힘겹게 가정을 꾸려가는 박성호 씨(매일신문 1월 27일 11면 보도)에게 5천64만2천518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변호사박헌경사무소 20만원 ▷동산내과(강민규) 5만원 ▷동산내과(박경아) 5만원 ▷동산내과(박준석) 5만원 ▷김유성 5만원 ▷김은성 5만원 ▷김노주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방태표 2만원 ▷신종욱 2만원 ▷배상영 1만원 ▷이정현 1만원 ▷정준홍 1만원 ▷이장윤 4천원 ▷김서연 2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순간에 무너진 삶 근근이 버티는 박은영 씨에 3,372만원 성금 딸의 장기 입원과 남편의 죽음으로 갑자기 무너진 삶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박은영 씨(매일신문 2월 3일 11면 보도)에게 51개 단체, 313명의 독자가 3천372만9천759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일지테크 100만원 ▷㈜태원전기 100만원 ▷한성철강㈜ 100만원 ▷송곡문화장학재단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김영곤)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삼성기공(장태종) 3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신철범(금강엘이디제작소) 20만원 ▷㈜삼이시스템 20만원 ▷채움약국 20만원 ▷㈜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달구벌데코(허만화) 10만원 ▷㈜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김정수경영회계사무소 10만원 ▷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 10만원 ▷무한기술(윤종천)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 10만원 ▷유성에스에이치(이석현)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광성칼라샷시(정영달)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다다꿈드림센터(고유안)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부일약국(오승엽) 5만원 ▷선진건설㈜(류시장)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토탈인쇄(김창근) 5만원 ▷국선도두류수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세창산업(강석원) 3만원 ▷㈜동위(이석우) 3만원 ▷정수엔텍(정용석) 2만원 ▷통영굴국밥국수(허정) 2만원 ▷메밀명가(안수민) 1만원 ▷지오(권용준)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하늘로 각 100만원 ▷복윤빈 50만원 ▷유주영 40만원 ▷김미정 김재균 김진숙 박전호 이신덕 임향순 각 30만원 ▷경상봉 박철기 이경미 이재일 최정옥 각 20만원 ▷김영철 10만3천원 ▷곽용 권희덕 김광월 김보경 김원복 김정례 김지현 김철진 김태원 김희곤 노유진 박우성 박정희 박종세 서석년 서은숙 서준영 오경희 오명래 이경옥 이기관 이남헌 이성경 이종만 이호숙 이황섭 장정순 전윤기 정은경 조득환 최옥기 최창규 하영신 한순희 허금주 황영훈 각 10만원 ▷김재용 7만원 ▷곽상헌 권경희 김경출 김기욱 김미정 김병선 김병영 김보현 김양선 김연희 김영경 김영관 김완수 김재관 김학준 박노석 박옥선 박형준 박희정 배귀식 백미화 변정기 신현권 안가영 안대용 원순화 원중희 유명희 윤두환 윤성원 이명희 이상웅 이윤호 이장미 이재열 이재우 이재희 이종하 이춘매 일광화 임순출 임연근 임웅석 전우식 전현정 정수영 정재이 조효민 주경화 주정미 진창환 채강숙 최경애 최상수 최설 최수진 하승원 하영인 한창선 한호희 허용구 각 5만원 ▷박명래 배상영 각 4만원 ▷강대용 강호연 권오성 김대인 김연미 김영수 김재광 마경묵 박나연 박민정 박선언 박시현 박익순 변현택 성광영 신광련 안수현 안정원 엄미애 이경은 이경희 이미순 이보화 이성욱 이영만 이영아 이은숙 이재민 이찬희 임은옥 임진성 조재순 최예숙 최진희 최춘희 편유미 홍부표 각 3만원 ▷강성모 권미숙 권오영 권유진 권혁필 김경희 김남희 김영화 김인자 김정만 김춘미 김태천 김형기 김희원 류휘열 박개정 박길천 박선아 배영철 배정준 서기대 신재필 신정숙 안순곤 안현정 이경희 이기천 이길수 이동욱 이미환 이재숙 이창수 이해수 정규모 정창 차경수 최금남 최우영 최지숙 표해연 현지 홍준표 황인찬 각 2만원 ▷최은서 최정원 각 1만5천원 ▷강운성 권오현 김강호 김균섭 김다영 김문곤 김산호 김성곤 김성진 김성훈 김신호 김윤영 김은희 김정윤 김종석 김주현 김화경 김희태 남원재 남장호 문민성 민수진 박경아 박상하 박성애 박성철 박수산나 박숙자 박인배 박정순 박진환 박태용 박홍선 변희광 손열호 송은정 수민 심인선 유귀녀 유문주 유호선 이강원 이노경 이병희 이성애 이성욱 이승호 이영수 이운대 이유록 이정미 이종수 이희태 임경실 임우석 임은아 임채숙 전선수 정서원 정영민 정원우 조수근 조영식 조일선 조희수 차수환 최경철 최윤희 최재영 최지아 최진숙 황문섭 각 1만원 ▷이화섭 9천580원 ▷수민부 안인호 은빈환 정진용 하소희 각 5천원 ▷이상태 2천480원 ▷하정현 2천원 ▷김기만 조규범 최연준 각 1천원 ▷'왕이신하나님이영석' '하나님이함께하심' 각 30만원 ▷'당신을응원하며' 15만원 ▷'YUMILEE' '사랑나눔624' '예수님이 함께하시길' '주님사랑' '폐기물운영과입원한딸' 각 10만원 ▷'예수님사랑' '익명' '하나님께드립니다' '하나님께드립니다' '힘내세요' 각 5만원 ▷'힘내세요' '쾌유빌어요' 각 3만원 ▷'감사합니다' '시냇가의심기운나무' '하나님의사랑' '힘내세요' 각 2만원 ▷'강' '무명' '석희석주' '세발자전거' '이웃사랑성금' '쾌유를빕니다' '힘내세요' 각 1만원 ▷'정말힘내십시오' 7천777원 ▷'돕기' 5천원 ▷'돕기' 787원 ▷'돕기' 695원 ▷'돕기' 440원. ※기부금 영수증은 입금자명으로만 발행이 가능합니다.
2026-02-09 14:38:35
"정권 교체를 기다려 보자, 이럴 수도 있는데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와 보완 방안을 보고받으면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정책은 신뢰와 예측 가능성이 정말 중요한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1년씩 네 번 유예했다. '이번엔 끝이다. 또 (유예하고) 진짜 끝이다. 진짜 진짜 끝이다. 이젠 진짜 정말 끝이다'라고 하면 누가 믿겠느냐"며 "정책은 한번 정하면 그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한 결연한 의지와 정책의 일관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SNS를 통해서도 연일 관련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방침을 처음 밝힌 지난달 23일 이후 이 대통령은 4일까지 총 14건의 관련 게시글을 올렸다. '부동산 불패론'을 이번만큼은 반드시 끊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읽힌다. 표현의 강도도 꽤 세다. '망국적 부동산 정상화' '저급한 사익 추구 집단'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가 하면 "유치원생처럼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 분들이 있다" "정론직필은 못 하더라도 망국적 투기 두둔이나 정부 '억까'만큼은 자중해 주면 좋겠다" 등의 발언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야당과 언론에도 강한 비판 메시지를 냈다. 이 대목에서 이 대통령이 느꼈을 답답함도 느껴진다. 사실 많은 이들이 천정부지 부동산값 때문에 청년들의 주거난과 저출생을 염려한다. 하지만 국가 의제에서 벗어나 개인적 관점으로 돌아서면 영리 문제로 치환된다. 부동산 문제가 지닌 함정이다. 4일 국세청장은 양도세 중과 유예 전과 후의 세금 차이를 공개했다. 3주택 이상 보유자가 10억원의 시세 차익이 생겼다고 가정했을 때, 5월 9일 이전에 팔면 2억6천만원, 이후에 팔면 6억8천만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이는 전체 국민의 단 2.9%에 불과한 극소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설령 6억8천만원을 세금으로 낸다 해도, 손에 쥐는 3억2천만원은 여전히 서민들에겐 평생 노동해도 만져보기 힘든 거금이다.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부동산 투자가 세금을 다 떼고도 단번에 수억원을 벌어다 주는 현실,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하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일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세금 폭탄 부활' '매물 잠김' '전세 대란' 등을 우려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조세 정의나 주거 불평등은 외면한 채 오로지 다주택자의 부담 증가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부동산 문제처럼 상호 시각차가 큰 민감한 주제일수록 SNS와 같은 도구는 보다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 제한된 언어 탓에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이 생길 수 있고, 생각이 다른 이에겐 일방적 통보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 해결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없다. 다만 워낙 복잡한 사안이다 보니 해법의 시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결국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협치가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어려운 문제일수록 토론과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감정적 반응을 보이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모습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결국 이런 것들이 비판과 공격의 빌미가 되면서 정작 공론화를 위한 논의는 사라지는 분위기다. 부동산 안정화를 위한 이 대통령의 의지와 진정성은 SNS를 통해 충분히 전달됐다. 이젠 SNS 공간을 나와서 협치를 이루는 리더십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2026-02-05 11:14:42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김용덕 자연보호중앙연맹 총재 "자연보호, 올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야"
대한민국 자연보호운동은 독특하다. 민간 단체의 활동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국가가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민에게 요청한 범국민운동에서 비롯됐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민간 봉사단체가 자연보호중앙연맹(설립 당시 명칭은 자연보호협의회)이다. 1977년 만들어졌으니 올해로 설립 50년차에 접어들었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 약 100만명의 회원이 활동한다. 탄생 배경만큼이나 거처 간 단체 수장의 면면도 화려하다. 초대 위원장(총재)은 태완선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었다. 제2대 위원장은 서울대 대학원장을 지낸 이숭녕 박사였다. 이후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차관을 지낸 이민재 전 서울대 교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식물분류학 개척자로 평가 받는 정영호 전 서울대 교수 등이 거쳐 갔다. 이 단체는 지난해 10월 자연환경보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법정단체 지위를 얻었다. 법정단체란 법에 근거해 설립 목적과 역할이 명시되는, 국가가 공익적 기능을 인정한 단체를 말한다. 그 위상과 역할이 제도적으로 명확해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임의단체나 등록단체와는 다른 지위로, 자연보호 활동이 '선의의 봉사'에만 머물지 않고 공공성과 책임성을 갖춘 공익 활동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2일 김용덕(61) 제20대 자연보호중앙연맹 총재를 만나 자연보호 활동과 법정단체 지정을 위한 노력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법정단체 지위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포기하고 싶진 않았나. ▶포기하고픈 순간은 수없이 많았다. 제21대 국회가 끝나며 법안이 자동 폐기됐을 때, 제22대 국회 초반 형평성 문제로 논의가 보류됐을 땐 마음이 특히 무거웠다. 그러나 포기는 곧 자연을 포기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멈출 수 없었다.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하며 끝까지 국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 과정 자체가 자연을 지키는 책임이라고 믿었다. -법 개정안은 누가 발의했고, 어떤 의미를 지니나.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김해갑)과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안동·예천)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을 바탕으로, 대안 형태의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땅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자'는 자연보호헌장의 약속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제도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저희 단체 입장에서 보자면, 예산의 투명성이나 정책 참여의 정당성이 요구되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자연보호운동이 제도권 안에서 책임 있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젠 단순한 시민단체의 범주를 넘어, 국가와 사회가 신뢰하는 공적 파트너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정책 논의의 한 축으로 주체적이고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를 제도와 정책으로 연결하고, 수립된 정책이 다시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하는 가교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는 법정단체로서 연맹이 앞으로 수행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변화이자 책임이다. -자연보호중앙연맹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구미 금오산은 대한민국 자연보호운동의 상징적 장소다. 1977년 9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 관료들과 금오산도립공원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각종 쓰레기가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을 본 박 대통령은 "우리, 청소부터 합시다"라며 직접 깨진 병조각과 휴지를 주웠다고 한다. 그날의 의미는 선언이 아니라 행동이었다는 데 있다. 이를 계기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전국적인 자연보호 조직이 만들어졌고, 그해 10월 28일 220여 시·군·구 협의회가 참여한 창립총회를 통해 자연보호중앙연맹이 출범하게 됐다. 이어 12월 5일엔 내무부 산하 사단법인 제1호로 등록되며 제도적 기반을 갖췄다. 이듬해엔 정부 주도로 자연보호헌장이 제정되고, 1979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 가입하며 활동이 본격화됐다. 출범 초기 자연보호 활동은 산업화로 인한 환경 훼손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산림 훼손, 하천 오염 등 눈에 보이는 문제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국가 주도의 계몽과 규제가 중심이었다. 반면, 오늘날 자연보호 활동은 훨씬 복합적인 과제가 됐다. 훼손을 막는 차원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이나 생물다양성 보전, 지역 공동체와의 공존, 지속 가능한 발전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자연이 보호의 대상이란 것에서 인간 삶의 기반이라는 인식으로 확장된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주체의 변화다. 과거엔 국가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시민과 지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자연보호로 발전했다. 연맹은 이런 변화 속에서 현장성과 시민 참여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전국 각지의 회원이 참여하는 생태 조사·연구 사업과 자연보호 세미나, 그린시드 캠프(미래세대 자연보호 교육) 등 교육·체험, 조사·연구, 정책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자연보호중앙연맹 활동은 언제 시작했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건축학과 출신으로 지금껏 대구에서 건설업에 몸담아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이 훼손되는 현장을 자주 접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녹색 조끼를 입고 묵묵히 자연을 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실천이 제 마음을 움직였고, 그렇게 자연보호중앙연맹과 함께하게 됐다. 1990년대 후반, 30대 때의 일이다. 이후 2002년과 2003년엔 대구광역시협의회장을 맡아 지역 활동을 이끌었고, 2016년부터 8년 동안은 중앙연맹 사무총장과 부총재로 활동했다. 2024년부터는 총재로 연맹의 비전과 방향을 책임지고 있다. 젊은 시절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한 장면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콘크리트 아래로 묻혀버린 물길과, 잘려 나간 숲의 가장자리 앞에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던 기억이다. 그 순간 다짐했다. 어떤 자리에서도 자연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그 다짐이 지금까지 자연보호운동을 이어오게 한 원동력이 됐다. -2021년 계간 '시와늪'을 통해 문단에 들어섰고 2023년엔 '산림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지난해엔 시집과 수필집을 냈다. 대구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공계 출신이지만 30대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유년시절 경북 포항 비학산 자락에서 자란 점도 문학적 감수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는 틈틈이 몇몇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문학 수업을 들었고, 자연보호 운동을 하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과 은유를 마주하게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그동안 묵혀뒀던 글을 가려 뽑아 두 권의 책을 내게 됐다. 저에게 문학은 또 다른 언어다. 수필집 '소리 없는 풀잎의 말'은 들리지 않는 생명의 목소리를 기록하려는 시도였다. 시집 '바다에서 멈춰버린 우리'는 인간의 욕망 앞에서 멈춰선 자연을 바라보는 고백 같은 것이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존재'라는 믿음이 글이 됐다. 그 믿음이 우리 사회로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연보호 활동과 관련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게 저의 인생철학이다. 자연보호 역시 빠르게 가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께서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원금은 건드리지 말고 이자만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처럼 자연을 지키는 일은 오늘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자 밑거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침묵해선 안 된다. 자연보호는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멈추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지속돼야 한다. 100만 자연보호중앙연맹 회원과 국민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무엇보다 소중한 이유다.
2026-02-04 12:37:49
1. 최근 개통한 '이 교량'은 경북 포항 남구(송도동)와 북구 (항구동)를 잇는 해상교량이다. 지역 주민들의 30년 숙원 사업으로 2021년 착공해 5년 만에 준공했다. 교량 길이는 395m, 왕복 4차선 규모다. 748억원의 사업비가 들었다. '이 교량'이 개통하면서 송도해수욕장과 영일대해수욕장 간 이동시간이 당초 10분에서 3~4분 대로 단축됐다. 포스코를 포함한 인근 산업단지 출·퇴근 차량의 교통량 분산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동해의 일출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주탑 내부에 설치해 시민들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야간에는 사계절 경관조명을 설치해 볼거리를 더한다. 포항국제불빛축제와 운하축제 등 포항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해 지역 상권 및 관광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포항시는 예상하고 있다. '이 교량'의 이름은 포항시가 명칭 공모를 통해 후보작을 선정한 뒤 주민 투표를 통해 최종 선정했다. '이 교량'은?(1월 28일 9면) 2. 최근 정부가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유지하는 방침을 밝히면서 차세대 원전 시장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것'의 첫 번째 원자로(초도호기) 부지 선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북 경주시는 '이것' 건설 부지 유치 공모에 나선다. 최근엔 경북도와 함께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것'은 300㎿ 이하의 발전 용량으로 기존 대형원전보다 안전성이 높으면서 모듈형 구성을 통해 경제성을 높인 원자로다. 일반 원전이 부지 기초부터 완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반해 '이것'은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기에 제작 기간이 짧고 설치도 간단하다. AI 데이터 센터 확산,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 탄소중립 정책 등에 대응하기에 매우 적합한 원자로다. 이런 이유로 차세대 원전시장의 게임체인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영문 약자로 'SMR'로도 불리는 '이것'은?(2월 2일 1면) 3. '이 인물'은 '몽실언니', '강아지똥'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아동문학가다. 1937년생으로 2007년 작고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 직후 귀국한 '이 인물'은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를 마친 뒤 각지를 떠돌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다 병을 얻었다. 19세 때 폐결핵에 걸린 것을 시작으로 신장결핵, 만성심부전 등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했다. 1968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의 시골 예배당 문간방에 정착한 뒤 '종지기'로 살아 왔다. 1969년 단편 동화 '강아지똥'으로 월간 기독교교육이 주관하는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40여 편의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줬다.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고인이 남긴 마지막 동화 '엄마 까투리'는 2011년 영상만화로 제작돼 국내외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 언덕 아래엔 그가 살던 오두막집이 남아 있다. '이 인물'은?(2월 2일 24면) ◆1월 21일 자 시사상식 정답 1. 디리스킹 2. 대구회생법원 3. 폴로
2026-02-03 13:39:50
[성금내역] 홑이불로 겨울 나는 김순희 씨에 2,460만원 전달
◆홑이불로 겨울 나는 김순희 씨에 2,460만원 전달 지체장애 3급인 본인에 이어 같은 장애를 지닌 딸과 함께 홑이불로 겨울을 버티는 김순희 씨(매일신문 1월 20일 11면 보도)에게 2천460만9천371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한미병원(신홍관) 50만원 ▷㈜삼이시스템 20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배정준 2만원 ▷손나영 2만원 ▷신종욱 2만원 ▷최은서 1만5천원 ▷최정원 1만5천원 ▷김종식 1만원 ▷박상하 1만원 ▷이서영 1만원 ▷이현민 1만원 ▷정혜원 1만원 ▷이순덕 5천원 ▷조철제 5천원 ▷이장윤 4천원 ▷임경우 3천원 ▷김기만 1천원 ▷심금자 1천원 ▷'당진국가대표고기대박' 3만원 ▷'하영구홍성희예당대박' 2만원 ▷'언젠가좋은일생김모두' 102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암 투병 아내, 장애 있는 두 딸 돌보는 박성호 씨에 4,986만원 성금 암 투병 아내와 장애 있는 두 딸 돌보며 힘겹게 가정을 꾸려가는 박성호 씨(매일신문 1월 27일 11면 보도)에게 52개 단체, 553명의 독자가 4천986만1천518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광훈건설 200만원 ▷에스엘㈜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태원전기 100만원 ▷원스틸자원 100만원 ▷㈜일지테크 100만원 ▷한성철강㈜ 100만원 ▷홍제삼성본정형외과 100만원 ▷세무사황은해사무소 50만원 ▷송곡문화장학재단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태린(김규남)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미도기업 20만원 ▷㈜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무림엔텍 10만원 ▷㈜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 10만원 ▷법률사무소로와이즈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 10만원 ▷에스씨이(정환오) 10만원 ▷유성에스에이치(이석현)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호란건축(박상민)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김용근(국제정밀) 5만원 ▷느티나무한약국 5만원 ▷다빈치커피대명마루점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한국중부발전(윤근수) 5만원 ▷현대전산인쇄㈜(이기복) 5만원 ▷㈜동위(이석우)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세창산업(강석원) 3만원 ▷안산황금상회(임가선) 3만원 ▷정수엔텍(정용석) 2만원 ▷통영굴국밥국수(허정) 2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100만원 ▷김재묵 박종완 이완수 각 50만원 ▷유주영 40만원 ▷김용기 김진숙 예종해 이신덕 조선경 각 30만원 ▷김선희 김정현 박철기 이재일 이진식 최상식 함종수 허금주 각 20만원 ▷박광주 15만원 ▷강경희 강정수 고유미 고호준 곽미자 곽용 곽윤호 구자규 권영희 김국명 김국현 김기태 김기호 김동현 김명락 김명수 김상술 김상훈 김성은 김수영 김옥성 김웅 김은주 김재운 김정희 김창연 김희연 도경호 류형렬 박계한 박근완 박기애 박순희 박영길 박용환 박종천 박찬호 박창국 박필희 방경희 배재욱 배화옥 서복석 손유정 손진상 안요일 양창희 오경주 오동훈 오병호 오철록 유용현 윤경순 윤경원 윤성원 윤재영 이근욱 이성현 이순금 이신자 이유진 이윤정 이은주 이재석 이재철 이지연 임상희 임종숙 장중일 장희 전봉춘 전상규 정경미 정기백 정명섭 정옥경 조남호 조득환 조미순 조원철 조의수 최창규 우광석 하세비 하영신 한정우 한해숙 허만태 홍승근 황봉득 각 10만원 ▷김상환 8만원 ▷전예목 7만7천777원 ▷김성호 문혁 각 6만원 ▷강태구 강희동 곽영희 구연욱 권상국 권순희 권오석 권일 권현미 김경미 김계량 김광호 김교정 김금숙 김기욱 김도균 김성수 김성일 김성훈 김수진 김아영 김영수 김우정 김웅길 김은기 김정란 김정아 김종광 김종석 김지은 김태용 김향숙 김헌영 김형규 김회중 김희문 남교진 남희정 민동석 박성동 박애란 박영혜 박원희 박재범 박정희 박찬영 박현오 백경수 백미화 변아름 변회정 서정오 송지원 송치평 송희소 안대용 안정미 오흥명 원중희 유명희 유재욱 유정숙 유종숙 은호기 이금례 이민숙 이상윤 이영아 이원숙 이재민 이재열 이정열 이종하 이지연 이창영 이창훈 이혜정 인경 임말달 장광호 장민영 장익모 장지웅 전성호 전우식 전치원 정병화 정진호 정해영 제유리 조경옥 조민호 조영희 조옥화 조원제 지유선 진봉좌 차경수 차소영 차은진 최경욱 최상수 최수진 최영익 최영철 최예원 최종원 최춘매 현대섭 황세연 황윤선 각 5만원 ▷김춘식 4만3천원 ▷강윤숙 소은영 정종현 각 4만원 ▷정봉금 3만2천원 ▷강기백 강기훈 강내운 강호연 고우남 김균배 김대성 김명선 김상민 김승민 김은숙 김은주 김정태 김종헌 김지안 김태겸 김하은 김하준 김학범 김해윤 노현주 도정우 박경욱 박상학 박승호 박시우 박옥환 박정룡 배상영 배윤호 서준기 설은주 성광영 송정임 신경윤 신광련 신희교 안금송 안은진 양윤정 양정림 유민정 윤기호 윤성수 이강준 이경숙 이규철 이동순 이상규 이상혁 이선영 이용도 이응섭 이종택 이지영 이진주 장영우 장충길 전영상 전정숙 정경춘 정루까 정소영 정영희 정용숙 진승민 차정혜 최창은 최춘희 현재종 홍상협 각 3만원 ▷강선우 권영혜 권오영 권유진 김금숙 김운옥 김은향 김인자 김재연 김지은 김진규 김창명 김현호 김홍구 남기학 노은후 류휘열 박선영 박시연 박은경 박훈 백정임 서기대 서현미 성방란 신극원 심민성 심재권 오정택 유한웅 이경희 이규보 이미경 이민경 이상익 이선기 이선희 이승환 이용권 이재훈 이해수 임철우 장성봉 정정애 정진영 정창 조규원 조명현 조우철 주창범 진세희 차수환 최웅선 한우리 한지혜 허정운 홍진표 황보성권 각 2만원 ▷나명철 박재근 신금례 이영숙 각 1만5천원 ▷하정현 1만1천709원 ▷강찬웅 고광진 곽병하 권영희 권정연 김구식 김균섭 김다영 김미나 김보운 김성진 김영애 김운영 김유성 김은경 김은선 김정자 김종국 김주현 김중배 김창곤 김태상 김태천 김학경 김호 남상주 목정일 문정연 박경아 박경열 박경호 박미라 박미영 박병철 박상하 박인배 박종희 박진아 박찬희 박춘희 박태용 박현정 박흥선 박화영 배현원 백미희 백승훈 변희광 봉태근 서백석 서인숙 석미혜 석봉호 석진우 성영아 손규리 손상덕 신광수 오미경 우근명 우은희 원경섭 유귀녀 유현준 윤우선 윤인주 윤진모 은빈환 음두한 이경호 이남철 이동준 이득림 이명훈 이상학 이선주 이영수 이용한 이우영 이운대 이원경 이유정 이윤지 이재업 이정근 이제승 이종무 이진우 이태자 이하순 이한나 이화경 임영수 임용철 임채숙 장우진 전기호 전선수 전영귀 정서원 정승열 정영민 정영선 정흥권 조상은 조영식 조주연 최경철 한미영 한빛 황치일 각 1만원 ▷이화섭 5천117원 ▷김은희 라은영 손희정 이옥화 이주동 정흔주 황수비 각 5천원 ▷송영순 4천774원 ▷옥종희 이원경 각 3천원 ▷하정현 2천원 ▷박은하 최연준 각 1천원 ▷'이웃사랑' 100만원 ▷'왕이신하나님이영석' '하나님사랑이웃사랑' 각 50만원 ▷'하나님이함께하심' 30만원 ▷'사랑나눔624' '주님사랑' '하나님께드립니다' 각 10만원 ▷'26.1.27기사' '김미라베로니카' '꿈꾸는나비' '박성호님힘내세요' '베네딕도' '엄마병꼭나으세요' '예수님 사랑해요' '응원합니다' '후원합니다' 각 5만원 ▷'힘내세요' 3만2천344원 ▷'RYU Y' '박성호님' '박성호님힘내세요' '응원합니다'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힘내세요' 각 3만원 ▷'무명' '박성호감사' '박성호님께' '박성호님에게' '박성호씨힘내세요' '박성호후원' '주의은혜' 각 2만원 ▷'이웃' 1만5천원 ▷'소망' 1만2천957원 ▷'to박성호' '당진국가대표고기대박' '도움이' '미정씨에게행운이' '박성호님힘내세요' '박성호님응원합니다' '박성호씨에게써주세요' '석희석주' '성호씨에게' '응원해요' '지장보살' '평안하시길' '힘내세요' '힘내세요' '힘내세요!' '힘내세요' '.' 각 1만원 ▷'당진예당임대대박' 9천원 ▷'꼭.힘내세요' 7천777원 ▷'성호님돕기' '용기잃지마세요.사랑' 각 7천원 ▷'DEAN' 5천원 ▷'성호님돕기' 3천원 ▷'잔액돕자돕자돕자' 825원 ▷'돕기' 570원 ▷'잔액돕기돕기' 544원 ▷'돕자돕자돕자' 378원 ▷'돕기' 353원 ▷'돕기돕기돕기' 289원 ▷'돕기돕기' 100원 ▷'잔액돕기' 4원. ※기부금 영수증은 입금자명으로만 발행이 가능합니다.
2026-02-02 15:49:46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희망 2026 나눔 캠페인' 폐막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신홍식)는 2일 대구 동성로 입구광장(옛 중앙치안센터 앞 분수대)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앞에서 '희망 2026 나눔 캠페인' 폐막식을 열고 62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희망 2026 나눔 캠페인'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총 62일 동안 진행됐다. 대구모금회의 최종 모금액은 111억원(목표액 106억2천만원)으로 사랑의 온도 104.6도를 달성했다. 폐막식에는 신홍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과 운영위원회 위원, 이재홍 대구시 보건복지국장 등 20명이 참석해 나눔의 의미를 함께 나눴다. 올해 캠페인은 개인 기부 증가와 기업 현물 기부 확대가 두드러졌다는 게 대구모금회 측 평가다. 일상 속에서 소액으로 모인 개인 성금이 쌓여 100도 달성의 든든한 밑거름이 됐고, 경기 침체와 지난해 초 발생한 대형 산불 피해 복구에 이미 상당한 기부금이 지출된 상황에서도 기업들의 현물 기부가 확대되며 목표 초과 달성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신홍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눔에 동참해주신 시민과 기업, 단체 여러분 덕분에 희망의 온도가 100도를 넘어설 수 있었다"며 "성금은 대구지역 취약계층과 사회복지 현장 등 꼭 필요한 곳에 소중히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대구모금회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조성된 성금을 저소득 가정과 아동·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에 투명하고 공정하게 지원할 예정이다.
2026-02-02 15:47:38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희망 2026 나눔캠페인' 폐막식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전우헌)는 2일 경북도청에서 '희망 2026 나눔 캠페인' 폐막식을 열고, 지난해 12월 1일부터 62일간 이어진 연말연시 대표 이웃사랑운동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경북모금회는 이번 캠페인에서 최종 모금액 221억원을 기록하며, 목표액 176억7천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나눔온도 125도를 기록했다. 특히 나눔온도는 17개 시·도 지회 중 전국 최고 수준을 달성했다. 모금 참여 현황을 보면, 개인 기부자가 109억원으로 49.3%를 차지했으며, 법인 기부자는 112억원으로 50.7%를 기록했다. 소액 개인 기부부터 기업 기부까지 도민이 함께 마음을 모은 결과로, 경북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나눔 지역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는 게 경북모금회 측 설명이다. 폐막식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전우헌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김호섭 경북도 복지건강국장, 이진복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봉사단 도단장, 황경희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부회장 등이 참석해 성과를 공유하고, 나눔에 동참한 도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전우헌 경북사랑의열매 회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2년 연속 200억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모금액을 달성 할 수 있었던 것은 경북 공동체의 신뢰와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값진 결과"라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번 '희망 2026 나눔 캠페인'이 초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국 최고 수준인 나눔온도 125도를 기록하며 마무리될 수 있도록 마음을 나눠준 도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며 "어려울 때마다 항상 나누고 함께하는 경북의 끈끈한 공동체 정신을 꾸준히 이어가자"고 말했다. 경북모금회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마련된 성금을 도내 복지 사각지대 해소 및 지역 맞춤형 복지사업 등에 투명하고 공정하게 배분할 계획이다.
2026-02-02 15:28:00
[귀한손길 303호] "아이들의 밝은 내일 응원합니다"
현풍연합다담치과의원(원장 홍원표)이 매일신문과 가정복지회의 공동기획 캠페인 '귀한손길'의 303번째 주인공이 됐다. 이번 '귀한손길' 참여는 연말 열린 '산타크루 나눔캠페인'이 계기가 됐다. 현풍연합다담치과는 지역 아동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고민하던 중, 국내외 저소득가정 아동의 꿈을 지원하는 '귀한손길'의 취지에 공감해 참여를 결정했다. 홍원표 원장은 "아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신 앞에 놓인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캠페인에 참여하게 됐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아이들의 밝은 내일을 지원하는 일에 힘을 보태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귀한손길' 캠페인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국내외 저소득가정과 아동·청소년들에게 어제와 다른 내일을 설계할 수 있도록 꿈을 지원하는 캠페인이다. 캠페인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부자(개인·단체·기업)는 가정복지회(053-287-0071)에서 신청할 수 있다.
2026-02-02 14:50:41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는 대구 노변중학교 학생들이 학교 축제를 통해 마련한 40여만원을 이웃사랑 성금으로 기부했다고 27일 밝혔다. 성금은 노변중학교 학생들이 학교 축제(어울마당)에서 부스를 운영해 마련한 수익금이다. 수익금 활용 방안 또한 학생들이 스스로 협의해 전액 기부하는 것으로 뜻을 모으고, 이를 실제 나눔으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대구지사 측 설명이다. 학생들은 축제 준비 단계부터 운영, 수익금 사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수익금이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성금 기부를 선택했다. 노변중학교 학생들은 지난해에도 아나바다 벼룩시장을 통해 마련된 수익금 전액을 경북 산불피해 복구성금으로 기탁하는 등 지역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2026-01-27 13:29:45
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인 '이곳'에 대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국제 사회에 정치적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미국이 '이곳'에 관심을 보인 역사는 깊다. 1867년 윌리엄 수어드 당시 국무장관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일 때 '이곳'도 매입 후보지로 검토됐다. 다만 알래스카 매입조차 '수어드의 바보짓'이라는 비난 여론이 컸기에 구상에 그쳤다. 미국이 '이곳'에 본격 개입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1940년 덴마크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덴마크령인 '이곳'도 타깃이 됐다. 이에 헨리크 카우프만 당시 주미국 덴마크 대사는 미국으로부터 후원을 약속받고 '이곳'을 '자치 지역'으로 선포했다. 이후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이곳'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했다. 1946년 트루먼 대통령은 '이곳'을 1억 달러에 매입하려고 시도했으나 덴마크 측 거부로 불발됐다. 다만 덴마크는 1951년 방위협정을 통해 미국의 군사기지 유지와 항공·해상 교통권 등을 인정했다. 지금도 미국은 '이곳'에 피투피크 우주기지를 두고 미사일 방어 및 우주 감시 시스템에 활용하고 있다. '이곳'은?(1월 21일 8면) 2. '이 미술관'은 1939년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 자동차 쇼룸을 개조한 건물에서 출발했다. 이후 1943년 영구적인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게 된다. 프로젝트를 맡은 이는 당시 미국의 대표적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였다. 그는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 전시 공간 개념을 과감히 탈피하며 전례 없는 혁신적인 미술관 건물을 설계했다. '이 미술관'은 직선으로 규격화된 맨해튼의 도시 속에서 거꾸로 된 거대한 나선형의 파격적인 건축이다. 격자 가로망의 근대도시 질서에 벗어나는 독립주의 건축은 센트럴 파크 자연풍경과 수직도시의 경계에서 완충적 오브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술관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꾼 건축적 명성에 힘입어 '이 미술관'은 빌바오, 베네치아, 아부다비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시로 확산하는 '미술관 프랜차이즈'가 됐다. '이 미술관'은?(1월 23일 18면) 3. 대구 중구 남성로 일대에 있는 '이곳'은 대구의 상징이자 가장 오래된 명물거리다. 350년 넘게 이어진 '이곳'은 조선 중기부터 약재를 거래하던 한약재 시장으로, 중국 상인들까지 찾아오던 국제적 무역 공간이었다. 탄생 배경에 대해선 두 가지 설(說)이 있다. 조정에 필요한 약재를 수집하기 위해 1658년에 설치되었다는 것과 중국 또는 일본 무역품으로서의 한약재를 수집하기 위해 설치됐다는 설이 있다. 지금도 '이곳'엔 한약방과 한의원이 밀집해 있고, 매년 5월이면 '대구약령시한방문화축제'가 열려 대구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행사가 된다. 한방특구로 지정된 이 거리는 단순한 상업지가 아니라, 향기로운 약초의 거리이자 건강과 전통의 문화를 잇는 공간이다. '이곳'은?(1월 26일 24면) ◆1월 14일 자 시사상식 정답 1. 피지컬 AI 2. 한한령 3. 블랙아이스
2026-01-27 11:19:15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신홍식)는 한국OSG 주식회사가 '희망 2026 나눔 캠페인'에 이웃사랑 성금 5천2만원을 기탁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성금은 한국OSG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마련한 성금으로 지역사회를 향한 따뜻한 연대의 의미를 더했다는 게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 설명이다. 성금은 대구지역 사회복지 시설·기관 5곳과 취약계층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한국OSG 주식회사는 절삭공구 개발 및 공급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 그동안 임직원 참여형 나눔 활동과 기업 차원의 사회공헌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2003년도부터 시작한 기부는 착한일터 참여, 산불 피해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지금까지 기부금 누적액은 7억여원에 달한다. 정태일 한국OSG 회장도 지난 2013년 대구 16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고액기부를 통한 나눔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정태일 회장은 "임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정성이 모여 더 큰 나눔이 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홍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지역사회를 위해 꾸준히 책임 있는 나눔을 실천하는 한국OSG 주식회사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희망나눔 캠페인 목표 달성에 큰 힘이 됐다. 기탁해주신 성금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했다.
2026-01-27 1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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