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購讀)은 책, 신문, 잡지 등 정기 간행물을 일정 기간 구입해 읽는다는 의미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구독은 극히 일부가 됐고 대부분 온라인 콘텐츠나 배송(配送)·관리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한다는 뜻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하나둘 신청한 구독 서비스가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지경이다. 1만원 안팎의 구독 서비스를 서너 개만 이용해도 매월 5만원 정도 지출한다. 굳이 필요할까 싶어 해지하려 해도 딱히 어떤 서비스를 끊을지 애매한 데다, 신청 때와 달리 스마트폰에서 해지(解止) 버튼을 찾기조차 힘들다. 올 초 성인 1천 명 대상의 한 조사에 따르면, 95%가량이 구독 서비스 이용 경험이 있고, 40%가량은 3~4개 서비스를 이용했다. 7개 이상 이용자도 10%에 육박했다. 월간 구독료로 10만원 이상 지출한다는 응답자는 4명 중 1명꼴이나 됐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 등에 따르면, 넷플릭스 사용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1천300만 명, 쿠팡 유료 회원은 1천500만 명, 배달의민족은 6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업체들이 가입자 통계를 공개하지 않아서 대부분 추정치다.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다. 네이버 유료 회원도 1천만 명, 유튜브 유료 이용자도 7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구독료 부담이 크다 보니 요금이 싼 외국 계정(計定)으로 우회해 가입하거나 한 계정을 여러 명이 공동 구매하는 방식도 있지만 업체와의 숨바꼭질에서 늘 가입자는 지게 마련이다. 대안처럼 등장한 것이 광고형 요금제다. 애초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광고 없이 콘텐츠만 보는 대가로 돈을 받는데, 광고를 보는 대신 요금을 깎아 주는 방식이다. 가입자 폭증으로 OTT 광고 시장이 새로 뜬다. 돈 내고 광고 보는 세상이다. 인공지능(AI) 구독도 있다. 맛보기 무료 이용이 많지만 전문가용은 월 수십만원씩 부담해야 한다. 인건비보다 훨씬 싸다며 일반 사무직원을 뽑는 대신 4, 5가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컴퓨터로 업무를 해결하려면 AI 구독은 필수로 자리 잡을 것이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AI 업체에 상납(上納)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신문, 우유 사절(謝絕)과 달리 미래 구독 서비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자기 의지로 끊어 낼 수 없는 상황을 흔히 종속 또는 속박이라고 말한다.
2025-10-29 05:00:00
은값 상승세가 무섭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 가격이 연일 최고가를 깨자 은도 덩달아 뛴다. 상승률은 금을 압도(壓倒)한다. 금에 가려졌던 은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듯하다. 물론 가격은 금이 훨씬 비싸다. 21일 한국금거래소 기준 순금 한 돈(3.75g) 시세는 92만원(살 때), 은 시세는 1만1천790원으로 금이 80배가량 비싸다. 지난 5월만 해도 국제 금과 은 가격 격차는 100배에 달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128배까지 벌어졌다. 역사적 평균은 40~60배 정도였는데, 올 들어 은이 기록적 상승세를 보였음에도 아직 80배라는 말은 여전히 은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은의 독특한 물리적 성질 중 하나는 반사율(反射率)이다. 가시광선을 90% 이상 반사한다. 고가의 거울은 은으로 코팅돼 있다. '진실을 비추는 금속'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다만 반사성은 오래가지 않는다. 공기 중 황화물에 닿으면 쉽사리 검게 변색된다. "거울이 흐려지면 거짓이 깃든다"는 서양 미신이 생겨난 배경이다. 은은 정화(淨化)의 금속이기도 하다. 은 이온은 세균 단백질을 분해해 번식을 억제한다. 중세 수도사들은 은잔에 물을 담아 '썩지 않는 물'이라 불렀고, 20세기 초까지 은은 항생제가 등장하기 전 가장 신뢰받는 살균제였다. NASA(미국 항공우주국)는 우주선 식수 정화장치에 은을 쓴다. 현대 산업에서 은은 더욱 필수적 존재가 됐다. 구리보다 전도율(傳導率)이 뛰어나지만 가격과 공급 문제로 제한된 곳에만 쓰인다. 태양광 패널, 반도체, 전기차, 스마트폰 카메라도 은이 있어야 완성된다. 국제은협회에 따르면 2024년 은의 산업용 수요 비중은 전체의 56%로, 10년 전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그런데 공급이 문제다. 은광 자체는 줄어들고, 대부분 은은 구리·납 광산의 부산물로 얻어진다. 2024년 세계 은 생산량은 2만5천500톤(t)인데 수요는 3만7천600t에 이른다. 은의 부활은 가격 상승이 아니라 기술적 전환의 신호다. 1GW 전력을 생산할 만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면 은 200t가량이 필요하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30년까지 세계 태양광 설비가 3배 늘면, 은 수요는 지금의 2배가 된다고 내다봤다. 금은 쌓이지만, 은은 에너지와 함께 흐른다.
2025-10-22 05:00:00
[매일칼럼-김수용] 꿈을 박탈당한 20대, 나라의 미래도 사라진다
얼마 전 한국경제인협회는 '2014∼2024년 세대별 실질소득 추이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최근 10년간 체감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을 분석한 결과인데, 자못 충격적이면서 청년층의 고민과 세대 갈등, 불합리한 경제·사회적 구조 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듯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20대 청년층의 실질소득 증가율이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낮았다는데, 일견(一見) 당연해 보인다. 고착화한 낮은 경제성장률과 일자리 부족, 치솟는 물가 등을 감안하면 실질소득 증가 자체가 놀라울 수도 있다. 그러나 연평균 1.9%에 불과한 20대 증가율에 비해 60대 이상은 3배 가까운 5.2%를 기록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구직시장에 뛰어든 60대 이상 노년층이 해마다 증가한다는데 이들의 소득 증가율은 단연 두드러진다. 경제개발 호황기를 거친 기성세대가 노년층에 편입되면서 이들의 자산이 증식(增殖)한 것도 원인 중 하나다. 부동산 폭등이 젊은이들에겐 좌절과 박탈감을 안겼고, 퇴직 세대들에겐 부의 상승을 가져왔다는 말이다. 경제적 여력이 바닥을 치는 상황인데 젊은이들의 사회적 부담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인구 비율에서 20대는 70대 이상 노령층에도 추월당했다. 국가데이터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인구는 630만여 명으로 전년보다 약 20만 명 줄었다. 70대 이상 인구 654만여 명보다 적은데, 1925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이다. 50대 871만여 명, 40대 780만여 명, 60대 779만여 명 순으로 20대 인구가 성인 연령대 중 가장 적다. 제 목소리 내기도 힘든 처지다. 이들이 활발히 경제활동에 참여해 고소득을 올리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를 넉넉히 내야 선순환(善循環)이 이뤄질 텐데 현실은 반대다. 안정적 일자리는 갈수록 귀해진다. 젊음이 기회와 도전의 동의어이던 시대는 지났다. 인구가 줄어든 만큼 노동시장에서 20대 인력 구하기가 힘들어져야 하는데 청년들은 구직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지난 8월 20대 고용률은 60.5%로, 꾸준히 낮아지고, 20대 실업률은 5%로 3년 만에 최고치다. 대규모 공채는 사라졌고 경력직 수시 채용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일할 기회조차 없는데 경력을 쌓아야 한다. 금융위기나 코로나 팬데믹 당시만 해도 곤두박질쳤던 고용시장이 이내 회복돼 청년층 고용 한파(寒波)도 사라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고, 일자리 창출은 거의 없다. 경제가 회복돼도 양질의 일자리가 대거 늘어날 것으로 보긴 어렵다. 통계 작성 이래 처음 50만 명을 넘긴 '쉬었음' 청년(15~29세)이 결국 장기 백수로 남아 경제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극히 일부지만 고수익 일자리를 찾아 캄보디아로 떠났다가 불법 감금과 고문을 경험한 청년들 사태가 구조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편하게 돈 벌려 했으니 인과응보(因果應報)라며 욕할 수 있지만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제2, 3의 캄보디아 사태가 없으리라고 단언할 수 없다. 청년 문제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장기간 누적된 경제·사회적 문제가 악화하면서 빚어진 구조적 위기"라고 했다. 한두 정책으로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일 텐데, 결국 한정된 파이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불공정을 외치는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가 올바른 답을 내놔야 할 때다. 그래야 나라가 살 수 있다.
2025-10-21 05:00:00
알고리즘은 문제 해결을 위한 단계별 방법이다. 입력에 따라 명령을 실행하고, 효과적으로 결과물을 도출(導出)하는 과정이다. 정의를 검색해 보면 '정지, 제한, 유한, 절차, 반복' 등의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조합해 풀어 보면 '정해진 틀'에 다다르는데, 최근 논란 중인 포털과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즉 소셜미디어가 사용자에게 특정 정보를 보여 주는 규칙이나 기준이 알고리즘이다. 그런데 여기서 괴리감(乖離感)이 생긴다. '입력에 따라'는 사용자가 모든 선택권을 쥔 듯 보이는데, '정보를 보여 주는' 부분은 대형 SNS 기업들이 주도권을 가진 듯 느껴진다. 유튜브는 사용자와 성향(性向)이 비슷한 이들이 높게 평가한 콘텐츠, 앞서 본 콘텐츠와 비슷한 유형의 콘텐츠, 시청 시간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콘텐츠를 추천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용자의 선택권 문제가 등장하는 민감한 부분이 바로 여기다.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정보만 계속 보여 줘 특정 정보와 견해에 갇히도록 만드는 것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부른다.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만 찾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확증편향(確證偏向)이 굳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취향과 관점에 따라 특정 분야만 검색한다는 '반향실 효과'(Echo-chamber Effect)와는 다르지만 SNS에 매몰되면 생각과 정보의 심각한 편중에 이른다는 결론은 같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우파 활동가 찰리 커크 암살 배경으로 극단적 좌우 양극화를 부추기는 SNS 알고리즘이 지목됐다. 공화당 소속 스펜서 콕스 유타 주지사는 "암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하다. 알고리즘이 얼마나 악독한지 깨닫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고 했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사업권 논란 배경도 알고리즘이다. 1억7천만 명이 넘는 미국인 사용자의 데이터가 중국으로 유출된다는 불안감이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동영상 추천 알고리즘, 콘텐츠 심사 권한은 틱톡 미국 합작법인이 갖고, 민감 데이터는 미국 기업이 운영하는 클라우드에만 저장되도록 했다. 알고리즘은 대중을 감시·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확증편향 위험을 깨닫고 다양한 경로로 정보와 견해를 검증(檢證)해야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틀을 깨기가 참 쉽지 않다.
2025-10-15 05:00:00
기존 질서의 틀을 송두리째 바꾸는 혁명은 평등을 지향하는 듯 보인다.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둔 사회혁명과 기술 진보에 따른 산업혁명도 기회와 생산, 자본 재분배를 통한 보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지지 세력을 규합(糾合)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과물은 항상 정반대로 치달았다. 농업혁명, 공산혁명, 산업혁명 이후 공동체 내부 서열은 더욱 공고해졌고, 불평등 심화로 계층 이동 사다리는 차츰 허약해졌다. 산업혁명은 사회적 해체, 농촌과 도시 빈민층을 발판 삼은 자본 계급의 등장을 촉발했고, 식량 생산과 소득 증가를 짓누를 정도로 불평등이 심화했다. 자본과 기술 획득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여성과 아동은 값싼 노동력 제공자로 전락했고, 사회는 이를 당연시했다. 인공지능(AI) 혁명도 앞선 혁명들의 전철(前轍)을 밟을 것이다. AI 등장 전 인류가 소박하고 행복했노라고 회상할 정도로 가혹한 불평등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인간 능력 확장을 위한 도구가 일자리를 빼앗고 기회를 제거해 상실과 박탈의 그늘로 인간을 내쫓을 수 있다. 최근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 도입으로 임금 불평등이 개선될 수 있지만 자산 수익률 상승 효과로 부(富)의 불평등은 심화할 전망이다. AI 업무 대체가 단순 노무직보다 고소득 노동자의 임금 감소를 가져오지만, AI 덕분에 정보를 거머쥔 고소득 노동자들이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통한 자본소득을 크게 늘리면서 오히려 부의 불평등은 커진다는 말이다. 정보와 자본의 밀착은 전례(前例)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될 것이며, 둘의 시너지는 지극히 배타적이고 독점적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토의를 주재하며 "극심한 기술 격차가 '철의 장막'을 능가하는 '실리콘 장막'으로 작동해 전 세계적 불평등과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면서 '모두를 위한 AI' '인간 중심의 포용적 AI' 혁신을 강조했다. AI에 국운을 걸다시피 한 이재명 정부는 전폭적 투자를 약속했지만 불평등 대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짐작건대 자본세 부과, 기본소득 지급 등 복안을 갖고 있지만 공론화하기엔 시기상조로 보는 듯하다. 사족(蛇足)을 달자면 '모두를 위한 AI'는 인류의 모든 부를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만큼 어려워 보인다. ksy@imaeil.com
2025-10-01 05:00:00
죽음을 두고 경중(輕重)을 잴 수는 없다. 의롭고 안타까운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을 두고 애도의 깊이가 다를지언정 죽음은 그 자체로 허망하고 슬프다. 그러나 현대인이 일상에서 접하는 가장 비참한 죽음은 단연 고독사(孤獨死)일 것이다. 삶이 끝나는 순간 아무도 지켜보지 않고, 심지어 수개월이 지나서야 알려지는 죽음. 일본에선 올해 상반기 '고립사'(우리나라 고독사)가 1만1천669명에 이른다. 홀로 집에서 숨진 4만913명 중 사후 8일 이상 지나 시신이 발견된 경우만 해당하는데, 지난해 상반기보다 12%가량 늘었다. 보건복지부 '2024년 고독사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3천378명, 2022년 3천559명, 2023년 3천661명으로 우리나라도 매년 증가세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에 따른 건강 악화로 죽음에 이르는 인구는 전 세계에서 시간당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핵가족화, 지역 공동체 해체, 정서적 교류 부족 등이 가져온 결과다. 지난 2020년 우리나라에선 '고독사 예방법'이 제정됐는데, 당사자가 고독사 위험에 대한 도움을 요청할 권리와 국가·지자체가 적극 보호할 의무를 담았다. 사회와 단절(斷絕)된 뒤 도움조차 구하지 못한 채 맞는 쓸쓸한 최후가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2021년 기준 고독사 사망자의 44.3%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사회안전망 안에 있었음에도 이들은 홀로 죽음을 맞아야 했다. 사회적 돌봄 체계를 바꿔야 한다지만 한계도 있다. 인공지능(AI)의 발전에 힘입어 AI 반려(伴侶)로봇이 주목받고 있다. 사용자 얼굴과 목소리를 알고 감정에 맞춰 반응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인간 입장에선 로봇과 교감한다고 느낄 정도다. 시장조사 업체에 따르면, 세계 AI 반려로봇 시장은 2030년 4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인간형 AI 로봇이 등장한다면 단순히 반려 수준을 넘어 가족이나 친구 역할도 가능하다. 물론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그런 구분조차 모호한 로봇이 등장한다면 그에 따른 윤리적·도덕적 논란도 불가피하다. 역사상 지구상에 가장 많은 인간이 존재하는 시대에 인간의 외로움과 쓸쓸한 죽음을 막기 위해 로봇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매우 모순적이지만 현대인의 부조리(不條理)가 이뿐이겠는가. ksy@imaeil.com
2025-09-24 05:00:00
국내총생산(GDP)은 한 국가에서 생산되는 모든 종류의 상품과 서비스 가치의 총합이다. 나라의 경제 규모를 수치화(數値化)한 것인데, 이를 인구로 나누면 1인당 GDP다. 소득분배나 복지지표 등을 감안하지 않은 단순 수치여서, 1인당 GDP만을 비교해 어느 국민이 잘살거나 못산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GDP가 중요한 이유는 국가 정책에 따른 경제 성장과 변화를 반영해서다. 올해 우리나라 1인당 GDP가 22년 만에 대만에 추월(追越)당할 전망이다. 2003년 한국(1만5천211달러)이 대만(1만4천41달러)을 앞선 뒤 2018년엔 격차가 1만달러가량 벌어졌는데 급기야 역전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일본이 한국에, 한국이 대만에 뒤처지게 된 결정적 이유를 되새길 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세계 경제 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한국과 대만의 1인당 GDP가 2026년 역전된다고 내다봤는데, 1년 앞당겨졌다. 반도체 호황(好況)에 대만 경제는 올해 2분기 8% 넘게 성장했다. 올해 성장률은 4%대 중반, 내년 전망치도 3%에 육박한다. 그런데 한국은 2분기 0.7%, 올해 0.9%, 내년 1.8%다. IMF는 2030년엔 한국이 다시 대만을 앞선다고 예측했었는데, 이런 추세라면 빗나갈 공산이 크고,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1인당 GDP 4만달러 돌파도 대만이 한국보다 앞설 전망이다. 대만은 내년, 한국은 2027년을 예상한다. 그것도 정부가 제시한 성장률과 원·달러 환율이 순탄(順坦)하게 유지됐을 때 시나리오다. 정부는 정체(停滯)의 주요 원인으로 혁신이 늦춰진 제조업을 꼽는다. 주력 산업이 선박·석유제품·자동차·반도체 등에 머물다 보니 성장률도 지지부진(遲遲不進)하다고 판단해 인공지능(AI)·초혁신경제 투자를 전면에 내세웠다. 빚을 내서라도 국가 경제 덩치를 키우면 GDP 대비 국채 비율이 낮아진다며 잠재성장률 높이기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AI로 구조개혁을 이룰 수 없고, 고물가에 신음하는 내수와 마냥 쉬고 있는 청년들의 고민도 AI 집중 투자로 해결할 수 없다. 인구 위기부터 재정 고갈 지경에 내몰린 국민연금·건강보험 문제를 외면한 채 성장률을 높일 비법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ksy@imaeil.com
2025-09-17 05:00:00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수도권 부동산 폭등 우려와 가계대출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10월부터 통화정책 방향을 완화, 즉 금리 인하로 선회(旋回)한 까닭은 0%대 경제성장률 때문이었다. 내수 침체와 건설업 부진에다 관세 전쟁이 촉발한 수출 감소 우려 탓에 제조업마저 위축되자 성장률 전망치 달성조차 불확실해졌다. 그런데도 7, 8월 연속 금리를 동결한 이유는 금융시장 불안이 점차 커져서다. 2.0%포인트(p)로 역대 최대인 미국과의 금리 격차(隔差)도 이유다. 45조6천억원 규모의 2차례 추경과 소비쿠폰 발행으로 소비심리가 다소 회복된 점도 인하 압박을 덜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 동결로 시간을 벌었을 뿐 10월엔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에서 0.9%로 올렸는데, 소비 회복 효과와 미국 관세 협상 결과 등을 반영한 미세 조정일 뿐이다. 0%대 저조한 성장률을 탈피(脫皮)하기 위해서라도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 내년엔 완만한 반등을 기대하며 성장률 전망치 1.6%를 유지했는데, 2% 아래로 떨어진 잠재성장률로는 쉽잖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밝혔듯 관세 협상 재촉발, 노사 갈등 확산, 수출 불안, 석유화학 등 제조업 구조조정 등 경기 위축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성장률 제고(提高)를 장담하며 야심 차게 추진한 추경과 소비쿠폰도 휘발성 효과에 그쳤다. 적자성 국채도 큰 짐이다. 올해 국고채 이자 지출만 30조원을 넘어설 전망인데, 확장 재정을 위해 국채 발행은 늘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때 발행한 대규모 국채의 만기(滿期)도 돌아온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경기 부양 기대감이 커져 해당 국가의 국채 금리 인하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법칙처럼 통하는 공식은 아니다. 국채 발행이 늘면 금리는 오른다. 주요국조차 대규모 재정 적자로 국채 금리 급등과 신용등급 하향 전망까지 나오는 판이다. 한국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충격은 기축통화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스테이블 코인 등 가상화폐를 필두로 한 탈중앙화(脫中央化) 움직임마저 거세지면서 중앙은행의 금리를 통한 통화정책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ksy@imaeil.com
2025-09-10 05:00:00
[매일칼럼-김수용] 이공계 인재 유출로 경제 성장판 닫힐 판이다
인재 유출(流出)이 심각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우주항공, 바이오 등 미래 성장을 담보할 첨단 분야 고급 두뇌들이 한국을 떠난다. 심각한 의대 쏠림 현상은 무분별한 증원 정책 탓에 훨씬 심각해졌고, 국내 이공계 인력들은 고액 연봉과 자율성 등을 좇아 글로벌 기업들로 빠져나간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기술 연구 인력은 2024~2028년 약 4만7천 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5년 전(2019~ 2023년) 800명 부족에서 60배가량 급증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AI 인재가 100만, 1천만 명 필요하지만 계속 빠져나간다"고 했다. 스탠퍼드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AI 인재 순유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였다. 유입은커녕 빠져나가서다. AI 패권(霸權) 장악에 나선 미국과 중국 등은 국운을 걸고 인재를 끌어들인다. 사람이 곧 경쟁력이자 미래임을 알기 때문이다. 국내 체류 외국 인재가 100만 명 늘면 국내총생산(GDP) 6%에 해당하는 145조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135만 명인 국내 등록 외국인이 500만 명까지 늘면 361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 저출산·고령화 흐름에 인재 유출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뛰어난 외국 고급 인력을 유입해 생산성과 소비를 동시에 높여야 한다는 말이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R&D(연구개발) 생태계 혁신을 위한 연구 현장 간담회'를 통해 "국내에서 충분히 연구할 만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마련해 줬다면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는 의견을 밝혔다.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은 국내 이공계 석박사 인력의 10%를 차지하는 외국인 연구자의 한국 조기 적응을 위해 생활 적응부터 연구와 경력 개발, 취업 등 전 주기를 지원하는 정착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고 8일 밝혔다. 더불어 2008년 과학기술부가 교육부에 통합되면서 사라졌던 과학기술부총리가 17년 만에 부활한다. 과학기술 R&D 역량 강화를 통해 AI를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담아낸 조직 개편이다. 지난해 3조3천억원에 불과했던 AI 예산도 10조1천억원으로 3배 이상 늘렸다. 과학기술부총리는 내년 역대 최대인 35조3천억원 규모의 R&D 예산 심의·조정 권한을 갖는다. 힘 있는 부처에 밀려 정책 결정권의 한계가 드러났는데, 부총리로 격상되면서 이를 해소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여전히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R&D 예산 35조3천억원 중 기초연구 예산은 전년 대비 15%가량 늘어난 3조4천억원이다. 과학기술부는 지난 5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통해 기초연구 질적 고도화를 위해 R&D 예산 중 기초연구 사업 비중을 10% 이상으로 유지한다고 공언했으나 내년 비중은 9.6%에 불과하다. 비율로만 따지면 올해 9.8%보다 더 줄어든 셈이다. 무엇보다 정책 수준의 대응으로 인재 유출의 물줄기를 바꿀지는 의문이다.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연공서열(年功序列)에 따른 임금체계 등은 배려 차원의 정책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의 우수 학생을 육성해 국내에 체류하게 한다지만 기존 유학생과 연구자들조차 졸업 후 한국을 떠난다. 근본 원인을 바꾸지 못하면 고액 연봉과 주거(住居) 제공도 땜질식 처방일 뿐이다.
2025-09-09 05:00:00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1821~1896)은 소득이 적은 가정일수록 지출에서 음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엥겔의 법칙'을 발견했다. 가계비(家計費) 중 음식비 비율을 '엥겔지수'라고 하는데, 대체로 소득이 높은 가정일수록, 선진국일수록 지수가 낮다. 우리나라는 중간 소득층, 즉 소득 수준 40~60% 가정의 외식비를 포함한 엥겔지수가 2020년 기준 30% 정도였다. 그런데 엥겔지수는 흐름을 봐야 한다. 특정 시기에 소득계층과 국가 간 비교는 가능할 수 있지만 물가 변동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절댓값을 기준으로 고소득층, 저소득층을 나누지 않는다. 소득 수준과 엥겔지수가 반비례한다지만 물가가 급등하면서 반대 상황도 곧잘 벌어진다. 지난 2월 일본에선 엥겔지수가 43년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며 시끄러웠다. 2인 가구 기준 지난해 엥겔지수가 28.7%인데, 1981년 이후 최고다. 가계 실질 소비지출, 즉 물가상승분을 감안(勘案)한 지출 감소보다 식비 감소가 적어서 벌어진 일이다. 물가가 치솟다 보니 집집마다 지갑을 닫았는데, 식비는 덜 줄였다는 말이다. 벌이가 시원찮아도 먹거리는 아끼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식료품값이 오르다 보니 허리띠를 졸라매도 씀씀이는 더 커졌다는 의미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진다. 지난 7월 기준 일본 쌀값은 1년 만에 90.7% 폭등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8개월째 3% 이상 올랐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외식비 비중이 늘어난 데다 2022년부터 물가 급등에 따라 실질임금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엥겔지수도 올랐다. 심지어 정점을 찍은 엥겔지수가 다시 낮아진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 가구의 엥겔지수가 전년보다 낮아졌다는데, 이유가 서글프다. 신선식품 가격이 워낙 뛴 탓에 대체 가공식품을 소비해서다. 생물 꽁치 대신 꽁치 통조림을 사 먹었다는 말이다. 유기농, 무농약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최저가 찾기에 바쁘다. 올해 2분기엔 아예 먹거리 소비지출이 감소했다. 전체 지출액은 늘었지만 물가상승분을 감안한 실질 소비는 줄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먹사니즘이나 모두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잘사니즘도 좋지만 식비까지 줄이는 판에 내수가 회복될 리 없다. 물가와의 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ksy@imaeil.com
2025-09-03 05:00:00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줄지어 은퇴하면서 노후 생활에 대비한 연금이 화두(話頭)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3중 연금' 구조를 갖추라고 조언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여생(餘生)을 책임질 줄 알았던 국민연금은 용돈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2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층의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67만5천원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1인 적정 생활비가 192만원 정도이니, 용돈이 맞다. 개인연금까지 가입해 그나마 여윳돈을 받는 은퇴자는 전체의 5% 남짓이다. 퇴직연금도 골치 아프다. 쌓아 놓은 돈에 비해 수익률이 터무니없이 낮아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431조7천억원에 달한다. 1년 만에 49조3천억원이 늘었다. 퇴직연금 가입률이 53%임을 감안하면, 추가 가입 시 적립금은 연간 18조~19조원에 달해 2033년엔 940조원을 넘어선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 최근 10년간 평균 수익률은 2.3%에 불과하다. 연금에 넣어 두느니 평균 금리 3%대인 정기예금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다. 지극히 소극적인 퇴직연금 운용(運用) 구조 때문인데, 거의 대부분이 원리금을 보장해 주는 은행 예금이나 국공채 등에 묶여 있다. 새 정부 들어 퇴직연금 개혁 논의가 활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선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을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일시불 퇴직금은 사라지고 퇴직연금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수익률 제고(提高)를 위해 퇴직연금 기금화도 추진한다.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이 나오면서 퇴직연금 기금을 누가 어떻게 굴릴지도 관심사다. 국회에 여러 법안이 올라와 있는데, 운용 주체를 두고 이해집단 사이에 첨예하게 맞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퇴직연금 운용에도 상식을 뛰어넘었다. 최근 퇴직연금 계좌의 가상화폐 투자를 법제화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가상화폐 투자가 가능해진다는데, 증권사 분석에 따르면 2027년 1분기에 가상화폐 시장 유입 자금이 한화(韓貨)로 122조~616조원에 이른다. 트럼프의 가상화폐 사랑은 유명하지만 안정성을 담보해야 할 퇴직금을 두고 도박을 벌여도 괜찮을지는 의문이다.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로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면 퇴직금도 공중분해된다. ksy@imaeil.com
2025-08-20 05:00:00
기후의 항상성(恒常性)이 깨지면서 이변이 속출하고 먼 미래를 다룬 영화의 소재로만 여겨졌던 극한의 기상 현상이 수시로 벌어지자 '기후 스트레스'까지 생겨났다. 농작물은 직격탄을 맞았다. 식량작물은 물론이고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과수 수확량도 급감했다. 급기야 선선한 강원도 산간에서 재배되는 고랭지 배추마저 사라질 판이다. 2050년대엔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의 97%가 없어진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초콜릿 원재료인 카카오빈(코코아) 가격은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불과 3년 전에 비해 3배나 올랐는데 이상고온, 홍수, 병충해 탓에 작황이 크게 악화돼서다. 최근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식량안보 장관회의 핵심 주제로 기후변화가 등장한 것은 당연하다. 얼마 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4만1천 년 전 지구 자기장(磁氣場) 변화 탓에 지표면에 닿는 자외선과 우주 방사선이 폭증했는데, 1천 년이 흘러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중위도 지역까지 쏟아진 자외선과 우주 방사선 때문에 여러 생물종이 멸종했다. 연구진은 현생 인류가 동굴에 살면서 황토를 피부에 발라 자외선을 차단한 것이 생존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시간이 흘러 지표면 생명체는 자외선 공포에서 벗어났다. 성층권에 있는 오존층이 막아 준 덕분이다. 그런데 지난 1985년 남극 상공에서 거대한 오존 구멍이 발견됐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 중에 빌 게이츠의 기후테크 지원이 눈에 띈다.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 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2015년 설립 후 35억달러(약 5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전기로 비행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항공기, 재생에너지를 열로 바꿔 저장하는 열 배터리, 물과 토양 사용을 99% 줄이고 세포를 배양해 면화(綿花)를 생산하는 기술 등이 있다. 발상의 전환은 미래를 바꾼다. 냉매제인 프레온가스를 금지한 덕분에 걱정스럽던 오존층이 상당 부분 회복됐고, 10년 뒤 완벽 복구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늘 걸림돌이다. 기후변화에 맞설 마지막 보루(堡壘)인 파리기후협정에서 미국이 탈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결정한 일이다. ksy@imaeil.com
2025-08-13 05:00:00
8월 둘째 주 최대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인 97.8GW(기가와트)까지 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8월 20일 97.1GW 기록을 1년 만에 갈아 치우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10GW가량 예비전력을 유지해 비상 상황이 없다면 블랙아웃(대정전) 가능성은 낮지만 이상고온이 지구촌을 덮치며 곳곳에서 전력 대란(大亂)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선 지난달 4일 전국 전력 부하가 1천465GW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유럽에선 전력 수요가 전년 대비 10% 이상 급증하면서 대정전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스위스와 프랑스 원자력발전소는 냉각수용 강물 온도가 치솟으면서 일부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전력 부족 사태를 걱정하게 만드는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지난 4월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구동에 필요한 전력량이 오는 2030년까지 945TWh(테라와트시·94만5천GWh)로 지금보다 2배 증가할 전망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연간 전력 소비량(557TWh)보다 훨씬 많다. 1999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에선 AI가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은 전력 공급용 생체 배터리로 전락했다. 얼마 전 마크 저커버그가 밝혔듯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 개발도 가시권이라는데, 얼토당토않은 상상이 현실이 될까 두렵다. 메타,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사업용 전력을 충당(充當)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에 나선다. 심지어 아마존과 구글은 소형모듈원전(SMR) 건설을 추진한다. 중국은 티베트에 수력발전소 5기 건설에 착수했는데, 댐이 완성되면 연간 전력 생산량이 30만GWh에 달할 전망이다. 우리돈 약 232조원이 드는 지구상 최대 단일 프로젝트다. 우리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기로 100% 가동되는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해 AI 데이터센터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산단 기업에 대한 '파격적 전기료 할인 혜택 검토'를 주문했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 판매가보다 재생에너지 생산비가 더 비싸고, 안정적 공급도 어렵다. 하나뿐인 지구를 위한 장기적 포석(布石)일 테지만 과연 사투(死鬪)에 가까운 AI 개발 경쟁 상황에 알맞은 정책인지는 의문이다.
2025-08-06 05:00:00
[매일칼럼-김수용] 대구 제2국가산단, 산업 대전환 디딤돌로
지난주 '대구 미래 스마트 기술 국가산업단지'(가칭 대구제2국가산단) 조성 사업이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2009년 이후 16년 만에 대구 미래 산업을 이끌 두 번째 국가산단을 품게 됐다. 인공지능(AI) 기반 미래 모빌리티·첨단 로봇을 중심으로 한 산업 대전환의 탄탄한 디딤돌을 갖게 된 셈이다. 오는 2030년까지 달성군 화원·옥포읍 일대 255만㎡ 규모로 조성될 제2국가산단에는 국비 1조8천억원이 투입된다. 지난해 12월 국토부는 대구제2국가산단이 기재부 예타 대상으로 선정됐다면서 심사 기간을 종전 8개월에서 4개월로 대폭 단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대보다 통과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대구시 관계자도 언급했다시피 첫 시도 만에 예타를 통과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예타 결과에 따르면 제2국가산단 조성 사업의 경제성(B/C)은 1.05에 달했다. 산단 사업에서 B/C 1.0 이상은 보기 드문 성과로, 11개 국가산단 후보지 중 가장 빠른 예타 통과 사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정책 효과와 지역균형발전 종합 평가도 0.524점을 받아 사업 추진 타당성이 높다고 인정받았다. 정치적 배려나 시혜(施惠)가 아닌 정정당당한 경쟁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 못 할 우위를 선점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鼓舞的)이다. 앞서 대구시는 제2국가산단이 조성되면 7조4천387억원의 직접 투자와 18조6천288억원의 지역 생산유발효과, 8만2천952명의 직간접 고용유발효과 등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고 했다. 예타 과정에서 사업 용지 총면적은 조금 줄었지만 산업용지는 오히려 10만㎡ 늘어나 기업 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경제성 점수에서 알 수 있듯이 제2국가산단은 탁월(卓越)한 입지와 교통·교육·주거 인프라를 갖췄다. 산단 밑그림만 잘 그린다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대구시는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스마트 기술 허브로 조성하기 위해 기존 제조 거점인 성서-달성-제1국가산단과 연계한 신산업 벨트 구축을 추진한다. AI, 로보틱스 등 신산업 전환의 구심점이 되려면 관련 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법인세·취득세 면제, 투자 보조금 확대 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발전특구' 추가 지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앞서 지난 1990년대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다가 고배(苦杯)를 마신 뒤 한동안 국가산단을 유치하지 못한 대구시는 혁신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꼴찌라는 꼬리표가 붙은 지 30년이 넘었다. 미래 비전이 없는 도시는 사람이 떠난다. 인재가 유출되니 기업들도 이전하고, 일자리가 없어져 젊은이가 대구를 등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2009년 제1국가산단 유치 이후 지난 2023년까지 입주한 기업은 275곳에 이르지만 지난해 이들의 매출액은 4조2천억원대에 불과하다. 지역 전체 산단 매출 중 차지하는 비중은 11%대로 떨어졌다. 국가산단은 국책(國策) 사업과 대기업 유치, 정책 지원, 첨단 산업 육성 등에서 매우 유리하다. 그러나 산단 조성이 곧 도시 발전은 아니다. 대기업과 앵커 기업 등 알맹이를 제대로 채워 넣어야 도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역량을 총동원해 제조업 시대를 선도한 산업도시 대구의 명성을 되찾고 기회와 꿈의 도시로 부상할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대구 미래 100년을 이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2025-08-05 05:00:00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10조3천억여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경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는데 금융권 호황(好況)은 여전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로 수익성 악화를 예상했지만 4대 금융그룹은 '이자 놀이'로 21조원 넘게 벌었다. 비이자 이익도 7조2천억여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5천억원가량 늘었다. 금리·환율이 떨어져 유가증권·외환·파생상품 이익이 급증했고, 은행 퇴직연금·방카슈랑스·증권 수수료도 짭짤했다. 예금·대출 금리의 차이, 즉 예대마진이 주 수입원이지만 은행들은 밖에서 볼 때 가만히 앉아 돈을 벌기도 한다. 은행마다 용어가 다르지만 '핵심저금리' 예금이 여기에 해당된다. 핵심이 붙었듯이 은행들마다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저금리에 걸맞게 시중금리가 아무리 올라도 이자 지급액은 쥐꼬리보다 적다. 이런 돈이 상반기에 6조원 넘게 불었다는데, 공공기관이 사업 집행을 앞두고 넣어둔 자금과 개인 급여통장 잔액이다. 은행들의 숨겨 둔 꿀단지인 까닭은 연 0.1%에 불과한 급여통장 이자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은행들은 언제든 돈을 뺄 수 있는 '요구불(要求拂) 예금'이어서 수익 내기가 어렵다거나 입출금·이체 등 편의를 제공한다는 등의 볼멘소리를 한다. 그럼에도 은행마다 지역 상생, 기부 등의 이름을 내걸고 이런 통장 유치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안정된 수익이 보장돼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금융기관을 향해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 놀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664조7천억여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조5천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은 24조원 넘게 불어났다. 대통령의 강한 발언에 놀란 금융권은 화들짝 놀라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가 구상 중인 '100조 국민 펀드' 참여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은행만 탓할 일은 아니다. 부동산 과열이 은행 탓은 아닌 데다 금융비용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에 대출을 떠안길 수도 없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경험했듯이 경제가 흔들리면 은행도 버틸 수 없다. 미증유(未曾有)의 위기가 닥치고 있다. 금융권이 내놓을 공생의 묘책을 기대해 본다. ksy@imaeil.com
2025-07-29 20:18:10
음속(音速)보다 빠른 항공기는 꽤 오래전에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초음속 전투기가 제작됐고, 1962년엔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손잡고 초음속 항공기 개발에 나섰다. 1969년 11월 마하 2, 즉 음속의 2배 비행에 성공했고, 1976년 세계 최초로 상업 운항에도 나섰다. 종전 기록을 모조리 갈아 치운 역사적 항공기의 이름은 바로 '콩코드'다. 안타깝게도 콩코드의 역사는 길지 않았다. 초음속 돌파 때 발생하는 엄청난 굉음(轟音)과 좌석이 매우 좁은데도 다른 항공편 이코노미의 15배에 이르는 요금이 걸림돌이었다. 결정타는 2000년 7월 25일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출발하던 콩코드가 이륙 중 폭발해 탑승객 109명 전원이 숨진 사고였다. 콩코드 결함은 아니었고, 앞서 이륙한 비행기가 활주로에 떨어뜨린 금속조각이 원인이었다. 2003년을 끝으로 콩코드는 박물관 신세를 지게 됐다. 20년 넘게 잠잠하던 초음속 항공기 시장이 들썩인다. 미항공우주국(NASA)과 록히드 마틴은 공동 개발하는 초음속 항공기 X-59의 첫 시험비행을 앞두고 마지막 활주(滑走) 테스트에 나섰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마하 1.4(시속 1천489㎞)로 비행한다는데, 프로젝트명 '조용한 초음속 기술'에 걸맞게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였을지가 관건이다. 지난 1월엔 미국 초음속기 개발업체 붐 슈퍼소닉이 시험 제작기 XB-1의 12차 시험비행에서 처음 음속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민간업체로는 최초다. 2030년까지 마하 1.7(시속 2천80㎞) 속도의 60~80석 규모 여객기 운항에 나설 예정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덫에 걸려 한 세대 가까이 진전이 없던 항공기 산업에 새 장이 열리고 있다. 반나절이면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시대가 온다. 항공 산업뿐 아니라 여행과 무역에도 전기(轉機)가 마련되는 셈이다. 기술적 진보만이 아니라 경제성과 환경 파괴 논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2030년대 초음속 항공기가 창조할 지구촌의 변신은 고속열차가 이뤄 낸 변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차세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산업은 초음속 항공기일 수도 있다. 터무니없다고 비아냥거릴 일이 아니다. 50년 전 자동차, 조선,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어느 누가 장담했던가. ksy@imaeil.com
2025-07-22 19:57:26
중년층 이상이 기억하는 학창 시절 가정환경 조사는 얼마나 잘 사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집에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거짓말이지만 기죽기 싫어서 쭈뼛쭈뼛 손을 드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 있는 집, 손 들어 보라"면 눈치 볼 것도 없이 조용했다.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보급이 급증하기 전까지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었다. 물론 지금도 최고급 수입차는 부유층의 전유물(專有物)로 인식되고 있지만 자동차 자체는 가전제품처럼 대수롭지 않은 시대가 됐다. 특히 20, 30대의 자동차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이들의 신차 등록 점유율이 10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10년 전 신차 등록 대수(자가용 기준) 중 20, 30대의 점유율이 35%에 달했으나 올해는 25%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60, 70대 점유율은 12%대에서 약 23%까지 높아졌다. 20, 30대는 더 이상 차를 필수 소유품으로 여기지 않는다. 신차 가격은 갈수록 비싸지는데 굳이 세금과 유지비까지 떠안으며 구매할 필요를 못 느낀다. 차량 공유(共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싼값에 빌려 탈 수 있어서다. 이런 추세는 꽤 오래됐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반전(反轉)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 공포 탓에 대중교통을 기피하면서 2020년엔 2030세대의 신차 구매가 반짝 증가했다. 2015년 이후 꾸준히 감소세였는데 갑자기 20, 30대 신차 구매가 전년 대비 15~18% 늘어난 것이다. 요즘은 차량도 구독(購讀)하는 시대다. 월 단위로 빌리고, 보험·세금·정비비와 보증금 부담 없이 새 차를 이용한다. 한 달에 두 번까지 차를 바꿀 수 있다. 글로벌 조사업체에 따르면, 세계 자동차 구독 시장은 지난해 50억달러(약 7조원)에 달했다. 2032년까지 매년 평균 35% 성장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2천600만 대를 넘어섰고, 올해 5월 기준 약 2천638만 대에 이른다. 인구 1.94명당 차량 1대를 보유한 셈이다. 소유에서 공유와 구독의 시대가 되면 이런 성장세가 지속될 수 있을까. 혹자는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떠받드는 자본주의의 종말까지 예언하지만 공유와 구독이 인간의 물욕(物慾)을 대체할지는 의문이다. ksy@imaeil.com
2025-07-15 20:16:31
40년 전 한 신문에 '주유소 부족' 기사가 실렸다. 자동차는 매년 급증하는데 주유소는 허가제에 묶여 제자리라는 주제다. 2~3㎞ 떨어진 주유소를 찾아 헤매고, 신흥 개발 지역엔 주유소가 아예 없어 운전자들이 기름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한다는 사연도 소개했다. 빌딩 숲을 이룬 여의도에 주유소가 2곳뿐이라는 내용은 믿기 힘들 정도다. 당시 주유소 신설은 허가제였다. 특히 서울시는 1976년 이후 주유소 신설을 억제했다고 한다. 민원이 빗발치자 서울시도 당시 동력자원부에 도심 지역 신규 허가와 주유소 간 거리 제한 완화 등을 건의했는데,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상황은 전국적으로 비슷했다. 주유소 사장은 지역 유지(有志)였다. 현금을 자루에 담아 가져가고, 하루가 멀다고 땅을 사고 건물을 지었다는 입소문이 파다했다. 학교 육성회장도 주유소 사장 몫이었다. 10년쯤 뒤 세상이 바뀌었다. 주유소는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었고, 거리 제한도 사라졌다. 우후죽순처럼 주유소가 생겨났다. 1980년 1천465개이던 주유소가 2010년 1만3천여 개에 달했다. 출혈경쟁의 신호탄이 울렸다. 기름 넣을 때 도장을 찍어 주고 개수에 따라 생수, 라면, 쌀을 줬다. 수백만원짜리 경품(景品)도 내걸렸다. 수익성이 떨어지고 인건비조차 부담스러워지자 1992년 셀프 주유소가 처음 등장했다. 급기야 주유업계는 2010년 정부에 주유소도 당시 택시처럼 총량제로 관리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도시 규모와 자동차 등록 대수에 비례해 적정 규모의 주유소만 유지하게 해 달라는 얘기인데, 쉽게 말하자면 다시 허가제 시절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경쟁에서 밀려난 주유소는 하나둘 문을 닫았다. 15년간 2천500곳 정도가 사라지면서 올해 6월 말 기준 1만528곳이 됐다. 감소세는 갈수록 가파르다. 최근 6년 반 동안만 1천 곳 가까이 문을 닫았다. 1991년 18%에 육박하던 영업이익률은 2023년 1.7%로 급전직하(急轉直下)했다. 알뜰 주유소 확산에다 전기·수소·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 비율도 10%를 넘기면서 수익성은 갈수록 더 떨어질 전망이다. 토양조사와 지하 탱크 제거 등 폐업 비용이 1억원에 달해 흉물로 남겨지는 경우도 많다. 한 세대쯤 지나면 거리에 넘쳐 나던 주유소는 기록영화처럼 빛바랜 이미지로 남을 듯하다. ksy@imaeil.com
2025-07-08 20:11:48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도입은 필요한데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상화폐다. 변동성이 심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와 달리 특정 자산에 가치를 고정(固定)하는데, 주로 미국 달러화나 유로화 등에 교환가치가 고정돼 있다. 가상자산 시장의 주요 거래 수단으로 등장해 지난달 기준 10가지 주요 스테이블코인의 세계 시가총액만 2천300억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재명 후보는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원화 기반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등에서 달러형 스테이블코인이 주로 유통되면 원화 기반 결제 축소로 외환·통화정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에선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지니어스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는데, 발행과 담보 요건 강화 등을 주로 담고 있지만 핵심은 스테이블코인을 정당한 금융 수단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중국 관영 매체도 "스테이블코인 파도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면서 당국의 신속 대응을 촉구했다. 우리나라에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요건만 충족하면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회사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선제적 대응에 나선 은행권과 핀테크, 게임업계 등은 앞다퉈 관련 상표권을 출원하고 있다. 폭등세를 보이던 일부 관련 주식들은 과열 조짐을 보여 폭락해 거래정지되는 등 혼조세(混潮勢)다. 한국은행은 규제 수준이 높은 은행권부터 발행을 허용한 뒤 비은행으로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최근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은 무분별하고 경쟁적인 스테이블코인 확산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가치 고정자산(달러화·원화)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대규모 인출(引出) 사태가 벌어질 수 있고, 기술적 오류 발생과 범죄 악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확대되면 통화·금융정책 영향력이 침해될 수도 있다. BIS도 통화 주권 약화 가능성, 신흥국 자본 유출 위험 등을 경고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통화다. '안정된(stable)'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아직 불안정한 모습이다. 법적·제도적 장치가 갖춰져야 이름값을 할 듯하다. ksy@imaeil.com
2025-07-01 20:21:36
[매일칼럼-김수용] 구조개혁 없이는 잠재성장률 3% 회복 어렵다
숫자로 드러나는 경제 동향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와는 사뭇 동떨어진 느낌이 있다. 물가상승률이나 실업률 등이 그렇다. 하지만 경제지표(經濟指標)가 장바구니 경제와 늘 딴판인 것은 아니다. 현실이 지표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따름이다. 그런데 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조금 양상이 다르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도 나라는 고속 성장할 수 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정도만 아니라면 경제성장률이 주춤해도 서민들 생활은 별 어려움 없이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데 내수 부진과 자영업자 줄폐업, 제조업·건설업 위기가 하루가 멀게 뉴스에 등장하면서 장기 저성장 시대가 도래했다는 암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국내외 기관들은 앞다퉈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고, 급기야 0%대 전망까지 나왔다. '나라 망하겠다'는 푸념이 술자리 안주로 등장했다. 정치적 불확실성 와중에 미국발 관세 장벽, 세계 곳곳에서 발발한 전쟁까지 악재들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 미세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후 기대 심리와 함께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도 차츰 해소되는 분위기다. 외국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높이고 있다.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미·중 무역 갈등 완화 등에 따른 기대감이다. 중국의 경기 회복에 따른 대중국 수출 증가 전망과 2차 추경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 등도 반영했다. 그러나 상황이 반전된 것은 아니다. 올해 0%대 성장률 전망도 지배적이다. 한 나라의 경제 체력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은 내년에 충격적인 1%대로 떨어진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외환위기가 벌어진 1997년 6.74%이던 잠재성장률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2018년부터 2%대로 떨어졌다. 이재명 정부가 잠재성장률 3% 달성을 목표로 '성장 기조(成長基調)'의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은 더 이상 성장률 하락을 방치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겠다"며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국정 기조를 천명(闡明)하면서 "검불을 걷어 내야 씨를 뿌릴 수 있다"며 구조개혁의 고통을 감내(堪耐)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여기에 핵심이 담겨 있다. 자본시장 개혁을 통한 코스피 지수 5,000 시대, 인공지능·반도체·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로 성장동력 회복을 꾀하겠지만 구조개혁이 없이는 잠재성장률 3% 회복도 불가능하다. 추경을 통한 유동성 공급도 저출생, 고령화, 신성장 동력 부재라는 해묵은 숙제를 풀지 않고는 그저 임시방편(臨時方便)에 지나지 않는다. 잠재성장률 3%가 무너졌던 2017년은 고령인구가 유소년인구를 앞지른, 즉 생산연령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든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은 '일본 경제로부터 되새겨 볼 교훈'이란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일본의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노후화한 경제 구조를 혁신·창조적 파괴해야 경제가 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새판을 짜야 한다는 말이다. 자본시장 변화, 규제 철폐, 노사 관계 재정립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변화가 극심할수록 저항은 거세진다. 여당은 지지율 하락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은 나라를 망치게 한다. 잃어버린 30년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으려면 뼈를 깎는 고통이 불가피하다.
2025-06-30 20: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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