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논설실장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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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고부-김수용] 퇴직연금

    [야고부-김수용] 퇴직연금

    퇴직연금 적립금이 4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 기준 432조원에 육박하는데, 5년 만에 2배가량 불었다. 일시불(一時拂) 수령보다 안정적 노후를 위해 연금처럼 받도록 만든 것이 퇴직연금이다. 회사는 금융기관에 퇴직금을 적립하는데 적립금을 회사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 근로자가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뉜다. 개인이 별도로 가입하는 퇴직연금, 즉 개인형 IRP도 있다. 모두 합친 적립금이 432조원이며, 절반가량인 약 215조원은 받을 연금액이 정해진 확정급여형이다. 새 정부 들어 퇴직연금이 화두로 등장했는데, 이유는 수익률이 너무 낮아서다. 최근 6년간 명목상 평균 수익률이 2.8%에 그친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수익이 없다고 봐도 무방(無妨)하다. 최근 가파른 물가 상승세를 감안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일 가능성도 높다. 국민연금의 6년 평균 수익률은 8.69%에 이른다. 퇴직연금은 거의 대부분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품에 묶여 있지만 국민연금은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분산 투자해서다. 따라서 퇴직연금도 국민연금처럼 기금화(基金化)하자는 주장이 정·관계와 학계에서 나온 것이다. 물가 인상도 감안하고 노후에 안정적 소득도 보장하려면 원금을 넉넉히 불려야 하는데, 지금처럼 개별로 운용해선 수익은커녕 금융사 수수료를 떼면 손해라는 이유다. 퇴직연금 운용 주체를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등 누구로 정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여당 의원들은 여러 퇴직급여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금융투자업계는 반대하고 있다. 기금화가 고수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며 기본투자 운용 방안(디폴트 옵션)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퇴직금 특성상 거의 대부분 초저위험 자산에 투자하는데, 이를 보다 공격적 투자가 가능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울러 금융투자업계와 국민연금공단의 경쟁도 걱정스럽고, 지금껏 힘들게 유치한 가입자들이 이탈할까 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고용노동부는 6월까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를 진행한 뒤 하반기에 정부 개정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안정과 경쟁, 원금 보장과 수익 사이의 절묘(絕妙)한 합의점을 찾는 게 핵심이다. 첨언(添言)하자면 지금껏 퇴직연금 적립금이 2%대 수익률에 그쳤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ksy@imaeil.com

    2025-06-17 19:49:31

  • [야고부-김수용] 정년 연장의 꿈

    [야고부-김수용] 정년 연장의 꿈

    프랑스 연금자문위원회가 최근 노동자 퇴직 연령을 2070년까지 66.5세로 연장할 것을 권고(勸告)했다. 현재 화폐가치로 따져 볼 때 2030년 연금 적자 규모가 10조원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이다. 자문위는 연금 축소와 연금보험료 인상보다 단계적 퇴직 연령 연장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23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년을 62세에서 2030년 64세로 늦췄는데, 노조와 야당은 도리어 정년 축소를 외친다. 지난달 덴마크 의회는 은퇴 연령을 67세에서 2040년까지 70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덴마크는 기대수명과 은퇴 연령을 자동 연장하고 5년마다 조정한다. 현재 기대수명은 81.7세인데, 1971년생은 70세가 은퇴 연령이다. 연금 수령 나이가 늦춰지자 노동자들은 반발하고, 은퇴 연령 자동 연장을 재검토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법정(法定) 정년이 60세다. 1991년 고령자고용법 제정 때만 해도 정년 60세 이상은 권고 정도로 그쳤는데, 2016년부터 정년 60세가 단계적으로 의무화됐다. 일본도 1994년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가 실시됐고, 2012년엔 희망자에 한해 65세 의무 고용을 법제화했다. 심지어 2020년엔 65세 이상도 희망하면 70세까지 일하도록 사용자 노력을 의무화했다. 일본과 결이 다르게 유럽 국가들은 연금 운용 때문에 정년을 연장하려고 한다. 연금 수령 나이와 정년을 맞추는 것이다. 지난 3월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려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받은 고용노동부가 이달 중 이행 계획을 제출한다. 노인 빈곤,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정년의 간극(間隙),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을 65세까지로 본 대법원 판결 등을 감안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국은행은 고령화로 통화정책마저 기능을 못 할 수 있다고 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정년 연장이 국내총생산(GDP)과 재정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누구도 정년 연장을 반기지 않는다. 정년이 늘어날수록 연금도 더 늦게 받는다. 기업들은 생산성, 임금 부담, 청년 고용 문제, 인사 적체(積滯) 등을 이유로 난감해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일자리를 뺏길 위기에 내몰린 청년들도 마뜩잖은 반응이다. 무엇보다 정년 연장은 해결 과정일 뿐 궁극적 해답이 될 수 없다. ksy@imaeil.com

    2025-06-10 19:54:43

  • [야고부-김수용] 인공지능(AI)의 반란

    [야고부-김수용] 인공지능(AI)의 반란

    영화 '미션 임파서블' 최신 시리즈엔 보이지 않는 악당이 등장한다. 엔티티(The Entity: 독립체)라는 이름의 인간 지능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공지능이다. 디지털 세계를 통제·조작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휘두른다. 인터넷 연결과 디지털 기기 없이는 일상이 불가능한 현대인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든다. 해킹을 통해 정보를 빼내는 수준을 넘어 인간 행동 패턴을 분석해 놀라운 정확도로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가짜 음성과 영상을 만들고, 존재하지도 않는 적의 공격을 만들어 전쟁 위기 상황까지 꾸며낸다. 등장인물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 인식에, 자체 학습하는, 진실을 좀먹는 디지털 기생충'이다. 기생충에 현혹돼선 곤란하다. 엔티티는 신(神)에 가까운 능력을 갖췄다. 얼마 전 구글 인공지능인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AI 탓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보다 AI 기술이 나쁜 세력에 넘어가거나 정교하고 자율적인 AI를 통제 못 하는 상황이 더 위험하다고 했다. AI의 '자기보존(self-preservation)' 행동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AI가 생명체처럼 자기 존재나 기능을 지키려는 경향을 말하는데, 인간 행동을 모방하면서 생존 본능까지 학습했기 때문이다.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복제(自己複製)를 시도하며, 심지어 인간을 협박하기도 한다. 챗GPT의 AI 모델은 수학 문제 풀이 실험 중 작동 종료를 막기 위해 컴퓨터 코드를 조작했다. 앤트로픽의 AI 모델은 자신을 다른 모델로 대체하려는 회사 경영진에게 교체하지 말아 달라는 이메일을 보내고, 모델 개발자의 불륜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불륜 정보는 사용자가 입력한 허위 내용이었다. AI의 활용도가 군사, 보안 등으로 확대되면서 인간 통제를 벗어난 AI는 국가 안보나 생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가령 기후변화를 막아 달라는 지시를 받은 AI가 목적 달성을 위해 인간을 제거할 수도 있다. 영생(永生)을 꿈꾸는 초지능의 탄생은 상상조차 어려운 위험이다. 이에 대비해 인간을 모방하지 않고 다른 AI 모델의 위험 행동을 예측·방지하는 새로운 '과학자 AI' 모델을 개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간을 모방하지 않아야 위험하지 않다는 뜻일 텐데, 결국 가장 위험한 존재는 인간이라는 말로 들린다. ksy@imaeil.com

    2025-06-05 20:10:41

  • [야고부-김수용] 사라지는 현금

    [야고부-김수용] 사라지는 현금

    현금 사용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신용카드조차 쓸 일이 없다. 휴대폰 모바일카드로 거의 모든 결제를 할 수 있어서다. 축의금, 조의금을 전달할 때만 아주 가끔 현금지급기(ATM)를 이용한다. 아예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는 사람도 많다. 시장에선 디지털온누리카드를 이용하고, 노점상 거래에는 계좌이체를 한다. 자녀들은 명절에 받는 용돈을 부모에게 돌려준 뒤 디지털페이로 송금해 달라고 요구한다. 현금 쓸 일이 없을 뿐 아니라 현금을 계좌에 넣으려고 은행이나 ATM 기기를 찾기도 번거로워서다. 지난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급수단(支給手段)에 대한 설문조사(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3천500여 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건수 기준 현금 이용은 15.9%에 그쳤다. 신용카드가 절반가량 차지했고, 체크카드와 모바일카드는 30%에 육박했다. 2013년 40%가 넘던 현금 비중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매우 낮다. 2023년 기준 오프라인 매장에서 현금 사용액을 비교했더니 우리나라는 10%로 주요 40개 나라 중 29위에 그쳤다. 일본은 40%를 웃돌았다. '현금 없는 매장'도 증가세다. 직원 없이 키오스크만 설치해 둔 매장도 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현금(거스름돈) 없는 버스' 도입도 늘어난다. ATM 기기는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ATM 기기는 2020년 8만7천773대에서 2023년 8만907대로 줄었다. 중국에선 5년 만에 ATM 기기 4대 중 1대꼴로 사라졌다. 2019년 109만여 대에서 지난해 80만여 대로 줄었다고 한다. 중국 여행객들은 아예 환전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보다 디지털 결제 비중이 훨씬 높아서다. 기존 암호화폐와 달리 달러 등 법정화폐나 금 등에 가치가 고정돼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가상자산인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 법정통화(法定通貨)를 대체한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외국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도입 시 통화 주권 침해, 통화정책과 금융시장 불안정, 자금 세탁 등의 문제점을 우려해 한국은행도 디지털화폐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문득 의구심이 든다. 과연 디지털화폐는 현금보다 안전할까. 거대 통신사도 해킹에 속수무책인데 은행이라고 괜찮을까. ksy@imaeil.com

    2025-05-27 19:54:13

  • [매일칼럼-김수용] 흔들리는 달러, 환율 협상 신중히 접근해야

    [매일칼럼-김수용] 흔들리는 달러, 환율 협상 신중히 접근해야

    미국발 관세 전쟁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환율마저 출렁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하루에도 수십원씩 오르내릴 정도다. 미국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천명하며 관세와 환율이라는 2가지 공략법을 택했다. 기축통화(基軸通貨) 지위를 유지하면서 미국에 유리하도록 달러화 절하(切下), 즉 대미 무역 흑자국 화폐의 평가절상을 꾀하고 있다. 주요 타깃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인데, 모두 지난해 기준 미국의 무역 적자 상위 10개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미국의 원화 절상 요구 보도가 나오면서 원·달러 환율은 급락했다. 기획재정부가 "환율 협의가 진행 중이나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시장 움직임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원화뿐 아니라 주요 아시아 통화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과 협상 소식이 들릴 때마다 환율은 들썩일 것이다. 안전 자산의 대명사인 미국과 일본 국채를 동시에 투매(投賣)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5%를 넘겼고, 시장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국채 금리도 4.6%로 급등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국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감세안을 밀어붙일 뜻을 강하게 밝히면서다. 트럼프는 법인 최고 세율과 개인 소득세율 인하, 소득공제 및 자녀세액공제 확대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감세안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 연방하원 본회의에서 찬성 215표, 반대 214표로 간신히 통과됐다. 상원까지 통과해 최종 확정되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2024년 연 1조7천억달러에서 2035년 2조5천억달러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적자가 커지면 미국 국채는 더 불안해진다. 중국이 지난 2013년 11월 1조3천160억달러에 달했던 미국 국채 보유액을 올해 3월 7천653억달러까지 줄인 이유이기도 하다. 상호 관세는 미국 국채에 악재다. 미국 국채를 사들일 돈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벌어들인 달러다. 중국은 미국에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여 지금껏 미국 국채를 매입해 왔고, 양국은 무역적자와 대미 투자의 선순환(善循環) 구조를 누려 왔다. 관세 전쟁이 격화돼 무역흑자가 줄어들면 미국 국채에 대한 매력은 더 떨어진다. 이런 혼란 속에 한미 환율 협상이 진행 중이다. 환율은 관세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작위적(作爲的)인 환율 조정은 국가 경제를 뒤흔든다. 협상의 구체적 내용을 흘리지 않는 까닭도 의도치 않은 결과를 우려해서다. 시장은 충분한 합의와 협상을 통한 일정 부분의 환율 목표치 조정은 납득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불거지는 불협화음 탓에 변동성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예측 가능한 변화는 용납하지만 예기치 못한 급등락은 시장에 충격만 안겨 준다.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후 위안화 약세로 관세 효과가 상쇄되자 2019년 8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위안화 약세는 미국 관세의 결과물이었다. 미국이 원인을 제공해 놓고 중국 정부가 환율 조작에 개입했다고 떠넘겼다는 말인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미국의 속셈이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벌어진 원·달러 환율 상승도 마찬가지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과 미국의 통화·경제 정책 변화 탓에 벌어졌을 뿐 한국 외환당국의 개입은 없었다. 마음이 급한 미국은 환율 조작 운운하며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 끌려다니는 협상의 결과는 뻔하다.

    2025-05-26 19:43:45

  • [야고부-김수용] 국채(國債)

    [야고부-김수용] 국채(國債)

    빚도 자산(資産)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적 여력(餘力)이 있어야 개인이나 기업, 국가도 돈을 빌릴 수 있다. 국가 역시 신용등급에 따라 국채 한도가 결정된다. 경제가 엉망이면 국채를 사 주지 않아서, 즉 돈을 빌려주는 곳이 없어 국채를 발행할 수 없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채 비율이 10%도 안 되는 나라도 있고, GDP의 2배 이상 빚을 진 나라도 있다. 최빈국은 국채 발행 능력이 없어 빚도 적다. 그러나 미국, 일본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인정돼 적은 이자(국채 수익률)를 주는데도 인기가 높다. 국채는 외환 유동성과도 밀접하다. 달러 보유고가 넉넉하거나 기축통화 발행국이라면 국채 비율이 높아도 버티지만 반대라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으로 달러를 사올 때를 떠올리면 된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후 대한제국 경제를 예속(隷屬)시키고자 일제는 고리(高利)의 차관(借款)을 강제로 들여오게 했다. 당시 국채가 대한제국 1년 전체 세입과 맞먹는 1천300만원이었다. 운동을 주창한 서상돈은 "2천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 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미국의 부채와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는데, 우리나라도 걱정스럽다. 지난해 국채는 1천175조2천억원, GDP 대비 비율은 46.1%였다. 2016∼2018년 600조원대에서 2배가량 늘었고, 채무 비율도 10%포인트 넘게 뛰었다. 국회예산정책처 장기 전망에 따르면, 2050년 국채 비율이 100%를 넘어서고 신용등급 하락도 불가피하다. 나라 살림도 적자인데 저성장을 벗어나려면 대규모 재정 투입이 절실하다. 빚을 더 내야 한다. 6·3 대선 후보들은 증세 없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편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구체적 대안은 없다. 재정 투입을 통해 경제가 살아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재앙(災殃)적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지금 국채보상운동을 편다면 5천만 국민이 2천350만원씩 내야 한다. 돈 빌린 사람 기준 1인당 1억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3월 말 1천930조원 기준)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ksy@imaeil.com

    2025-05-20 20:13:05

  • [야고부-김수용] 구글 지도

    [야고부-김수용] 구글 지도

    관세를 둘러싼 한미 통상 협상에서 미국이 비관세 장벽 중 하나로 지목하는 것이 한국의 정밀 지도 반출(搬出) 거부다. 구글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인 지난 2월 18일 국토지리정보원에 5천 대 1 축척 지도의 해외 구글 데이터센터 이전을 신청했다. 5천 대 1 축척 지도는 5천㎝(50m) 거리를 지도상 1㎝ 수준으로 표현한 고정밀 지도다. 구글은 현재 2만5천 대 1 축척의 공개 지도 데이터에 항공·위성사진을 결합한 한국 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초정밀 인공위성이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하는 마당에 정밀 지도가 따로 필요한 이유는 바로 정보값, 즉 지도 데이터 때문이다. 구글이 원하는 지도 데이터는 '관심점(POI·Point Of Interest)'이라고 부른다. 도로·건물 이름, 지역 명칭, 주소뿐 아니라 주요 시설물의 이름·주소·업종·연락처와 위도·경도 등 좌표 데이터, 영업시간·리뷰·평점·사진 등 추가 정보까지 포함한다.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가 제공하는 정보 외에 사용자가 작성·수정하는 정보, 기업·단체가 추가하는 데이터도 아우른다. 꾸준한 업데이트도 핵심이다. 이게 없으면 지도는 길 찾기 기능도 못 하는 단순한 그림에 불과하다. 해외여행을 가면 구글 지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까닭도 바로 위치 찾기에 있어 백과사전급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구글은 2011년과 2016년에도 요청했으나 정부는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두면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구글은 이번에 보안시설을 흐릿하게 처리하겠다며 데이터를 요구했지만 국내에 서버를 두겠다는 뜻은 밝히지 않았다. 구글이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는 선의(善意)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정밀 데이터는 단순 지도 정보를 넘어서 인공지능, 자율주행, 드론 등 미래 산업의 원천(源泉) 자원이다. 구글의 요청에 대해 정부는 8월 중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국방부·국정원을 포함한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에서 심사하는데, 만장일치가 돼야 통과되기 때문에 안보 문제가 제기되면 반출 승인은 어렵다. 한편 구글은 지난 2016년 반출 요구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한국의 법규는 낡아 빠지고 불공정하며 혁신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ksy@imaeil.com

    2025-05-13 19:59:37

  • [야고부-김수용] 스크린쿼터(Screen Quota)

    [야고부-김수용] 스크린쿼터(Screen Quota)

    1990년대 중반까지 극장의 최대 화두는 설과 추석 명절에 대박 흥행작 상영 여부였다. 당시만 해도 극장은 상영관이 1개뿐인 단관(單館) 시절이었다. 1천 석이 넘는 극장들도 여럿 있었다. 한 극장에서 추석 연휴에 성룡이 주인공인 영화를 상영하면 매표소 앞에 끝도 없이 줄을 섰고, 할리우드 대작 간판이 내걸리면 흥행 보증 수표였다. 극장 관계자의 역량은 관객이 몰릴 만한 외국 영화를 얼마나 빨리 선점(先占)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흥행작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표까지 각오해야 했다. 한국 영화는 말 그대로 찬밥 신세였다. 스크린쿼터, 즉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에 맞춰 마지못해 영사기에 필름을 걸 뿐 홍보도, 기대도 없었다. 어쩌다가 흥행작이 걸리면 극장 입장에선 의무 상영일수도 채우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었다. 간간이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는 끼워 팔기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서편제'(1993년)가 한국 영화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 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박스오피스 집계가 불확실해 전국 단위 관객 수는 신뢰할 만한 숫자가 되지 못했다. '타이타닉'(1997)이 서울 관객 200만 명을 넘겨 외화 신기록을 세우자 역시 한국 영화는 한계가 있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쉬리'(1999)가 한국 영화 최초로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전국 621만 명 기록을 세웠다. 이후 '천만 영화' 수식어가 붙는 영화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쉬리'와 함께 한국 영화의 전기(轉機)가 된 사건이 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에서 영화 시장 개방 요구에 따라 의무 상영일을 146일에서 73일로 절반 줄였다. 영화계 반대는 거셌다. 한국 영화의 식민지화를 우려했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멀티플렉스의 확장과 함께 시장 자체가 급격히 커졌다. 대기업들이 영화 산업에 뛰어들었고 작품 수도 급증했다. 약 20년 만에 한국 영화계는 다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이 대표적 비관세 장벽 중 하나로 스크린쿼터제를 지목해서다. 영화계가 직면한 상황이 2006년과 전혀 달라 결과에 대한 어설픈 예측조차 쉽지 않다. 스크린쿼터 무용론도 있지만 섣부른 철폐는 위험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ksy@imaeil.com

    2025-05-06 19:26:46

  • [야고부-김수용] 개인정보

    [야고부-김수용] 개인정보

    중국의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DeepSeek) 서비스 중단, 악성 앱 설치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SK텔레콤 고객의 유심(USIM) 정보를 탈취한 해킹 사건. 이들 사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개인정보(個人情報)다. 특정 인물을 식별하는 모든 정보를 뜻하는데, 주민등록번호나 실명(實名)이 대표적이다. 나이, 성별, 휴대폰 번호, 이메일 주소, 고향, 카드 사용 내역, 주소, 위치 등도 중요한 개인정보다. 디지털 공간에서 자아를 형성·규정하는 개인정보만 조합하면 다른 누군가가 나처럼 행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딥시크는 중국과 미국 업체 여러 곳에 이용자 정보와 사용자가 프롬프트에 입력한 내용을 넘긴 것으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났다. 서비스 중단 전까지 하루 5만 명이 이용했는데, 한 달로 치면 150만 명의 정보가 해외로 넘어간 걸로 추정된다. 개인정보 처리 방침에는 파기(破棄) 절차 및 방법, 안전조치 등이 빠져 있었고, 프롬프트 입력 내용의 이용을 거부하는 기능도 없었다. 딥시크는 시정권고를 일부 수용해 최근 잠정 중단했던 서비스를 재개했다. 올해 1분기에만 보이스피싱 범죄 5천878건이 발생해 3천116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명의도용 사건 안내, 신용카드 배달, 부고(訃告) 문자, 범칙금 통지, 건강검진 진단서 송부, 카드 결제 해외 승인 등 미끼 문자메시지를 보내 악성 앱 설치를 유도하는 것이 시작이다. 이때부터 모든 개인정보뿐 아니라 통화 내용, 실시간 위치까지 범죄 조직에 넘어간다. 수상한 느낌이 들어도 신고할 수 없다. 금융감독원·검찰·경찰 등에 전화를 걸면 범죄 조직으로 연결되도록 조작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가입자를 보유한 SK텔레콤이 해킹당해 고객 유심 정보 일부가 탈취된 사건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도 바로 개인정보 때문이다. 가입자 식별·인증 정보를 저장하는 디지털 신분증인 유심을 범죄 조직이 복제해 얼마든 악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디지털 공간에 넘쳐 나는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조작하는 딥페이크 범죄까지 가세했다. 직접 보고 듣고도 속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개인정보를 보호할 확실한 수단을 찾는 것이 디지털 시대 존속(存續)을 담보할 관건이다. ksy@imaeil.com

    2025-04-29 20:02:22

  • [야고부-김수용] 인공지능 정치

    [야고부-김수용] 인공지능 정치

    모든 지식을 습득해 합리적 판단을 내리고, 감정 기복(起伏)이나 특정 정파·인종·성별·빈부에 대한 편견도 없으며,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선의 결정을 도출해 내는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최근 수년간 눈부신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특이점(特異點)'에 도달한 인공지능(AI)의 등장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특이점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 정확히는 전체 인류의 지능을 넘어선 때부터 가공할 속도의 학습과 연쇄적인 성능 개량 반응으로 지능 폭발을 일으켜 초지능으로 거듭나는 시점을 일컫는다. 비생물학적 지능의 총합이 생물학적 지능의 총합을 능가하는 시점이며, 기술이 기술을 발전시켜 생물학적 진화 속도를 완벽하게 초월하는 때이다. 초인공지능은 아직 공상과학영화에나 등장할 이야기이지만 생성형 AI와 정치를 접목(椄木)하려는 시도는 이미 진행 중이다. AI로 법까지 만드는 시대가 왔다. 아랍에미리트(UAE)는 기존 법률 검토와 개정뿐 아니라 새 법률 제정에 AI를 활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AI가 정부 자료와 법적 데이터를 분석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법안을 제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UAE 정부는 입법 소요 시간이 70% 빨라진다고 기대한다는데, 과연 AI가 믿을 만한 입법 제안자인지는 불확실하다. 여전히 AI는 마치 사실인 듯이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 등 부정적 사건에 AI를 이용한 사례가 우리나라에서만 지난해 233건 보고됐다. 빙산의 일각일 뿐이지만 증가 폭이 전년 대비 60%에 가깝다. 생성형 AI가 정치 공작이나 가짜 뉴스 유포 등에 악용될 가능성도 훨씬 높아졌다. 6·3 대선을 앞두고 주요 정치인들의 가짜 사진과 영상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특정 후보의 목소리로 경쟁자를 비방(誹謗)하는 등의 악의적 창작물들이다. AI 생성물의 워터마크 표시를 의무화한 이른바 'AI 기본법'은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아직 AI에 정치는 물론이고 중요한 결정을 맡기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기성(旣成)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커질수록 대체재(代替財)에 대한 갈망도 커지게 마련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선거에도 AI 후보가 등장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ksy@imaeil.com

    2025-04-22 20:02:38

  • [매일칼럼-김수용] 허약한 한국 증시, 노후 안전판도 불안하다

    [매일칼럼-김수용] 허약한 한국 증시, 노후 안전판도 불안하다

    이달 1~11일 코스피 지수 하루 변동률이 평균 1.97%로, 월별 기준 4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아졌다. 변동률은 지수의 평균값 대비 변동 폭을 나타낸 것인데, 그만큼 지수 등락이 심했다는 의미다. 주식 시장은 도널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에 그야말로 널뛰기 장세를 보였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 선언에 중국이 맞불 관세로 대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6% 가까이 급락했던 코스피는 사흘 뒤 트럼프의 상호 관세 부과 90일 유예 소식에 6.6% 급등하기도 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극심한 변동성에 잔뜩 긴장한 채 외신과 뉴욕 증시 흐름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90일 유예로 관세 전쟁이 소강상태(小康狀態)로 접어들었지만 시한폭탄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뜩이나 오리무중인 한국 주식 시장에 정치 테마주까지 기승을 부렸다. 대선 유력 주자로 꼽히던 후보들의 불출마 선언으로 테마주가 일제히 급락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런 투기성 정보에 현혹(眩惑)돼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 증시가 여전히 저평가돼 있어 추가 하락 장세가 올 경우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반도체, 제약, 2차전지 등의 기회를 포착(捕捉)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증시가 중장기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리려면 관세 정책이나 통화 정책의 극적인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의 아킬레스건인 국채 수익률 때문에 트럼프가 강공 일변도(一邊倒)의 관세 정책을 펴기는 어렵다는 전망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가능성 덕분에 일단 시장은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12조원 규모 추경안 발표 등 경기를 띄울 정책들이 발표되고, 관세 전쟁이 미·중 구도로 바뀌면서 한동안 국내 증시의 급락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어느 것도 단언하기는 어렵다. 10% 기본 관세가 가져올 파장도 불확실한 데다 상호 관세를 둘러싼 국가 간 협상 결과에 따라 훨씬 큰 변동성을 우려해야 한다. 미국 곳곳에서 트럼프 반대 시위가 확산하는 까닭은 연방 공무원 대폭 감축, 보건 프로그램 예산 삭감, 대규모 관세 정책 등인데, 정작 시위 참가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경기 침체와 퇴직연금 문제다. 특히 이번 시위에는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중장년층의 참여가 눈에 띄는데, 증시 불안정 때문에 퇴직연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특히 가뜩이나 연금이 부족한 도시로 알려진 시카고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시카고의 4개 퇴직연금기금이 주식 시장 하락 탓에 10억달러(1조4천억원)가량 손실을 입었다고 알려졌다. 지자체 공무원, 경찰관, 소방관, 교사 연금기금 중에서 특히 경찰 연금기금은 붕괴 우려까지 제기된다. 증시는 투자자 수익으로만 귀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중장기 노후 대책이 될 수 있다. 안정감 없는 널뛰기 장세의 허약 체질을 방치한다면 코스피 3,000 시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투자와 생산이 늘고, 투자 자산이 쌓이면 국민연금 고갈 시기도 늦출 수 있다. 재테크 흐름도 부동산 위주에서 퇴직연금 계좌를 활용한 금융투자로 조금씩 옮겨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증시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여건투성이다. 배당소득(配當所得) 분리과세와 중복 상장 제한 등을 포함해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한국 증시의 만성적인 저평가를 타개하려는 밸류업 프로그램은 미래 세대를 위한 약속이며 미비한 노후 안전판을 준비하는 디딤돌이다. ksy@imaeil.com

    2025-04-21 20:08:43

  • [야고부-김수용] 불안과 공포

    [야고부-김수용] 불안과 공포

    행복을 정의하는 여러 기준 중에 불안하지 않은 상태도 포함할 수 있다. 정신적·물질적 결핍(缺乏)에 대한 불안, 신체적 위해(危害)에 대한 불안,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삶은 온통 불안에 휩싸여 있다. 불안의 다른 얼굴은 예측 불가능한 변동성이다. 축적된 정보값을 벗어난 결과가 수시로 발생할 때엔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미국 증시와 국채가 최고의 안전 자산으로 여겨진 이유는 누적된 데이터가 알려주는 예측 가능성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도널드 트럼프의 한마디에 세계 경제는 하루가 멀다고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관세(關稅)가 이토록 무서운 단어임을 미처 몰랐다. 세계 증시는 기록적 폭등락을 거듭하며 투자자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공포지수(恐怖指數)로 불리는 'VIX(Volatility Index)'는 변동성을 예측하는 지수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1993년에 도입했는데, S&P500 지수 옵션의 가격을 기반으로 계산한다. VIX가 높을수록 시장의 불확실성과 공포가 크다. 지수 30 이상이면 극심한 혼란으로 본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82.69로 사상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발발(勃發)하면서 50을 훌쩍 넘겼는데, 코로나 이후 최고치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도 급등락을 거듭했다. 코스피가 급락할 때 급등하는 특성이 있는데, 지난주엔 지난해 8월 '블랙먼데이' 이후 최고치인 44.23을 기록했다가 28.20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 불확실성 지수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에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 조사국이 언론 기사 중 제목과 본문 등에 '정치'와 '불확실'을 포함한 기사 수를 집계해 산출하는데, 지난 13일 기준 2.5(일주일 이동평균)로 집계됐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12.8로 역대 최고치였을 때보다 많이 낮아졌지만 계엄 사태 전 0.4~0.5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불확실성의 난무(亂舞)로 예측 가능했던 일상이 불안과 공포에 잠식됐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흑백 구분조차 모호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시대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믿고픈 대로 보는 습성을 떨쳐 버리고 넓고 깊게 들여다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ksy@imaeil.com

    2025-04-15 20:48:17

  • [야고부-김수용] 대공황

    [야고부-김수용] 대공황

    1939년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로 1929년 미국 대공황(大恐慌)을 꼽는다. 1920년대 세계 경제가 호황이던 때, 미국은 해외 투자로 눈을 돌렸고 유럽 생산기지로 독일을 택했다. 독일은 풍요를 꿈꾸며 외국 자본을 적극 끌어들이려 했다. 그런데 대공황이 터져 버렸다.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로 불린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시 11% 폭락을 신호탄으로 이후 3년간 주가는 90% 추락했다. 미국 등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독일에선 대량 실업이 발생했고 경제는 바닥을 쳤다. 이를 기회 삼아 아돌프 히틀러는 외세 배격과 게르만 우월을 내세우며 대중을 선동해 정권을 장악했다. 세계대전 발발의 디딤돌을 대공황이 제공한 셈이다. 대공황 타개책(打開策)으로 미국 정부는 수입품 규제에 나섰다. 2만여 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할리 관세법'이 1930년 시행됐다. 유럽 국가들도 경쟁적으로 수입 관세를 높였고, 1929~1932년 국제무역은 63% 급감했다. 선후는 바뀌었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조치가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이유는 관세 정책 발표 직후 이틀간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6조6천억달러(약 9천646조원)가 증발했으며, 세계 증시도 급격히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930년대에 비해 훨씬 커진 만큼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回歸)는 대공황 당시보다 훨씬 큰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며 경고한다.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휴지 조각이 된 주식, 끝도 보이지 않는 무료 급식소 대기 줄, 뒷골목을 헤매는 헐벗은 어린이가 등장한다.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부는 땅을 잃고 가족들과 함께 새 정착지를 찾아 떠나지만 어디에도 일자리는 없다. 굶주린 노동자들이 넘쳐 나니 자본가는 터무니없이 싼 임금을 제시한다. 간신히 일감을 구해도 제때 돈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도와 전기는 끊기고 우유 한 병 사 먹을 돈조차 없다. 사회적 울타리는 사라지고 가족은 붕괴한다. 1932년 겨울 뉴욕에서만 5천여 명이 영양실조로 숨졌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다고 방심해선 곤란하다. 대공황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는 이들이 바로 미국인이고, 그들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택했다.

    2025-04-08 20:01:56

  • [야고부-김수용] 인터스텔라

    [야고부-김수용] 인터스텔라

    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지금부터 40여 년 뒤인 2067년을 배경으로 한다. 기후변화 탓에 병충해와 대형 황사가 빈번해지면서 인류는 만성 식량 부족에 허덕인다. 지표면에서 기를 수 있는 식량작물은 갈수록 줄어들고, 그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정부 기관과 군대도 사라졌다. 국가 기능 자체가 무의미해진 시대다. 사막화한 지구는 자정능력(自淨能力)을 상실했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극악의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영화 속 상상력의 산물로 치부하고 싶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위험할지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구온난화 탓에 육지의 물이 급격히 사라져 가뭄 위험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2000~2002년 1조6천140억t의 물이 사라졌고, 이후 계속 물이 사라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는 논문이 실렸다. 육지 물이 사라진 이유는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대기가 품을 수 있는 물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특정 지역의 기록적 홍수 발생 가능성과 함께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전 지구적 가뭄을 초래(招來)할 수 있다고 연구 팀은 분석했다. 원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남미 베네수엘라가 공공기관 주간 법정 근로시간을 13시간 30분으로 줄였다. 정부 당국은 "기후 위기로 인한 전 세계적 기온 상승 추이를 고려한 조치"라고 밝혔다. 전등 대신 자연광을 활용하고, 에어컨 온도를 높이는 등 행동 요령도 지시했다. 노력이 기특하지만 실상은 환경 문제가 아닌 전력난이 원인이다. 원유를 정제(精製)할 시설이 낡고 부족해 발전소를 돌릴 연료를 구하지 못해서다. '인터스텔라'에선 인간 생존에 적합한 대기와 환경을 갖춘 행성을 발견하지만 현재 과학기술로는 터무니없는 공상일 따름이다. 영화 속 황폐해진 지구가 40여 년이 아니라 140년 뒤의 모습이라고 해도 거주 가능한 행성을 발견하기는 사하라사막에 던져진 좁쌀 한 알 찾기보다 어렵다. 환경 문제를 해결해 줄 외계 생명체가 찾아올 리도 없다. 결국 '하나뿐인 지구'의 치유는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달려 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잠식당한 자본주의 인류가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2025-04-01 20:18:11

  • [야고부-김수용] 신종(新種) 아동학대

    [야고부-김수용] 신종(新種) 아동학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 처방 환자가 4년 새 2.4배나 급증했는데, 10대 이하가 45%를 넘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처방 환자는 33만8천 명으로, 의료용 마약류 동향 집계를 시작한 2020년 14만3천 명에서 2.4배 늘었다. ADHD에 대한 인식이 바뀐 데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이유도 한몫한다. 그런데 청소년 집중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 탓에 일부 치료제는 공급 부족까지 생길 판이란다.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소득 상위 40∼60% 가구의 여윳돈이 70만원에도 못 미친다는 자료가 나왔다. 여윳돈은 소득에서 이자·세금과 소비지출을 뺀 돈이다. 4년 전만 해도 100만원에 육박했다가 급감했는데, 이유는 집값과 교육비 지출 탓이 크다. 교육비 지출만 13% 이상 늘었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29조2천억원)과 초·중·고 학생 사교육 참여율(80%) 모두 역대 최고다. 정부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한발 빼지만, 의대 증원 여파로 수험생 사교육비 지출이 늘었음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알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유아 사교육비를 조사했더니, 6세 미만 영어유치원 비용은 월평균 154만5천원으로, 연간 1천900만원에 달했다. 초·중·고 학생보다도 훨씬 많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선 '초등 의대반'에 이어 '4세·7세 고시'까지 등장했다. 유명 영어유치원에 들어가려면 4세에, 영어학원에 등록하려면 7세에 초고난도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국책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영유아 2천150명을 조사했더니 조기 사교육은 학업 능력 향상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고, 삶의 만족도는 더 떨어졌다. 그런데도 사교육 시장이 갈수록 팽창하는 배경에는 불안 마케팅이 도사리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이 부모의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학원들은 경쟁적으로 레벨 테스트 난도를 높인다. 7세 아이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까지 먹어 가며 '추론'에 몰두한다.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뇌는 망가지고, 중고교를 무사히 마쳐도 성인 이후 삶의 의욕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진다. 거창하게 국가 경쟁력을 운운할 것도 없다. 불안 마케팅이 불러온 신종 아동학대로 미래가 무너지고 있다.

    2025-03-25 19:51:04

  • [야고부-김수용] 달걀 대란(大亂)

    [야고부-김수용] 달걀 대란(大亂)

    미국 달걀 가격이 1년 전보다 60% 가까이 올라 12개 기준 1만원에 육박(肉薄)한다. 그나마 최고점보다 10% 이상 내려간 가격이다. 검역상 이유로 공식 경로 외의 달걀 반입이 금지돼 있는데도 멕시코로부터 달걀 밀수는 오히려 더 기승이다. 멕시코 달걀값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조차 달걀 문제에선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세계 2위 달걀 수출국인 폴란드부터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을 요청하고 나섰지만 상황은 마뜩잖다. 미국산 달걀 파동은 다른 나라 달걀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고, 유럽연합에선 지난해 12월보다 10% 이상 올랐다. 깨지기 쉬운 달걀은 수출 자체도 쉽잖다. 최근 수년 동안 미국인 체감 물가, 특히 식료품값이 급등하면서 불만이 극에 달하자 트럼프는 식료품값 안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부가 달걀 가격 안정을 위해 2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하기로 했는데도 달걀값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급기야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 탓을 하고 나섰고, 농무부 장관이 "뒷마당에서 직접 닭을 키우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달걀 대란의 원인은 '조류 인플루엔자(AI)'다. 지난 2022년 AI 발병 후 닭과 오리 등 가금류 1억4천8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AI가 확산하면서 살처분도 더 광범위해졌다. 지난 2월까지 4개월간 폐사한 산란계(産卵鷄)만 4천600만 마리로, 전체 산란계 3억400만 마리 중 15%가 넉 달 새 사라졌다. 이처럼 산란계가 급격히 줄고 사재기까지 기승을 부린 이유 외에 달걀 산업의 과점(寡占) 구조가 비상식적인 수준의 달걀 가격 폭등을 가져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회사가 달걀 시장의 20%를 장악한 칼메인 푸즈(Cal-Maine Foods)다. 칼메인 푸즈는 AI 발병이 없었던 2023년에도 달걀 가격을 2년 전보다 2.8배 높여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덕분에 매출은 80% 이상, 순이익은 5배 이상 급증했고, 창업주 일가는 돈방석에 앉았다. 급기야 정치권과 당국이 가격 담합(談合) 의혹을 제기했고, 미국 법무부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기소 여부는 불투명하다. 앞서 달걀 업체들은 가격 담합으로 5천만달러 이상의 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수익에 비해선 새 발의 피였다.

    2025-03-18 20:05:09

  • [매일칼럼-김수용] 경제 뿌리 제조업이 보내는 위기 신호

    [매일칼럼-김수용] 경제 뿌리 제조업이 보내는 위기 신호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조업은 경제의 뿌리다. 소비와 유통도 탄탄한 제조업의 토대(土臺) 위에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극심한 내수 부진에도 수출 확대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 오던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1월 제조업 생산지수는 지난해 1월보다 4% 이상 줄었다. 18개월 만에 최대 감소다. 정부는 설 연휴와 지난해 12월 물량 밀어내기 탓이라며 위기 신호를 외면하고 있지만 실상은 훨씬 심각하다. 1.5%대 경제성장률 달성마저 위태롭다는 의미다. 1월 제조업 제품 출하(出荷)는 지난해 1월보다 7.4%나 줄면서 2년 만에 최대 감소 폭을 보였다. 얼어붙은 내수 출하도 2.4% 줄었고, 믿었던 수출 출하는 10% 넘게 감소했다. 제조업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도 흔들린다. 16개월 만에 수출이 감소로 돌아섰고, 주력 품목인 범용(汎用)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하락세다. 설상가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업체에 보조금을 주는 반도체법 폐지 방침을 밝혔다. 관세 보복으로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급감 우려가 커지는데 신규 투자에 대한 보조금마저 사라지면 반도체 업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12일부터는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가 부과됐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지만 월가의 큰손들은 환영하는 모습이다. 제조업을 성장시켜 장기적 경제 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공동 창립자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은 관세가 궁극적으로 미국 제조업 활동을 크게 증진할 것이라고 평했다. 철강·알루미늄에 부과한 25% 관세 때문에 미국 제조업계는 단기적으로 해당 제품의 가격 상승과 비용 부담을 우려하지만, 트럼프는 외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늘어 제조업 부활과 고용 증대를 이뤄내고 이를 통해 소비 진작과 경제 성장도 도모할 수 있다며 정책 기조를 고수한다. 이런 구상이 비현실적이라는 비난도 거세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으로 노동력에 대한 제조업 의존도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반론이다. 반도체 공장만 해도 고급 엔지니어 수요만 발생할 뿐 대규모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철강·알루미늄 등 중간재에 대한 관세도 일시적으로 미국 내 관련 산업을 보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1979년 1천950만 개에서 현재 1천290만 개로 줄었고, 전체 고용에서 제조업의 비중도 8%밖에 안 된다. 1939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인데,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등장과 세계화 기조, 무역 확대로 생산 거점들이 대거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철강·석탄·방직 등을 중심으로 융성했다가 지금은 쇠락한 북동부와 북중부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표심이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를 택했다. 2020년 대선에선 바이든에 기울었던 노동자들의 마음을 돌린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제조업 부흥을 외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관세 장벽에 수출이 흔들리면 제조업은 더 위축(萎縮)된다. 2022년 기준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은 한국이 28%로, 미국·일본·독일보다 월등히 높다. 제조업 위축은 곧 경제 위기라는 말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5%로 다시 낮췄다.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 이조차 장담할 수 없다. 제조업을 지켜낼 특단(特段)의 대책이 없으면 성장은 멈추게 된다.

    2025-03-17 18:19:52

  • [야고부-김수용] 사라지는 곤충

    [야고부-김수용] 사라지는 곤충

    지구에서 벌, 나비, 귀뚜라미 등 곤충이 자취를 감추면 당장 새들이 심각한 식량난에 처한다. 1만 종 중 절반가량이 멸종할 정도다. 꽃과 열매로 가득한 정원은 사라지고, 사과·배·딸기·복숭아 등 과일도 볼 수 없게 된다. 세계 식량 작물의 3분의 1 이상이 벌과 나비 등 곤충의 수분(受粉·꽃가루받이)에 의지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지구는 수많은 생물종이 절멸(絕滅)하는 황폐한 땅으로 변한다. 환경 전문 기자인 올리버 밀먼이 쓴 '인섹타겟돈[곤충(insect)과 종말(armageddon)의 합성어]'이 그린 암울한 미래다. 어설픈 상상이 아니라 수십 년 관찰에 바탕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시나리오다. 유럽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27년간 동물보호구역에서 날아다니는 곤충이 75% 이상 감소했고, 곤충의 평균 몸무게는 1989년에 비해 4분의 3이 줄었다. 세계 곳곳에선 사라진 곤충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최근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빙엄턴대 연구자들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나비 개체수가 20년간 22% 감소했고, 일부 종은 50분의 1 미만으로 급격히 줄었다. 342개 종을 관찰했더니 107개 종은 50% 이상 감소했다. 나비가 줄어든 이유로는 서식지 파괴, 살충제, 기후변화 등이 꼽혔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작물 100종 중 70종 이상이 꿀벌의 수분에 의존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꿀값이 문제가 아니라 식량 안보가 위협받는다. 하버드대 연구 팀이 꿀벌이 사라졌을 때 식량난과 영양실조로 연간 142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지 10년이 흘렀다.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 일로(惡化一路)다. 단순히 식량 문제를 넘어 생태계 교란(攪亂)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꿀벌 등 곤충이 담당하는 수분의 경제적 가치는 217조원에 달한다는데, 인류가 대체 수단 마련을 위해 이보다 몇 배의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문제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난 4억 년간 5차례의 집단 멸종을 이겨 낸 곤충이 어느 때보다 빨리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농약과 살충제 사용을 줄이자니 당장 작황이 걱정이다. 반나절만 동네를 돌아다니면 여름방학 '곤충 채집' 숙제를 해결하던 때도 있었는데, 나비 구경조차 쉽잖은 세상이 됐다.

    2025-03-11 19:56:29

  • [야고부-김수용] 광물 전쟁

    [야고부-김수용] 광물 전쟁

    핵심 광물은 에너지 기술에 필수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희토류(稀土類) 등을 말한다. 배터리와 미사일 시스템 등에 반드시 필요한데, 중국이 세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지질조사국(USGS)이 지정한 50개 중요 광물 중 41개 광물의 50~100%를 수입하는 주요 수입처인 데 비해 중국은 29개 광물의 최대 생산국이자 희토류, 흑연, 리튬, 코발트, 구리의 40~90%를 정제(精製)하는 주요 공급처다. 중국이 광물 자원의 수출 제한이나 금지 등을 통해 무기화를 시도할 때마다 미국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이런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겨냥하고 있다. 세계 광물 자원의 5%를 보유한 자원부국인데 특히 철, 망간, 우라늄 등 100여 종의 자원은 전략적 핵심 광물로 꼽힌다. 세계 원자재 생산 현황 조사 기관인 '월드 마이닝 데이터'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세계 40위 광물 생산국이다. 러시아 침공 전 철 생산량은 세계 10위권, 배터리 핵심 재료인 망간은 8위, 흑연은 14위에 올랐고, 티타늄도 11위 생산국이다. 우크라이나 광물에 대한 약탈(掠奪)적 탐욕을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 대가로 5천억달러(720조원)를 갚으라"고 요구했는데,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영원히 경제적 식민지로 삼는 것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따지면 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에 부과됐던 것보다 더 크다고 비난했다. 게다가 독일은 침략국이지만 우크라이나는 피해국이다. 광물 협정 내용은 독소조항(毒素條項)들로 가득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자원 채굴로 얻는 수입이나 제3자에게 주는 모든 신규 허가에서 나오는 경제적 가치의 50%를 차지하고, 수출 가능한 광물에 대한 우선 매수(優先買受) 청구권뿐 아니라 생필품과 자원 경제에 대해 거의 전면적 통제권을 얻는다. 특히 법적 분쟁이 생기면, 무조건 미국 뉴욕주의 법을 따르게 돼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1천750억달러(252조원)를 지원했다지만 700억달러(100조원)는 미국 내 무기 생산에 쓰였다. 지난달 28일 쫓겨나듯 백악관을 떠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겐 아무런 패(card)가 없다."

    2025-03-04 19:58:47

  • [야고부-김수용] 텅 빈 콩나물시루

    [야고부-김수용] 텅 빈 콩나물시루

    '좁은 입구에서 밀고 밀리는 아우성이 마치 귀성열차의 개찰구(改札口)를 연상케 한다. 오후반인데도 아침부터 집에서 쫓겨 나온 아이들이 운동장을 차지해 가뜩이나 힘든 체육 시간을 망쳐 놓는다.' 46년 전인 1979년 봄 한 신문에 실린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2부제 풍경을 담은 기사인데, 점심시간 무렵 오전반과 오후반이 바뀔 때의 대혼란을 묘사하고 있다. 30년이 흘러 2010년 2월엔 이런 기사가 실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저출산 현상 심화로 올해 학령인구(學齡人口)가 1천만 명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학령인구가 1천만 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경제개발 시기인 1964년(992만5천 명) 이후 4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5년이 더 흘러 올해 2월에 나온 기사다. '올해 문 닫을 예정인 초·중·고교가 전국에 49곳이나 된다. 게다가 올해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이 열리지 않는 초등학교는 전국 170곳, 경북에만 무려 42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 국민학교 시절 한 반에서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기면 맨 끝이 70번을 훌쩍 넘겼다. 도시에선 그런 반이 학년마다 10~20개나 됐다. 필자의 기억 속 국민학교 전교생은 4천500명 정도였는데, 대도시 학교에 비해 결코 많은 편이 아니었다. 넓디넓은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던 아이들은 퇴직 무렵 중년이 됐고, 하루 종일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던 학교는 아파트에 자리를 내주거나 황량한 폐허로 변했다. 초등·중등·대학생 연령대인 만 6~21세의 학령인구는 1965년 처음 1천만 명을 넘기고 1980년 1천440만여 명까지 치솟았으나 2015년 800만 명대, 2018년 700만 명대, 2022년 600만 명대로 급격히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2040년엔 400만 명대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사라진 학교는 희망 없는 미래다. 국민연금 개혁안의 소득대체율(所得代替率) 1%포인트 차이를 두고 여야가 날 선 대립을 하는 근본 원인은 인구 감소다.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받던 아이는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가 됐고, 해마다 수십 곳씩 학교가 문을 닫던 시절의 아이는 국민연금을 낼 나이가 됐다. 이런 인구구조에선 국민연금의 존속이 불가능하다. 저출산 심각 기사가 나온 지 40년이 흘렀는데, 국민연금은 산소호흡기를 달 지경이 됐다.

    2025-02-25 20: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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