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온갖 기암괴석의 모산재

산이 완전히 녹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물들었던 산들도 언제 내가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뗀다.

높은 산 낮은 산 가리지 않고 모두 푸르기만 하다.

떨어져서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경남 합천 모산재(767m)는 그렇지 않다.

멀리서 봐도 연한 회색과 녹색, 확연히 두 가지 색으로 이뤄져 있다.

산의 주류를 이루는 바위 때문이다.

합천8경 중의 하나인 모산재는 철쭉 산행지로 이름난 황매산(1,108m) 자락의 한 봉우리. 산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행길 내내 눈에 들어오는 기암괴석과 바위 틈새에 절묘하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다른 어느 고산준령에서도 감상할 수 없는 절경이다.

바위 위로 난 등산로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느끼는 스릴은 다른 흙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다.

산행 들머리는 가회면 둔내리의 영암사지 입구. 절터 입구 도로 양쪽으로 식당들이 큰 현수막을 내걸고 있어 이정표가 아니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폭 2m 정도의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5분 정도 오르면 간이식수대와 함께 작은 주차장이 있는 세갈래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왼쪽 길로 방향을 잡으면 본격 산행이 시작되고 직진하면, 영암사지가 나온다.

시멘트 포장길은 철문이 굳게 잠겨 있는 황매정사 입구에서 끝나고 대신 뿌리를 거의 다 드러낸 소나무가 등산객을 맞는다.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보는 각도와 높이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기기묘묘한 바위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등산로도 대부분이 바위 위로 나 있을 만큼 산 전체에 널려 있는 바위는 모양이 제각각이다.

머리를 쳐든 물개 형상을 한 것에서부터 새 부리처럼 생긴 것까지 다양하다.

잘 생긴 바위 선발대회라도 하듯 줄지어 늘어서 있다.

20여명은 한꺼번에 누워도 될 것 같은 평평한 바위는 일광욕 충동까지 일게 한다.

두 발로만 서서 걷는 것이 불가능해 두 손을 짚고 기기도 하고, 군데군데 설치된 쇠줄에 매달리면서 40여분 오르면 하늘나라로 연결되는 듯한 철계단이 나타난다.

양쪽으로 난간이 있지만 깎아지른 절벽에 설치된 데다 80개나 되는 계단의 간격도 넓어 단숨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계단을 다 오르면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돛 형상의 바위가 반겨주고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씻어준다.

맞은편 계곡의 절벽에는 흙이라고는 거의 없을 것 같은 바위 틈새에서 소나무들이 용케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한국 제일의 명당이라는 무지개터. 비룡상천(飛龍上天)하는 지형으로 이곳에 묘를 쓰면 천자(天子)가 태어나고 자손은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온 나라에 가뭄이 든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모산재 정상이 바로 지척에 있는 고지대인데도 폭 4m, 길이 6m 정도의 타원형 연못이 있고, 물 속에는 개구리가 뛰논다.

표지석이 예쁜 모산재 정상에 서니 발 아래로 굽어보이는 인간세상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진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동쪽으로는 허굴산이, 북쪽으로는 꽃이 지고 없는 철쭉군락지와 함께 황매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올라올 때보다는 발목에 힘을 더 줘야 하는 하산길도 산 중턱까지는 암릉이다.

임란 당시 의병활동 근거지인 황매산성터를 지나면 순결바위. 벼랑 끝에 하나의 큰 바위가 폭 30㎝ 정도로 쫙 갈라져 있다.

깊이는 3~5m 정도. 평소 사생활이 방정하지 못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으며, 설령 들어간다 하더라도 바위가 오므라들어 나올 수 없다는 곳이다.

하지만 입구가 마땅치 않아 바위의 효능은 시험이 불가능하다.

순결바위에서 15분쯤 내려오면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국사당이다.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돌무덤처럼 쌓은 초라한 제단이다.

안내문은 '지금도 음력 3월3일에는 주민이 제사를 올리고 나라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볼품은 별로 없지만 하늘로 뻗어 햇볕을 가려주는 소나무 숲길이 끝나면 영암사지. 영암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절로 한때 제법 많은 말사를 거느린 대사찰로 추정될 뿐 누가 지었고 어떻게 해서 없어졌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절이다.

절터에 남아 있는 유물은 쌍사자석등과 3층석탑, 귀부가 전부이고, 현재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산행은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가능하다.

▶가는 길: 88고속도로 고령IC에서 빠져 합천읍까지 간다.

합천군청 소재지 지나자마자 나오는 남정교삼거리에서 합천댐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합천호 끝나는 지점에서 황매산군립공원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여기서 계속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큰 주차장이 보이고 조금 더 나아가면 영암사지 표지판이 보인다.

대구서 1시간30분 정도 소요.

▶주변 가볼 만한 곳: 임진왜란 당시 합천에서 일어난 의병의 활동에 대한 자료와 함께 유물을 모아놓은 합천임란창의기념관과 유역면적 925㎢의 합천호, 설치작가 최영호씨가 지난 96년 개관한 무료전시관으로 매달 새로운 전시회가 열리는 바람흔적미술관(055-933-4476)이 바로 인근에 있다.

▶먹을 만한 곳:영암사지 바로 입구 모산재식당(055-933-1101)에서는 자연산 논고둥을 푸짐하게 넣은 우렁된장찌개를 비롯 흙돼지삼겹살과 손두부 등을 5천원에 내고 있으며, 황매산 식당(055-931-1367)은 청국장을 전문으로 한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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