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간응급실 현장속으로

야간 응급실은 온갖 사연들이 모여드는 곳. 또 생사의 갈림점에 선 환자들이 있고 그들의 생명을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의사.간호사들의 치열한 드라마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환자의 불만과 의사의 고뇌도 망우리지고 있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

지난달 16일 밤 11시쯤 대구 ㄱ병원 응급실. 가슴을 내려 앉게 하는 앰뷸런스 소리가 요란스럽더니 한 노인이 급박하게 운반돼 들어 왔다.

심장 박동이 극도로 약하다고 노인은 소생실로 직행됐다.

소생실 밖에서는 노인의 며느리와 딸이 흐느끼고 있었다.

"어떡해 어떡해…".

응급의가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당직 레지던트에게 신경외과 전문의를 부르라고 지시했다.

레지던트들이 전화기를 향해 뛰었다.

환자의 맥박은 몇 분만에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어쩔 줄 모르고 동동거리던 가족들에게 괜찮을 것이라는 의사의 판단이 전달됐다.

가슴을 쓸어 내린 여자들은 다른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이런 난리통에도 응급실 대기장에는 몇명의 다른 보호자들이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많이도 지쳤는지 주변의 소란에도 아랑곳 않고 가늘게 코를 고는 사람까지 있었다.

비슷한 시간 다른 병원의 응급실. 몇 개 병상 외엔 환자가 없어 오히려 썰렁해 보였다.

그런 한쪽에서는 임종을 앞둔 할머니를 가족들이 지키고 있었다.

의식이 없는 듯한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까봐 가족들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20여개 병상을 차지한 환자 대부분은 노인. "갑작스런 호흡 곤란이나 복통 혹은 지병 악화로 찾는 노인이 많습니다.

대개 곧 회복되지만 시기를 놓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던 당직 레지던트가 긴장도를 전했다.

야간 응급실 환자들 중에는 호흡 곤란, 복통, 뇌출혈, 교통사고 환자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응급하지 않은 환자도 적잖아 진짜 응급환자들이 응급실에서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경북대병원 응급센터소장 정제명 교수는 "환자 중 20~30%는 일시적 호흡곤란이나 심장장애 등 증상을 보이고 5% 가량은 아주 경미한 사고 환자로 기본적인 조치만 받고 퇴원한다"고 전했다.

◆불만 많은 환자.보호자들

"환자가 많이 아파하는데 진통제라도 놔주면 안될까요?" 지게차에 발이 깔려 대구 ㄱ병원 응급실로 들어 온 환자의 보호자가 애원하듯 당직 인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은 차가웠다.

"안됩니다.

좀 더 상태를 지켜봐야 됩니다". 인턴은 다친 발을 이리저리 살피고는 이내 사라졌다.

레지던트가 나타난 것은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붕대를 풀고 살핀 그 역시 별 얘기 없이 사라졌다.

"도대체 같은 설명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하는 겁니까?" 드디어 보호자가 분통을 터뜨렸다.

환자는 그 후에도 한 시간 이상 진통제 없이 고통을 견뎌야 했다.

애타는 사람은 환자와 그 남편, 아버지밖에 없었다.

교통사고로 심야에 ㄷ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인도네시아인 근로자 마르시아(24.여)씨는 엄청난 상해에도 불구하고 즉각 수술을 받지 못했다.

응급의사는 '6개과에 복합적으로 물려 있는 상해'여서 그렇다고 했다.

의사들을 불러 모을 수 없으니 기다리라는 뜻인 듯했다.

마르시아씨는 뇌출혈, 내장파열, 골절 등 중상을 입고 있었다.

ㅍ병원 응급실 환자도 불만을 터뜨렸다.

"배가 아프다니까 산부인과.일반내과.소화기내과 등이 따로따로 검사하고 그것도 소변검사, 엑스레이 촬영 같은 기본적인 검사만 되풀이한다"고 했다.

배가 아파 일어나지 못하겠는데도 이 의사 저 간호원 살펴보기만 할 뿐 제대로 설명조차 안 해준다는 것.

지난달 22일 밤 10시쯤 교통사고로 응급실을 찾은 김모(22)씨는 "자리가 없으니 인근 병원에 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응급실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그는 또다시 구급차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갔다.

백발의 한 환자는 아예 바닥에 뉘어져 있었다.

그의 발을 정성스레 주무르고 있던 아들로 보이는 보호자는 "이렇게 편찮으신데도 복도에 뉘어둬야 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지난달 16일 밤 ㄱ병원 응급실 경우 무려 10명이나 되는 환자들이 복도에 별도로 마련된 침상에 누워 있었다.

◆의사들의 고뇌

야간 응급실에 응급전문의가 거의 없고 레지던트는 물론 인턴조차 부족한 등의 문제를 의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환자들의 불만도 이해하고 있었다.

대구시내 최대 병원 중 하나의 응급실도 겨우 레지던트 1명과 인턴 3, 4명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병원의 한 당직 레지던트는 "레지던트가 한 명만 더 있어도 좋겠다"고 했다.

"환자들이 불편을 겪는 건 이해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쉰 한 당직 레지던트는 "의사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정부와 병원들의 인식 변화나 투자 없이는 환자 불편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

그러면서 당직의사들은 더 심한 갈등도 얘기했다.

폭력배나 만취 보호자의 난동으로 고통받기까지 한다는 것. 한 레지던트는 "두어달 전 보호자 가족으로부터 뺨을 얻어 맞았다"고 허탈해 했고, 다른 의사는 "난동 부리는 보호자와 싸우다 경찰서에 끌려갈 때도 있다"고 했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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