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안에 사는 시민이나 대구를 떠나서 사는 출향인(出鄕人)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대구라는 고유명사에서 느꼈던 것은 침울함을 넘어서 침통함 그 자체였다.
작년 대선에서 맛본 패배의식을 극복하기도 전에 지하철 참사로 200명에 가까운 귀한 목숨을 어이없게 잃은 슬픔은 그 당사자 가족뿐만 아니라 시민 누구나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아침 출근길에 이처럼 큰 재난을 당하고 보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비애를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도시 한 복판에 아직 수습하지 못한 현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대구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민들의 발걸음만 무거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벌이는 스포츠 제전인 유니버시아드가 임박해오고 있으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원만한 마무리를 기다리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조문객들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대구시민들이 이번 사건을 슬기롭게 해결짓고 용기 있게 다시 일어서는 것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대구는 한국의 국난극복과 무관하지 않았던 곳이며 정신적 지주와 같은 위상을 지녀왔다.
6·25전쟁 시에는 자유대한민국의 교두보로 남아서 수많은 피란민을 도와준 인심의 고장이었고 4·19민주화혁명의 불씨가 된 2·28학생데모도 어느 일요일 날 대구에서 발생했다.
현대사에서 그 공과를 놓고 아직도 논란을 벌이고 있는 5·16의 진앙지도 대구였으며 '교육도시'라는 남다른 긍지를 지닌 곳도 대구다.
신라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고장이 배출한 수많은 인물들이 문학과 예술, 정치와 군사,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한국을 이끌어 왔으며 대구 사람들은 '비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시민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구의 이러한 자존심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갖가지 공해에 시달리면서도 섬유 염색공단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 수출의 주역인 전자공단을 가까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지역 중의 하나가 됐다.
오늘에 와서 끔직한 대형사고는 언제나 서울 부산을 제치고 있으며 시민의 자조적인 한숨소리가 가장 큰 곳이 대구이다.
최근 들어 대구시민은 '영광스러운 대구'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고 그렇게 내버려 두어서는 더욱 안된다.
우리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영광의 대구'를 다시 살려내는 일에 착수하자. 비굴하지 않고 꿋꿋한 대구시민의 자존심을 다시 살려내자. 대구의 지도자급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광의 대구'를 위해서 모두 현 위치에서 잠깐 대구를 생각해보자. 내가 상처투성이 대구를 위해서 할 일은 무엇이고 나의 몫이 무엇인지? 몫이 큰 사람이 있고 다소 작은 몫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식당 아줌마도 해야 할 몫이 있고 민선 시장의 몫도 있으며 초등학교 선생님의 몫도 있다.
우리는 '영광의 대구'를 살리기 위해서 일어서야 한다.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고 있는데 왜 일어서지 않는가? 우리가 지금 '지역감정' 같은 것에 얽매어 행동할 때인가? 한국의 큰 언덕 커다란 대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니 다급하게 다가 온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서운치 않게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아픈 상처를 감싸 매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푸른 대구'를 만든 노하우가 있고 '담장 없는 대구'를 만든 협력 정신이 있다.
지도자가 없다고 탓하지 말자. 우리 모두가 우리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면 된다.
학교에서 시장에서 사무실에서 기차역에서 정류장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작은 몫을 스스로 할당하고 그것을 남몰래 실천하자. 우리는 우리가 할일을 잘 알고 있다.
정부 탓으로 돌리거나 시장이 할 일로 미루지 말자.
유명우〈호남대 교수 한국번역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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