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유동인구 100만명의 동성로. 그 대다수가 10대들이지만 10대들만의 문화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어른들이 만든 술집과 옷집, 상점들 사이를 떠다니는 구경꾼일 뿐 주체로서의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는 것. 이런 현실에 맞서 팔을 걷어붙인 청소년들이 있다.
대구청소년문화아케이드 '우주인'과 대구청소년자원봉사센터 소속 청소년들. 이들은 이제 자신들을 소비만 하는 구경꾼에서 문화생산의 주인공으로, 어른들에 의해 규정됐던 거리 문화를 청소년들의 색깔로 바꾸기 위한 '작지만 큰' 작업에 들어갔다.
휴일인 지난 8일 오후3시가 가까워지자 대구 중구 덕산동 삼성금융플라자 앞으로 중·고교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바로 '우주인'과 봉사센터 소속 학생들. 첫 프로젝트인 대구청소년 문화지도 '사방팔방'을 제작하기 위해 모여드는 것이었다.
'사방팔방'은 지도(地圖)다.
시청에서 만드는 대구관광안내도나 여행관련 업체에서 만드는 여행 안내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청소년들이 골목골목 현장을 답사해 만든다는 점에서 주체부터 차이가 난다.
표시되는 장소도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갈만한 곳이 중심이다.
청소년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추천받기도 하고, 분위기를 전해 듣기도 하면서 관련 정보를 채운다
이 작업에는 기성 세대에 가려 음지로 숨어다는 청소년들과 그 문화를 스스로 진단해보고 그들만의 다양한 문화공간을 넓혀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도의 첫 구역으로 동성로가 선정됐다.
청소년자원봉사센터 조여태씨는 "이번주에는 오리엔테이션 형태로, 다음주부터 본격 현장 답사에 나서게 된다"면서 "휴일과 여름방학 동안 지형과 문화 찾기를 해 동성로에 숨어있는 청소년 문화를 속속들이 알린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오리엔테이션은 5, 6명씩 팀을 이뤄 이미 만들어져 있는 대구 골목지도를 펴들고 골목탐방을 벌이는 일이었다.
지도와 지형의 단순한 비교에 지나지 않아 보였지만 자신들이 직접 만들 지도를 상상하느라 30여명의 참가자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1조는 진골목, 2조는 염매시장, 3조는 화교거리…". 거리문화시민연대 최정현 간사의 설명이 끝나자 과제를 받아든 청소년들은 부리나케 현장으로 출동했다.
최 간사는 "청소년들이 갖는 다양함만큼 지도제작 방식도 창의적일 것으로 기대한다"며 "스스로 발로 뛰면서 만드는 만큼 보람도 클 것"이라고 했다.
화교거리를 찾아나선 3조를 따라갔다.
거리로 나섰다는 들뜬 표정은 잠시. '화교가 운영하는 가게를 파악하라', '모문금이 만든 중국식당 '군방각'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쉽지 않은 과제에 청소년들의 고민이 이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던 이들은 일단 근처에 있는 중국집 문부터 두드렸다.
"센츄럴호텔이 있는 곳에 군방각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어졌대요". 어렵사리 1과제를 해결한 조원들은 화교촌을 찾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조장인 조희선(17)양은 "자주 지나쳤는데 이곳이 중국인들이 모여사는 화교촌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라며 "문화지도가 완성되면 동성로를 찾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오후 5시30분쯤 계산성당. 골목답사를 마친 청소년들이 자신들만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성당 한쪽에 둘러앉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팔다리가 뻐근할 만했지만 하얀 백지가 펴지자 재기발랄한 의견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삐뚤삐뚤, 제각각의 모양으로 그렸지만 들인 정성은 여름 초입의 날씨보다 더 뜨거웠다.
달서공고 박지원군은 "지도가 완성되면 많은 또래 친구들이 어른들의 공간을 기웃거리지 않게 될 것"이라며 "이런 중요한 작업에 참여한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다음모임부터 본격적인 동성로 답사다.
대구백화점·중앙파출소·로데오거리·학원가·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 권역별로 팀을 나누고 청소년들이 즐겨찾는 '가게' '거리' '이동동선' 등을 구분해 지도 제작에 들어간다.
지도는 11월까지 완성하고 6천부 정도 제작해 학교와 청소년단체로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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