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당시 최대의 격전지였던 칠곡. 국내 유일의 구국의 현장에는 조국을 지키고자 젊디 젊은 청년들이 조국을 위해 내 한목숨을 기꺼이 내던진 호국의 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이 배여 있다.
평소엔 고요하기만 하던 기념관과 전투현장 등 상징물들은 해마다 6월이면 이곳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 활기를 되찾으며 산역사의 교육장이 된다.
낙동강 방어선전투, 유학산전투, 다부동전투, 왜관철교 폭파 등 침이 마를 정도로 당시의 생생한 증언이 쏟아지는 것도 이때다.
이와함께 당시의 현장이 고스란히 보존된 칠곡군 지역을 국민순례지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엔 낙동강 다리인근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는 가수 현인씨의 '전우여 잘 자라'란 노래비 건립을 추진했으나 좌절된 상태다.
칠곡군 구국의 현장을 둘러본다.
▨폭파된 낙동강 구철교(호국의 다리)
일본이 대륙 침략을 위해 부설했던 경부선 군용철도의 교량이었다.
6.25 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이 함락 위기에 놓였던 1950년 8월1일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워커라인)을 구축, 왜관 일대가 그 중심지였다.
8월3일 왜관에 있던 주민과 피난민들의 대피령이 내려졌고 북한군의 도하를 막기 위해 작전상 한강교와 버금가는 왜관 낙동강 인도교를 폭파했다.
3일 오후 8시30분 굉음과 함께 인도교와 복선철교 각 1구간이 폭파됐으며 어둠이 짙어진 밤하늘에는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파편이 날면서 트러스와 상판이 무너져 내렸는데 총길이 469m중 왜관쪽 둘째 경간 63m가 끊어졌다.
철교폭파 당시 공무원이었던 김성탁(74.약목면)씨는 "폭파 당시 하루종일 사이렌이 울리며 오후 6시안에 왜관을 떠나라고 방송했다"고 증언했다.
그해 10월 국군의 총반격때 침목 등으로 긴급복구한 이후 계속 인도교로 이용했으나 복구 부분이 너무 낡아 1979년11월부터 통행을 전면 차단했다.
철도청에서는 철거를 검토하기도 했으나 "호국의 상흔을 간직한 이 다리를 보존해야 한다"는 칠곡군민들의 주장으로 칠곡군이 무상관리 승인을 받아 91년 8월부터 6억1천여만원을 들여 교각1기 신설, 상판63m 복구 등 수리를 한 후 '호국의 다리'로 명명하여 인도교로 사용해오고 있다.
이 다리를 건너보면 당시의 긴박함을 느낄 수 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
중앙고속도로 다부IC에서 동쪽아래 다부동 고개가 시작되는 입구지점에 25m 규모의 기념비와 탱크모양의 전적기념관이 6.25당시 격전지였던 유학산을 바라보고 서 있다.
당시 다부동 새마을부녀회장인 정순덕여사가 칠곡군을 방문한 전 대통령에게 전승기념관 건립을 호소한 것이 계기가 되어 81년7월에 착공하여 11월에 완공했는데 서울 남산 미술원에서 탱크모양의 특이한 모습으로 시공했다.
내부에는 당시 전투에서 사용했던 중화기와 소총등 무기를 전시하고 있다.
수많은 전란이 이 다부동 고개를 거쳐 갔지만 6.25라는 동족상잔의 참화는 아직도 인접한 유학산 구비마다 곳곳에 서려 있다.
다부동 일대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 94년과 95년, 97년, 2000년엔 군부대(50사단)에서 수색한 결과 상당한 유골수습과 전쟁 유품들을 발견, 기념관 입구 양지바른 곳에 안장하고 구국용사충혼비를 세워 추모제를 지내며 넋을 기렸다.
당시 다부동전투는 55일간이나 계속됐으며 북한군 2만4천여명과 국군 1만여명이 전사하거나 다치는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북한군 3개사단에 비참한 패배를 안겨주었고 전세를 역전시키는 발판 구실을 한 곳이다.
이곳에는 조지훈 시인이 직접 종군하면서 격렬했던 다부동 전투의 참상을 표현한 '다부원에서'라는 시를 새긴 시비가 서 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발길들도 점차 줄고 있다.
지난 2000년엔 내국인 95만2천761명과 외국인 2천257명 등 95만5천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으나 지난해엔 내.외국인 포함 66만4천600여명에 불과했다.
올해엔 5월말 현재 26만1천여명이 방문했으며 대부분 5월과 6월에 집중되고 있다.
▨왜관지구 전적기념관
멀리 금오산이 보이는 석적면 중지리 낙동강변에 위치한 이 기념관은 6.25 전쟁당시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진 격전을 기념하여 78년에 건립했다.
6개의 전시장엔 당시 사용한 무기류와 피복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학산 6.25격전지 순례 탐사지
유학산은 다부동을 병풍처럼 감싸 안고 있는 지형이다.
839m에 불과한 정상에 올라서면 적 포병이 대구시를 공격할 수 있는 요새라는 것. 이같은 지형의 중요성을 인식한 아군과 적군은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처절한 죽음의 혈전을 벌였는데 8월18일부터 25일까지 8일간 9차례나 뺏고 빼앗기는 고지탈환 작전을 펼친 곳이다.
자고산(303고지:왜관읍 석전리) -328고지(석적면 포남리)-숲데미산(석적면 망정리) -유학산(석적면 성곡리, 가산면 학산리)을 잇는 방어선은 치열한 고지탈환작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유명하며 328고지는 무려 15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고 참전 용사들은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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