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당시 대부분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1080호 전동차의 중앙로역 진입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LCP'라는 장치가 중앙로역에 있었는데도 이를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구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내주 부장판사) 심리로 9일 열린 지하철참사 피고인 4차 공판에서 운전사령 홍모 피고인측 변호인은 중앙로역 역무원 이모씨측 증인인 중앙로역장 권모씨에 대한 신문을 통해 "당시 이씨가 LCP를 작동시켰더라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검찰의 전면 재수사를 요구했다.
이 변호인은 권 증인에게 "화재 등 비상사태 때 역무원이 중앙로 역무실안에 설치돼 있는 LCP에 전동차 번호를 입력시키고 비상정지 버튼을 누르면 기관사나 운전사령 의지와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전동차를 멈출 수 있느냐"고 물었고 권씨는 "있다"고 답했다. 변호인은 또 "역무원 이씨가 화재 발생 사실을 운전사령에게 보고한 뒤 1080호 전동차가 중앙로역 진입에까지 1분 이상의 시간이 있어 비상정지 조치를 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권 증인은 "다른 일을 안했다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권 증인은 "비상정지 버튼을 누르면 전동차가 어디 설지 모르는데다 화재 등 긴급사태 발생 때 달리는 전동차는 무정차 통과시키는 것이 원칙"이라고 진술했고, 반면 변호인은 "이 장치는 에어슬립다운 방식으로 돼 있어 전동차가 급정거하는 일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날 권 증인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는 화재 등 비상사태에 대비한 전동차 비상정지훈련이 평소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기관사와 역무실간에 설치된 통화장치의 고장 여부 확인 등도 평소 형식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밝혀졌다.
9일 재판에서는 피고인측 증인 6명의 진술에 유족들의 항의가 빗발쳐 유족 2명이 퇴장 당하기도 했다. 특히 유족들은 증인인 권씨를 위증죄로 고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재판은 오는 16일 오후 2시 열릴 예정이다.
◈ LCP란?
대구지하철공사 '운전취급 규정'에 따르면, 평상시 전동차 운행 제어 및 진로 구성은 종합사령팀 내 운전사령실에서 TTC(Total Traffic Control, 전동차 운행 종합제어) 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하게끔 돼 있다. 운전사령실 관계자는 "사령실 전면에 설치돼 있는 LDP(Large Display Panel, 대형 상황반)와 제어컴퓨터를 통해 운행을 제어한다고 전했다.
◇역에서 할 수 있는 부가 장치 = LCP(Local Control Panel, 驛制御盤)는 중앙집중식 종합사령실이 아닌 개별 역에서 전동차의 진로를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긴급용 장치이다. 전동차 비상 정지, 선로 전환, 신호 제어 등을 할 수 있고, 지하철 운행역 중 '운전 취급역'에 설치돼 있다. 특히 전동차 비상 정지 기능은 TTC 및 LC 제어에 상관 없이 작동 가능하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LCP에 있는 '비상 정지' 단추를 누르면 언제든 전동차를 세울 수 있다는 것.
대구지하철 1호선 경우 30개 역 중 LCP가 설치된 '운전취급역'은 대곡.진천.송현.교대.중앙로.큰고개.방촌.반야월.안심역 등 모두 9개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이들 운전취급역에서는 인근 3~4개역을 구간제어할 수 있도록 돼 있다는 것.
한 운전취급역 관계자는 LCP는 △전동차 비상정지 △TTC∼LCP 상호 제어모드 변경 △자동 신호제어(AUTO), 연속 진로제어(FLEET), 수동 제어 등 3가지 운전모드 변경 △회차 모드(대곡.안심역 등 종착역에서 주로 사용 가능) △구간을 정해 놓고 신호체계를 변경할 수 있는 신호 압구(壓區) 등의 장치나 기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역에서 독자 운영 가능하나? = 그러나 LCP는 △운전사령실에서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이거나 △LC(역제어.驛制御)가 필요하다고 운전사령이 인정할 경우에 한해 운전취급역에서 역장(부역장 대행 가능) 책임 아래 운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관계자가 말했다. 이 관계자는 "LCP는 사령 승인이 있어야 운용될 수 있다"고 했고, 지하철공사 규정에는 "LC로의 변경이나 TTC로의 복귀는 운전사령의 승인에 의하여만 한다"고 돼 있다.
단, 비상로컬제어(EMLC, Emergency Local Control) 전환 또는 사고 장애 등으로 인한 운전취급역.사령실 간 통신불능일 경우에는 예외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은 있다. 이와 관련해 운전취급역 관계자는 "이때도 실제 운용과정에서는 사령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LC 작동시키면 급정거될까? = 월배차량기지 사업소 관계자는 "비상정지될 경우 프로그램화돼 있는 속도코드 신호 체계가 작동을 중단, 전동차가 일정 제동거리를 달린 뒤 멈추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상제동은 공기 작용만으로 이뤄지도록 돼 있어 큰 무리는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대구지하철공사 기술 관계자는 "공기 제동은 승객 하중 등을 감안해 공기압을 조절, 직접 전동차 바퀴에 마찰시켜 속도를 줄이도록 돼 있는 방식이어서 급정거 사고를 피할 수 있게 돼 있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전동차 경우 비상정지 때 제동거리는 내리막 선로를 기준으로 최고시속 80km 때 600m 이내로 잡혀 있고, 감속도는 초당 평균 3.5km/h라고 했다. 중앙로역과 인접역 사이 거리는 각각 725m이고 규정 시속 등을 고려할 때 제동 거리와 시간은 대구역->중앙로역 400m 및 16초, 반월당역->중앙로역 550여m 및 21초로 관측됐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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