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경계인-(4)대구-경북 '양다리 경계인' 증가

경북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는 대구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신 경계인'은 전원주택, 상가, 직장 등 새 터전에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하며 경계 지역을 대구화하고 있다.

◇경계로, 경계로….

대구 남구 봉덕동에 사는 김세진(44)씨는 지난 1월부터 대구 경계의 청도 각북면으로 출퇴근 식당 장사를 하고 있다. 지난 가을 식당 창업을 결심하고 시장조사에만 수개월을 매달린 끝에 내린 결론은 대구가 아니라 '경계'였던 것.

김씨가 가장 먼저 찾은 대구 수성구 들안길은 규모에 비해 값이 너무 비쌌다. 웬만한 가게는 보통 보증금 3억원에 월세 500만원을 호가했다. 그때부터 대구 접경지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식당 터를 매입해 새 건물을 짓기로 결심한 것. 김씨는 대구와의 교통편, 잠재 인구 수요 등을 철저히 고려해 20만~30만 원의 각북 땅 1천 평을 사들이고 직접 식당 공사에 뛰어들었다.

평당 25만 원에 구입한 땅은 불과 반년 새 딱 배로 값이 뛰었고, 수백m 떨어진 곳에 전원주택단지도 잇따라 늘어서고 있다. 김씨는 "하루 6, 7팀에 매상은 10만~20만 원 수준"이라며 "아직은 투자에 비해 수익이 저조한 편이지만 땅에서 큰 이득을 봤고, 전원주택단지 조성이 끝나는 올 연말이면 하루 50만 원 이상의 매상은 문제 없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찾은 청도 각북면 일대에선 김씨 같은 대구 출신들이 '신 경계인'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각북에 대구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기 시작한 건 15년 전 헐티재 도로 공사 이후. 주민 박청숙(49)씨는 "교통 문제가 해결되면서 도시인들이 몰려들었고, 한적한 시골마을을 상전벽해가 무색할 정도로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상가부터 붐을 탔다. 대구 사람들은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100여 ?·개의 상가를 냈고, 2000년대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최근 2년간 상가 3, 4곳을 새로 개업했다.

요즘은 전원주택 입주민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비슬산 계곡과 도로를 낀 일대는 최고의 전원주택 단지로 떠올라 오산리를 비롯해 금천리, 덕천리, 지슬리, 남산리 등 각북면 인근에 모두 100여 가구의 전원 주택이 들어섰다. 오산 2리에는 올해 안으로 300m 능선 구간에 200평씩 11개 전원주택이 들어선다. 일대 상가들은 "전원주택 입주자들은 금융, 경찰, 공무원, 의사, 변호사 등 대구 사회 저명 인사가 많다"고 말했다.

◇경계지역의 대구화

대구 사람들의 상가, 전원주택 진출이 잇따르면서 신경계인과 원주민 인구의 역전 현상도 머지 않았다. 주민들은 "도시인 입주가 가장 활발한 오산 2리엔 상주 인구 300명 중 3분의 1 이상이 대구 사람"이라고 했다. 대구 출신의 '신 경계인'들은 이미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하며 경계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각북의 20명 규모의 한 전원주택 모임 회원은 "단지 내 20가구 중 90% 이상이 대구 출신이고 각종 전원주택 정보를 공유한다"며 "대구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식당, 레저시설 등을 경영하며 현지에 정착한 사람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일대 땅 주인도 대부분 대구 사람이다. 농민들은 농사 지을 최소한의 공간만 남겨두고 대구 사람들에게 땅을 팔고 있다.

90년대 초만 해도 12만 평에 달했던 주변 농지는 불과 10년새 6만 평으로 줄었다. 자기 땅은 하나도 없고 전원주택이 들어서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빌려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

취재팀이 만난 한 농민은 논 5천600평을 모두 팔고 지금은 1천 평만 빌려 짓고 있다고 했다. 농지는 자꾸 줄고 전원주택 단지로 개발했거나 개발할 예정인 땅은 계속 늘어 그 비중이 2대 8에 이르고 있다는 것.

오산 2리 이행건(48) 이장은 "굴러온 돌이 박인 돌을 빼는 듯한 '비애'는 어쩔 수 없지만 상가, 전원주택 단지 개발은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며 "언젠가는 농지와 원주민들은 모두 사라지고 대구 사람들이 오산리 일대에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단도 대구화

1994년 들어선 경산의 진량산업단지는 197개 업체에 7천40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진량읍사무소 김종도 총무담당은 "근로자의 60~70% 정도가 읍이 아닌 대구에 거주하고, 기업체 대표의 경우 90% 이상이 대구에서 출퇴근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단지 내 아진산업(주) 이원찬 총무팀장은 "회사 종업원 190여 명 중 총각 등을 제외한 60% 정도가 자녀 교육 때문에 승용차로 40, 50분 거리인 대구의 시지나 반야월 등에서 매일 출퇴근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출퇴근 시간대 진량나들목 주변은 대구에서 공단을 오가는 직원들의 차량이 한꺼번에 몰려 교통체증이 심각한 실정이며 이 때문에 규모가 큰 회사는 10대 이상의 공단-대구 간 통근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진량읍사무소 김 담당은 "대구에서 온 공단 근로자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진량에서 보내고 있지만 진량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소속감은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신 경계인'들은 진량 상권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6년 전만 해도 외환은행 진량공단 사거리의 좌우 도로변을 따라 15개 정도에 불과하던 식당이 현재 70여 개로 불었다. 하지만 경기 침체에다 소비의 축인 공단 근로자들이 낮에만 북적일 뿐 저녁 이후에는 대구로 대거 떠나는 바람에 삭막한 도시로 돌변한다.

단지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 중인 박모씨는 "주민들은 공단 입주 당시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도시 발전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며 "주민들은 모두 공단을 바라보고 살고, 공단 근로자들을 한 식구처럼 여기지만 공단 근로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이상준기자 대구권팀 이홍섭·김진만·정창구·이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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