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하 참변' 겪은 한국야구의 숙제

제15회 도하아시안게임은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4강 진출 신화의 벅찬 감동을 경험했던 한국 야구에 좌절과 함께 많은 과제를 남겼다.

지난 1998년 방콕 대회와 2002년 부산 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 3연패를 기대했던 한국 대표팀은 첫 경기인 대만전 패배로 금메달이 물 건너 간 뒤 설상가상으로 사회인 야구가 주축인 일본에도 무릎을 꿇어 씻기 어려운 '도하 굴욕'을 경험했다.

서재응(탬파베이)과 김병현(콜로라도) 등 메이저리거와 일본프로야구의 거포 이승엽(요미우리)이 빠졌다 하더라도 몰라보게 성장한 국내 프로야구 주전급 선수들로 팀을 짰기에 대만과 일본에 잇따라 진 충격은 더욱 컸다.

WBC 4강 감격에 취해있던 한국 야구계에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신화를 재현하기 위한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도하 참변'을 계기로 한국 야구가 한 차원 도약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향후 대표팀을 어떻게 짤 것인가가 자연스럽게 화두로 떠오른다.

대표 선수 발탁에 전권을 행사한 사령탑 김재박 감독은 해외파를 망라한 최강 드림팀을 꾸리기보다 금메달 획득에 따른 군 미필 선수들의 병역 특례를 상당 부분 고려했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표팀 22명 중 군 미필자가 14명이나 포함된 점을 봐도 '병역 혜택을 고려한 선발'이라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물론 재계약 문제가 남아있던 이승엽과 서재응, 김병현 등을 차출하기 어려운 현실적 걸림돌이 있었다.

하지만 대만은 일본 무대에서 뛰고 있는 장치엔밍(요미우리), 린언위(라쿠텐), 린웨이추(한신)와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 소속의 투수 궈홍즈 등이 조국을 위해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한국 해외파 불참을 현실적 어려움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콕 아시안게임과 WBC처럼 해외파가 참가할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명확한 선수 선발 원칙 확립과 적절한 당근 마련도 고민할 부분이다.

병역 미필 선수를 억지로 끼워넣으려는 구단이 입김이 작용해서는 최상의 조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병역 특례를 노려 자기 선수를 명단에 올리기 위한 각 구단의 물밑 로비가 치열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대표 선발의 투명성과 함께 최강 전력을 담보하려면 선수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드림팀의 명성에 걸맞은 대표를 발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한시적 선수 선발위원회가 있지만 대표들의 체계적 관리를 맡을 '기술위원회' 신설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하일성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야구도 전임 감독을 지냈던 운영위원과 아마 감독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술위원회와 같은 상시 체제가 필요하다. 상대 국가팀에 대한 전력 분석은 물론이고 상비군 형태의 대표팀 운영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위 설립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베일에 가려있던 일본팀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 불의의 일격을 당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대표팀에 상대팀 선수 정보를 보다 철저하게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또 부상 선수에 대한 보상책과 참가를 독려할 수 있는 동기 부여 방안도 생각해 볼일이다.

WBC에 참가했다 예기치 않은 어깨 탈골 부상을 한 김동주(두산)는 한 시즌을 거의 허송세월한 뒤 충분한 보상 기간을 인정받지 못하고 1개월여 차이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지 못했다.

이는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힌 김동주의 불참 선언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특혜는 곤란하지만 선수들이 몸을 던져 뛸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은 나쁘지 않을 듯하다.

병역 혜택을 기대하는 군 미필 선수들은 강한 투지가 무기지만 상대적으로 경험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다.

반면 병역을 마친 베테랑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해 뛰겠다는 의욕이 군 미필자들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대표 선수 발탁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딜레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최상 전력의 드림팀으로 실추된 한국 야구의 명예를 회복할 방안을 야구인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한국 야구의 부활을 위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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