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박이가 소개하는 '대구 수성구'

대구의 뿌리 수성(壽城)/홍종흠 지음/수성문화원 펴냄

대구의 수성구는 전국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

놀라운 교육열에 보수성과 함께, '알부자'들이 많은 동네로 알려져 있다. 1980년 4월 1일 동구에서 분구될 때만 해도 수성구는 인구가 20만 명에 불과했다. 지산·범물동은 군데군데 축사가 있는 논밭이었고, 수성못과 그 옆 서커스공연장에만 사람들이 구경 갈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수성구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대대적인 주거환경 개발과 함께 도로도 시원하게 뚫렸고, 녹지공간도 확충됐다. 우수한 교육환경을 갖추고 각종 국제경기 개최지로서 문화와 스포츠의 중심 지역으로 발돋움했다. 인구도 45만명으로 늘었다.

이 책은 대구 수성구의 역사와 문화재, 지형과 기후를 담은 향토 지리지이다. 수성구는 신천의 동편 평야지인 서성들을 중심으로 경산시 경계까지의 동편 산지와 구릉지, 남으로는 금호강 이남 유역의 구릉지와 평야지를 포함하고 있다.

언제부터 '수성'이란 이름으로 불렸을까?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에 편찬한 '삼국사기 지리지'에 처음으로 '수성군(壽城郡)이란 지명이 나온다. 지명은 8세기경 생긴 것으로 보이지만,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던 것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0년 국립대구박물관이 구석기 유적인 파동의 바위그늘 유적을 발굴 조사한 결과다.

현재 우방팔레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상동 지역의 유적을 비롯해 만촌동 고분군, 상동 지석묘 등 문화재와 노거수(老巨樹), 전설과 지명 유래, 소리가사와 시가, 특화 음식 등 수성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또 수성못과 수성아트피아, 영남제일관 등 수성구의 명소도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매일신문 논설위원과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을 지냈으며 평생 수성구에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이 고향으로서,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로서의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에 의문을 가질 때마다 내가 살고 있는 수성구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 책은 언젠가 이를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295쪽. 비매품.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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