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웬지?', '찌개? 찌게?'
기자가 길가는 대학생들을 붙잡고 물었다. 위의 표현 중 어느 것이 우리말 맞춤법에 맞는 것일까? 학생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낯빛이 역력했다. 10명에게 물었는데 "찌게, 웬지"라는 오답이 6명이었다. "꼭 그런 걸 정확하게 사용할 필요 있나요? 대충 뜻만 통하면 되지…." 학생들은 "국어 맞춤법이 너무 어려워 표기법 하나하나를 정확히 꿰고 있기가 쉽지 않다"고 투덜거렸다.
◆대학에서마저 무너지는 맞춤법=학부생들의 시험 채점을 담당하는 대학원생들은 "가끔 답안지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띄어쓰기는 아예 논할 바가 아니다. 간단한 맞춤법조차 틀리는 사례가 워낙 빈번하기 때문이다.
김모(29·경북대 석사)씨는 "'끊어진'을 끈어진, '줄어듦'을 '줄어듬' 등으로 받침을 소리나는 대로 쓰는 경우가 가장 많고, '안했다'를 '않했다'로, '체제'를 '체재'로 쓰는 등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틀리는 경우도 흔하다"며 "일일이 열거하기 부끄러울 정도"라고 했다.
지역 한 대학 경제학 교수는 전공 수업시간에 국어 강의를 해야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학생들이 '백분율' '백분률'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 "'율'로 표기하는 경우는 앞 단어에 받침이 없거나 ㄴ받침이 들어가는 경우고, '률'로 표기하는 경우는 ㄴ 이외의 받침이 들어갈 때라고 설명하자, 그제야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요즘 고등학교에서는 뭘 가르치는 걸까요?"
여대생 하모(21)씨는 남자친구에게 받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여줬다. '느져서 미안해. 나 이재 도착했는데 어데야?' 하씨는 "처음에는 장난이려니 했는데 이제는 슬슬 짜증이 날 정도"라며 "정말 맞춤법을 몰라서 틀리는 것 같아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실제로 대학생들의 맞춤법 점수는 낙제점이다.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albamon.com)이 8일 한글날을 앞두고 대학생 1천2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학생 73.8%가 "일상생활에서 한글을 사용할 때 종종 맞춤법 실수를 저지른다"고 답했다. 이들은 스스로의 맞춤법 점수에 대해 평균 59.5점을 줬다. 이 중 인문계열 학생들이 64.4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줬고, 공학계열이 60.2점, 자연계열이 57점, 예체능계열은 54.1점으로 가장 낮았다.
학생들만 맞춤법에 약한 것은 아니다. 대선 후보 시절 이명박 대통령은 국립 현충원 방명록에 '~않겠읍니다' '…평화 통일을 이루는데 모든것을 받치겠읍니다' 등 잇단 맞춤법 오류로 인해 입방아에 올랐고, 정동영 후보 역시 국립현충원 방명록에다 '엎그레이드'라고 써 망신을 당했다.
◆영어 열풍 속 홀대받는 국어 교육=생활 속 맞춤법이 무너지는 이유는 뭘까? 교육계에서는 과도하게 영어에만 편향된 분위기를 지적했다. 대구시 교육청 임순남 장학사는 "국어 공부보다는 영어 공부에 몇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영어 스펠링 틀리는 것은 창피하게 생각해도 맞춤법 틀리는 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요즘 학생들"이라고 답답해했다.
'논술'이 강조되면서 표현하는 능력을 높이는 데만 중점을 둘 뿐 정확한 철자법(받아쓰기) 교육은 등한시하는 국어 교육 구조 탓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형필 장학관은 "너무 세세한 철자법에 치중하다 보면 오히려 표현력을 저해한다며, 요즘은 초등학교 저학년 교사들도 받아쓰기에 중점을 두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