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여권의 품격

한국 여권으로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는 모두 145개국이다. 번거로운 비자 발급 절차가 없어도 되는 나라가 많다는 것은 신분증명서로서의 여권 쓰임새가 많다는 뜻이다. '비자 면제'가 주는 해외여행의 편리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통계를 보면 미국·영국 여권은 147개 국가에서 비자가 면제돼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여권이다. 한국은 독일·프랑스와 함께 145개국으로 2그룹에 속한다. 한마디로 한국 여권은 전 세계 198개국 여권 중 최상위 5개국에 속할 만큼 위상이 높다.

나라마다 자국 여권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을 들이는 것은 여권이 바로 국력이자 국가 이미지를 알리는 중요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여권 색상과 디자인을 바꾸고 위조 방지에 큰 예산을 쓰는 것도 여권이 갖는 정치외교적 성격과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독특한 디자인의 여권은 공공 디자인의 힘과 국민 문화의식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권은 단순한 증명서가 아니다.

몇 해 전 핀란드와 노르웨이, 캐나다의 새 여권이 인터넷에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핀란드 여권은 플립북처럼 빠르게 넘기면 엘크(말코손바닥사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될 만큼 색다른 발상으로 호평받았다. 빙하와 호수 등 자연을 단순화시킨 노르웨이 여권의 경우 자외선 조명을 비추면 배경이 암전되면서 오로라가 펼쳐진다. 이렇듯 여권 디자인 하나에도 국가 정체성을 담아내고 섬세한 디테일로 국가 브랜드를 널리 알리려 노력하는 것이다.

1988년 지금의 디자인으로 바뀐 여권이 조만간 변신한다. 정부가 그제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2020년을 목표로 녹색의 일반여권을 남색 계열로 바꾸고 디자인도 대폭 손본다고 밝혔다. 여권 색상이 '촌스럽다' '국가 정체성과 맞지 않다'며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한 때문이다. 녹색 여권은 현재 이슬람 국가나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로 쓴다.

새 여권은 2007년 여권 디자인 개선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서울대 김수정 교수의 디자인을 보완해 만든다. 아무튼 새 여권은 국민 눈높이와 국민이 생각하는 나라의 품격에 맞게 확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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