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회의가 주제와는 달리 구도심 재생 문제로 흘러갔다. 누군가가 옛 지도를 만들어서 이를 오늘날 도시 위에 얹어 보는 작업에서 도심 재생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도심 재생에는 옛 모습과 이야기를 찾아가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포항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 불과 몇 년 전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렸다. 발전이라는 명분 앞에 모든 게 다 사라진 꼴이었다. 씁쓸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형산강 둑길을 걸으며 옛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친구들과 내달리던 들과 강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형산강은 양산목을 지나 영일만과 만나면서 넓고 기름진 삼각주를 만들었다. 상도, 하도, 분도, 죽도, 해도 다섯 마을이 생겨났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중섬과 안터라는 마을이 더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일곱 개 마을인 셈이다. 마을 어른들은 칠성강 이름이 달리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하늘의 별처럼 곱고 아름다운 섬 일곱을 품고 흐른다고 칠성강이라고 했단다. 섬안들을 흐르던 모든 물줄기가 칠성강이었던 셈이다.
하늘의 별 같았던 섬안 마을. 곳곳이 둠벙이었으며, 샛강이었다. 샛강과 둠벙에는 물풀 사이에 알을 붙이는 가물치, 메기가 넘쳐 났다. 뜸닭이라고 불렀던 뜸부기가 알 품는 모습을 훔쳐보는 일은 일상이었다. 오리정에서 섬안들을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걷다 보면 해도 쪽은 온통 푸른 갈대밭이었다. 갈대밭에 집을 짓고 살던 개개비와 도요새는 그야말로 지천이었다. 갈대 홰기가 올라오면 이를 지키려고 원두막이 곳곳에 설치되었다. 홰기는 빗자루로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귀한 취급을 받았다.
이렇듯 형제산을 지나온 물줄기가 영일만에서 만나 포항이라는 터전을 만들었다. 섬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만든 마을이 섬안이었으며, 들은 섬안들이었다. 봄이면 물안개 피어나던 형산강, 칠성강, 샛강과 수많은 둠벙, 여름이면 서걱대던 갈대숲과 물새들, 가을이면 오곡 넘실대던 들녘. 벼 익는 색깔만큼이나 평화롭고 풍요롭기만 했던 시간이고 공간이었다.
포항 근대교육도 섬안에서 비롯되었다. 호상학교, 민족교육을 지향했던 이 학교는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었으나 그 건물은 1970년대까지도 남아 있었다. 우리들은 그 집을 '꽃밭집'이라고 부르며 개구멍을 뚫고 드나들었다. 여름 한철을 환하게 밝혀주던 배롱나무 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제는 그 모든 게 사라져 버렸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아,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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