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느낌잡기

김정희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몇 해 전 상담실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마트의 음료수를 선택하는 순간에도 너무 많은 생각들이 파도처럼 일어나 선택을 잘 못할 때가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선택의 고민은 자신의 색깔을 찾고 싶다는 어느 여대생과 결과에 대한 낙심으로 자신의 선택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취준생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나는 최근의 상담 주제이다.

심리학자 로저스는 '인간은 생득적으로 실현경향성을 갖고 태어나며 이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킨다'고 하였다. 하지만 자라는 나무가 주변의 환경을 통해 일그러지기도 하고, 또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부분도 생겨나는 것처럼 인간의 성장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유기체인 인간의 욕구는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어 하는 욕구로 인해 억제되고 변형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적절한 사회적 적응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불행한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선택은 두 개 이상의 욕구가 충돌할 때 고민하게 된다. 또 어느 혹자의 말처럼 선택의 망설임이 자녀 대신 부모가 선택해주는 과잉 양육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결과일 때만 선택의 가치를 부여하는 평가적인 분위기가 하나의 이유가 될 지도 모른다. 아무튼 햄릿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인 걱정과 안타까운 시선과 달리, 이러한 고민을 갖고 상담실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행운아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선택의 어려움을 갖고 상담실에 찾아오는 이들은 적어도 자신의 욕구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욕구를 지나치게 억압하여 온 사람은 자신의 욕구가 있는지조차 구별 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선택이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 느낌이 있을 때 비로소 선택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마트의 음료수를 선택하는 것이 고민인 그 아이는 자신의 느낌이 좀 더 선명해진다면 선택의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자기 내부에 귀 기울이고 작은 느낌을 소중히 다루기 시작하는 그 아이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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