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혼돈에 빠진 우리의 소원

김교성 경북본사장
김교성 경북본사장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어린 시절부터 부르고 들은 동요 '우리의 소원'이다. 북한에서 불리는 노래 제목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인 1947년 발표된 것으로 요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노랫가락이 예전만큼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얼마 전 TV 뉴스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 경계초소(GP)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궁예 유적지인 태봉국 철원성에 대한 군 관계자의 설명을 듣는 모습을 봤다. 임 실장은 이날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 작업 현장을 둘러본 후 이곳을 찾았다.

얼른 채널을 돌렸지만, 그 모습이 머리 안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한껏 폼을 잡은 임 실장의 모습에서 머리가 굵은 뒤에는 희미해진 한반도 통일이 무섭게 다가왔다. 이거 정말 '386세대' 운동권 주사파들이 그리는 고려연방제식 북남 통일이 추진되는 거 아니냐.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공산화다. 쓸데없는 걱정이겠지만 임 실장의 이날 군 방문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 군 서열 1위다. 대통령이 외유 중인 상황에서 국방부·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등을 대동하고 군부대를 시찰한다는 건 대통령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의지다. 하기야 북한 김정일의 호칭도 비서였다.

임 실장의 행동이 마뜩잖은 건 군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군 관계자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GP는 기자가 1980년대 중반 군 생활을 한 곳이다. 수색대대에서 소대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GP 부근에서 수색·매복 작전을 했고, GP와 군사분계선 사이 추진철책 건설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을 했다. 지뢰탐지기가 아닌 긴 드라이브를 날카롭게 갈아 땅을 쑤시며 지뢰를 찾을 때 임 실장은 뭘 했나. 그는 알려졌듯이 북한 체제에 동조하며 반미 시위를 이끈 인물이다. 당시 다수의 수색 대원이 지뢰 제거를 하다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개죽음을 당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군대에 가지 않은 임 실장은 궁예의 흔적을 바라보며 어떤 통일의 모습을 그렸을까. 궁예의 '관심법'으로 통일을 설계했을까. 첨예하게 맞선 분단국가의 현실에서 정상적인 군 복무를 한 사람이라면 임 실장과 같은 통일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 진보주의자들의 통일관은 이상적이지만 위험하다. 북한을 지원해(퍼주기) 더불어 잘살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고, 북한이 은밀히 감춘 핵무기로 핵보유국이 되는 시나리오다. 자부심이 느껴지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6·25전쟁 경험 세대를 비롯한 보수 세력들은 경제적, 군사적 우월감을 내세우며 우리나라와 미국이 주도하는 힘의 통일을 바라고 있다. 김씨 일가에 의한 세습 독재 체제인 북한의 몰락이다. 자유민주적인 통일이 아니라면 대치 국면의 현상 유지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많다. 지정학적 요인을 고려하면 외세는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이를 외면하고 남북한이 어디까지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을까.

정권에 따라 정치 논리로 통일을 추구하고 있으니 국민은 혼란스럽다. 외세의 이해관계를 반영해야 하고, 세대 간 간극도 커져 통일로 가는 길은 더 험난하다. 우리의 소원마저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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