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년 워런버핏' 투자사기 피해자들 "기부왕? 어림없는 소리, 처음부터 사익 추구 의심"

피해자들 "사기 혐의 A씨 처음부터 거짓말로 투자유치" 주장
변호인 측 "A씨 선의로 투자 유치했어, 악의 없었고 죄 뉘우치는 중" 입장 밝혀

"기부왕이요? 기부왕 행세를 하며 개인 이익을 추구한 범죄자입니다."

'청년 워런버핏'으로 불렸던 A(34) 씨의 투자사기 피해자들은 "A씨가 처음부터 사익 추구 목적으로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유명세를 얻기 전부터 거짓말을 일삼아 투자금을 챙겼고, 구속 직전까지도 '고수익'을 미끼로 돌려막기를 시도한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금으로 좋은 일 하라"며 투자자 유치

A씨는 2013년 경북대학교에 1천500만원을 기부하면서 '투자의 귀재'로 처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당시부터 최근까지 대학 동문과 교수, 학교 임직원, 의료·금융권 관계자 등 20여 명에게서 35억원 이상을 투자받았다.

2017년 '자산 부풀리기' 의혹으로 사기행각이 드러나자 A씨는 올해 초까지 투자자에게 원금·수익금 명목으로 10억4천만원을 돌려줬다. 나머지 24억6천만원(약 70%) 중 18억9천만원은 기부금으로, 5억7천만원은 생활비와 유흥비로 각각 사용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A씨는 봉사·기부에 힘쓰는 투자자와 학교 교수에게는 "투자 수익금을 불려 후학 양성을 위한 장학기금에 기부하라"고 유혹했고, 대학 동문들에게는 "용돈벌이를 하라"며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해 투자를 유치했다.

A씨의 대학 동기 B씨는 2010년 6월 A씨가 "홍콩 투자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주식거래를 할 계획"이라던 말을 믿고 가족·지인 돈까지 6천350만원을 맡겼다. A씨의 주식 투자 실력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지만, 학내엔 그가 입학 전부터 이미 주식으로 큰돈을 만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B씨도 학교 동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약 없는 투자가 한동안 지속됐다. B씨는 생활비가 필요할 때마다 A씨에게 연락해 '수익금'을 받아 썼지만, B씨가 연락하기 전에 A씨가 먼저 자산 운용 현황과 수익률, 수익금 규모를 알려주는 일은 없었다.

2017년 언론에서 A씨의 자산 부풀리기 의혹이 불거진 뒤 B씨는 투자금의 30% 수준인 1천874만원만 돌려받고 4천476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B씨는 "계약서라도 쓸 걸 그랬다. 내가 연락해 수익금을 요구하기 전에는 A씨가 먼저 내게 자산 운용 현황과 수익률·수익금 규모를 알려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홍콩에 다닌다더니 출국 이력도 없다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의 대학 선배이자 평소 봉사와 기부에 힘쓰던 직장인 C씨는 2016년 "월 20~40% 고수익을 내 줄테니 수익금으로 기부하라"던 A씨에게 속아 지인 돈까지 모두 13억9천만원 상당을 맡겨 피해를 봤다. 언론 보도로 알려진 A씨의 미담에 감동한 C씨는 2016년 그와 접촉해 교류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주식 투자 얘기는 한 차례도 입 밖에 내지 않던 A씨는 2016년 10월 C씨에게 "과거 후배 여학생이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다 사고로 숨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장학기금으로 어려운 학생을 돕기로 했다"며 "선배님도 기부를 좋아하시니 내게 돈을 맡겨 기부할 돈을 불리라"고 했다. C씨는 "당시엔 멋진 후배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과 자신감을 동시에 얻었다. 이제 와 고통받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A씨가 장학기금을 설립한 경북대학교 등 각 학교 교수와 교사 등은 그가 장학금을 기부한 뒤 '나처럼 투자 수익금을 장학기금에 기부해 좋은 일에 쓰라'는 권유를 받아 수백만~수억원의 돈을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 직전까지 돌려막기 정황도

검찰과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2015년 하반기 주식 투자에서 2억원 이상 손실을 본 뒤 신규 투자금으로 앞선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일삼았다. 이 같은 행각은 지난해 연말 그가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돼 구속 수감되기 직전까지도 이어졌다.

A씨의 대학 선배 D씨는 지난 1월 개인 사업을 준비하던 중 A씨로부터 '연 80~150%의 고수익 투자'를 제안받았다. 당시 A씨는 "자산 부풀리기 의혹 이후 투자자들이 원금 상환을 독촉하지만 주식 실력만은 확실하다. 수천만원을 맡기면 매년 20%의 수익을 돌려줄 테니 5년, 10년 뒤 특정 장학재단에 수익금 일부를 기부해 선행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D씨가 의구심을 품고 거절하자 A씨는 다시 "아프신 할머니가 퇴원하고 머물 집이라도 구하도록 5천만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고민하던 D씨는 며칠 뒤 한 투자 피해자로부터 "A씨가 당신 돈을 빌려 내 빚을 갚겠다더라"는 연락을 받고서야 돌려막기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사익추구 정황 분명해" 피해자들 강력 처벌 요구

현재 A씨 사건을 맡은 재판부에는 그의 감형을 요청하는 장학금 수혜자들의 탄원서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A씨가 기부에 치중하느라 주식에 소홀했던 것'이라며 처벌 수위 완화를 요구 중이다.

피해자들은 "A씨의 사익 추구 의도가 너무나도 분명하다. 선한 인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한다. 피해자들과 수사기관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이 사는 대구 수성구 두산동 프리미엄 아파트에 각 투자자를 초대해 자신의 부(富)를 과시하는 수법으로 투자심리를 자극했다. 실제 A씨는 해당 아파트에 월세 250만원가량을 내고 살던 세입자에 불과했다.

또 A씨가 사적으로 쓴 투자금 5억원 상당은 대부분 가족과 애인 등에게 쓴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A씨는 2014년 이후 부모에게 2억원 이상 송금하고 고급 차를 선물했으며 애인에게도 '장학사업 보조 수고비' 명목으로 1억원 상당을 송금했다.

매일신문이 입수한 A씨의 문자메시지 수·발신 내용에 따르면 그는 장학금 수혜 학생들과도 따로 만나 수일간 함께 보내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피해자는 "A씨가 장학금 수혜 후보를 일일이 면담해 결정한 뒤 장학금을 전달하고서 개별적으로도 몇 차례 만난 것으로 안다. 시혜자에 대한 수혜자의 선망 심리를 이용하는 '그루밍' 범죄도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해 대해 A씨 측 변호인은 "A씨도 처음에는 선의로 투자를 유치하는 등 악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법무법인 우리하나로 성상희 변호사는 "재판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 다만 A씨는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으며 상환 의지도 보이고 있다. 법정에서 죄를 두고 다투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A씨를 엄벌해 또 다른 투자사기를 막는 한편 예비 피해자들도 경각심을 지녀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주변에 고수익 투자를 권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거절하기를 권한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설득한다면 자금 운용 계획과 실제 투자 현황 공개를 요구하고 공증과 차용증 작성을 요구해 원금 보장 대책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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