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일상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윤조 사회부 차장

사막의 유목민들은 밤에 낙타를 묶어둔다. 그러면 아침에 끈을 풀어줘도 낙타는 도망가질 않는데, 그 이유는 나무에 끈이 묶인 밤을 기억하기 때문이란다.

조선 500년 오랜 역사의 유교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어두웠던 군부 독재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서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고 상당한 민주화의 진전을 일궜음에도 '과연 진정한 의미의 민주사회가 맞나'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선거를 기반으로 한 대의 민주주의만 강조될 뿐 일상 속에서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잔재가 깊게 드리워 있는 '생활 정치'의 부재 상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제도를 운영한 지 31년이지만 여전히 지역 정치는 부재 상태고, 관(官) 주도의 행정만 남발되고 있다. 여기에서 시민들은 자주 배제된다. 반대로 관은 시민의 참여를 권장해 보지만 관심 밖인 경우도 많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조직·기구 내에서도 민주화는 아직 요원하다. 상명하복식의 명령체계가 여전하고, 개인주의적 태도로 현안을 외면하며, 대화나 토론, 의견 수렴, 설득과 협력 등의 과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도가 마련돼 있다 하더라도 위계 서열부터 따지고 보는 한국 특유의 정서도 한몫 거들다 보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기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상황이 많이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한 곳도 다수다. 불평등이 초래한 격차는 시민 간 반목,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이느라 목소리를 낼 겨를조차 없는 플랫폼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층 더 가파른 급증세를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속 더 심각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 2년 동안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영업자들은 당장 오늘을 사는 데 급급해 내 삶이 얼마나 주체적이고 민주적인지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SNS 등 디지털 소통의 증가가 사회 여론 형성 참여를 쉽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기여도가 크지만, 어떤 측면으로 보면 '노이즈'를 강화하는 단점도 지적된다. 익명성의 장벽 뒤에 숨어 정제되지 않은 말들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언어들만 난무하다 보니 오히려 민주성을 저해하고 세대·성별 간 갈등을 낳는 혐오와 비난으로 얼룩져 사회문제화하는 사례도 꽤 많다.

문제는 내 삶과 직결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소리를 내거나 참여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가 대신 나서서 바꿔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핵심 원동력은 '참여'와 '행동'에 있다.

지금 당장 닥쳐올 6월 지방선거부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아무리 현실에 분노하거나 시대에 실망할지언정 우리는 절대 우리가 가진 권리마저 내려놔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후에도 삶의 순간 순간 내 집 현관문에서, 직장 앞에서, 여러 조직 속에서 민주주의가 움츠러들지 않도록 각자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삶의 뿌리까지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민주시민 교육도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존엄성을 존중받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키워내는 교육 시스템도 강화해야 한다.

삶과 생활 문화 속 모든 곳에서 민주주의가 녹아들게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다. 행동하는 시민의식이 생활화돼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나부터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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