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먹방' 전성시대다. 쿡방, 먹방, 셰프들이 나오는 예능은 이제 어색하기보다는 안 나오면 허전할 정도다. 이젠 단순한 먹방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유튜브로 옮겨간 먹방 열풍은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좀 더 기이하고 자극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먹방에서 음식을 대하는 공통적인 모습은 '탐식' '폭식' '과식'이다. 먹방은 무엇보다 음식이 지닌 본래 가치에 주목하지 않고 오로지 감각적 쾌락의 도구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먹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은 배달음식, 퓨전음식 등 대부분 패스트푸드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맛, 싼 가격, 빠른 식문화를 따라가고 있다.

최근 대구에서 '폭력적인' 음식 트렌드에 이의를 제기하는 운동에 나선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대구가톨릭대 외식산업학과 출신이 주축인 대구경북의 요리연구가 6명이 '대한민국 맛의 방주'를 펴냈다. 사라져가는 전통 식재료와 음식을 널리 알리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이 주창하는 운동은 국제슬로푸드협회의 '맛의 방주'(Ark of Taste) 프로젝트이다. '맛의 방주'는 노아의 방주처럼 위기에 처한 종자나 식재료를 '맛의 방주'에 승선시켜 음식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국제 프로젝트이다. 이들은 조리서를 통해 전통음식을 재현하면서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슬로푸드의 원조는 기실 대구경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예로부터 전해오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제사를 받들어 모시고,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는 유교적 실천 덕목이다. 이런 전통을 간직한 경북 북부지역에는 유독 고조리서(古調理書)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안동 수운잡방, 온주법, 음식절조, 상주 시의전서 등 한 지역에 고조리서가 조밀하게 기록, 전승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종부와 며느리가 만드는 안동 종가음식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최고의 전통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정부인 안동장씨 장계향(1598~1680)도 슬로푸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명망 있는 양반가의 부인으로서 제사와 접대음식을 연구하고 요리하는 데 한평생을 바쳤다. 음식디미방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여성이 쓴 최초의 요리서인 동시에, 최고(最古)의 한글 조리서이다. 여중군자 장계향은 붓을 들고 자자손손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글자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다해 조리 지침서를 썼다. 일흔이 넘어 침침해진 눈으로 조리법을 또박또박 써 놓은 음식디미방에는 우리 전통음식의 멋과 맛,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계향은 음식디미방 책 말미에 '이 책을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 잘 알고 이대로 시행하라, 딸자식들은 베껴 가되 가져갈 생각을 말며, 부디 상치 말게 간수하여 쉬이 떨어 버리지 말라'고 했다. 당부의 말을 남긴 그의 지혜와 300년이라는 세월에도 그 말을 지킨 후손들 덕분에 음식디미방은 대를 이어 올 수 있었다. 대를 이어온 우리 맛은 과거의 '음식디미방'에서 현재의 '대한민국 맛의 방주'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의 요리연구가들이 남긴 맛의 방주 108개 품목이 새로운 전통 음식문화로 남아 후손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 '음식은 건강이고 정성이고 사랑이며,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삶의 문화입니다.' 토종 식재료와 문화를 소중히 지키려는 그들의 소박한 바람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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