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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20년 뒤 대구의 랜드마크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요즘 들어 뜻밖의 이유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황제 샤자한과 왕비 뭄타즈 마할의 러브 스토리 못잖게 독점욕이 빚은 잔인한 이야기도 품고 있는 곳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건물을 지은 게 죄였다. 황제는 건축가들이 다른 곳에서 비슷한 걸 짓지 못하게 하려고 건축가들의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1648년의 이야기다.

관광객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던져야 그 공간이 오래도록 기억되고, 또 다른 관광객을 몰고 올 테니 자극적인 이야기를 후대에서 지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슷한 이야기는 1560년 준공된 러시아의 성 바실리 성당에도 있다. 폭군으로 악명 높았던 이반 4세가 성당을 만든 건축가들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다. 피의 전설을 갖고 있는 두 건축물 모두 인도와 러시아의 랜드마크로 꼽힌다.

랜드마크 건축물은 관광의 목적이 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이 몰려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파트의 시초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을 보유한 프랑스 마르세유가 수혜자다. 건축물을 작품으로 추앙하는 이들이 순례하듯 그곳으로 향한다.

대구로 눈을 돌려 보자.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된 김광석길, 수성못, 팔공산 등이 어른거리지만 선거 방송 때마다 상징물로 등장한 건 '83타워'다. 83타워를 배경으로 후보자들의 득표 현황을 내보였으니 상징물 역할이 부여된 셈이다. 부루마불에 대구가 있다면 랜드마크는 83타워일 것이다. 예술적·심미적 가치를 중점에 둔다면 1983년 준공된 대구문화예술회관을 꼽는 건축가들도 많다. 83타워가 바투 보이고 성당못도 안고 있다. 대구가 낳은 건축가 김인호의 작품이다.

건축물에 혼을 불어넣어 도시의 색깔을 다양하게 채색하는 건 의미 있는 시도다. 예술적 목적의 건축물로 한정할 건 아니다. 용적률 상향, 조경 시설 부담 경감 등 혜택을 주면서 특색 있는 아파트나 빌딩을 짓도록 유도하면 도시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전례도 있었다. 1982년 대구 중구 대봉동에 준공됐던 '한양가든테라스'다. 평수(222㎡)가 넓고 가구수(19가구)가 적다는 게 아쉬웠지만 자연 친화적 테라스를 둬 이채로웠던 곳이었다. 공공건축물은 말 하나 마나다. 입찰가격 중심이 아닌 디자인 중심의 공모로 진행하는 것이다. 한번 지으면 수십 년 동안 외관을 유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기능성에만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닌 것이다.

새롭게 짓는 것에만 몰두할 것도 아니다. 기차 철길에서 노을이 익어가는 모습과 야경을 확보한 아양철길은 어떤가. 철거될 처지였던 아양철교를 공공디자인과 접목해 도심 속 문화공간으로 복원해 냈다. 대구삼성창조캠퍼스에 있는 옛 제일모직 기숙사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를 증언하면서도 현대적 공간의 기능성에도 충실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20년 동안 대구에서 100조 원의 토목사업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비워질 공간은 또 다른 것으로 채워질 것이다. 다가올 20년을 대구의 미래 이미지를 채우는 시간으로 보는 까닭이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상징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 몇십 년 동안 조성된 수도권 신도시가 하나같이 비슷하게 생겼다고 비판받는 건 우리에게 좋은 오답 노트가 된다. 20년 뒤 대구 관광 기념사진 배경에 설 랜드마크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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