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1일 한일관계와 관련,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관계와 노동시간 문제에 대해 역대 최장인 23분을 할애해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하는 등 작정하고 직접 대국민 설득에 나선 듯 했다.
윤 대통령은 먼저 화해치유재단 해체,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 배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지소미아 종료·보류 등 그동안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고 진단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 정부 간 대화가 단절됐고, 한일관계는 파국 일보 직전에서 방치됐다"면서 "작년 5월 대통령 취임 이후, 존재마저 불투명해져 버린 한일관계의 정상화 방안을 고민해 왔다. 마치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고 했다.
특히 날로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 북핵 위협의 고도화 등 우리를 둘러싼 복합위기 속에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장 가깝게 교류해 온 숙명의 이웃 관계"라며 "독일과 프랑스도 양차 세계대전에서적으로 맞서다가 전후에 전격적으로 화해하고,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가깝게 협력하는 이웃이 됐다"며 "한일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한일 관계를 친구 관계에 비유하며 자주 만나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는 한 쪽이 더 얻으면 다른 쪽이 그만큼 더 잃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며 "한일관계는 함께 노력해 함께 더 많이 얻는 윈-윈 관계가 될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임 정부의 한일관계 방치 책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며 "그 여파로 양국 국민과 재일 동포들이 피해를 입고, 양국의 경제와 안보는 깊은 반목에 빠졌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부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해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작금의 엄중한 국제정세를 뒤로 하고,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일본의 과거사 문제 반성과 사과에 대해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이 한국 식민 지배를 따로 특정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 표명을 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라고 설명했다.
이번 한일 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정부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재차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해야 한다"며 "일본과도 협력하고 선의의 경쟁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제 한일 양국 정부는 각자 자신을 돌아보면서 한일관계의 정상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각자 스스로 제거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하면 수시로 만나는 양 정상 간 셔틀외교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며 "한일관계 정상화는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게 커다란 혜택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무엇보다 미래세대 청년들에게 큰 희망과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한일관계 개선은 한국산 제품 전반의 일본 시장 진출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라며 "양국 간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고 일본 국민의 한국 방문이 늘어나면 내수 회복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한편, 정부의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과 관련해 임금, 휴가 등 근로 보상체계에 대해 근로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 약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확실한 담보책을 강구할 것"이라며 "근로자들의 건강권, 휴식권 보장과 포괄임금제 악용 방지를 통한 정당한 보상에 조금의 의혹과 불안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에 대해서도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는 입장을 직접 공개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는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근로시간에 관한 노사 합의 구간을 주 단위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자유롭게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노사 양측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노동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제도의 설계에 있어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수집할 것"이라며 "특히 MZ근로자, 노조미가입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 노동 약자와 폭넓게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국민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데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숙의하고 민의를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