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족을 먹여살리고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한 한 할머니가 우연히 그림을 그려보았다. 이걸 본 손녀는 100세를 앞둔 할머니의 그림을 세상에 알려보자 했다. 그래서 전시회를 열었고 할머니는 기뻐했다. 세 문장으로 간단하게 끝나는 이 이야기 속에는 주인공 할머니의 지난한 삶과 이를 지켜본 자식들의 효심이 행간에 빼곡히 박혀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필순(96) 할머니와 그 가족들에게 그 행간에 박혀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현재 이 할머니가 병환 중인 관계로 인터뷰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 서면으로 진행했다.
이 할머니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할머니의 거처를 옮기면서부터다. 2006년 12월, 대구 달성군 가창면을 떠나 수성구 범물동으로 이사하면서 할머니는 정들었던 경로당 친구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마음의 병이 생겼다. 이를 이겨내게 한 게 바로 그림이었다.
"며느리가 그림 그리는 걸 권하길래 처음에는 밑그림 있는 스케치북에 색칠만 해 봤지요. 그러다가 백지가 보이길래 거기에 꽃을 그렸더니 며느리가 그걸 보고 밑그림 없는 하얀 스케치북을 사 줍디다. 밖에 나가서 꽃 보고 오면 그걸 종이에 그려보고 하다 보니 스케치북이 열 권 넘게 쌓입디다. 그거를 우리 손녀가 보고 좋다고 해서 사진도 찍고 인터넷에 올리고 하데요."
열 권 넘게 쌓인 스케치북에 쌓인 꽃 그림을 본 손녀는 할머니를 위해 언젠가는 전시회를 열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할머니에게 '치매'라는 돌이킬 수 없는 병환이 찾아왔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기억이 살아있을 때 전시회를 열어드리기 위해 방법을 알아보던 중 대구생활문화센터의 '시민작가열전'을 알게 됐고 전시회를 추진했다. 올해 1월 11일에 열린 전시는 방문객들의 호응을 얻었고 가정의 달을 맞아 다시 한 번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
그 많은 소재 중 꽃을 선택한 이유도 할머니의 인생과 연관이 깊다. 이 부분은 자식들도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처음 들었다고.
"17살에 시집와서 먹고 사느라 바빴는데 그 때 유일한 낙이 헝겊에 자수 놓는 거였어요. 색 실은 비싸니까 집에 있는 명주실을 염색해서 썼는데 그 때 자수로 꽃을 많이 만들었지요. 그래서 자꾸 꽃을 그리나봅니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손재주 좋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기는 했지만 그림에까지 소질이 있는 줄은 모르고 살았다"며 "평소에도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이웃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푸시는 분이셨는데 만약 제대로 교육을 받으셨다면 분명히 많은 재능을 발휘해서 좋은 일을 훨씬 더 많이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방문객들이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작가의 그림을 본다기 보다는 할머니가 보여주는 풍부한 상상력과 따뜻한 마음을 느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필순 할머니는 모든 걸 다 떠나 자신의 그림이 전시장에 걸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분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학교에 보내면 아이를 망친다'고 하시면서 학교 근처는 가 보지도 못했어요. 한글도 손녀가 중학생 때 가르쳐줘서 알게 됐으니 그림도 배워서 그린 게 아니어서 '나이 많은 할머니가 그린 꽃이 뭐 볼 거 있다고 전시하나'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하다 생각했는데 사람들도 좋아하는 걸 보니 잘 했다 싶어요. 백 살 다 돼가는 노인이 이렇게 그림 전시회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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