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잎 넓은 토란은 뒤뜰에 심고

식물에게 배우는 인문학(이동고 지음/ 학이사 펴냄/ 2021)

책을 읽다가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검색했다. 잘 모르니 그냥 들국화라 통칭하던 그들 이름을 제대로 불러줘야 할 것 같았다. 이 책 작가의 식물 사랑에 대한 독자로서의 감정동화가 큰 이유일 것이다. 그랬다. 작가는 서문에서 식물은 우리가 익히 알던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식물이 해온 일과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알고 인식하는 것은 지구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도 절박한 일이라고.

경남 합천에서 나고 자라며 자연과 하나 되는 즐거움을 일찍이 알았다는 작가는 기청산 식물원에 근무하며 식물을 깊고 새롭게 보게 되었다고 했다. '식물을 안다는 것, 자연과 닮은 조경문화를 꿈꾼다, 텃밭과 먹거리, 식물의 신비로움, 식물로부터 배우는 인문학'이라는 5부의 각 소제목에서 이 책의 큰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다. 개별 식물에 대한 역사와 생태적 특성까지 애정과 관심이 뚝뚝 묻어난다.

딱딱한 껍질의 잣 씨앗이 한 그루 늠름한 나무가 되는 것은 인생의 우여곡절에 견줄 바가 아니다. 땅 위에 떨어진 씨앗을 다람쥐나 청설모 등이 예비 식량으로 묻어 두고 그것을 깜빡 잊어버려야 하고, 흙 속 물기를 흡수해야 이듬해 싹을 틔울 수 있다. "씨앗이 텄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땅바닥에 붙어 자랄 때는 들쥐나 산토끼가 줄기를 갉아 먹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자라면 고라니의 주둥이를 피할 수가 없다."(32쪽)고 하니.

인문학이라는 말에는 어떤 설렘이 묻어난다. 식물에게서 배우든, 동물이나 사물에게서 배우든 그것이 인간의 가치와 표현 활동과 관계된 것이라면 태생적인 친근감을 갖게 되는데, 전통가옥의 조경 소개 부분은 이런 맥락에서 매료되는 대목이다. "잎이 넓은 토란도 집 뒤뜰 가까이에 심었다. 큰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즐기고, 약하게 오는 부슬비도 금세 알아차려 마당에 널린 빨래나 농작물을 빨리 거두게끔 하는 지혜가 담긴 식물"(83쪽)이라는 것.

지진을 감지하거나 음악과 청각을 가졌기도 한 식물 이야기, 버지니아 울프와 헤르만 헤세에게 수많은 자극과 자기 질서의 창조를 안겨준 원예 이야기도 흥미롭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을 칭송하지만 그가 얻은 용기와 위안마저도 끈기 있게 오른 야생의 산이며 자연의 숲으로부터 받은 경우가 많다."(247쪽)는 작가의 귀띔처럼, 품 넓고 극기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가까운 이에게 좋은 친구를 소개해 주듯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김남이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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