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인4쌤의 리얼스쿨] 학생과 자녀를 품기 위한 '파도타기'의 기술

거대한 파도와 같은 청소년기의 격변하는 호르몬과 두뇌의 성장
파도의 소리를 듣고 이해해야… 그 후엔 적절한 보드로 '함께' 파도를 탈 것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지난 추석, 시댁에 가는 길에 포항의 한 해변을 들렀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뛰노는 아이들 사이로 서퍼들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우두커니 앉아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멀리서 큰 파도가 온다는 연락이 오자 바로 보드를 들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이 둘을 끼고 시댁에 뛰어들 채비를 하던 나는 이 광경이 흥미로웠다.

학교 현장에서는 다양한 파도를 경험할 수 있다.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반도 있고, 폭풍 전야의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시커먼 파도와 거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반이 있다. 교장 선생님이 선사하는 쓰나미가 어디에서 발생했는가 추적해 보면 학부모 민원 전화가 진원지일 때도 있다.

청소년기의 격변하는 호르몬과 두뇌의 성장은 거대한 파도와 같다. 일종의 신호다. 달이 지구와 밀당을 하듯, 자녀가 부모와 밀당을 하겠다는 의지를 파도의 세기로 나타낸다. 하지만 이 시기의 파도는 대부분 쓰나미급이다. 자칫하면 바닥이 드러나면서 고이 묻혀있던 폐기물이 드러날 수 있다. 우리 어른들은 우리의 마음 풍경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파도타기의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

◆파도의 소리 들어보기

'왜요?'는 학교 현장에서 수도 없이 들어본 말이다. 이것은 교칙이란다. 왜요? 다 같이 정한 규율이거든. 왜요? 이렇게 설득이 안 된다니 부모님 불러야겠다. 왜요? 이 반복되는 파도 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으신가?

'왜요'를 외치는 학생들은 대부분 분노가 절정에 치달은 상태로 다가온다. 분노의 원인을 살펴보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좌절감, 무기력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큰 노력 없이도 잘살게 된 것은 시대의 고마운 흐름이지만 그것이 이안류(한두 시간 정도의 짧은 주기를 두고 매우 빠른 속도로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흐르는 좁은 표면 해류)가 될 줄은 우리 어른들은 아무도 몰랐다. 현대 사회는 아이들에게 높은 기준을 제시하는데, 이건 아이들의 발달 과정과 맞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얻어내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에 알맞은 흥미를 빼앗긴 현실에 분노한다.

흥미 없는 현실과 더불어 아이들은 부모의 무관심에 분노한다. 세상에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에게 무관심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이의 욕구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좌절시켰다. 의사소통과 감정 교류의 지루한 고통을 피하고자 스마트폰을 제한 없이 허용하기도 했다. 일거수일투족을 명령으로 실행시키고, 아이들의 순진한 욕구와 감정을 읽어주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떠올려 보면 분노의 거센소리가 이해될 것이다.

◆파도의 리듬을 이해하기

감정의 파도가 친다고 할 때, 그 파도는 영원히 한 가지 느낌으로만 밀려오지 않는다. 요동을 친다. 파도는 밀려왔다 사라진다.

어른 중에서도 간혹 '내 말이 맞다'는 논리로 밀고만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유념하자. 파도가 밀려올 때 나도 밀고 나가면 높은 확률로 모랫바닥에 꽂힌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피하기만 한다. 그런데 파도는 생각보다 '잽'을 잘 날린다. 피하기만 하면 물벼락만 계속 맞게 된다. 아이들의 감정을 계속 외면하면 짭짤한 분노의 맛을 계속 볼 뿐이다.

가끔 교무실에 들이닥치는 분노의 중학생들이 있다. 그 분노의 근원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리듬에 맞추어 밀당을 하다가 시원한 스포츠음료 하나 쥐여주면 꾸벅 인사하고 돌아가는 것이 중학생들이다. 그걸 모르고 정면 대응하면 바닥에 꽂히는 수가 있다.

◆내 몸에 맞는 적절한 보드 선택하기

그런데 파도와의 밀당은 쉽지 않다. 그런 분들은 튜브를 준비하자. 튜브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파도를 탈 수 있게 해준다. 유튜브 콘텐츠는 참 다양하다. '청소년 분노', '자녀 양육' 등의 키워드만 넣어도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니, 초보자들은 유'튜브'를 선택하자.

말랑한 튜브가 1단계 정도라면 2단계는 단단한 보드를 추천해 드린다. 우리를 단단하게 하는 것은 책만 한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내 몸에 맞는' 걸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자주, 많이 골라봐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명문대 사이즈의 수영복을 강요하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자각하게 된다.

나에게 온 파도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글의 장르나 저자의 종교, 정치성 등으로 지식을 '갈라치기' 하지 않고 접할 수 있다. 시중에는 마음 챙김, 육아, 행복 등과 관련된 서적이 많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맞닥뜨린 대상에 대한 통합적 사고, 즉 지혜를 발휘해 자신에게 맞는 서적을 잘 골라야 한다.

◆여럿이 함께 타기

바다에서 타는 보드도 여럿이 타야 안전하고 서로 도움이 된다. 달인이 되기 전까지는 전문가의 도움도 필수이다.

우리는 세상을 모두 처음 살아본 사람이라, 당연히 실수도 있고 모르는 것이 많다. 지난 17년간 중학생들을 만나면서 내가 깨달은 사실은 매해 새롭고 위험하고 짜릿하다는 것이다. 만약 교무실에 동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17분도 못 버텼을 것이다.

책으로 단단하게 내면을 세웠다면, 세상에 나와서 타인과 함께 파도를 타는 것을 권해드린다. 동호회, 종교모임, 육아 커뮤니티 등 나를 안전하고 긍정적으로 지지해 주는 모임에 적극 참여하자. 과감히 나의 틀을 깨고 남과 공존하며 지혜를 쌓으시기를 바란다.

쓰나미가 지나간 황폐한 풍경은 자연 현상의 일부라 할지라도 우리 정서에 좋지 않은 경험으로 남게 된다. 자연은 스스로 복구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 닥친 쓰나미는 복구가 잘되지 않는다. 우리 마음의 풍경도 잘 지키면서 슬기롭게 자녀와 밀당하는 오늘 하루를 만들었으면 한다.

교실전달자 (중학교 교사, 연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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