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선(線)을 넘은 자의 이야기

죄와 벌(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이문영 옮김/ 문학동네/ 2020)

도끼로 내리쳤다. 두 사람이 죽었다. 법대를 다니던 '라스콜니코프'(이하 '로쟈')는 자퇴한다. 유산을 전당포에 저당 잡혔으나 찾지 못하는 암울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세상의 악을 처단한다며 도끼를 내리쳤다. 이후 독자들은 살인자 로쟈가 끄는 세계로 끌려간다. 끈끈한 가족애를 만난다. 여동생은 돈 많은 남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하여 오빠, 엄마를 구원하려 하지만, 로쟈는 그런 희생을 막기 위해 고전분투한다. 그는 성을 팔아서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는 소냐를 알게 된다. 살인자를 따라 9개월간 그가 느끼는 세계를 경험하면서 같이 미쳐가는 기분이다.

900페이지에 이르는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자백에 대한 보강 증거가 없어 사건이 미로에 빠지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살인자가 끄는 세계가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이었기 때문에, 그보다 더 극한의 삶을 사는 소냐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며, 인간에 대한 희망을 기도로 채우며 살아간다. 로쟈는 나폴레옹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듯이, 비범한 인간이 처단할 수 있는 권능이 있고, 정당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비범한 인간이라 생각하고, 법봉 대신 도끼를 들게 된 것이라고 계속 외친다.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25세에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해 문학적 입지를 다졌으나, 자유주의를 옹호한 글로 인하여 28세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처형 직전 감형되어 33세에 출옥하였다. 그 무렵 이 작품을 썼다. 로쟈를 통해 작가의 억울한 삶을 토로하고,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끌어내고자 하였다. 그는 '선고에 의한 사형이 범죄자에 대한 살인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광기로 인한 일탈 행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푼 선정, 자수한 사실 등으로 감형을 받아 로쟈에게는 8년의 제2급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렇게 무서워하던 사회의 선고를 받게 되었다. 소냐가 그와 함께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범죄'가 러시아어로 '선을 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의 살인과 소냐의 매춘은 사회가 그은 선을 분명 넘었다. 로쟈는 자신을 '미학적, 이[蝨]'라 부르며 자신을 조롱한다. 죄의식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범죄심리학 보고서'는 독자에게 보고만 하고 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보고서'를 펼쳐 본 독자가 답을 찾아야 할 뿐.

이풍경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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