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재건축에도 수용제 도입을

서남진 전 LH대경본부장
서남진 전 LH대경본부장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집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5천169만 명 중 52.4%가 아파트에 거주하며, 총주택 1천916만 호 중 아파트는 1천227만 호로 64.0%를 차지한다.

좁은 국토 면적에 70% 이상이 산지인 나라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도시 주변의 산과 들판은 전부 저층 주택으로 빼곡히 채워지고, 철 따라 변하는 마을 뒷산을 오르고 개울가를 산책하는 여유도 없을 것이다. 한가롭게 즐기는 도심 숲 공원도 콘크리트 덩어리로 뒤덮였을지 모른다. 주거지 확장에 따른 엄청난 환경훼손은 물론 각종 기반 시설을 설치하고 유지·관리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한정된 국토의 효율적 활용과 국민 주거 편익 극대화를 동시에 실현하는 수단임에 틀림없다.

소중한 아파트가 이제 나이가 들어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태어난 순서대로 점점 낡고 허물어지고 있다. 전체 아파트 중 2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가 절반에 육박하며, 30년 이상 된 경우만 200만 호에 가깝다. 매년 그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수선과 현상 유지만 하기에는 비용과 물리적 한계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새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택지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재건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법상 재건축은 재개발이나 주거환경 개선사업과 달리 주변 기반 시설은 양호하나 단지 내 주택만 노후화된 경우에 추진하는 정비사업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나 지자체가 개입하기보다는 단지 내 주택 소유자들의 의사결정에 맡기고 있다. 정비구역이 지정되면 그때부터 토지 소유자 스스로 조합을 구성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새로운 아파트를 건설하게 된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접근한 결과이다.

우리나라 주거문화의 현실을 감안하고 공익적 측면에서 원활한 재건축을 위해서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재건축에도 다른 정비사업과 마찬가지로 수용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제63조)에서는 주거환경 정비사업이나 재개발사업과 달리, 재건축의 경우 사업 추진에 동의하지 않는 소유자 등에 대해서는 사법상의 권능인 매도 청구만 가능하며 원칙적으로 수용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매도 청구하는 경우 보상금액에 개발 이익이 포함되나 수용에서는 개발 이익이 배제된다. 같은 법령의 적용을 받는 정비사업임에도 이중 구조의 강제 보상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문제이고, 사적 이익 추구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도 모순이다. 그러다 보니 재건축 사업에 불만이 있는 경우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고, 결국 소송을 통해 강제집행할 때까지 수년씩 걸리게 된다. 지금까지 재건축이 난맥상을 보인 것은 조합의 미숙함도 있지만 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알박기와 한탕주의 영향도 크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 사업성이 떨어지고 결국 사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경우 그 비용은 나머지 대다수 주민과 시공사가 떠안게 되고, 지역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다음으로는 공공 부문에서 개별 재건축사업의 진행 상황을 관리하고 갈등을 적극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재건축의 문제 해결을 사적 주체에만 맡기기에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재건축사업의 공공성 문제를 정부 의제로 설정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지자체와 공기업이 전문가 조직을 통해 재건축을 비롯한 정비사업 추진을 지원하고 갈등을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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