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수능 만점자가 지방대에 갈 수 있게 하려면

모현철 디지털국 부국장
모현철 디지털국 부국장

과거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 진학을 권유했다가 무안을 당했다는 경험담이 수능 성적 발표 이후 온라인에서 다시 화제가 됐다. A씨는 지난해 한 지역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수능 만점을 받은 고교 3학년 수험생과 부모에게 지방 국립대에 입학원서를 넣어 보라고 권유했다고 썼다. A씨는 수능 만점자가 지방대에 가는 것이 과연 인생을 망치는 일인지 납득되지 않는다며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은 서울을 향한 열등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 진학을 권유한 본질은 경계를 뛰어넘는 리더가 되어 서울과 지방의 벽을 허물어 달라는 당부를 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수능 만점자가 지방에 남는 것이 대단한 이슈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의 의견은 찬반양론으로 갈렸다. A씨의 조언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다수였지만 일부는 충분히 고민해 볼 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024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이 단 한 명 나왔다. 유일의 만점자를 앞지른 표준점수 '전국 수석'은 대구 경신고 졸업생이 차지했고 서울대 의대에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만약 A씨처럼 전국 수석에게 지방 국립대에 지원하라고 권유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입시는 수능으로 끝나지 않는다. 의대 진학을 위해 서울대 입학생들이 빠져나가면 대학 서열대로 추가 합격과 편입학, 반수와 재수가 결정된다. 최근 10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 인구는 60만 명에 달한다. 올해 수능 응시자 50만 명보다 많은 숫자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서울과 수도권 대학 간 격차가 커지고 지방대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지방대는 지역 직원을 채용하고 학생들의 소비활동 거점 역할을 한다. 지방 경제를 지탱해 온 지방대 붕괴는 지역 경제 붕괴를 부른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지방의 추락은 지방대의 위기를 재촉했다. 지방대가 붕괴하면 유능한 청년이 부족한 지방이 될 수 있다. 청년이 떠나간 지방은 혁신 역량이 위축되고 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방대의 미래가 곧 지방의 미래인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들이 2023년 입학 정원 47만 명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40년 초에는 50% 이상의 대학이 신입생을 채울 수 없을 전망이다. 수도권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방대가 훨씬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대학 통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부가 비수도권 대학 30곳에 3조원을 투자하는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통합 논의에 불을 붙였다. 최근 경북대와 금오공대가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경북대 학생들의 반발이 커지자, 경북대가 통합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대학의 생존을 위해서 '학교 간 통합이 필요하다' '학교 안의 내실을 다지는 게 우선이다'는 논쟁은 영원한 숙제다. 수능 만점자와 전국 수석이 지방대에 진학하는 일이 인생을 망치는 것이라는 인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방적으로 수험생과 부모의 인식 변화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 대학들이 바뀌어야 한다. 어설픈 통합 논의와 추진은 오히려 학내 갈등과 불신만 초래할 수 있다. 구성원과 투명하게 소통하면서 특성화와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은 수험생들의 인식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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