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웅장한 해전' 있지만, '인간 이순신'은 없다

노량:죽음의 바다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명량·한산 이은 대서사 마무리
러닝타임 152분 중 100분 해전
가족의 사망, 파직, 배신, 분노…전쟁 중 받은 고통과 감정 변화 충분한 서사 구축 없어 아쉬워

영화 '노량'의 한 장면.
영화 '노량'의 한 장면.

노량해전은 임진왜란 7년을 마무리하는 가장 거대한 해전으로 1598년 12월 조선과 명, 왜 3국의 최강 해군이 맞붙은 야간 해전이었다. 순천왜성에 진을 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길을 터주지 않는 이순신에 의해 발이 묶여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을 유린한 왜적의 선봉장으로 이순신 장군은 그를 살려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고니시는 사천왜성에 있던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와 함께 조선 수군을 협공해 빠져나갈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이를 간파하고 길목인 노량에서 시마즈의 왜군을 격파한 것이 노량해전의 전모이다.

이순신 장군의 대서사가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감독 김한민)로 마무리됐다. 2014년 '명량', 2021년 '한산: 용의 출현'에 이은 임진왜란 최대의 해전이 스크린 가득히 펼쳐지며 이순신 장군의 장엄한 최후를 웅장하게 그려낸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아 '서울의 봄'과 함께 쌍끌이 흥행에 성공하며 모처럼 만에 극장가가 활기로 가득 찼다. '노량'은 개봉 1주일 만에 23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영화는 152분의 러닝타임 중 100분 가량을 해전에 쏟아부을 정도로 노량해전 묘사에 전력을 다한다. 특히 조선의 판옥선이 왜선인 세키부네와 부딪칠 때의 사운드와 화포의 굉음 등 음향효과가 강력하고 세밀하게 설계돼 영화를 보는 맛을 더한다.

거기에 이순신(김윤석), 시마즈(백윤식), 명의 진린(정재영), 등자룡(허준호)에 이르는 캐릭터에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불꽃 튀는 연기대결을 펼쳐 중량감을 더한다. '노량'은 극장에서 봐야 맛을 느낄 여러 요소들을 정성스럽고 고집스럽게 잘 담은 영화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고증도 돋보인다.

영화 '노량'의 한 장면.
영화 '노량'의 한 장면.
영화 '노량'의 한 장면.
영화 '노량'의 한 장면.

그러나 아쉬운 것은 역시 이순신이라는 인물이다. '명량'에서는 용장(勇將)으로, '한산:용의 출현'에서는 지장(智將)의 면모를 잘 그렸다. 그렇다면 '노량'에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영화는 이 점을 확실하게 빌드업시키지 못한다.

명의 장수 진린은 자신 보다 두 살이나 더 어린 이순신 장군을 '노야'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어르신'이라는 극 존칭이다. 진린은 고니시로부터 뇌물을 받고 전쟁도 나태할 정도의 외국 장수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이순신 장군을 '노야'라고 부른다.

죽음을 무릅쓴 이순신 장군의 구국의 열정을 높이 산 진린의 태도 변화겠지만 뭔가 스토리가 뭉텅 빠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영화가 이순신 장군의 감정의 변화나 비장미를 서사로 구축하지 못하고 해전에만 올인한 반증이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을 정도로 그는 분노의 화신이었다. 전쟁 도중에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들 면까지 전사한다.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선조는 그를 파직한다. 원균의 모함에 옥고를 치르며 고문을 받는다.

전쟁 중 가족을 잃고, 주군에게 버림받고, 전우가 자신의 등에 칼을 꽂는 상황은 보통 인간으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모든 것을 왜군에게 화살을 돌린다. 단 한 명의 왜군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섬멸 의지는 그가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을 겪었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량'은 면이 살해되는 꿈으로 자식 잃은 아비의 마음을 담으려고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분노에 찬 내면은 그리지 못한다. '명량'의 최민식이나, '한산: 용의 출현'의 박해일 배우에 비해 '노량'에서 김윤석 배우가 돋보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비로서, 신하로서, 장수로서의 길만 묵묵히 걸으려다 보니 김윤석 배우 또한 대사는 평면적이고, 행동 또한 틀에 갇혀 버린다.

전작들과 달리 스토리의 드라마틱한 부분이 약한 것도 '노량'의 흠이다. 전반부 조선과 명, 왜의 입장 묘사와 이후 해전으로 양분되다 보니 단조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는 비장미가 넘친다. 그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고감각 음향으로 전이된다. 그가 울리는 북소리는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명량'처럼 얄팍한 신파의 선을 타지 않으면서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잘 계산된 의도다. 152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 '노량'의 한 장면.
영화 '노량'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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